사랑에 빠진 영혼의 아름다움
"사랑은 뜨겁고 밤은차다"라는 클레멘스 브렌타노의 시구처럼, 가슴속의 사랑은 불처럼 타오르는데 사랑하는 이가 곁에 없어 빈자리가 시린 외로운 밤에 우리는 사랑의 편지를 쓰게 된다. 우리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고 따뜻하게 하는, 사랑한다는 말. 이 말을 연인에게 어떻게 전할까 하는 문제는 사랑에 빠진 모든 이들의 고민일 것이다. 말을 부리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작가들 역시 사랑과 이별, 그리움을 똑같이 겪는 인간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가가 쓴 편지 속에서 사랑을 하는 인간으로서 모두가 겪는 공통적 감정들은 고스란히 그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의 위대한 작가들이 쓴 연애편지들을 읽으면서, 작가들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얼마나 쩔쩔 매는지, 그 글 잘 Tm는 작가들이 사랑의 고백을 위해서는 얼마나 큰 언어적 빈곤을 경험하는지를 보고 우리는 약간의 희열과 위안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랑 앞에 나약해진 이들은 침착함을 잃고 종종 답장이 없는 연인에게 우체국의 업무 지연을 핑계대지 말라며 화내고 애원하면서 좀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요구한다. 이 편지들은 사랑에 빠진 영혼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연애편지의 고전
몰래 자신을 만나러 와달라며 남자 복장을 보내는 등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하는 볼테르의 편지, 만나 주지 않는 상대를 설득하고자 애쓰는 발자크의 편지, 매일 받는 편지 때문에 마음을 잡기 힘들다며 일주일에 한 번만 편지를 보내라는 카프카의 편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모양으로 글자를 배열하여 그 아름다움을 찬사한 아폴리네르의 상형 편지 등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갖가지 방법을 볼 수 있다. 이렇듯 모든 연애에는 사연이 있고, 사랑의 밀어가 담긴 편지들이 그 연애의 증거물로 남기도 한다. 그래서 촉망받는 젊은 불문학자와 독문학자가 대문호들과 연인들이 주고받은 사랑의 글들을 모아 우리말로 옮기고 그 작가들의 사연을 실었다. - 사랑만이 인생을 달콤하게 해주니까요 -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가 빌헬미네 폰 젱에에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들은 시기적으로는 근대이후의 유명한 자살자들이다. 자살자들이 자의식과 시대정신과의 고투 속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가 역사적 관점에서 인간 주체성의 자각이 태동되었던 근대이후의 인물들의 전기를 통해 정신사를 다시 쓰게 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저자는 각각의 인물들이 삶을 부정한 논리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 각 장에서 고흐, 츠바이크, 헤밍웨이, 클라이스트, 히틀러, 롬멜, 루돌프 황태자 등 7인의 자살자들이 삶의 목표와 세계관이 달랐던 만큼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과 양상도 각기 달랐으므로 독립된 주제의식을 가지고 고찰하고 있다.빈센트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들은 현실을 거역할 수도 없고, 또 거기에 복종할 수도 없다. 병이 드는 것은 그것 때문이므로 병은 낫지도 않으며 확실한 치료법은 있지도 않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죽음이 삶보다 위대하고 오래 계속된다고 느껴버린 불운한 천재는 자살이라는 최후의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 과연 인간은 무엇 때문에 자살을 하는 것인가. 그리고 무엇이 그들을 자살에 이르게 하는가. 자살을 둘러싼 견해는 다양한 방식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자살자들의 그 은밀하고 복잡한 세계를 밝혀내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전통적으로 죽음을 다스리는 것은 종교의 영역이었고, 기성의 종교는 자살에 대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비윤리적 행위로 금지했다. 다른 한편 근대이후 자살의 문제를 인간의 주체적 자율성의 영역으로 이해하는 의식들이 생겨났다.
이 책은 근대이후 시대의 격랑 속에서 죽음을 선택했던 7인의 작가, 예술가, 정치인들의 삶과 자살에 이르는 도정을 역사 · 전기적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자기결단을 요구하는 수많은 난관에 직면하여 혼란과 불안, 욕망 그리고 때로는 죽음의 유혹에 시달리기도 하는 인간의 실존은 자살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가들의 죽음에 의미의 덧칠을 하여 자살을 미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들이 왜 자살했는가 하는 문제를 자의식의 예술적 승화로 미화한다던가 아니면 병적 상태에서의 광증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또한 역사학자인 저자는 자살의 문제를 사회 병리적 현상이나 윤리적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냉정하고도 객관적 시각으로 역사·전기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봄으로써 세기의 자살자들을 통해 또 하나의 정신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편에 서왔다. 그리고 세기의 자살자들은 그 시대의 패배자로 혹은 이단아로 인식되어진다. 그러나 헤밍웨이의 말처럼 역사가 영원히 승자들의 것은 아니다. "죽음이 언제나 인간을 이기고 승리하며, 승자도 최후에는 빈손으로 나간다."
이 책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기의 자살자들의 정신세계는 시대를 넘어서 다시 부활한다. 그리고 그들 자신의 삶과 죽음을 재평가하도록 끊임없이 요구한다. 저자는 그들이 속한 사회와 시대 의식은 그들에게 어떻게 내면화되었으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자살의 주요한 동기를 추적한다. 그리하여 세기의 자살자들이 겪은 삶의 비극과 시대의 우울이 일체화되어 이루어진 자살자들의 죽음은 승자의 기록인 역사를 그 이면의 정신사를 통해 다시 한번 성찰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고흐, 츠바이크, 헤밍웨이, 클라이스트, 히틀러, 롬멜, 루돌프 황태자 등. 이 책에서 고찰하고 있는 세기의 자살자들은 그들의 면면만큼이나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자살을 선택한 그들 모두 삶에 대한 부정의 논리도 명백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그들이 죽음을 통해서 말하고자 했던 무언의 항의도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자살이 단지 사회병리 현상이나 인간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이며 금단의 땅이라는 관념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주체적 행위이며, 그들이 삶을 통해 이룬 것만큼 그들의 죽음에도 다양한 각도에서 진지한 성찰과 함께 실존적 의미를 박탈하지 말아야 할 것임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 4.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 후세를 바라보며 택한 자살
사랑으로 자란 사람만이 이후에도 자신을 사랑으로 보존할 수 있는 법이다. 자신을 사랑하려면 먼저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또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자신도 사랑을 받을 수 있고 그리하여 생명의 대열에 함께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랑을 세계의 중심에 설정하려 했던, 사랑을 자기보존과 세계보존의 힘으로 해석하려 했던 기독교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사랑받는 것이 삶의 조건'이라는 것이 바로 기독교의 본체니까. 현대인들은 기껏해야 이러한 원리를 인간의 유년기에나 적용시킬 것이다. 지금은 부모의 사랑만 있어도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기 때문에 구태여 '신'을 고안해 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 클라이스트 - 낙원에서의 추방 / 마지막 작품
세계사의 가장 결정적인 장면에서 충돌하는 천재들의 대결과 그 이면의 역사!
이들은 왜 공존하지 못하고 충돌해야만 했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 종교, 군사, 예술, 문학, 철학 등의 분야에서 라이벌들의 명승부는 항상 화제가 되어 왔다.
本書《세계사의 명장면-그 이면의 역사》는 세계사의 결정적인 장면에서 만나 격렬한 투쟁을 벌이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 천재들의 대결을 그린 것이다. 이러한 장면의 이면에는 우리가 간과하거나 알지 못했던 흥분을 불러일으킬 만한 사건과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이들이 왜 공존하지 못하고 충돌할 수 밖에 없었는가를 저자 골트슈미트 옌트너는 아주 새롭고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영혼의 우정을 나눌 수 있었으나 지상에서는 화해할 수 없는 적이었던 카이사르와 브루투스, 바그너와 니체. 처음부터 화해할 수 없는 적이었던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혹은 '스스로 역사를 움직일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이 움직인 역사를 조종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메테르니히의 말처럼 역사의 결정적인 사건에 참여함으로써 위대성을 획득한 경우도 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예수와 유다를 등장시킨다. 이들은 인물 자체가 가지는 중량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대결의 결과가 인류에게 가장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기에 세계사의 가장 결정적인 장면으로 설정한다.
브루투스는 왜 카이사스를 죽여야만 했는가? 지금까지 우리들이 갖고 있던 등장인물들에 대한 지식은 이 책으로 상당 부분 수정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지상의 길에서 스스로에게 부과한 사명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어떠한 희생과 투쟁을 벌여야만 했는지 공감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카이사르나 나폴레옹, 괴테 등의 전기는 많이 번역되어 나와 있지만, 브루투스나 메테르니히, 클라이스트 등의 전기는 거의 없다. 이런 점에서 본서는 기존 전기의 결함을 메우고, 이로써 좀 더 객관적으로 그들의 삶에 대하여 판단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좀 더 진실에 가까운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카이사르와 브루투스 - 독재자와 자유주의자의 대결
“최상의 죽음은 불의의 죽음이다.” -카이사르-
정치적 낭만주의자들은 카이사르에 대해 자유와 로마 민족의 내적 독립성을 파괴한 사람이라고 비난해 왔다. 또한 브루투스는 보통 역사책에서 배우는 것처럼 단지 교활한 암살자가 아니라 훨씬 더 중요한 인물이다. 혁명을 오용하여 혼란에 빠져버린 프랑스의 자유를 나폴레옹이 종식시켰던 것처럼, 카이사르도 국가와 민족을 몰락으로 치닫게 하였던 방종한 개인주의적 자유를 종결시켜야 했다. 그리고 자유 파괴자로서의 카이사르는 새로운 국가 질서의 창조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자유주의자였던 브루투스와의 엄청난 충돌을 몰고 왔다.
나폴레옹과 메테르니히 - 군사적 천재와 천재적 외교가의 대결
“스스로 역사를 움직일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이 움직인 역사를 조종하기라도 해야 한다.”
-메테르니히-
세계사의 무대에서 나폴레옹에 대한 대립자로 등장한 당시의 정치가들 중 메테르니히만큼 당시의 정치에 책임을 지고 있던 사람은 없었다.
서로가 세력 균형을 이루는 유럽을 꿈꾸던 외교적 천재 메테르니히는, 자신의 독재적 권력이 지배하는 서양 전체의 통합을 추구한 군사적 천재 나폴레옹과 숙명적인 대결을 펼쳐야 했다.
유럽의 반 나폴레옹 진영의 인물들은 좀처럼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분열되어 있을 때, 이들을 한 손에 움켜쥐고 나폴레옹과 결전을 벌인 외교의 천재 메테르니히.
나폴레옹과 숙명적인 대결을 펼쳤던 메테르니히도 나폴레옹을 '세상에 나타났던 가장 놀라운 사람'이라고 인정한다. 그리고 후에 “그것은 범용하다. 나폴레옹 이후의 시간은 스스로에게 맡겨져서 멈출 수 없기에 그저 흐를 뿐, 그 누구에 의해서도 이끌어지지 않고 있다." 라고 아쉬워한다.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범용한 사람들과 싸워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미켈란젤로-
너무 많은 천재들이 한 시대에 활동하고 있어서, 이 사람이야말로 그 시대가 배출한 최고의 위인이며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꼽는 것이 불가능한 역사상의 한 시기가 있다. 리멘슈나이더, 뒤러, 홀바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티치아노, 라파엘로가 함께 활약했던 르네상스 시대에서 한 사람만을 꼽아 이 사람이야말로 그 시대를 대표한다고 그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여러 명이 천재들이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며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그들을 서로 견주어보며 순위를 매기려고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순위 논쟁은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대결을 직접 지켜보았던 당시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계속되고 있다.
넘쳐나는 천재성을 다방면에서 표출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영혼의 인간 미켈란젤로, 선배들의 작품에서 장점만을 골라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한 라파엘로. 이들은 자신의 예술관을 관철시키기 위해 양보할 수 없는 경쟁을 펼쳤다.
예수와 유다 대결자이자 협력자?
“유다는 가장 신앙심이 깊었던 사람이다.” -헤벨-
지구상에 출현했던 모든 현상들 중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예수의 희생은 영혼의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을 동반하였다. 그것은 바로 유다의 배반이다.
왜 유다는 예수를 배반했는가? 유다가 누설한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배반은 필연적인 것인가? 유다는 범죄자인가, 희생자인가, 아니면 신적 사명의 완성자인가? 지난 2천 년 동안 신자와 비신자들은 유다가 예수에게 범했던 그 배반의 이유와 의미에 대한 물음을 계속해 왔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 이상 성서의 전승에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복음서의 역사 기술에 대한 이러한 불만족은 복음서나 교회가 전하는 것보다 더 깊은 근본적 이유들이 유다를 배신으로 몰고 갔을 것이라는 예감에서 출발하였다.
유다가 누설한 것은 대체 무엇인가?
이제까지 우리는 이 의문에 대하여 '예수가 있는 그 장소를 누설했다' 는 성서의 설명에 만족했다. 그러나 예수가 어디에 있는지 그 장소를 '누설'하고 이로써 단순히 예수를 당국에 '인도'한 것뿐이라면, 그리스도교 세계관이 유다에게 부여한 그 엄청나고 소름끼치는 지위는 인정되기 어렵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더욱 '유다가 누설한 것은 대체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추적자들과 제사장들이 예수를 감시하고 그를 체포할 수 있는 장소를 알아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유다가 누설한 것은 예수가 있는 장소가 아니라 좀 더 본질적인 것, 역사적 행동으로서의 결정적인 것을 포함해야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 5. 마지막에 배신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거부하는 편이 낫다 - 괴테와 클라이스트
프랑스 저널리스트 마르탱 모네스티에의 자살에 관한 백과사전이라 할 만큼 인류에게 일어났던 모든 자살의 기록을 꼼꼼하게 정리했다. 그간의 자살에 대한 책들이 대부분 과학이나 철학, 종교적 관점에서 접근했다면 이 책에서는 단순하고 일상적인 현실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자살에 관련한 일화, 즉 신문 사회면의 기사 같은 것을 그 수준 그대로 모아서 자살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자살에 관해 다양한 물음을 던지면서 언제, 어떻게, 누가, 왜 자살을 기도했는가를 수많은 사진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자살’이라는 말이 불러일으킬 만한 어둡고 불길한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는 않는다. 책 곳곳에서 자살과 관련된 유머러스하고 재치 있는 일화들을 만나볼 수도 있다. 크고 작은 인간 역사와 일화, 사회기사들을 통해 자살에 대햐 수없이 많은 질문들을 던져가면서 각자의 해답을 찾아가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영화배우 장국영이 홍콩의 한 호텔에서 투신 자살했다. 동성애에 따른 갈등과 우울증이 원인이었다는 게 지금까지 알려진 이유다. 수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던 그는 이제 살아 있는 사람들의 곁을 떠났고 추억만이 남았다. 그 이유가 더 드러난다 해도 떠난 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삶과 죽음, 그만큼 자살은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삶의 기록이다.
한 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숨진 이들의 통계치는 하루 평균 17.7명, 연간 6,460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와 함께 10대~20대 젊은층의 자살이 늘어나는 것도 새로운 문제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런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는 경제위기에 따른 경제적 박탈감과 가족해체의 심화가 지적되고 있다. 이처럼 자살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집단적, 사회적 문제의 핵심원인으로 떠오르면서 자살에 대한 관심사가 크게 확산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프랑스의 한 저널리스트가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자살에 관한 수많은 자료를 검토해가면서 저술한 책 <자살>이 출판되었고, 초판이 소화된 뒤 절판 후 다시 1년이 지난 지금 미진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하드커버로 장정을 바꾸어 새로운 개정판이 나왔다.
프랑스 저널리스트 마르탱 모네스티에가 쓴 이 책은 자살에 관한 백과사전이라 할 만큼 인류에게 일어났던 모든 자살의 기록을 꼼꼼하게 정리했다. 그간의 자살에 대한 책들이 대부분 과학이나 철학, 종교적 관점에서 접근했다면 이 책은 단순하고 일상적인 현실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자살에 관련된 일화, 즉 신문 사회면의 기사 같은 것을 그 수준 그대로 모아서 자살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고 저자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의 부제는 ‘자살의 역사와 기술, 기이한 자살 이야기’. 부제가 암시하듯 이 책은 자살에 관해 다양한 물음을 던지면서 언제, 어떻게, 누가, 왜 자살을 기도했는가를 수많은 사진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자살’이라는 말이 불러일으킬 만한 어둡고 불길한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책 곳곳에서 자살과 관련된 유머러스하고 재치 있는 일화들을 만나볼 수도 있다. 저자는 말한다.
흔히 통틀어 ‘사회면 기사’라고 폄하하는 ‘사소한 얘깃거리’, ‘일화’, ‘비화’ 들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여러 시대에 걸친 자살의 역사를 기술하려고 한다면, 물론 과학적 엄밀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작은 이야기들이 사실은 사람들의 진정한 관심거리를 더 정확히 반영해주는 거울과 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이 책 한 권을 준비한 지도 20년이나 되었다.
“우리가 이 책 한 권을 준비한 지도 20년이나 되었다”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그 어떤 자살 유형도 저자의 엄밀하고 열정적인 사실조사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감정적 자살로부터 가미가제의 자살까지, 희생자살에서 저항자살까지, 모방자살에서 집단자살까지, 문학에서의 자살에서부터 종교적인 자살권고에 이르기까지.
왜 스물다섯도 안 되는 젊은 청년들의 자살률이 가장 높은가? 왜 이상한 자살기구를 발명하여 자살하려 하는가? 왜 지역과 계절에 따라 자살률이 변하는가? 자살하는 방법과 인간의 상상력은 어디에까지 미치고 있을까? 동물들은 왜 자살하는 것일까? 문학에서 자살이 그토록 빈번하게 다루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의 독자들은 크고 작은 인간 역사와 일화, 사회기사들을 통해 수없이 많은 질문들을 던져가면서 각자의 해답을 찾아가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 앙리에트 보젤은 남편에게 3장의 긴 편지를 썼고, 유언의 조언자에게도 편지를 썼다."우리,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와 나는 스틴밍이라는 여관에서 조금은 유감스러운 상태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