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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면’이라든지 ‘사실’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 단어들에는 어떤 양면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면’에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거지? 호기심을 자극하고 ‘사실’은 반대로 거짓과 위선을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파헤치면 묻혀있는 무언가가 나올 것만 같아 신이 난다. 그래서 읽고 싶었고 읽게 되었다.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
표제작이기도 한 이 중편 작품은 열아홉이라는 나이에 막 자신의 꿈에 대해 생각하고 펼쳐 보이려던 한 젊은이에게 갑자기 찾아온 에이즈라는 병과 그 병을 겪는 동안 같이 아파하는 선배인 나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독특한 구성으로 담아내고 있다. 에이즈에 걸렸다는 것을 알자 두 젊은이는 하나의 소설을 쓰기로 한다. 일대기를 가진 한 가족사를. 그것이 바로 헬싱키에 사는 로카마티오 일가다. 그들은 그 일대기를 쓰려고 백과사전을 뒤진다. 1901년부터 번갈아가며 세계사적 이야기와 로카마티오의 일가를 연결 지으려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죽어가는 젊은이가 있다. 단지 살고 싶다는 소원 하나가 마지막 가질 수 있는 전부였던 어쩌면 너무 어린 소년과 그 소년으로 인해 죽음을 끝까지 지켜보게 된 친구와 슬픔과 절망 속에 남게 될 가족들이.
작품을 읽어가며 소년의 모습에서 나를 본다. 모든 것이 사라진 뒤 그래도 가질 수 있는 단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그래도 유지되는 살아간다는 것이다. 삶이 아니라 아침에 눈을 뜨면 해를 볼 수 있다는 것과 해가 지면 잠을 잘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한 것만이 남는다. 하지만 그것마저 주고 가야 할 때가 있다.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마지막 소년은 그래도 살았던 날들이 좋았다고 말한다. ‘이면’이 때론 이렇게 내게 쿵하고 부딪힐 때가 있다. 삶이 그렇듯이 그것도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미국 작곡가 존 모턴의 <도널드 J. 랭킨 일병 불협화음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었을 때]
감동은 어차피 찰나의 것이다. 그것이 오래 간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고 사실이 아닌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평행선을 이루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가.’그러니 자신의 감동은 자신만의 것이면 족하다. 세미콜론이 ; 참 ; 우울해 보인다! 그렇게 외칠 필요 없다니까.
[비타 애터나 거울 회사 : 왕국이 올 때까지 견고할 거울들]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소유물은 추억이고 살아있는 자신의 삶 그 자체다. 소유하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 텅 빈 방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여유를 주지만 할머니의 그리움만은 담지 못할 것이다. 어떤 물건을 소유하고 있느냐, 그것을 소중히 여기느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느냐, 등등 모든 것을 이렇게 따지지만 정작 다락방에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채 버려져 있는 것 같은 물건이 누군가에게는 기쁨이고 위안이고 추억이었음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그 기억이 존재하는 한 말이다. 거울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자신을 보는 가? 아니면 비춰줄 수 없는 어떤 것을 보는가? 그것은 보는 사람의 눈과 마음에 달린 일이다.
독특하고 색다른 글쓰기를 봤다. 내용도 좋았다. 다른 작품을 안 읽어봐서 그런지 내게 이 작가의 작품이 그렇게 많이 읽혔다는 사실이 의아하기만 하다. 이 작가의 ‘이면’에 어떤 ‘사실’이 숨어 있는 것인지 이 책은 오히려 궁금하게 만든다. 초기작이란 이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발표된 다른 작품이 궁금하게 만드는. 이것도 작가의 대단한 ‘이면’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