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치는 강가에서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강이 흐른다. 강은 굽이굽이 돌아 다시 떠나 온 곳으로 돌아온다. 우리도 강처럼 흐른다. 그렇게 우리도 떠난다. 유년의 기억 그 뜰에서, 소녀의 감성적 기쁨에서, 세월의 강을 따라 흐르다 다시 어느 날 떠나온 곳에 돌아와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한 소녀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코. 아름답고 순수한 소녀. 때 묻지 않은 발랄함을 가진 소녀다. 자물쇠가 달린 비밀 일기장과 소중한 친구와 동경하는 선배에 대해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소녀. 하지만 그 소녀 주변에는 그녀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또래가 없다. 그래서 그녀의 순수함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소녀시절도 막을 내리게 되어 있다. 그것은 더 이상 강가의 나무에 그네가 매달려 있지 않은 것과 같다. 세월의 어쩔 수 없음과 그녀의 순수함을 깨트리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함께 성장하고 싶어 하니까.


또 한 소녀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요시노다. 단짝 친구가 있는 그녀는 하급생들의 우상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친구는 족쇄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같이 다닌다. 그녀는 다 컸기 때문에 꼭 좋아해야만 같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그녀의 그림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낸다. 그녀는 소중한 것을 잃은 뒤 그 소중한 것을 품을 수 있게 된다. 가끔 사람들이 그렇듯이.


이 두 소녀와는 다른 제 삼자, 완벽한 타인으로 등장하는 마오코는 자신의 감정을 잘 안다. 그녀는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 세상을 달관한 듯, 어른이 소녀의 모습을 한 듯 보여 지지만 그런 소녀도 있는 법이다. 그것도 소녀의 한 모습이다. 그리고 어쩜 우리 주변에는 이런 소녀가 의외로 많을지 모른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리고 소년 둘이 있다. 이 작품에서는 가즈미라는 소녀에 대해 각자 생각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보여준다. 그녀로 인해 그들은 유년의 기억들을 하나, 둘 떠올린다. 개망초 핀 강가의 나무에 매어 놓은 그네에서 그네를 타던 기억, 폭풍우 치던 밤 떨며 자던 기억, 강가를 떠내려 간 배와 그 안에서 살해당한 가즈미의 엄마와 커다란 개와 음악당 사다리에서 떨어진 소녀에 대해서.


이 작품을 어떤 식으로 볼 것인가 보다 이 작품이 내 마음에 스며들어 내게도 있었던 봉인된 유년의 기억을 꺼내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게도 마리코와 같은 일기장이 있었다. 자물쇠가 앙증맞아서 샀던 일기장. 사 놓고 몇 장 쓰지도 않았으면서 항상 잠가 놓고 다녔던 일기장. 소녀 시절의 기억은 그 일기장과도 같다. 거창할 것 같아 뒤져보면 별 거 없고 그러면서 아기자기하고 앙증맞아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시절. 그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다가 사라진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각색되고 바래지고 퇴색되어 지거나 더욱 더 선명해지고 살이 붙어 실제의 형체를 알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우리가 유년의 기억, 소녀 시절의 기억, 십대의 기억을 잊으려 애쓰면서도 다시 더듬게 되는 것은 이 작품에서와 같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스라함 때문이다. 굽이치는 강가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만날지도 모른다. 그때 부디 좋은 기억만을 풀어 놓기를... 나쁜 기억일랑 강물에 던져버리고... 누구도 사실을, 그 시절 진실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너무 멀리 떠내려간 쪽배처럼...


마지막까지 독자를 끌었다 놨다 하는 힘이 대단하다. 무심해 질만 하면 툭 건드리고 떨어 질만 하면 다시 올려놓고 그 강가의 그네가 보이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그 그네를 탈 수 있을 것처럼 유혹한다. 햇살이 눈부시고 레모네이드는 달콤했으리라. 그리고 강은 말없이 흐르고 아마도 책장을 덮고서도 우리가 있는 곳에서 개망초 향기를 맡으며 누군가에게, 그 누군가에게 미소 짓고 있으리라. 그 시절의 나도 이렇게 사랑스러웠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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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6-08-07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흠,,, 평소같으면 리뷰니까..댓글 없이 그냥 갔을텐데. 마침 레모네이드를 마시는 중인지라! ^^

물만두 2006-08-07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 레모네이드 맛있나^^

반딧불,, 2006-08-07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요사이 너무 잘쓰시니까 질투가!

물만두 2006-08-07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디님 잘 쓴 거 아닌데요.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막 썼다구요 ㅠ.ㅠ;;;

페일레스 2006-08-07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물만두님 또 뽐뿌질을 하시는구만요. 온다 리쿠 빠돌이가 되어야 하는가!

물만두 2006-08-08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일레스님 온다누님의 빠돌이 좋잖아요^^

DJ뽀스 2006-08-29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다 읽고 리뷰 뒤지고 있습니다. 참 매력적인 작가네요. ^^:

물만두 2006-08-29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제이뽀스님 정말 독자를 빠져들게 하죠^^

민짱 2007-09-2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요 엄마의 자살방법이 잘 이해가 안 돼요.. 혼자 음독을 하던지, 손목을 긋던지 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어린 딸을 끌어들였는지.. 그 딸의 상처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나간 거 같진 않은데..
소설의 스토리상으로 그래야 뭔가 꺼리가 생기지만 그래도 좀 자살방법에 왜 딸을 끌어들여야 했는지는 좀.. 납득이 안 가는데 이 부분에 대한 의견은 없네요?? 님은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