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피색 가게들 - 슬라브 문학 2
브루노 슐츠 지음, 정보라 옮김 / 길(도서출판)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우선 내가 이 작품을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카프카의 <변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듯이 나는 이 작품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작가는 여러 편의 단편으로 나누었고 이 단편집은 그가 직접 만든 단편집은 아니다. 하지만 단편들이 물 흐르듯 이어짐을 읽으며 알 수 있었다.

 

맨 처음 등장하는 <8월>의 뚜야와 그녀의 엄마 마리아를 보면서 나는 실비 제르맹이 <프라하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를 쓸 때 이들의 모습을 투영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로 뚜야와 마리아는 폴란드의 거리를 헤매겠지만 폴란드를 거닐든, 프라하를 거닐든 그 차이는 없는 것 아닐까. 그 8월 슐츠가 본 뚜야는 지금 폴란드의 어디에서 걸어 다닐지. 어쩜 우린 그녀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보이는 건 파리뿐일지도 모르니까.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아버지의 기행은 카프카의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의 모습을 연상시키고 하녀 아델라의 아버지에 대한 행동은 <변신>에서 그레고르에게 사과를 던진 아버지를 생각나게 한다. 아버지의 광기는 새가 되었다가 바퀴벌레가 되었다가 하면서 어린 소년인 저자를 당황하게 하지만 아델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새를 내쫒고 바퀴벌레를 쓸어담아 버린다. 물론 아버지는 <변신>에서의 그레고르처럼 완전하게 변신을 하는 건 아니다. 어쩌면 그건 저자의 어린 시절의 환상의 투영일 수 있다.

 

여기에 저자는 몽환적인 환타지를 구사한다. 끊임없이 사람들이 바스라지고 벽 틈으로 사라지게 그리고 쪼그라들고 거울 속에서 돌아다니며 있지도 않는 거리와 있었으면 하는 거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유대인인 저자는 작품 안에 유대인의 문화를 삽입시키면서 다른 문화와의 충돌을 보여주고 은근히 다른 문화를 형이하학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것은 잠깐 스쳐 지나치기 때문에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저자의 단어 하나하나가 은유적이고 곱씹어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알아채기 쉽기도 하다.

 

놀라운 것은 저자가 <마네킹>이라는 작품과 다른 여러 작품 안에서 나타내지만 물질적인 것에 숨결을 불어넣어 살아 숨 쉬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들 마네킹이라든가, 박제된 새라든가, 지나가는 혜성 등은 마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생명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려지고 있다. 물론 몽환적이기에 벽지라던가 길가의 담같은 것을 생물적으로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감탄을 하게 만드는, 아니 그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누가 아는가. 슐츠의 말처럼 그들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우리가 모르는 동안 자신들만의 생명을 가지고 우리를 쳐다보며 생각하고 있을지...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었지만 읽고 난 뒤 읽었다는 만족감을 주는 작품이다. 물론 역자의 도움을 받아 이해하게 되는 것도 많았지만 이 얇고 작은 분량 안에 이렇게 풍부한 묘사와 표현이 들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어떤 사실, <까롤 아저씨>를 통해 이혼한 남자의 모습을 표현한 것은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글을 쓴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만 아하 하게 되는 작품도 있지만 그런 배경을 몰라도 현대에도 충분히 그려질 수 있는 그런 작품들이라 놀라웠고 끊임없이 환상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그의 아버지의 존재감은 부정할 수 없는 가족에 대한 저자의 끊을 수 없는 끈이고 그의 종교와 민족에 대한 버리지 못하는, 버릴 수 없는 중압감의 표현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가 만약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가 더 좋은 세상을 만났더라면 얼마나 더 좋은 글을 썼을지는 알 수 없지만 몇 편의 작품을 통해서 그의 천재성은 유감없이 발휘됨을 알 수 있고 삽입된 그의 그림이 삽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잘 어울린다는 사실에 또 한 번 그가 천재였다고 말하고 싶다.

 

천편일률적인 작품들에 질린 독자들에게 어서 이 책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머리를 쥐어뜯더라고 이 책을 읽고 나면 보기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것이다. 나는 이 책을 본 내가 정말 자랑스럽고 대견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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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니 2006-07-31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로 나쁜 상황이나 시련이 숨겨있던 어떤 재능 같은 것을 발휘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물만두님 리뷰 보면 늘 그냥 확 사버려~!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요..저 이제 고양이는 알고 있다 읽는 중에요..게으르죠???


물만두 2006-07-31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니님 작가들의 능력이 그런 것으로 발휘된다는 점이 늘 안타까워요.
무슨 말씀을요^^;;; 천천히 재미나게 읽으세요^^

플레져 2006-08-01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때는 좀 고된(?) 느낌이 없잖아 있었는데
읽고나면 뭔가 뭉글뭉글 피어나는 느낌이었어요.
제목도 참 이쁘죠? 계피색 가게들 ^^

물만두 2006-08-01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읽은 부분 또 읽고 또 읽고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몰라요 ㅠ.ㅠ 근데 진짜 좋더군요. 8월의 뙤양볕아래에서 몽환적으로 피어오르는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작품이었습니다^^

stella.K 2006-08-01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볼까 생각했는데, 머리를 쥐어 뜯는다니 다시 고려해 봐야겠군요. 흐흐

물만두 2006-08-01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그리고 나중에 후회로 또 한번 머리를 쥐어 뜯으세요^^ㅋㅋ

stella.K 2006-08-02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머리털 남아나지 않겠군요! 흐흐

물만두 2006-08-02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가발 잘하는 하이모가 있잖아요^^ㅋㅋㅋ

stella.K 2006-08-02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력하구 집요하군요. 알았어요. 얼았어. ㅜ.ㅜ

물만두 2006-08-02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제가 괜히 호객만두겠어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