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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회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2
헨리 제임스 지음, 최경도 옮김 / 민음사 / 2005년 7월
평점 :
처음엔 이 제목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책장을 열자 한 남자가 나사에 대해 얘기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게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그 남자가 하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어느 가정교사의 일기, 수기처럼 쓰인 책이 펼쳐져서 액자 소설이라 생각했다.
한 가정교사가 남매가 있는 집에 취직을 하게 된다. 부모를 잃고 삼촌 손에 길러지는 아이들은 하지만 삼촌은 돈만 대며 떨어져 살고 시골에서 가정부와 하인들과 가정교사와 함께 사는 방식으로 길들여졌다. 가정교사가 들어오고 나서 남매의 오빠인 아이가 기숙학교에서 퇴학당해 온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정교사는 그 집에서 두 명의 유령을 목격하게 되고 그 유령들이 사악하다는 걸 파악함과 동시에 아이들이 그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 아이들을 그들로부터 지키려는 사명감에 불타오른다. 그녀와 가정부는 손을 잡고 유령에게서 아이들을 떼어내려 하지만 아이들의 완강한 저항과 당돌한 행동에 당황하게 된다.
이 작품이 솔직히 무서운 유령이 등장하는 호러 소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작품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마지막 갑자기 막을 내리듯 끝나는 점도 이상하고 정작 어떤 진전도, 가정교사가 어떤 해결책을 내놓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이 작품에는 마치 무엇인가 있을 것 같아 끊임없이 다음 장을 펼치게 만든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가정교사는 진짜 유령을 본 것일까? 아님 가정교사의 환상이 만들어낸 것일까? 무엇보다 이 작품이 기묘한 것은 아이들이 너무도 착하게 그려지는 동시에 암묵적으로 유령과 소통하는 기묘함을 풍겨 더욱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점은 가정교사의 관점에서만 서술된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아무런 자극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일이 발생한다. 자극이 있다면 가정교사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일 뿐이다.
무엇이 사실인지 알 수는 없다. 진짜, 가짜를 판명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긴밀하게 소통해야 할 가정교사와 아이들 간에 그 어떤 소통도 없다는 점이다. 가정교사와 아이들은 대화하지 않는다. 그런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이 어찌 보면 이 작품의 핵심일지 모른다. 가장 긴밀해야 할 사이로 부모를 잃고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누구보다 엄마 같아야 할 사람이 들어오자마자 유령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아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 보여 지는 모습은 마치 <레베카>에서 가정부가 아무것도 모른 체 집의 안주인이 된 어린 마님을 좌지우지하려는 그런 모습과 흡사하다.
이것이 내가 본 이 작품에 대한 느낌이었다. 전혀 무섭지 않으면서 더 이상한 공포를 느끼게 하는 작품. 사실 유령은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고 한다. 산길에서 만났을 때 가장 무서운 존재는 사람이라고 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공포는 이런 공포가 아닐까 싶다. 가정교사와 아이들의 물과 기름 같은 관계에서 빚어지는 공포. 언제나 맑고 천진한 모습으로만 보여 지는 아이들의 그림자에서 오는 공포, 그리고 가정교사의 말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오는 공포.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작품 속에서는 모든 것이 보여 질 뿐이다. 보이는 게 아니라 보여 진다고 보여준다. 가정교사, 가정부, 아이들, 실체 없이 단 한번 등장하는 고용주인 삼촌까지. 그러니 처음에 남자가 책 한 권을 보내는 것이 아니었을까. 보여 지고 보여주는 것들 사이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단지 우리 몫이며 공포도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듯!
작가의 기교에 탄복할 뿐이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상상만으로 공포를 만들어내도록 유도하는 기발함이 시대 배경과 어우러져 한편의 고딕소설의 백미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참, 고딕소설 많이 읽지도 않았지만. 추리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이 시대에도 통할 참신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자꾸만 그 가정교사는 검은 드레스를 입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빛나는 아이들의 미소가 사악하게 변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앞에서는 천진하고 뒤돌아 웃을 때는 악의적인... 여름밤에 상상하며 읽으면 딱이다. 조명도 촛불로 하고 말이다. 바람으로 창문이 덜컹대면... 제발 소리는 지르지 말기를. 소리 지르면 당신만 더 무서워질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