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플랜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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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돈벼락 한번 맞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어디 눈 먼 돈 없나?', '로또에 1등 당첨만 되면 한방에 인생 대박나는건데...'. 과연 그럴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 그건 그냥 생각일 뿐이고 내가 노력해서 번 돈이 아닌 건 내 돈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로또에 1등 당첨된 사람들 중에 대다수가 다시 파산을 하더라는 통계는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돈이 어떻게 독이 되어 순식간에 한 남자의 인생에 번지게 되는지를 너무도 생생하게 현실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형제라지만 결코 친하지 않은 형제 행크와 제이콥은 12월 31일이면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부모님 묘지에 함께 간다. 그 날도 형제와 형의 친구 루는 차를 타고 가다가 닭을 잡아 도망가는 여우때문에 차를 급히 세우게 되고 그 여우를 따라 형의 개가 뛰어 가는 바람에 개를 찾는다고 눈 덮인 숲을 뒤지다가 추락한 경비행기를 발견한다. 비행기 안에는 조종사의 시체뿐 아니라 현금 4백40만 달러가 있었다. 그 돈을 발견하는 순간 그들의 운명은 결정된다. 행크는 처음에는 신고하려 했지만 직업이 없이 놀고 있던 형과 루가 돈을 갖자고 한다. 고민을 한 행크는 돈의 안전이 확보되기까지 6개월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다가 돈을 나누기로 한다. 만약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즉시 태우기로 하고. 돈을 실제로 보지 않았을때는 좋게 말할 수 있다. 사라처럼. "신고해야 돼. 잡힐 꺼야." 하지만 일단 돈을 눈 앞에서 보게 되면 바뀌게 된다. "잡히면 안돼. 잘 될 거야." 탐욕은 인간의 본성임을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천천히 보여주기 시작하는데 읽는 내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때 이미 행크와 제이콥, 루는 행운이 아닌 돈이라는 검은 악마를 만난 것이다. 그 악마가 평범하고 착하게 사는 중산층 시민이라는 행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만드는지 읽는 내내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그리고 불편한 진실을 깨닫게 된다. 만약 이런 큰 돈이 내게도 가질 기회가 생긴다면 어쩌면 나도 행크처럼 될 수 있다는. 그들은 서로를 믿지 못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되고 때론 두 명이 한 명을 따돌리지 않을까 걱정하게 만들며 의심과 불신을 만들어간다. 행크와 제이콥은 사이가 좋지는 않지만 형제라는 끈이 있다. 이건 행크가 제이콥을 믿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다. 하지만 제이콥과 루는 아주 친한 친구다. 그들은 행크가 가져본 적 없는 우정을 나누는 사이다. 이것이 행크를 불안하게 만든다. 결국 행크는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한 직업과 가정, 아내가 있고 앞으로 잘 사는 길만이 남았다는 소박한 꿈은 허상이었음을 깨닫는다. 자신과 형과 루는 결코 다른 인물이 아니었음을. 아니 내 개인적인 생각은 제이콥이 행크보다는 더 나은 인물이다. 적어도 그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소중한 추억을 간직할 줄 알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줄 알기 때문이다. 

평범한 회계사인 행크가 범죄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다. 그는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을 한다. 남의 눈에는 그렇게 비쳤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어려움에 처했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의논을 해올 때까지 몰랐고 자발적으로 부모님을 찾아뵌 적이 없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 형이 아이들에게 맞고 우는 것에 실망해 속으로, 겉으로 형을 경멸하는 인물이고 형의 친구를 쓰레기 취급하고 형을 부랑자 취급하며 자신의 우월감을 은연중에 나타내는 인물이다. 행크와 행크의 아내는 대학까지 나왔기 때문에 자신이 나고 자란 시골 마을, 거의 폐허가 되어가는 곳이 지겹고 싫었다. 말을 안했을 뿐이지만 그의 아내 사라도 그랬다. 그녀는 행크를 부추기기까지 한다. 부창부수가 따로 없다. 그곳에서의 중산층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그들은 원했던 것이다. 그 길이 열리게 되었다 생각하니 내면에 감추고 있던 욕망이 터져나온 것이리라. 

정말 간단하다. 범죄는, 그리고 살인은. 내가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만 하면 간단하다. 너무도 심플해서 계획을 세울 것도 없다. 인간이 원래부터 선하다고 누가 말하는지. 그건 그저 보여지고 보여지게 만드는 포장의 기술, 껍데기의 미학이 아닐까. 도덕이라는, 법률이라는, 선이라는... 그런데 그것들이 눈에 덮여 있다가 어느 날 봄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면 인간이 서 있던 자리에 남는 것은 추악한 사실뿐이다. 탐욕과 거짓과 자기기만에 가득 찬 존재가 바로 나였다는. 행크가 뒤늦게 깨달은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이런 사실을 알려줬더라도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는 더 끔찍한 내면의 울림으로 인해 읽으면서 움찔움찔하게 된다. 어쩌면 나도 이럴 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이가 들면 그래서 예전처럼 쉽게 '나는 안 그래.'라고 말하지 못하게 된다. 상황이 인간을 변하게 만들거나 숨겨진 자신을 드러내게 만들 수 있으니까. 

우리가 범죄의 길에 빠지기는 쉽다.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고 잡히지만 잡히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잘 사는 이들도 있다. 잘 산다는 게 어떤 건지가 문제겠지만. 이들처럼 살고 싶어 한다면 아마 늪에 빠지는 것처럼 파멸은 순식간에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 알면서도 행크가 되지는 말았으면 한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행크가 존재하는지. 우리가 행크가 되는 일은 정말 쉽고 간단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읽는데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 강렬함은 여전히 대단했다. 나도 스티븐 킹처럼 외쳤다. "무조건 읽어라. 이 작품 진짜 걸작이다!."라고. 지금 안 읽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작품이다. 평범한 인간이 돈으로 인해 변해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담아내 서스펜스를 극대화시켜 보여준 스릴러 최고의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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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9-04-15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허명이 아닌가 보군요. 샘 레이미의 영화는 좀 심심했고, 작가의 두번째 작품 <폐허>가 워낙 지루했지라 솔직히 조금 의심했거든요. 하여튼 보지 않고는 함부로 말할 수 없다니까요^^

물만두 2009-04-15 13:09   좋아요 0 | URL
저 이 작품 두번 읽었습니다. 읽을때마다 더 좋아지는 작품입니다^^

비연 2009-04-15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폐허가 너무...별루였던 지라 많이 망설여지기는 하는데..만두님이 권하시니 ^^;;;

물만두 2009-04-15 16:14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읽으셔야 합니다~

헤라 2009-04-15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모두들 폐허가 별루라고 하는지 몰겠네요....^^;; 전 나름 재미있었어요. 황당함 그자체라고 몰아 붙인다면 뭐 할말은 없지만 말그대로 소설이잖아요~~그쵸? 제발~~그쵸?

물만두 2009-04-15 18:54   좋아요 1 | URL
저도 폐허 좋았습니다. 뭐, 각자 생각이 다르니까요^^;;;
황당하지도 않았고 그 공포도 나름 괜찮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니어 2009-04-17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샘레이미때문에 영화만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

물만두 2009-04-17 19:04   좋아요 1 | URL
영화 이야기하시는 분이 꽤 계시더군요.
전 안봐서 모르겠지만 책은 좋습니다^^

2009-05-06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6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