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품이 세월이 흘러도 계속 영화나 드라마로 리메이크되는 경우는 단 하나의 이유뿐이다. 그 작품이 걸작이라는 이유! 바로 이 작품,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이 일본에서는 그런 작품에 해당됨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누가미의 일족을 일으킨 사헤옹이 죽으며 남긴 유언장때문에 피바람이 몰아치게 되는 한 가문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단지 미스터리 스릴러의 고전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도 부족한 명작이다. 사헤옹은 말도 안되는 유언장을 남긴다. 아직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은 큰 손자 스케키요가 돌아오면 알려지게 되는 이 피를 부르는 유언장에 긴다이치 코스케는 그 유언장을 작성한 번호사 사무실의 사람의 부탁을 받고 오게 되면서 연루된다. 그런데 늘 하는 얘기지만 만났더라면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거나 미연에 막을 수도 있었을텐데 안타깝게도 간발의 차이로 그와 만남이 어긋남에 따라 그는 교묘하게 독살된 채 발견되고 이미 유언장을 공개도 하지 않은 시점에서 살인은 시작되고 있었다. 여기에 전선에서 돌아온 스케키요는 얼굴에 큰 상처를 입고 돌아와 예전 얼굴과 같은 가면을 쓰고 있지만 어딘지 섬뜩함을 느끼게 만들고 유언장의 공개와 동시에 일약 객식구에서 이누가미의 전재산의 상속녀나 다름없게 된 아름다운 다마요에게 의혹의 눈길들이 쏠리게 된다. 그러면서 서서히 살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거기에 따라 감춰졌던 이누가미가 여자들이 사헤옹의 사생아 아들과 그 어머니에게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가 밝혀지게 되고 사헤옹의 옛날 사생활도 드러나게 된다. 읽다보면 마치 옛날 전설이나 신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뭐, 한 가문의 신화라면 신화이기도 하겠지만. 세 개의 신물을 얻는 자가 가문의 모든 것을 갖게 된다는 것이니 말이다. '요키, 고토, 기쿠'라는 이누가미의 상징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점과 살인 사건이 주는 의미가 더해져서 긴다이치 코스케를 혼란에 빠트린다. 그 점이 또한 작품을 순식간에 읽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고. 여전히 초라하고 볼품없는 행색의 긴다이치는 마지막에 가서야 사건을 해결한다. 중간중간 이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을 중얼거리면서. 요코미조 세이시는 꼭 한 가문의 이야기를 다룬다. 깊은 내력이 있는 가문이든 신흥 가문이든 모두 돈이 많은 가문은 반드시 문제가 있게 마련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뭐, 어느 시대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지만 살인이라는 범죄는 인간이 만든 가장 기본적 구성 단위인 가족에게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늘 알려주려 애쓰는 것 같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를 보면 모두 부자 가문, 미녀, 가정 불화가 반드시 등장한다. 그런 작품들 중 이 작품이 가장 그 특징들을 집약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 일본의 축소판이라고나 할까. 이 작품을 보면 작은 일본을 보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런 이유로 이 작품이 계속 리메이크되어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된다. 영화나 드라마로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화면 속에서 더 긴장감과 섬뜩함이 전해지지 않을까 싶어 왜 모두 이 작품을 보고 감탄하고 보고 싶어 하고 권하는 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영원한 일본 고전 미스터리의 걸작이자 일본 문화 아이콘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강렬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