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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심연 ㅣ 뫼비우스 서재
막심 샤탕 지음, 이혜정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마지막 책을 덮는 순간, 아니 악의 심연 속에서 범인을 알게 된 그 순간, 토머스 해리스의 한니발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 이렇게 끝났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들의 침묵> 이후로 그보다 더 가슴 두근거리게 만드는 스릴러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작가조차도 자신의 후속편으로 절대 능가할 수 없음을 알려줬으니까. 하지만 악의 삼부작을 들고 혜성처럼 등장한 막심 샤탕이라는 프랑스 작가가 그것을 해냈다.
한 여자가 머리 가죽이 벗겨진 채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뉴욕은 연쇄 살인 사건에 휩싸이고 그 한 가운데 남편의 실종으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경찰 애너벨 오도넬이 조슈아 브롤린의 파트너격으로 등장해서 그와 함께 잔인한 악마들을 잡으러 다닌다. 하지만 그때마다 경악을 금치 못한 사태에 직면하게 되고 번번이 범인은 자백도 받지 못하게 총격전으로 사망한다. 점점 범인에게 다가가는 조슈아 브롤린과 그것에 대비하는 범인은 독자로 하여금 오금이 저리는 스릴을 안겨주고 공포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만든다.
1편인 <악의 영혼>은 조슈아 브롤린이라는 인물을 선보인 정도였다. 그가 인간에 대해 고독하고 슬픈 감정을 지니게 되는 과정을 담아내는데, 악의 영혼을 보여준 것뿐 아니라 조슈아 브롤린이라는 영혼을 좀 더 깊이 있게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면 2편인 이 작품은 1편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종자 전문 사립탐정이 된 조슈아 브롤린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악의 깊이는 어느 정도일지를 보여주는 제목 그대로 <악의 심연>으로 들어가서 파헤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압권은 기적의 궁전으로 들어가서 그 안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정말 무섭고 오싹하지만 왠지 진짜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비 지향의 물질 만능주의인 현대 사회를 악의 심연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그 끔찍하고 섬뜩함에도 불구하고 SF 소설에서 볼 수 있는 미래 사회의 암울한 분위기를 현실,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조슈아 브롤린과 범인의 말은 현대 사회가 내려가고 있는 한없이 깊은 악으로 대변되는 절망의 늪을 보여준다. 그것을 막심 샤탕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 배경으로 가장 어울리는 뉴욕을 배경으로 말이다.
재능 있는 스릴러 작가다. 1편을 볼 때는 왜 프랑스 작가가 미국을 배경으로 스릴러 작품을 쓸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만큼 스릴러의 배경으로 적합한 곳이 없다는 생각에 작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릴러도 소비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더 많은 사람이 공포를 느낄 수 있어야 스릴러로써 제 몫을 하는 것이라면 미국이라는 나라, 그리고 다양한 인종과 절대적 소비지향국이고 그런 것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이곳, 그 중심인 뉴욕만한 곳도 없을 것이다.
3편이 무척 기대된다. 마지막 암시 때문에 더욱 궁금해진다. 조슈아 브롤린을 1편과 다른 모습으로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낸 그가 3편에서는 어떤 모습의 조슈아 브롤린, 그리고 어떤 우리 사회의 악을 보여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