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때부터 나는 늘 평범했다.
성적도 늘 중상 정도였다.
그러던 성적이 고등학교 1학년에 올라가더니 뒤에서 세는게 더 빠르게 되어 버렸다.
헉...
이 성적표에 대한 나의 놀라움은 잠시였고 이 첫 성적표를 보여드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강타했다.
우선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렸다.
그리고 싹싹 빌어 성적표를 받고 아저씨 입막음을 했다.
친구 집으로 달려갔다.
친구 언니 타자기를 이용해서 위조를 할 생각이었다.
우선 성적표 칸을 네모 반듯하게 오린다.
그리고 뒤에 종이에 타자로 친 점수를 붙인다.
문방구로 가서 복사를 한다.
부모님께 새로 나온 성적표라고 구라를 치고 보여드린다.
이게 내 생각이었다.
근데 성적표의 칸을 잘못 오리면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우띠 얼마나 손이 떨리던지...
성적표가 찢어지고 말았다 ㅜ.ㅜ
거기다 언니가 뭐하는 짓이냐고 옆에서 지켜보며 째려보는데 어찌나 낯이 뜨겁던지.
친구가 이리저리 얘기를 해주는데 타자를 칠줄도 몰라서 찍다 망치고 찍다 망치고...
에라 나도 모르겠다 하고 나자빠졌다.
구멍난대다 찢어진 성적표를 보일 수는 더더욱 없어서 거짓말을 했다.
학교에서 전산 사고 났다고.
크억...
엄마는 내 말을 믿으셨다.
그리고 그 뒤에 성적표는 보여드렸다.
더 이상 속인다는 건 고등학교 3년을 그래야 한다는 얘긴데 차라리 엄마 잔소리 듣는게 더 낫다 싶었다.
내 다음 성적표를 받은 부모님 표정은 이걸 죽여 살려 였지만
다행히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고 니가 알아서 하거라의 방목주의셨기에 나는 살아남을수 있었다.
지금도 궁금한 것은 그 우체부 아저씨 엄마랑 무지 친하셨는데 진짜 말씀 안하셨을까?
엄마는 아시고도 말씀 안하시는 건 아닌가 하는 점인데 여쭐 수도 없는 새가슴인 나는
성적표 얘기만 나오면 이때 생각이 난다.
물론 수학 2 빵점 맞은 성적표도 안 보여드렸다.
이십년도 지난 일이니 지금은 이것도 추억이 되었지만 그때 난 제정신이 아니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리버리한 건 어쩔 수 없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