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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제목이 참 의미심장하다. 고립된 기숙학교가 등장한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서의 마지막 편에 등장했던 이야기를 장편으로 다시 만든 작품이다. 그런데 기억력이 나쁜 나는 그새 그 내용을 까먹었다. 그래서 새롭게 볼 수 있어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고 스스로 위안하며 봤다.
2월에 전학생이 들어오면 학교에 재앙이 생긴다는 전설이 있는 옛 성당을 개조하고 주변이 습지라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할 것 같은 무시무시한 풍경을 자랑하는 학교에 가방 하나 달랑 들고 기차를 타고 리세는 혼자 2월의 마지막 날 학교에 도착한다. 그리고 바로 아이들에게 이상한 얘기를 듣게 된다. 사라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죽었을 거라는 이야기, 살해된 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거기에 남자면서 여성복장을 하고 다니는 교장과 하나씩 사연 있는 아이들에 둘러싸여 리세는 무언가 불안함을 느끼며 지내게 된다.
첫 장이 회상 장면이었다. 그리고 마지막도 그 회상 장면의 연장에서 끝을 낸다. 다 읽고 책을 덮은 지금도 나는 책 속 이야기를 잘 모르겠다. 그래서? 어떻게? 뭐가? 이런 의문들이 가득하다.
그건 어쩌면 이 나이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마지막은 위화감을 주면서 끝을 내지만 결국 열매가 맺히기 시작할 나이의 아이들의 미래와 현재는 그런 불안감과 시기심과 경쟁심과 사소한 음모와 질투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것에서 열매는 가라앉기도 하고 둥둥 떠다니다가 건져지기도 하고 썩기도 하고 다시 싹을 틔우기도 하고 그렇게 되는 것이다. 십대라는 시대는 결국 인생의 시작일 뿐 그 무엇도 결정된 것이 없는 그래서 더 속에서는 무언의 압박이 심할... 아마도 인간의 생애에서 인간이 가장 진지하게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꾸밈없는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나이는 이때가 제일이 아닌가 싶다.
그렇기 때문에 거울은 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려하고 너무 그것에만 몰두하려 하기 때문에 누군가, 혹은 스스로 깨트리지 않으면 거울이 보여주는 것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세상은 때론 꾸미기도 하고, 거짓과 미소 뒤에 숨겨진 발톱으로 무장해야 할 때도 있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고등학생이 된 리세가 등장하는 작품도 기대된다. 하지만 노스텔지어의 마법사께서 너무 늘어놓은 느낌도 조금 든다. 쌈박한 맛이 점점 적어지는 느낌... 노스텔지어도 너무 많이 접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뭐, 하나의 소재를 끝없이 이렇게 재생산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우리도 한때 열매였음을 돌아보게 해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