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이 두 분의 글을 좋아해 빼 먹지 않고 읽지만, 특히 그 사회의 가치/통념의 억압성을 전복시키는 빼어난 글들은 볼 때마다 늘 뼈 아프다. 진보라는 장식을 달고 도덕적으로 저들보다 낫다며 자위하며 사는 나에게 불시에 날아오는 채찍같은 글 들이다.


불륜사회
제도 밖의 사랑이 불륜이라면 사랑 없는 제도 또한 불륜이다. 결혼의 첫번째 조건이 사랑이 아님을 공공연히 인정하는 불륜의 사회가 불륜을 비난하는 풍경은 우습고 가련하다. 타인의 불륜보다 내 불륜을, 사랑을 잊어버린 나를 먼저 슬퍼할 것.
- 출처 : gyuhang.net(김규항), 2017/02/22 -

참조 없이 창조없다. 내가 생각하는 표절(剽竊)은 다르다. '절'자에는 "조용히, 살짝"이라는 뜻도 있다. 표절은 읽기에 기반한 창조다. 그래서 표절은 기원이나 원본 논쟁과 무관하다. 좋은 글은 훌륭한 생각과 그 생각을 몸 밖으로 꺼낼 수 있는 능력, 표현력의 결합이다. 표현력을 기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온몸이 열려 있어서 무방비로 세상을 받아들일 때 '저절로' 나오는 경우고, 하나는 독서다. - 출처 정희진 칼럼, 한겨레 17/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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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2-28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김규항과 정희진 글을 좋아합니다. 건조하며 느끼하지 않고 군말이 없는 문장들이 좋더군요..

에로틱번뇌보이 2017-02-28 22:59   좋아요 0 | URL
동감합니다.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기도 전에 이미 마음 속 깊이 박히는 글 들인 것 같습니다. 이 두 분 글은

cyrus 2017-02-28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의 결점을 잘 보면서, 정작 자신의 결점을 못 보는 사람이 많아요. 반성을 잃어버린 나를 먼저 부끄러워해야겠습니다.

에로틱번뇌보이 2017-02-28 23:04   좋아요 0 | URL
누군가에겐 도끼같은 글이라지만, 이 두 분의 글들을 볼 때마다 진땀을 흘립니다. 저는
 

1. 숨결이 바람될 때/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별 ★★☆☆☆)

- 외국 에세이가 난 왜 재미가 없을까...내 탓이겠지















2. 다윈&페일리 : 진화론도 진화한다/ 장대익 지음(★★☆☆☆)
- 빌려보기에 좋은 책이다.
















3. 종의 기원을 읽다/ 양자오 지음, 류방승 옮김(★★★★☆)

- 이런 강의라면 어디라도 찾아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4.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안인희 옮김(★★★☆☆)
- 제비스티안 하프너의 책은 독일의 근현대사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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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 돌베개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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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 300페이지가 되지 않는 지면으로 폭넓고 방대한 지식을 압축해 히틀러의 생애와 사상을 담아낸 탁월한 역사가이자 비평가. 3년 전에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을 단숨에 읽고 기억하는 저자 '제바스티안 하프너'에 대한 나의 인상이다. 그 뒤로 저자의 글이 번역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독일인 이야기> 그리고 이번에 읽게 된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가 연이어 출간되었다. 독일 근대사 3부작이라 할만하다.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보다 개인적으론 가독성이 떨어졌는데 아무래도 제3제국이 등장하기 전 도이치 연방과 제국 그리고 바이마르 공국에 대한 나의 무지와 관심 부족일게다. 다만 무지한 만큼 새로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 그 사실과 현재 우리의 현실의 모습이 겹쳐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부분이 곳곳에 눈에 밟혔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라는 맑스의 시대를 관통하는 문구가 절로 떠올랐다. 1920~40년 도이치에서 있었던 역사적/시대적 오류가 100년이 지난 이곳. 대한민국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것. 역사적 실패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지헤를 얻는다는 것이 과한 가능한 일일까?

경제 부흥이라는 신화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영웅의 출현을 기다리는 모습. 아군과 적을 구분하는 지배자의 뻔한 논리에 순응을 넘어 적극적으로 찬동하는 군중 심리. 

프레모 레비처럼 우리는 '가라앉은 자'의 희생을 밟고 운 좋게 살아남은 '구조된 자'로써 역사적 진보와는 거리가 먼 역사적 퇴보에 동참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것이 늘 긴장하며 두 눈을 부릅뜨고 낯빛을 바꿔 구세주의 모습을 띄고 등장하는 그들과 우리 자신을 감시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다. 우리(대한민국)의 행복과 번영만을 앞세워 저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는 선동하는 자들을 견제해야 하는 이유다. 그들의 행동들은 파시즘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그 사이 바뀐 도이치 정부는 두 번째로 전쟁 배상금 부담, 심지어는 영 플랜 아래 새로 나타난 규칙까지 포함하여 배상금 부담을 털어낸 기회로 잡았다. 이번에는 1920년대 초반처럼 대규모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의도적인 디플레이션 정책을 통해서였다. 이번의 디플레이션은 도이칠란트를 가난하게 만들어 더 이상은 전쟁배상금을 갚을 수가 없게 만들었다. 채권자들도 그 점을 인정하는 수 밖에 없었다. -P 188-

1930~33년에 점점 더 가난해진 것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대체로 세계 경제공항의 피할 수 없는 결과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을 여기서 잠깐 지적하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만 맞는 말이다. 그보다 그 이전 1919~1923년 사이의 인플레이션이 패배한 전쟁의 결과라는 말도 일부만 맞는다. 두번 다 그렇다. 전쟁이 끝나고 제때에 화폐개혁을 단행했더라면, 도이칠란트의 모든 저축 자산의 몰수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경제정책을 취했더라면, 도이칠란트에서 세계 경제공항의 결과가 더 악화되는 대신 매우 많이 완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중략) 브뤼닝은 정확하게 그 반대의 정책을 실천했다. -P189-

1930년에 이 정당(민족주의-사회주의 정당)을 대규모 정당으로, 이어서 1932년에 가장 강력한 정당으로 만든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이유는 경제공항에서 찾을 수 있다.(중략) 실업자가 600만 명에 이르렀던 1932년에, 플래카드 하나에는 표현주의 양식으로 굶주린 대중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그 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아래 쪽에 "히틀러,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구절만 적혀 있었다. 그것이 적중했다. 가난이 현실이었다.(중략) 대중을 히틀러에게로 몰아간 첫째 이유는 가난이었다.
둘째 이유는 갑자기 다시 강해진 민족주의였다. 그동안 민족주의는 이 시기의 경제적 곤궁처럼 그렇게 구체적으로 쉽사리 설명되지 않았다.(중략) 아무도 나치만큼 그렇게 강력한 확신을 품고, 따라서 설득력을 지니고 민족주의 감정, 민족의 자부심, 민족의 원한에 호소하지 않았다. 도이칠란트가 1차 대전에게 이겨야 마땅했다. 다만 간계와 배신을 통해 그런 승리를 도로 빼았겼다고 그들처럼 그렇게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은 없었다.-P208-

민족주의-사회주의당이 선거에서 이긴 셋째 이유는 히틀러 개인에게 있었다. 이 말이 많은 사람을 화나게 하겠지만, 그래도 이말을 해야 한다. 히틀러는 자기 시대 도이치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준 것이 아니라 매력적으로 보였다. 매력을 넘어 사람을 사로잡았다.-P210-

나 자신 아직도 분명히 기억하는데 ‘민족주의 봉기‘는 두 가지 뿌리에서 자라 나왔다. 첫째로는 1933년 이전 몇 해 동안의 정치적 불확실성에 대한 피로에서 나왔다. 사람들은 자기가 대체 어디 있는지 알고자 했고, 확고한 손길과 확고한 의지를 지닌 한 남자가 정상에 있기를, 질서가 잡히기를 원했다.(중략) 히틀러가 정당을 없앴을 때, 3월 5일 나치당이 얻은 유권자 수를 훨씬 넘어서는 시민 계층 유권자의 압도적 다수가 그를 찬성했다.
이런 분위기가 옛날 시민 계층 정당들의 대표들에게 저항하기 힘든 인상을 주었다.(중략) 하지만 1933년 3~7월에 일어난 일의 증상으로 생각할 수는 있다. 이 시기에 일어난 그 온갖 불법에도 불구하고, 강제수용소 설치나 마구잡이 체포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분명한 반유대주의 정책의 처음 징후들에도 불구하고,광범위한 주민 계층 사이에서 하나의 확신이 만들어졌다. "지금은 위대한 순간이다. 민족이 다시 하나가 되는 순간, 신이 보내신 한 사람, 민중 한가운데서 일어선 지도자를 찾아낸 순간이다. 그가 기율과 질서를 찾을 거고, 민족 전체의 힘을 하나로 모아, 도이치 제국이 새롭고 위대한 시간을 맞이하게 해줄 거다"

동시에 히틀러의 경제 기적도 이 기간에 일어난 일이다. 1933~37년 사이에 대량 실질 상태를 완전 고용 상태로 바꾸어준 경제의 활성화인데, 이로써 히틀러는 옛날 사민당 추종자 거의 전부와 옛날 공산당에 표를 찍은 사람의 상당수를 자기편으로 돌려놓거나, 적어도 중립으로 만들었다. -P235-

괴벨스는 전 국민이 나치 이념을 고백하게 하려 하지 않고, 그냥 자신의 미디어를 동원해서 도이치 국민에게 총통 통치 아래, 나치의 상징 아래 재건된 건강한 사회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이것은 괴벨스의 영화 산업에서 특히 분명하게 드러났다. 선전부 장관은 이따금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서 몇 개의 선정용 영화를 제작하기는 했으나, 이것은 다섯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다. 전체 영화 생산은 명랑하고 해롭지 않는, 그 밖에도 기술적,예술적으로 잘 만들어진 오락 영화들로 채워졌다.(중략)
제3제국의 배우와 감독들은 대부분 당시 사람들이 ‘반대파‘라고 부르던 사람들이었다. 말하지만 제3제국을 무시하는 영화를 만들면서, 많은 이들이 심지어 일종의 저항을 한다는 망상까지 지녔다. 이렇게 해롭지 않은, 그리고 민족주의-사회주의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을 만들어서 도이치 국민을 기만하는 괴벨스의 작업을 함께 도와주었다는 것, 그러니깐 모든 일이 그냥 조금만 나쁠 뿐이고, 근본적으로 여전히 극히 정상적인 삶을 산다는 느낌을 만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P243-

처음으로 실패의 가능성이 드러난 1941년 말에 벌써, 그는 외국 외교관들을 개인적으로 접견한 가운데 이런 발언을 했다. "도이치 민족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스스로 피를 흘린 만큼 충분히 강하고 또 희생의 각오가 되어있지 않다면, 이 민족은 스러져서 더욱 강한 다른 세력에게 파괴되어야 합니다. 나는 도이치 민족을 위해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을 것이오." 도이치 정치가의 입에서는 참으로 다시 나올 수 없는 발언이었다. 전재 마지막에 실제로 히틀러는 동료들이 경악하는 가운데, 군사적 패배를 도이치 민족 전체의 몰락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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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읽는 논어
오구라 기조 지음, 조영렬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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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만 봐서는 식상하기 이를 데 없다. "00살에 읽는 논어" 등의 책이 유행 한 지가 한참 지나서 이렇게 평범한 이름을 달고 나온 책이라면 외면하기 일쑤다. 로쟈님과 같은 너무나도 감사한 책 길라잡이가 없었으면 그냥 스쳐 지나 갔을 책 이었지만 로쟈님의 추천을 놓치지 않고(여전히 반신반의해서) 도서관에서 빌려 책을 읽어 보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는 누구인가? 노나라 출신의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이자 유가의 창시자로서 중국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특히 한국)의 문화와 관습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공자의 사상을 일컫는 유교는 과거 주나라 왕조의 규범이었던 예를 회복함으로써 사회의 질서를 바로 잡고, 예를 내면화했을 때 인(仁)한 사람이 될 수 있고 그러한 인간을 소인과 대비한 군자라고 지칭하며 칭송했다. 그러한 공자의 사상과 어록을 모아 제자들이 집대성하여 만든 게 [논어]라고 우리는 흔히 알고 있다. 논어 각 장의 해석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하나의 규범으로서의 유교의 역할론을 부인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공자를 <애니미즘>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규정한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애니미즘이라니? 저자가 말하는 <애니미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의 <생명>에 대한 해석을 들어봐야 한다. 

"내 생각에 공자는 생명에 대한 동아시아의 두 가지 해석 가운데 한쪽을 대표하는 사상가였다. 두 가지 해석이란 <애니미즘>과 <범령론>이다. 그리고 공자는 <애니미즘>을 대표하는 사상가였던 것이다. <범령론>이라는 단어는 귀에 익은 말이 아닐 것이다. '범신론'이라 해도 좋겠지만, '신'이라는 글자가 일신교적 신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신'이라는 글자를 피하여 여기서는 <범령론>이라 부르기로 한다. <범령론>이란, 세계 혹은 우주가 하나의 '영(spirit)' 혹은 영적인 것으로 가득차 있다고 보는 세계관이다" -p18-

그럼 저자가 말하는 <애니미즘>은 기존의 우리가 말하는 애니미즘과 같은 개념일까?

"그것을 이해하려면 애니미즘이라는 세계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보통 애니미즘이라는 것을 '삼라만상에 생명, 아니마, 신 등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세계관이고, 그래서 바위나 나무 등에도 생명,아니마,신등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 알고 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러할까.(중략) 그렇다면 무엇이 '생명이나 신'이 되고, 무엇이 생명이나 신이 되지 않는 것일까. '하늘'이라는 초월적 존재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 마을이나 지역, 공동체 등의 구성원 다수가 어떤 돌에서 모종의 <생명>을 감지할 수 있고, 그것이 귀납적으로,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작동하는 인식에 따라 공동주관적으로 권위를 받으면 '생명이나 신'이 되는 것이다. -p21-

 

"공자는 <애니미즘> 사상가였다고 내가 한 말을 부디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제 1장에서 말한 것을 다시 되풀이하자면, 내가 <>를 붙여 <애니미즘>이라 한 것은 종래에 사람들이 흔히 애니미즘이라 말한 것과는 전혀 다르다.

 종래의 애니미즘은 '삼라만상에 생명이나 아니마가 깃들어 있다'는 세계관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것은 틀렸다'고 나는 생각한다.(중략) 이것은 '삼라만상이 모두 아니마이다'라는 유형의 애니미즘과는 명벽히 다르다. 따라서 나는 이것을 별도로 <애니미즘>이라 표기하고 있는 것이다"-p62-

 

저자가 말하는 <애니미즘>과 연관하여 책에서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개념이 바로 <제 3의 생명>이다. <애니미즘>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며 이 전에 우리가 알고 있는 <제 1의 생명>, <제 2의 생명>과 대비시켜 <애니미즘>을 추동한다.

 

"<제3의 생명>이란 이제까지 인류가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던 생명을 가리킨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하지만, 사람들은 그다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생명관을 가리킨다.(중략) 인류가 이제까지 명확하게 인식해온 생명은 크게 나누면 ① 육체적,생물학적 생명 ② 정신적,종교적 생명, 두 종류였다.

이제 이 두 가지 생명관을 각각 <제1의 생명>, <제2의 생명>이라 부르기로 하자. <제1의 생명>이란 육체적,생물학적 생명이고, <제2의 생명>이란 정신적, 종교적 생명이다.(중략)

<제 3의 생명>이란 생물학적 생명도 종교적 생명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애니미즘>에서의 생명관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본적 <애니미즘>에서는 마을 등의 공동체 구성원 다수가 어떤 돌에서 모종의 <생명>을 감지할 수 있고, 그것이 공동주관적으로 권위를 받으면 '생명이나 신'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은 육체적,생물학적 생명이 아니며, 어떤 보편성을 표방하는 종교적 생명도 아니다. 우연성,우발성의 지배를 받은, 관계성 속에서 모습을 드러낼 지 알 수 어떨지 예측할 수 없은 <생명>이다. 이 책에는 그것을 <제 3의 생명>이라 부르기로 한다"-p28-

 

낯선 개념이라서 단번에 이해하기는 여렵지만 다시 한번 정리하면 이렇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과 사물을 지배하는(혹은 그 속에 내재하는) 공통된 "기"나 "영"이 있다는 것이 앞에서 언급한 <범령론>과 연관되는 <제2의 생명>론이라면, 공자로 대표되는 <애니미즘>은 <제3의 생명>관이다. 저자는 공자가 외친 "인仁"이라는 개념은 흔히 '도덕'이나 '사랑'등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좀더 정확하게는 인간이 둘 이상 있을 때 그 관계성 <사이>에서 문득 드러나는 <생명>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하며, '인人"은 <사이의 생명>이라 설명한다.

 

저자는 기존의 '예禮'라는 개념도 전복시킨다.

 

"공자 자신이 귀족이 아니어서, 군주의 통치에 직접 참가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니었다.(중략) 훗날 노나라 종묘에 처음 들어갔을 때, 비천한 신분에서 갑자기 출세한 공자는 진짜 군자들에게 '이런 기본적인 예도 모르느냐'고 모멸당하는 굴욕을 겪었다.(중략) 그 대신 공자가 직접 몸으로 알고 있있던 것이 무엇인가 하면, 향당에서 보이는 장로들의 행동거지, 예의범절, 세간에서 일을 결정하는 방법 따위였다. 향당이라는 것을 일정한 지역에 모여 살며 지역에서 정해둔 일, 연중행사, 제사,교육 등을 공동으로 행하는 일정한 규모의 집단이다. 젊은 공구가 실제로 경험하고 알았던 것은 군주가 종묘나 조정에서 행하는 정치와 의식이 아니라, 지역의 자치회 같은 조직에서 보이는 일상적인 풍습 전반이다."-p109-

 

"예부터 전해져온 '예'라는 형식은 결코 획일화를 위한 형식이 아니라, 일정한 조건 아래서 어떻게 할 때 <생명>이 가장 두르러지게 빛을 발하고, 공동체가 아름다움과 생명을 공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혜가 축적된 체계임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예'라는 것은 사람들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공동체적인 <생명>을 자유롭게 개방하기 위한 장치라는 점을 알아차렸다"-p47-

 

유교라 하면 획일화되고 그 유래도 아는 사람이 없는 제사와 같은 '예'와 동일시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선뜻 이해되지 않는 개념이다. 저자에 따르면 본래 공자에게 '예'는 인을 빛내기 위한 법칙성이었다. 인은 우연적인 성질이 있기 때문에, 그 우연성에 완전히 맡겨버리면 공동체의 질서가 성립되지 않아 <제3의 생명>으로서의 인을 컨트롤하고 확실성을 높이기 위해 예를 배우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제3의 생명>으로서의 인을 컨트롤하고 확실성을 높이기 위해 예를 배우는 것이 필요했으며, 그 예란 위에서 말한대로 향당이나 자치회 등의 작은 공동체에서 벌인 일상적인 풍습의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공자가 죽은뒤 예의 규범성을 고정화하고 기호화하는 세력이 출현했다. 이들은 예를 획일화 시켰으며, 예를 규범화하여,(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개념인)예를 통해 인을 내면화 할 수 있다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저자는 군자와 소인의 개념도 이러한 논리로 해석한다.

예를 하나 보자

 

子曰, 君子上達, 小人下達[헌문]

 

이 구절은 일반적으로 "군자는 고상한 것으로 통하지만, 소인은 비천한 것에 통한다"(가나야 오사무)고 해석한다고 한다. 우노 데쏘토는 주자의 신주에 충실히 따라, "군자는 평소 바른 도를 따르므로, 그 덕이 날로 향상되어, 고명의 극에 도달한다. 소인은 평소 사욕을 따르므로, 그 덕이 날로 내려가 오하의 극에 도달한다"번역했다.[논어신역]

 

하지만 저자의 해석은 전혀 다르다.

 

"군자의 세계인식은 자잘하고 구체적인 것(下)을 귀납적으로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뒤풀어 하면서 도를 향해 올라가는 것이 '군자는 상달한다'는 문장의 의미이다. 구체적인 사물에서 배우는 것에서 도라는 추상적 가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소인들은 그렇게 시간이 걸리고 더딘 일을 하지 않는다. 이미 진리가 어딘가 있다면, 재빠르게 그 위에 있는 권위적인 가치를 연역적으로 아래로 끌어내려서 아래에 있는 이들에게 가르치려 한다. 그러한 사람들이다."-p126-

 

저자가 이러한 소인들의 이데로올기를 만들고 공자의 <애니미즘> 사상을 현재의 <범령론>적 사상으로 왜곡시킨 장본인으로  맹자를 지목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 달리 맹자는 공자의 계승자가 아니라 논어를 왜곡하여 현재의 논어의 주류적 세계관을 확립시킨 인물이라 평가하다.

 

"논어의 <애니미즘=소울리즘>적 세계관은 맹자에 이르러 일변한다. 보통은 논어와 맹자 혹은 '공자와 맹자'하는 식으로 둘을 병칭하여 마치 같은 사상인 것처럼 생각들을 한다. 나는 분명 거기에 유교라는 것에 대한 커다란 오해가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공자는 <애니미즘=소울리즘>이라는 방에, 맹자는 <범령론>이라는 방에 살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공자는 <제3의 생명>을 믿었고, 맹자는 <제2의 생명>을 믿었다. 공자가 죽은 뒤 중국사상사는 극적인 전개를 보였다. 이미 몇 번이나 서술한 대로, <범령론>이 대두한 것이다.(중략) 중국에서 <범령론>의 대두는 명백히 도가라는 사상 집단이 주도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도'와 '기'는 양쪽 다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영적인 궁극존재이고 영적인 물질이다."-p214-

 

"맹자의 세계관은 보편적이고 또한 수직적이다. '인간 한명 한명의 신체,마음과 우주 전체가 하나의 기로 생겼다고 보는 사고'라는 점에서 보편적이고, '왕과 성인과 대인은 그 보편적인 세계에서 샤먼처럼 영적인 존재로서 군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수직적이다.

공자의 경우, 보편적인 인간관은 아직 '기'라는 물질성이나 '성선'이라는 도덕성에 의해 뒷받침디고 있지 않았다. 공자의 <애니미즘=소울리즘>은 인간이나 자연에 대해 영적인 보편성을 인정하지 않는 세계관이었다"-p215-

 

"공자가 죽은 후 전국시대를 거쳐 진한 통일제국이 탄생하기 까지 수백년 간, 공자의 사상은 오해되고, 곡해당하고 비판받고 부정당했으며, 타도의 대상이고 웃음거리였을 뿐만 아니라 이리저리 걷어차이며 멸시당했다"-p222-

 

 

공자와 유교에 대한 멸시의 분위기는 8~90년 대 우리나라 그것과 비슷한 것 같다. 독재 정권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 유교는 6~70년 대 획일화된 규범/예절을 앞세워 그 영향력을 공고히 했으며 권위주의적 시대가 물러가고 민주화의 기틀을 마련한 8~90년대에는 시대착오적인 봉건주의로 낙인찍힌 시기였다.

공자의 논어가 다시 부활한 건 신자유주의 이데로올기 부흥을 위한 도구로서 자기 계발서로(2000년대 초반), 신자유주의의 피로감을 덜고 상처를 보듬는 힐링/명상서(2010년 대)로서였다. 시대적 요구에 따라 그 역할도 계속 바뀌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시대의 논어와 공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아니 무엇이어야 할까?

 

나는 저자의 공자에 대한 해석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가 규정한 공자의 <애니미즘> 사상의 당위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가 말한 공자의 <애니미즘>은 가라타진 고진이 세계사의 구조에서 얘기한 교환양식에 근거한 사회구성체의 원리 中 '교환양식 A'와 닮아 있다. 

가라타니 고진은 교환양식에 근거한 사회 구성체 원리를 네 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교환양식 A'는 증여와 답례 같은 상호부조적인 공동체의 호수성을 원리에 기반한 사회 구성체를 의미한다. 제국의 확립되기 전, 그러니까 향당/씨족 공동체의 생활규범의 주된 생활 원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약탈과 재분배의 교환 양식을 '교환양식B'로 규정했다. 이는 제국의 주된 체제 논리로 볼 수 있다. 또한 상품과 화폐가 교환되는 자본주의 국가의 체제 논리를 상품  '교환양식C'라는 개념으로 분석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진은 '교환양식 D'를 덧붙인다. 이 사회구성체 원리는 국가를 뛰어넘는 이론인데, 자유로운 개인들이 호수성의 원리를 근거로 하는 사회구성체를 말하는다. 교환양식 A의 증여/답례의 원리를 계승하되, 그것을 뛰어넘는 원리라고 볼 수 있다.

 

공자의 <애니미즘-교환양식 A>를 승계하되, 세계적인 연대/공동체로 발전시키는 것(교환양식 D). 이러한 논리에 근거를 부여하는 게 신자유주의의 한계에 봉착한 현재, 가장 필요한 공자와 논어의 시대적 역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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