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부터 어줍잖게 인문학과 철학에 관심을 가져 <수유 너머>는 익히 알고 있었다. 무슨 강연이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졸업 후 기회가 닿아 여친과 용산동에 있는 <수유 너머> 공동체를 찾아 간 일이 있다. 꼬뮌이라 불리우는 그곳의 공간과 생경한 풍경이 낯선 동시에 인상 깊었다. 그 방문을 계기로 고병권의 니체 해설서도 찾아 읽으며, <수유 너머>와의 인연을 지속하려 했으나, 철학은 내 곁으로 쉬이 오지 않는 야속한 그런 학문이었다.  

그렇게 오랫 동안 잊고 지냈던 <수유 너머>의 소식이 반가워 스크랩한다. 수유 너머 연구원들 말대로 인문학이 시대와 순응하며,  체체의 이념적/ 사상적 도구로 활용된다면 더 이상 그것을 인문학이라 불리울 수 없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본주의 시스템의 승자가 되기 위해" 고전을 읽으라는 <리딩으로 리드하라>라는 책의 좋은 대항마가 되었으면 한다. 여전히 어려운 들뢰즈, 가타리지만 나 또한 그들 뒤에서 묵묵해 응원할 것이다.  

시대에 순치된 인문학…거세된 ‘불온함’을 부르다  

 

 ‘수유너머’ 새 프로젝트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우려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벌써 인문학은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주무대는 대학 밖이다. 고전을 통해 얻는 지식과 교양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져가면서, 도서관이나 문화센터, 기업, 각종 기관에서 여는 대중강좌들을 중심으로 인문학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재소자를 위한 인문학에서부터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인문학까지, 그 대상과 성격도 다양하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지점은, ‘쓸모 없는 학문’ 취급을 받았던 인문학이 이젠 ‘유용한 학문’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0년 활동을 시작한 ‘연구공간 수유+너머’(이하 수유너머)는 그동안 제도 밖 연구공동체 실험과 대중강연 등으로 이런 인문학 부흥에 거름 구실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런 수유 너머에서 ‘불온한 인문학’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우리 시대의 인문학과 정면으로 대결하겠다고 나섰다. 인문학 붐을 일으켰던 당사자들이, 도대체 왜 지금 인문학에 ‘불온성’을 찾아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지난 8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수유너머 엔(N)’(nomadist.org)에서 오는 3월부터 시작할 ‘불온한 인문학’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는 4명의 수유너머 엔 연구원들을 만났다. 이들은 “자본과 국가의 권력에 의해 순치된 인문학은 ‘지금-여기’의 현실을 스스로 사유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며 “지금은 인문학이 가진 위협적이고 전복적인 성격, 곧 불온함을 벼리는 것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회의 지배적인 통념에 정면으로 맞서려 드는 불온성이 거세된 인문학이, 구체적인 삶과의 접점을 잃고 ‘문화적 교양주의’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청소 노동자들이 하루 300원의 식대를 받고 화장실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현실을 스스로의 삶 속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지식과 교양의 습득에만 머무르는 인문학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문제의식이다.


연구원들은 현재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인문학의 경향을 ‘학진(학술진흥재단, 현 한국연구재단) 인문학’과 ‘대중 인문학’으로 나눠 비판했다. 국가의 통제 아래 놓여 있는 학진 인문학은 “협애한 전문가주의의 실적물”에, 지식과 교양의 쉬운 전달을 우선으로 삼는 대중 인문학은 “기름진 교양주의의 지적 장식물”에 머무르고 있다는 비판이다.

최진석 연구원은 그동안 다녔던 외부 대중강연에서 ‘민감한 주제라 곤란하다’는 주최 쪽의 요구로 주제를 바꾸거나 내용을 수정했던 경험을 들며, “이미 인문학이 사회의 지배적 통념을 따라가고만 있기 때문에 이 흐름 자체를 반대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정정훈 연구원은 “인문학 유행에 주도적 구실을 했던 수유너머 역시 현재 상황에 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고 봤다”며 “때문에 교양과 지식의 전달에 그치지 않고 대중과 함께 불온함을 모색할 새로운 장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3월에 시작해 20주 동안 진행되는 불온한 인문학 1기 프로젝트는, 강의와 집중 세미나를 함께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마르크스의 <자본>과 들뢰즈·가타리의 <앙띠 오이디푸스>를 주요 텍스트로 삼은 강의와, 각각의 강의에 대응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욕망이론·대중정치를 다루는 집중 세미나다. 곧 자본주의와 가족주의·국가주의가 불온한 인문학의 두 가지 큰 주제다. 정정훈 연구원은 “이 두 가지는 우리 사회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있는 지배적인 삶의 방식”이라며 “어떤 모습이 될지는 미리 예측할 순 없지만, 국가와 자본이 쥐여주는 스스로의 일상과 관습에 균열을 내는 것이 불온한 인문학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오는 3월12일 ‘인문학 신드롬과 불온한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 이 자리에서 프로젝트의 취지를 담은 선언문을 발표하고, 인문학의 현주소를 짚는 발표와 토론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 ‘불온한 인문학 총서’를 기획하고 있다. 최진석 연구원 등이 쓰는 <불온한 인문학>을 비롯해 수유너머 엔에서 활동하는 핵심 이론가인 이진경 박사의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 등 10여권의 책을 출간할 계획이다.

불온한 인문학을 제시하고 펼칠 수 있는 수유너머의 강점은, 독립적인 공간과 그곳에 모여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밀착할 수 있는 여지가 더 크다는 데 있다고 한다. 문화 연구원은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과 연대를 통해 내가 수동적으로 따라가던 일상을 이론뿐 아니라 실천의 차원에서 조금씩 변화시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정행복 연구원은 “불온한 인문학에는 강의나 세미나뿐 아니라, 대학교 청소 노동자들과의 연대, 강제 철거 위협에 놓인 두리반과의 연대 등 연구실 밖에서 펼칠 활동들도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출처 : 최원형 기자(한겨레신문 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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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1-02-11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친님이 있군요 ^^ 부러워 ㅋㅋ

에로틱번뇌보이 2011-02-15 12:29   좋아요 0 | URL
ㅋㅋㅋ 괜히 죄스러워지는 이 느낌은 뭐죠~

다이조부 2011-02-16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친은 없지만

나를 좋아라 하는 친구는 있쬬 그것도 나쁘지 않아요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