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다시 블로그 시작 이번에는 열심히 해보련다.


1. 공부, 장정일














2.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고미숙














3. 음양오행, 어윤형,전창선  














4. 박시백 조선왕조실록 20














5. 히틀러의 성공시대 1, 김태권













6. 히틀러의 성공시대 2, 김태권












7.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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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문화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이 쓴 <윤리21>(2011년, 사회평론)에는 말년의 마르크스가 생각한 코뮤니즘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서술이 나온다. 

"만약 연합한 협동조합 조직의 단체들이 공동 계획에 근거해 전국적으로 생산을 조정하고, 그렇게 해서 그것을 여러 단체들의 조정 아래에 두며 자본제 생산의 숙명인 끊임없는 무정부와 주기적 변동을 끝내게 할 수 있다면, 여러분, 그것은 공산주의, 다시 말해 '가능한 코뮤니즘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프랑스 내란]

의회에 의한 사회민주주의를 주창했던 말년의 엥겔스와 폭력혁명과 전 생산의 국유화를 주창했던 레닌과는 달리 말년의 마르크스는 진정한 코뮤니즘을 소비-생산협동조합에서 찾았다. 마르크스가 생각한 코뮤니즘이란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 연합사회(Association)다. 이러한 소비-생산협동조합의 연합사회가 전 지구로 확대되어 국가를 대체하는(국가가 사멸하는) 것이 코뮤니즘이라고 봤던 것이다. 이는 곧 인간을 생산의 도구가 아닌 주체로 탈바꿈하는 사회를 꿈꾼 것이다. 이는 가라타니 고진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한 "타자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지상명령이 실현된 사회다. 

협동조합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병폐를 극복할 수 있는 소비-생산협동조합이 실제로 구현된 기업 형태다. "협동조합, 참 좋다"는 아직은 협동조합이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는 독자를 위해 협동조합의 개념과 세계 각국의 사례를 소개한다. 이와 동시에 국내 협동조합 이야기를 다루고 '어떻게 협동조합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이 함께 담겨 있는 책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아직은 낯선 단어인 협동조합(Coperative)이란 과연 무엇인가? 잠시 국제협동조합연맹의 선언문의 정의를 살펴보자.

"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기업을 통해 공동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의 자율적 단체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협동조합 정체성 선언문(1985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우리에게 익숙한 대부분의 기업은 이윤 창출과 이를 통한 주주이익을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주식회사다. 직원들의 애사심을 고취시키려 '회사의 주인은 우리다'라는 허울 좋은 구호를 더러 외치게 하는 회사도 있지만, 주식회사에서 회사의 주인은 엄연히 주주다. 이와는 달리 자발적으로 가입한 조합원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자율, 독립적으로 소유하는 기업이다. 따라서 이익 또한 주주가 아닌 조합원이 실적에 비례해 배당 받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낯선 기업의 형태지만 유럽에서는 농업에서 금융서비스, 주택에서 건강관리, 소매점에서 재생에너지까지 경제의 모든 분야를 존재하며 큰 경제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협동조합의 성지라 불리우는 이탈리아의 볼로냐만 보아도, 400여개의 협동조합이 활동하게 활동하고,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5퍼센트에 이른다. 협동조합 기업의 천국이라 불리우는 이탈리아에서 협동조합은 얼마나 국민의 삶에 밀착되어 있을까?

"20년 가까이 이탈리아에서 산 교민 김현숙 씨에게도 협동조합은 친숙하다. 김씨는 "어디를 가도 협동조합을 접한다. 택시 기사도 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한다. 이곳 사람들은 '시장에 간다'는 말 대신 '콥coop  간다'는 말이 입에 붙었다." 라고 말했다. '콥'은 협동조합(코페라테, cooperativa)을 줄인 이탈리아 말이다. 콥은 이탈리아의 매장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되었다."(page 47)

이처럼 유럽에서의 콥은 생활 속 깊숙히 침투해 있다. 우리에게 알프스의 나라로 알려진 스위스는 '소비자 협동조합의 왕국' 같은 나라다. 미그로와 코프 스위스, 두 소비자 협동조합의 식품시장 점유율은 40퍼센트에 달한다. 소비자 협동조합의 힘이 막강해 일반 기업은 맥을 못 춘다고. 협동조합의 영향력이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  한 가지.

"2009년 1월, 스위스의 한 일간지는 스위스 국민 1,000명을 상대로 '스위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을 물었다. 1위는 아인슈타인이 차지했다. 3위는 테니스 스타 로저 페더러, 4위는 교육학자  페스탈로치, 5위는 적십자 청설자 앙리 뒤낭, 모두 들어봤음직한 이름이다. 그런데 2위에 오른 인물은 생소하다. 고트리브 두트바일러. 스위스의 협동조합 미그로를 창립한 사업가다. 스위스 국민은 왜 그를 아이슈타인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인물로 꼽았을까?"(page 164)

이처럼 그들에게 협동조합은 없어서는 안 될 생활의 한 축인 동시에 윤리의 근간이다. 협동하여 함께 같이 사는 삶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완전히 잊은 듯 개개인이 앞만 보고 달려 왔다. 이제는 유럽의 그들처럼 함께 멀리 가는 법을 배워야 할 때다. 지금은 낯설지만 협동조합 기업이 우리 삶의 일부가 되는 그날이 온다면 가라타니 고진이 말한대로 우리는 서로를 목적으로 보는 주체로서의 지위를 회복하게 되지 않을까?

"Coop is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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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는 인간을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라 말하며 탈존으로서의 인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간을 무한한 자유를 가진 존재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르트르의 명제를 변용해 보자면 무한한 자유는 한편으로는 타인에게 무한한 억압으로 작용할 수 있다.1)

 

대개 그 억압은 절대권력으로부터 기인하기 마련이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그 권력의 주체는 대개 국가라는 허울좋은 가면을 쓴 정치권력이었다. 

주체는 이데올로기의 호명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알튀세르의 말처럼 우리는 이러한 악업적 구조 속에서 국가라는 권력에 의해,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구축되어 있는 사회구조의 어떤 한 가지 배역을 떠 맡게 되며 살아간다.

 

이승우 작가의 소설 <지상의 노래>는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동시에 저주스럽도록 사회구조에 얽매인 사람들의 욕망과 그 욕망에 대한 속죄의식을 다룬 이야기다.

 

형의 죽음을 방기했다는 부채감으로 형의 유고를 마무리하는 강상호, 박중위를 칼로 찌르고, 누나를 욕망했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힌 후 순례의 길을 떠난 후 그리고 세속적 권력욕으로 인해 아내의 죽음을 지켜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서 비롯된 순례길에 나선 한정효, 죽기 전 헤브론성의 집단 학살에 대해 털어놓은 장의 고백들. 등장인물의 이러한 행동들은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상처 받은(혹은 희생된) 타자들에 대한 속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헤브론성이라 불리는 오지의 종교공동체는 이들에게 속죄를 위한 장소인 동시에 속세의 부당함에서 자신을 격리시켜 저 너머의 새로운 세상으로 가려 했던 순례의 장소였다. 현실에 절망해 신화에 기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용서와 속죄를 위해 동시에 저 너머의 세상을 위해 이곳에 살면서 저곳을 버렸지만, ‘저곳의 권력은 그들은 가만 놔두지 않았다. 그들에겐 죄의식이란 최소한의 윤리란 게 존재했지만, 권력은 죄의식조차 없는 무생물이었다. 마침내 그 무생물은 천산 공동체를 침범했고, 파괴했고, 자신의 권력 유지에 이용하였다.

 

세상은 크고 무섭고 힘이 세요. 언제나 그랬어요.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에요.(중략)세상은 언제나 악하고 어느 시내나 힘이 세고 어디서나 무자비해요.” -292-

 

그들은 이렇게 강제로 세상 밖으로 다시 소환되었지만, 권력자들이 억압 할 수 있는 것은 육체라는 껍데기뿐이었다. 더 이상 그들의 정신은 쉽게 강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죽음이 삶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장 두려운 악인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린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에피쿠로스의 <에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

 

그렇게 그들은 세상을 버렸고, 세상은 더 이상 그들을 간섭할 수 없었다.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부정되었지만, 그전에 세상은 그들에 의해 부정되었다. 세상은 그들을 버렸지만, 그전에 그들은 세상을 버렸다. 어떤 의미에서는 버려지는 것이 그들이 세상을 버리는 방법이었다. 세상은 더 이상 그들의 믿음과 소망을 간섭하지 않았다.” -346-

 

1) 책 속 작품해설 인용,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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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슬로터다이크는 자신의 저작 <냉소적 이성 비판>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 시대는 냉소의 시대가 되었다

 

냉소주의자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짓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계속 행동한다. 다르게 행동한다고 해서 별반 달라질 게 없기 때문이다. 더 많은 자유를 위해 끊임없이 욕망하라고 부추기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냉소주의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말하는 자유란 사실상 돈이 있어야 가능한 주입된, 강제된 자유다.

니체가 말한 낙타의 삶이 이런 것 아닐까? 기존의 관습, 체계가 주입한 강제된 자유를 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짊어지고 사니깐 말이다.  

 

우리는 애초부터 출발선이 다른 자본주의라는 게임에서 체제가 요구하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주체로 살아가지만 도착 순서는 정해져 있다. 우리도 그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지만 혹여나 하는 기대감에 체제 내 규칙하에 살아간다.

 

냉소주의가 시대정신이 되어버린 현재, 위선이란 행위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방어 기제다. 자신의 상품성을 타자와 비교 측정하여 나의 현재 위치를 확인하고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려는 대비책인 셈이다.

 

이러한 위선은 우리 실생활에서 그대로 적용된다. 

  저 사람은 지방대를 나왔으니 아무리 노력해도 나보단 아래야라며 나의 우월감을 드러내거나,그 사람은 명문대를 나왔으니 나보다 인정받겠군이라며 체념하며, 내 상품성의 순위를 확인하는 것이 그 예다. 즉 위선이란 행위는 자본주의라는 체계에서 자신의 생존의 담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행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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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 전 한 방송비평상을 염두해 두고 쓴 <6시 내 고향> 비평.

남들이 절대 쓰지 않는 특이한 소재라서 마음속으로 가작이라도 기대했건만 보기 좋게 탈락. 이거 
쓰려고 6시 내고향 두 달치는 본 것 같음. 

하지만 내가 지금 봐도 글에 진정성이 안 느껴짐! 우연히 발견한 기념으로 업로드~

 

농어촌당 대표 <6시 내 고향>의 선전을 기대하며

- <6시 내 고향>의 현재 가치와 향후 역할 -

 

 

1. 기자님 ‘드렁허리’를 몰라요?

 얼마 전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검색어 순위에 ‘드렁허리’라는 낯선 단어가 1위에 올라있어 이게 뭘까 하는 호기심에 클릭해 보았다. 곧이어 “희귀 민물고기 ‘드렁허리’ 발견”이란 제목의 기사가 떴다. 내용인즉슨 어른 팔뚝만한 길이의 미꾸라지처럼 생긴 토종 민물고기가 경남 진주에서 발견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한 촌로는 칠십 평생 처음 봤다며 고개를 내저으며 신기해했다. 그런데 난 뉴스 영상에 나온 드렁허리를 보고 그놈이 어린 시절 논두렁 근처에서 즐겨 잡았던, 그러나 노린내가 나 구워먹지 못해 아쉬워했던 ‘음지’라는 징그러운 놈인 걸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접혀 있던 댓글 주머니를 펼쳤더니, 아니나 다를까 ‘드렁허리’는 내가 알던 충청도의 ‘음지’였고 경상도의 ‘웅어’, 전라도의 ‘드랭이’였다. 댓글을 단 누리꾼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비슷했다. 요즘도 논두렁에서 많이 잡혀 전혀 희귀한 물고기가 아니라며 기사를 폄하했다. 그 중 내 눈에 띄는 댓글이 하나 있었다.

“기자야, 드라마만 보지 말고 6시 내 고향 좀 보고 농촌에 관심 좀 가져라”


2. 19년 ‘농어촌당’ 대표 <6시 내 고향>

 드렁허리를 모르는 기자뿐만 아니라 우리 대부분은 농어촌과 그 안의 삶에 관심을 끊은 지  오래다. 지난 수십 년 경제성장의 부작용과 피해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우리지만, 속도와 효율성을 여전히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성장을 목표로 향해 눈과 귀를 닫고 전진하고 있다. 느림과 비효율성으로 표징되는 농촌은 그래서 스피드한 우리에게서 비켜나 있다.

 ‘TV’라는 사회에서도 농어촌의 지위는 우리 삶의 그것과 비슷하다. 단시간에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내고 눈물을 쏙 빼고, 욕망을 불살라줄 수 있는 프로그램만이 환영받는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전수해주는, 도시적 욕망의 언저리에 있는 프로그램이 TV사회에서 주류가 된지 오래다. “속도와 자극만이 살 길이다”라는 모토를 성공적으로 주입시키며 그 세력을 점점 확장해 나가고 있다.

 쾌락적 욕망만을 재생산하는 주류에 대항하며 홀로 고군분투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1991년 5월 이후 ‘농어촌당’을 이끌어 온 <6시 내 고향>이다. TV사회의 비주류로서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6시 내 고향>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이제, 다소 촌스럽지만 한번 빠져 들면 나오기 힘든 이 우직한 프로그램의 매력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3. 다양한 장르의 혼재, 이게 진짜 버라이어티다

 매일 아침 피곤에 허덕이며, 경쟁에 뒤쳐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도시인에게 고향의 포근함과 느림의 미학을 전해주는 <6시 내 고향>은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단지 <6시 내 고향> 안에 포근함과 느림만 존재했다면 19년간의 방영이 가능했을까?  과연 무슨 매력이 있기에 19년이란 장시간 동안 사랑을 받아온 걸까?

 <6시 내 고향>은 어느 프로그램도 따라올 수 없는 가치 있는 정보와 내용을 풍부한 장르로 녹여내며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1) 내 안에 ‘News’ 있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6시 내 고향>의 주된 내용은 지역 내 특산물과 먹을거리 소개이다. 근래 신설된 수많은 맛집 소개 프로그램의 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맛집 소개 프로그램이 전혀 ‘New’하지 않은 음식점 홍보에만 매달리고 있는 현재, <6시 내 고향>은 어느 프로그램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하고 신선한 정보를 전달한다.

 매주 월요일에 방송되는 ‘고향식객’은 각 지방에서 전래되어 오지만 이제는 사라져가는 전통 먹을거리를 소개하는 코너다. 지난 4월 6일 자 이 코너에 소개된 ‘연사자반’은 찹쌀을 삭혀 반찬으로 만드는 전남 남원에서만 유래되어 오는 음식으로 만드는 데만 한 달이 걸리는 우리 고유의 슬로우 푸드이자 로컬 푸드다. 4월 2일 자 ‘건강이 탱클탱클’ 코너에 소개된 충남 청양의 ‘맥문동’이라는 약초 역시 <6시 내 고향>이 아니면 쉽게 접할 수 없는 특산물이었다. 그 이름마저 직설적인 월요일 고정 코너 ‘고향 늬우스’는 사소한 것 같지만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화제가 되고 있는 읍 ․ 면 단위의 뉴스를 전달하며 시청자들에게 소소한 재미와 지역 정보를 동시에 전달해 준다.

 이뿐만 아니라 친환경 농법으로 키운 참외(4월 7일 자) 등과 같은 내용은 농어민들의 실질적인 소득증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체적인 영농정보이다. 이는 특산물 정보를 얻는 도시인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넘어 농어민을 위한 정보 제공 프로그램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처럼<6시 내 고향>에서는 9시 뉴스에서는 볼 수 없는 지역 공동체 뉴스가 담겨 있고, 사라져 가는 우리 특산물과 건강에 도움이 되는 로컬 푸드에 대한 정보가 듬뿍 담겨 있는 ‘6시 News’다.


 2) 내 안에 ‘연예오락’ 있다

 무엇보다 <6시 내 고향>의 핵심은 재미다. 억지웃음은 찾아볼 수 없다. 코너 시작 전 책읽  듯 대사를 읊는 지역주민들의 어색한 연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천진한 웃음을 유발한다. 개그맨 유재석의 순발력에 비견되는 김종하, 배동성, 이병철 리포터의 능청스러움과 지역주민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친화력은 <6시 내 고향>을 그 어떤 오락 프로그램보다 더 유쾌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이와 더불어 ‘장터 청백전’, ‘활력충전 9988’ 등의 코너에서 보여 온 매끄러운 구성력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볼 수 있는 연예오락 프로그램으로서 손색이 없다.

 특히, 지역 시장을 돌며 시장 상인들의 재능과 끼를 엿보는 ‘장터 배 장사대회’는 <전국노래자랑>에서도 느낄 수 없는 현장감이 시장 상인들의 활력과 더해져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는 취지를 그대로 살린 ‘활력충전 9988’은 부부간, 이웃간 화합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게임을 선보이며 건강한 웃음을 유발한다.


 3) 내 안에 ‘시사교양’ 있다

 <6시 내 고향> 안에는 역사 다큐가 있었고, 자연 다큐가 있었으며, 가슴 찡한 휴먼 다큐도 존재했다. 경북 예천 석동영 소나무(4월 2일 자)는 비록 한 그루의 나무지만 상속받은 토지면적이 6,600제곱미터에 달해 세금도 내고 지역 내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사연을 가진 기이한 소나무이다. 이와 같은 향토역사를 소개함으로써 <6시 내 고향>은 거시적인 역사는 아니지만 점점 잊혀져가는 지역 내 향토역사의 정보를 전달하는 문화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한 각 지방의 아름다운 자연 숲길과 그곳의 풍광을 고스란히 전달했던 ‘강산별곡’, 가슴 아픈 사연을 가졌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내 고향 희망가요> 등의 코너는 신선한 정보와 재미를 넘어 자연과 인간에 대한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4) 어디에도 없는 ‘공동체’가 있다

 갈수록 개인화되는 도시 사회에는 거의 사라져버린, 하지만 여전히 농어촌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 바로 공동체의식이다. 이는 농어촌을, 아니 우리 사회를 현재까지 있게 한 가장 큰 원천이자 에너지이다. 공동체란 무엇인가? 바로 관계의 힘이다. 예전부터 우리 고향마을에는 공동체가 살아 있었고, 이 상호부조 덕분에 먹을 게 부족해 힘든 시절에도 굶어 죽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보리를 얻어먹을 수 있는 옆집 갓난이네가 있었고, 가족이 아니어도 선뜻 모내기를 도와주었던 윗동네 개똥이네가 있었다.

 <6시 내 고향>에는 어느 프로그램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와 같은 우리 고향마을의 공동체가 존재한다. 전통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가덕도의 숭어들이 잡이(4월 9일 자)를 할 때는 조명을 비춰주는 사람과 몸을 부대끼며 망을 끌어올리는 여러 마을 사람들이 필요하다. 절대 혼자 할 수 없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공생해야만 가능한 작업방식인 것이다.

 <6시 내 고향>에서 다뤄지는 수많은 코너들의 기저에는 ‘공동체’라는 의식이 깔려 있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집단의 ‘정’이란 가치 말이다.


4. 지속가능한 우리 고향을 위하여

 1) 대표님에겐 ‘생태적 감수성’이 부족해요

 이처럼 <6시 내 고향>은 여전히 공동체가 살아 있고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흥과 활력이 넘쳐나는 농어촌의 포근한 모습을 충실히 전달해왔다. 이로 인해 심신에 지친 우리 도시인들에게는 큰 위안과 웃음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하지만 <6시 내 고향>에 비춰지듯 우리의 농어촌은 따뜻하고 아름답기만 할까? 그렇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속도’와 ‘성장’이라는 주술과 망령이 농어촌 구석구석까지 깃든지 오래다.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매끈한 특산물을 생산하고, 작농 기간을 단축시켜 소득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성장 단계별로 수많은 농약들이 사용되고 있다. 이로 인하여 논밭이 파괴되고 있으며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동식물은 죽어가고 있다. 우리 시골의 풍경은 ‘발전이 덜된 지역’으로 등식화되어 지역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파괴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6시 내 고향>에서는 이렇게 파괴되고 변해가는 농어촌 현실은 찾아 볼 수 없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어떤 코너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6시 내 고향>의 홈페이지에 게재되어 있는 기본 제작방침 중 한 가지가 “농어촌의 현안과 변모하는 모습, 바람직한 발전방향 제시”다. 이 제작방침처럼 미래지향적이며 지속가능한 농어촌을 원한다면 농민들에 의해 벌어지는 농촌 내 환경오염 문제, 지역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파괴되어 가는 농어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문제를 제기하는 역할이 <6시 내 고향>에는 필요하다. 이는 곧 파괴되어 가는 우리 농어촌 현실에 눈 감지 않고, 누구의 편도 아닌 자연의 편에 선 ‘생태적 감수성’을 가진 프로그램으로서의 역할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2) ‘농어민을 위한’ 공약을 보여주세요

 농어업이 직업으로서 매력을 잃은 지는 오래며, 농어촌에 가면 60~70대 노년층이 마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이제 그다지 새롭지 않다. 끈끈했던 공동체 의식 역시 예전 같지 않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20~30년 후의 우리 농어촌은 자취를 감추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지금 농어촌은 생존이라는 심각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6시 내 고향>의 임무가 더욱 막중해지는 이유다. 도시민을 위한 향수자극 프로그램을 넘어 농어민을 위한 대안제시 프로그램으로서의 역할이 요구된다. 농어촌의 적나라한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와 더불어 지역 농어업이 발전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느슨해진 공동체 회복을 모색해야 한다.

 대안 제시는 단순히 농어촌이 잘 살 수 있는, 소득증대를 위한 정보제공의 차원에서 그쳐선 안 된다. 유기농법을 토대로 어떻게 하면 농업을 발전시키고, 지역공동체를 활용하여 어떻게 하면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지 ‘how'에 대한 답이 구체적으로 나와야 한다. 제작진은 전문가들과 머리를 싸매고 심도 높은 토론을 거쳐 다방면으로 대안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예를 들면 농업전문가, 생태학자, 농민이 함께 주체가 되어 진행하는 유기농 농법교육 코너, 지역 특산물의 효율적 유통판로 개척을 위한 유통전문 코너, 지역관광 상품 개발을 위한 컨설팅 등의 전문 코너가 필요할 것이다. 

 느슨해진 지역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역할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여전히 끈끈한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는 마을 소개 코너, 지역 내 갈등을 찾아 해결을 모색해주는 ‘공동체 회복 프로젝트’ 코너 등이 그 예다. 

 <6시 내 고향>은 농어촌을 떠난 도시민들에게 위안을 주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프로그램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젠 농어민의, 농어민에 의한, 농어민을 위한 프로그램으로서의 역할강화가 필요하다. 농어민이 잘 살고 행복할 때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도시민 또한 위안을 얻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도시민을 위한 프로그램과 농어민을 위한 프로그램 사이의 역할갈등을 끝내야 한다.

 이처럼 <6시 내 고향>은 사라져가는 우리 농어촌의 복원을 목표로 실현가능한 ‘공약’을 제시할 수 있는 농어촌 전문 프로그램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현재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19년 ‘농어촌당’ 대표 <6시 내 고향>이 유일해 보인다. 대표님의 선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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