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 중인 <녹색평론> 이번 호(115호) 첫 글에서 김종철 발행인은 '돈과 자유'라는 제목으로 <기본소득>의 도입과 의제 확대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몇 호였는지 생각나진 않지만 전에도 일본의 어느 경제학자가  <기본 소득>의 필요성을 주창한 글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이번 글은 읽고 난 뒤에는 머리 속에서 <기본 소득>이란 개념이 쉬이 떨쳐지지 않는다.      

 

 

 

 

 

 

 

 

<기본 소득> 혹은 <시민 배당>이라 불리우는 이 개념은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재의 천민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 나라의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소득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배당금을 주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지급했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선별적 복지 혜택이 아닌 이 나라에게 태어난 국민들 전체를 위한 국가의 의무라고 김종철 발행인은 말한다. 

 <기본소득>이란 개념은 현재 일반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 개념이지만, 8년 전 민주노동당이 처음 무상급식이란 의제를 정치권에 던졌을 때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무시되었던 것이 2010년 지방선거의 가장 큰 캐스팅보트로 떠올 랐던 걸 보면, 기본소득이란 의제도 무상급식 같이 언제 우리 삶에 가까이 다가와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김종철 발행인도 책에서 언급했지만 <기본 소득>과 관련하여 가장 크게 문제시 되는 게 바로 재원확보이다. 책 안에서는 명쾌한 해법을 제시 하지 않아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는데 사회당의 부속 강령에 <기본소득>의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기에 사회당 강령을 찾아보니 <기본 소득>의 재원 확보 방법에 대한 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이 제시하는 재원 확보 방법은 다음과 같다.

 " 신자유주의는 복지를 시장화하고, 공공재를 사유화하고 사영화하여 공공의 것을 수탈해 왔다. 이와 같은 특혜 경제와 수탈 경제는 기본소득과 의료ㆍ교육ㆍ주거ㆍ보육ㆍ노후에서의 기본복지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사회적 기본권 체계로 수립될 때만 해소될 것이다. 투기소득과 불로소득에 대한 중과세를 통해 기본소득과 기본복지의 재원을 마련한다. 이자ㆍ배당ㆍ지대에 대한 중과세는 턱 없이 낮은 현행 세율을 최소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높이는 것과 함께 보편적 복지의 재원을 형성할 것이다. 보편적 복지 체계 수립이 복지의 시장화 이전에 원래 공공의 것이었던 복지를 다시 공공의 것으로 되돌리는 행위라면, 기본소득과 기본복지의 재원 충당 방식은 금융 수탈에 대한 역수탈(逆收奪)이다. 기본소득의 도입을 위한 조세와 재정의 정책은 신자유주의 수탈 경제를 제어하며 또한 강력한 소득재분배 효과도 낳는다. 이는 금융 공공성에 입각한 통제 및 사회화 정책과 더불어 신자유주의 수탈 경제를 극복하는 두 종류의 중요 수단이 될 것이다."
                                                                                     - 사회당 강령 中 부속강령 4 -  

 즉, 투기 소득과 불로 소득에 대한 중과세을 통해서 마련한다는 것이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인 것 같다는 생각이나 이를 통해 얼마만큼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 또한 드는게 사실이다. <기본 소득>이라는 개념이 경제학 분야에서는 얼마나 논의되었던 혹은 논의 중인 의제인지는 경제학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다. 관련 서적을 찾아 현실성을 따져 내 나름의 논리를 만들어 봐야겠다. 알라딘에서 기본 소득 관련하여 검색해 보니 '분배의 재구성(나눔의 집)'이란 책이 한권 나온다. 한번 일독해봐야겠다. 이와 더불어 지난 10월 31일 사회당 새 대표로 선출된 안효상 대표의 선거 공약 중에는 "<기본 소득>의제 확대"가 포함되어 있다. 그의 행보 또한 관심있게 지켜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장바구니담기


이 책에서는 자유 시장 이론가들이 '진실'이라고 팔아 온 사실들이 꼭 이기적인 의도에서 만들어 낸 것은 아닐지라도 허술한 추측과 왜곡된 시야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즉, 자유 시장주의자들이 말해 주지 않는 자본주의에 관한 여러 가지 중요한 진실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내 목적이다.-14쪽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 비판한다고 해서 자본주의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수 많은 문제점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좋은 경제 시스템이라고 믿는다.-14쪽

<01. 자유 시장이라는 것은 없다>
정부는 언제나 시장에 개입하고 있고,자유 시장론자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이다. 객관적으로 규정된 자유시장이 존재한다는 신회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19쪽

<01. 자유 시장이라는 것은 없다>
자유 시장도 그런 식이다. 일단 특정 규제의 정당성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나면 그 규제의 존재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22쪽

<01. 자유 시장이라는 것은 없다>
다른 사람들의 논리는 순전히 정치적인 반면 자신들의 논리는 객관적인 경제학적 진실이라고 우기지만, 그들 역시 자신들이 반대하는 사람들만큼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다. 시장은 객관적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31쪽

<02>기업은 소유주 이익을 위해 경영되면 안 된다.
주주들이 법적으로 기업의 주인일지는 몰라도 그들은 기업의 이해 당사자 중에서 가장 손쉽게 빠져나갈 수 있고, 따라서 기업의 장기 전망에 가장 관심이 없는 집단이다. 보유 주식을 다 팔 경우 해당 기업이 위기에 빠질 정도로 지분이 많은 대주주 외에는 주식을 팔고 떠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주주들을 위한 기업 경영이 결국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32쪽

<02>기업은 소유주 이익을 위해 경영되면 안 된다.
전문 경영인과 주주들 간에 결성된 이 '비신성 동맹'은 기업의 기타 이해 당사자들은 착취한 자금으로 유지되었다. 일자라는 무자비할 정도로 줄었고, 수많은 노동자들은 일단 해고당한 뒤 더 낮은 임금에 복지 혜택도 거의 없다시피 한 비(非) 노조원 자격으로 재고용되었다. -40쪽

<02>기업은 소유주 이익을 위해 경영되면 안 된다.
최악의 문제는 주주 가치 극대화가 심지어 해당 기업도 전혀 이롭지 않다는 것이다. 기업이 수입을 늘리기는 대단히 어렵다. 따라서 이윤을 극대화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고용을 줄여 임금 지출을 삭감하고, 투자를 최소화하여 자본 지출을 줄이는 식으로 비용 지출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다. -42쪽

<02>기업은 소유주 이익을 위해 경영되면 안 된다.
문제는 주주들이 기업의 법적 소유주이기는 하지만, 불행하게도 여러 이해 당사자 중에서 기업의 장기적 생존에 제일 관심이 없는 집단이라는 사실이다. -43쪽

<03. 잘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의 임금 격차는 개인의 생산성이 달라서가 아니라 각 정부의 이민 정책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부자 나라의 부자들이 개인적으로 특별히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들의 높은 생산성은 단지 역사적으로 축척해 온 다양한 제도들 덕분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개인이 가치에 맞는 임금을 받고 있다는 잘못된 신화를 깨뜨려야만 한다. -47쪽

<03. 잘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가난한 나라의 평균 국민소득을 끌어내리는 것은 빈곤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가난한 나라의 부자들이 모르는 게 있다. 바로 자기 나라가 못사는 이유가 빈곤층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54쪽

<03. 잘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
간단히 말해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 나라의 동일 직종 종사자들과 붙여 놓아도 지지 않는다. 정작 자기 몫을 하지 못하는 것은 가난한 나라의 부자들이다. 상대적으로 낮은 그들의 생산성 때문에 나라가 가난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 때문에 나라가 가난하다는 부자들의 불평은 얼토당토하지 않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 나라 전체를 끌어 내린다고 불평하기 전에 가난한 나라의 부자들은 왜 부자나라의 부자들처럼 자신들이 나라 전체를 끌어올리지 못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55쪽

<05. 최악을 예상하면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경제 제도는 사람들이 이기심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인정은 하되 인간의 다른 본성들을 모두 활용하고 사람들이 최선의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제도일 것이다. 결국 최악의 행동을 기대하면 최악의 행동밖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69쪽

<08.자본에도 국적은 있다.>
이런 모든 이유에서 높은 수준의 인적,조직적 역량과 적절한 제도적 여건이 필요한 고도의 기업 활동은 자국에 남게 된다. 자국 편향은 단순히 감정적인 애착이나 역사적 책임감 때문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경제적 이유도 있다. -117쪽

<08.자본에도 국적은 있다.>
만일 어느 외국 기업이 같은 산업 분야에 해당하는 국내 기업을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인수하려는 것이라면 이 외국 자본이 국내 사모펀드보다 더 낫다. 하지만 다른 조건이 모두 같다면 국내 기업이 국가 경제에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행동할 확률이 더 높다. -123쪽

<09.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탈산업화 현상은 제조업 부문의 급속한 생산성 향상에 따라 제조업 제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하락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부자나라의 국민들은 고용의 측면에서 보자면 '탈산업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지만, 생산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아직 '탈산업 사회'를 공언할 정도로 줄어들지는 않는다. -134쪽

<10.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아니다.>
게다가 미국은 다른 선진국보다 같은 돈으로 더 많은 물건과 서비스를 살수 있는 이유는 이민이 많고 고용 조건이 열악한 덕에 상대적으로 서비스가 싸기 때문이다. -143쪽

<12.정부도 유망주을 고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부의 의사 결정권자들, 즉 정치인들과 행정 관료들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보다는 권력을 극대화하는 데 더 신경 쓰고, 따라서 경제적 실효성보다는 가장 가시적이고 정치적 상징성이 높은 흰 코끼리 프로젝트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 관료들은 '남의 돈'을 가지고 일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의 경제적 성공 여부를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176쪽

<13.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1차 대전 직후인 1919년, 소련 경제는 엄청난 곤경에 빠져 있었다.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레닌은 식량 생산이 정상화되지 않는 한 새로운 체제가 유지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신경제정책을 추진했다. 이 정책의 핵심 내용은 농업 부문에서 시장 거래를 허용해서 농민들이 돈을 벌수 있도록 한 것이다. -185쪽

<13.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신경제정책을 둘러싸고 소련 공산당은 둘로 갈라졌다. 공산당 중에서도 더 좌파적 성향을 지닌 레온 트로츠키는 신 경제정책이 자본주의로 회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사람이 독학으로 경제학을 배운 천재 경제학자 예브게니프레오브라젠스키였다. 프레오브라젠스키는 소련 경제를 발전시키려하면 제조업 부문의 투자를 늘려야 하낟고 주장했다. -185쪽

<13.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힌, 거의 한 세기 전 소련의 마크르스 경제학자에 대해 떠벌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스탈린의 전략, 아니 프레오브라젠스키의 전략이 오늘날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부자들을 위한 정책과 놀랄 정도로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188쪽

<13.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노동자들이 소득의 전부를 소비하기 때문에 국민소득에서 노동자들의 소득이 큰 부분을 차지할수록(즉 노동자들이 임금을 많이 받을수록)투자와 경제 성장은 위축될 것이라고 보았다. -189쪽

<13.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추진되기만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득 재분배'가 경제 성장까지 촉진한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과 같은 불황기에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득 재분배'이다. 소득이 적을수록 가용 소득에서 더 많은 몫을 지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196쪽

<15.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더 투철하다.>
한 나라가 번영하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노력이나 재능보다 공동체 차원에서 효율적인 조직과 제도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영웅적인 기업가들이 등장하는 신화를 거부하고 집단 차원의 공동체적 기업가 정신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조직과 제도를 마련하도록 돕지 않으면 가난한 나라들이 빈곤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222쪽

<16.우리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도 될 정도로 영리하지 못하다.>
이렇듯 금융 경제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 은행장, 날고 긴다는 펀드매니저, 명문 대학과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유명 인사들까지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가정 위에서만 성립하는 경제학 이론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우리 인간은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도 될 만큼 똑똑하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230쪽

<16.우리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도 될 정도로 영리하지 못하다.>
이렇게 세상이 복잡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도 그렇게 제한되어 있다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허버트 사이먼의 대답은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의 범위와 복잡성을 줄이기 위해 선택의 자유를 의도적으로 제안하자는 것이다. -232쪽

<16.우리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도 될 정도로 영리하지 못하다.>
우리에게 규제가 필요한 이유는, 정부가 당사자인 경제 주체들보다 관련 상황을 반드시 더 잘 알기 때문이 아니다. 규제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제한된 정신적 능력에 대한 겸허한 인정인 것이다. -237쪽

<17.교육을 더 잘 시킨다고 나라가 더 잘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나라의 고등 교육 현실은 영화관에서 화면을 더 잘 보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한 사람이 서기 시작하면 그 뒷사람도 따라서 서게 되고, 그러다가 일정 비율 이상의 사람들이 결국 모두가 서서 영화를 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말이다. 영화관에 있는 사람들은 이제 화면을 더 잘 볼 수도 없으면서 앉아서 보지도 못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249쪽

<20.기회의 균등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사회 경제적 환경에 돌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할리우드 영화들이 즐겨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믿고 열심히 노력하면 뭐든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 또한 말도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기회이 균등은,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한테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285쪽

<21.큰 정부는 사람들이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로 인해 이른바 '기적의 성장기'가 끝난 이후 한국은 온정주의적 정부 개입 정책을 포기하고 무한 경쟁을 강조하는 시장 자유주의를 채택했다.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높인다는 명분 때문에 직업의 안정성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임시직으로 일하게 되었다.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아시아 금융 위기 전에도 한국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50퍼센트에 육박해서 선진국 중 가장 노동 시장이 취약한 나라로 꼽혔다는 점이다. 거기에 더 자율화를 했으니 이 비율은 이제 60퍼센트 선에 달한다. -293쪽

<21.큰 정부는 사람들이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노동자들에게 제2의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복지 정책은 노동자를 위한 파산법이라고 볼 수 있다. 파산법이 기업가들로 하여금 위험을 더 적극적으로 감수하게 해 주는 것처럼, 복지정책은 노동자들이 변화에 더 개방적이고, 그에 따른 위험을 더 기꺼이 감수하는 태도를 갖도록 해준다. -297쪽

<21.큰 정부는 사람들이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차를 빨리 몰 수 있는 것은 브레이크가 있기 때문이다. 브레이크가 없다면 아무리 능숙한 운전자라도 심각한 사고를 낼까 두려워 시속 40~50킬로 이상 속도를 내지 못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실업이 자기 인생을 망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것을 훨씬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큰 정부가 사람들을 변화에 더 개방적으로 만들고, 그에 따라 경제도 더 역동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300쪽

<22.금융시장은 보다 덜 효율적인 필요가 있다>
결국 이른바 금융 혁신의 결과는 실물 자산이라는 기초 위에 금융 자산이라는 빌딩을 높게 쌓아 올린 끝에 전체 건물이 흔들리는 꼴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더 심각해진다. 금융 상품의 경우 '파생'이 되면 될수록 금융 상품을 궁극적으로 떠받치는 실물 자산과의 거리도 멀어지며 이에 따라 점점 더 파생 금융 상품의 정확한 가격을 매기기가 힘들게 된다. -31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은 대중들에 의해 자유주의자라 불리우는, 혹은 스스로 자유주의자연하는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정확히 10년 전만 해도 고종석은 강준만씨와 더불어 <한국의 대표 자유주의자>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한 마디로 명성이 자자했다. 

 

  

 

 

 

 

 

 

(이십대 초반 여느 대학생이 그렇듯) 굶주린 늑대마냥 제 입맛에 맞는 이데올로기 혹은 정념의 고기 덩어리를 찾아 이리 저리 방황 하던 나 또한 그의 명성을 듣고 <서얼 단상>, <코드 훔치기>등의 저서를 찾아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20대의 젊음은 경사 15도의 완만한 개혁이 담긴 철학에는 만족하지 못했고 경사 90도 이상의 급진적이고 자극적인 그런 이념들을 설파하는 지식인에 더 끌렸다. 그렇게 내 기억속엔 "바른 말을 하는 언어학자 출신 고종석"은 한켠으로 퇴장하고 말았다.  

그렇게 근 10년이 흘렀고, 나는 그 누구 못지 않게 10도 이하의 지극히 평범한 이념적 각도, 그 언저리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10년 전 그대로) 여전히 경사 15도의 완만한 개혁적 철학을 지닌 고종석의 소설을 손에 들었다. 

나의 이념적 각도는 급격하게 하강했고,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딱 그 자리에 존재했다. 나는 변해있었고, 그는 한결 같았다.  

그의 한결 같음에 나는 부끄러운 동시에 반가워 어쩔 줄 몰라했다. 여전히 그는 박학다식했으며, 한국에서 자연언어를 가장 잘 쓴다는 문장가라는 상찬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문체는 담박하고 유려하다.  

소설 <독고준>은 기자 출신이자 언어학 박사인 고종석의 역사에 대한 비평(혹은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팜플렛이라고 할수도 있겠다)이자, 책에 대한 서평인 동시에,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이라는 장르는 그의 이러한 견해를 표현하긴 위한 형식에 불과하다. 소설 속 독고준의 딸인 "원"도 사실은 독고준(혹은 저자인 고종석)의 글들은 갈무리하고 보충해주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이 소설(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에서 눈에 띄는 건 시대적 사건(역사)대한 저자의 정치적 견해와 수많은 문학 작품(특히 시가 많다)에 대한 서평들이다. 이 둘이 고종석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두 가지 키워드라 할 수 있겠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고종석은 그 어떤 지식인보다 정치적이지 않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을 억압하고, 집단적 정념과 사상을 강요하는 지리멸렬한 시대가 그의 정치적 견해를 발현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일반적으로 문예학 사전에서 '소설'을 "산문 형식으로 쓴 긴 분량의 허구적인 이야기"라고 정의한 그 '소설'과는 어느 정도 구분되어 진다. 

또 다른 정체성인 <언어학자>로서의 고종석의 모습은 시, 소설, 철학에 조예가 깊은 소설가 <독고준>으로서 발현된다. 김수영, 한택수부터 로맹가리, 사르트르 심지어 유시민, 진중권까지. 그의 독서 편력은 글로 표현되는 모든 장르에 관심의 안테나를 드리운다. 그리고 서평을 통해 전달되는 깊이있는 통찰력까지. 문학가로서의 고종석의 장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이번 소설은 단지 소설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아깝다. 한때 유행했던 단어인 종합 예술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해 보인다. 오랜만에 맞딱드린 고종석은 변함이 없었고, 여전히 그의 문체는 간결했고 핍진성이 뛰어났다. 

p.s : 궁금한 점 혹은 흥미로운 점은 소설 속의 대부분 인물들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반면, 강준만 선생은 왜 현우림이란 가명으로, 그리고 오규원 시인은 오서경이란 이름으로 등장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들과 친분이 있는 작가의 언어유희일까? 뭘까? 너무 궁금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이조부 2010-12-06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이 책을 읽고 있어요 반갑네요 ㅋ

서재를 둘러보니까 저랑 비슷한 시기에 알라딘을 시작했군요

묘한 친밀감이..... 아무튼 이 리뷰 보니까 저는 이렇게 촘촘하고 좋은 감상문

쓸 자신이 없어지네요 ㅎㅎㅎ

에로틱번뇌보이 2010-12-12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매버릭꾸랑님~ '독고준'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리뷰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독고준
고종석 지음 / 새움 / 2010년 8월
장바구니담기


그는 이념 작가였으되, 경색된 이념이 인간 내면의 악마적 부분과 결합할 때 역사에 어떤 상처를 내지는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의도되지 않은 상처'를 찬찬히 묘사했다.-19쪽

거리로, 광장으로 나가는 걸 삼가고 누추한 밀실에서 역사의 진행에 곁눈질하는. 그러나 나는 내가 기여한 반 없는 민주주의의 덕을 보게 될 것이다. -45쪽

권력은 착한 사람을 악하게 만들고, 유약한 사람을 경건하게 만든다. 아니, 차라리 뻔뻔하게 만든다.-50쪽

사실 어떤 자연 언어에서든, 속담이나 관용구에는 '비윤리적 지혜가'담겨 있는 일이 흔하다. 나이나(넒은 의미의) 계급은 윤리와 무관하다. -73쪽

한 자연언어를 나무에 비유하자면 스타일리스트의 산문은 아름답게 뻗어나간 가지들이지, 그 몸통이 될 수 없다. 한 자연언어에는 스타일리스트이 개성적인 글 이전에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익혀야 할 어떤 표준적 문장, 교과서적 문체가 필요한 법이다. 그런 표준적,교과서적 문장을 익히지 않은 채, 섣불리 스타일리스트의 문장만을 흉내내다가는, 겉멋만 배어 있을 뿐 문법에도 어긋나고 논리도 풀어진 나쁜 문장에 버릇 들기 십상이다.-122쪽

소설이나 시의 천재를 가지고, 쓰지 못해 발광을 할 때는 세상이란 이상스러워서, 청탁을 하지 않는다. 반드시 그런 재주가 고갈되고 나서야 청탁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깐 무릇 시인이나 소설가는 청탁이 밀물처럼 몰려올 때는 자기의 천재는 이미 날아가버렸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세상은 참 우습다. 그렇게 이를 갈고 속물들을 싫어할 때는 아무 소리 없다가 이렇게 내 자신이 완전무결한 속물이 된 뒤에야 속물에 대한 욕을 쓰라고 한다. 세상은 이다지도 야박하다.(이 거룩한 속물들)-136쪽

전통 사회에서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은 극히 제한된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축복이었다. 동아시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흔히 유자 또는 선비라고 불렀고, 유럽에서는 리테라티라고 불렀다.-144쪽

누구나 자기보다 나이가 아래인 사람의 좋은 책을 처음 읽을 때 기분이 묘해진다. 그 묘한 기분은 일종의 열패감 같은 것이다. 그러나 독자와 아예 세대가 다른 젊은 저자의 책을 읽을 땐, 그 책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 열패감이 사라진다. 비교의 욕망, 경쟁의 욕망은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격렬하게 흘러나온다.-148쪽

산다는 것은 기억을 축적하는 과정이자, 축적한 기억을 잃어버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축적의 속도가 상실의 속도보다 빠를 때 사람들은 총명하다는 소리를 듣는다.-197쪽

역사의 진척(또는 후퇴) 속에서 개인의 역할이 차지하는 비중을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할지는 골치 아픈 문제다. 아무튼 아버지는 집단적 정념을 두려워했다. 아마 그것이 아버지로 하여금 공산주의를 혐오하게 만들었을 것이다.-221쪽

아이러니는, 기요틴의 발명과 사용이 사형수들의 고통을 줄여주려는 '인도주의'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224쪽

'대중화 저자(popularizer)'라는 말은 어느 사회에서나 깊은 존경심을 달아 발설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앎의 세계에서 이들이 맡고 있는 역할은 매우 크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은 흔히 문장이 거칠고, 대중을 매혹할 만한 문장가들은 전문 지식이 모자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식의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을 이어주는 대중화 저자들은 전문 지식과 문장력을 겸비해야 한다.-235쪽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자신의 지적 영역에서 쌓은 명성을 '남용'하여 기성체제를 비판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에서 '남용'이라는 말은 긍정적 뜻빛깔을 지닌다.-251쪽

극단의 탐미주의는 파시즘과 통한다. 하라키리는 신경질의 소산이다. -260쪽

그 사적인 미움은 개인의 행태를 통해서 역사를 주조한다.-261쪽

어제 소위 민주정의당이 창당됐다. 한국어를 위협하는 것은 한글학회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외래어가 아니다. 이름과 실체가 일치하지 않을 때, 그 이름은, 곧 언어는 타락한다. -301쪽

'나무'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나온 <그 여자의 재봉틀>은 소위 '문지 진영'에서나 '창비 진영'에서나 다 같이 상찬을 한 작품이다. 김수영 시들이나 조세희의 <난쏘공>을 둘러싼 현상이 이 소설을 둘러싸고도 일어난 것이다. 문지 진영에서는 <그 여자의 재봉틀>의 문체와 상상력을 상찬했다. 그리고 창비 진영에서는 이 소설이 노동계급과 연대를 꾀하고 있다고 상찬했다. 문지진영에서는 <그 여자의 재봉틀>이 모더니즘의 전범이라고 말했고, 창비진영에서는 그 문체나 수법과는 상관없이 이 작품이 마치코바 노동자들의 삶을 핍진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리얼리즘 소설이라고 주장했다. -325쪽

이 손으로 다름 사람 손을 어루만질 수 있다는 것, 살갗과 살갗을 서로 부빌 수 있다는 것, 이런 게 다 행복해요-360쪽

서정시는 근본적으로 시인 자신의 노래다. 거기서는 시인과 시적 화자가 온전히 겹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 소설가는 자기와 무관하거나 자기에게 적대적인 인물들을 창조해, 그들이 놀 자리만 마련해주고 자기는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다. 그러나 서정시인은 그럴 수 없다. 남성 시인이 여성을 시적 화자로 삼을 때도, 노년의 시인이 어린이를 시적 화자로 삼을 때도, 시인과 시적 화자는 좀처럼 분리되지 않는다. 그것이 서정시가 수필과 공유하고 있는 운명이다. 서정시는 운문으로 쓴 수필이고, 수필은 산문으로 쓴 서정시다. -365쪽

시적 화자의 외침처럼 이 시들은 깊은 심리적 상처의 기록이다. 그러나 그의 시들은, 모든 진정한 예술이 그렇듯, 스스로 주변으로 밀려남으로써, 스스로 상처가 됨으로써, 시대의 야만성과 궁핍성을 증언한다. -36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김 없이 가을이 온 줄 알았더니 스산함을 느낄 사이도 없이 겨울이 찾아왔다. 올해도 이렇게 지나가고 나이는 또 한살 먹는다. 오늘따라 인생이 허기지는구나. 

1. 한국 독립 다큐의 대부 김동원 전/강성률, 맹수진 외 지음/서해문학  

 

 

 

 

 

 

  

 

 2. 술꾼의 품격/ 임범 지음/네 21북스 

 

 

 

 

 

 

  

  

3.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윤대녕 지음/ 푸르메 

  

 

 

 

 

 

   

 

4. 인생히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한창훈 지음/ 문학동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