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양장)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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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장르의 특징은 과학적인 사고에 기반해서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고, 그 세계관을 바탕으로 타당한 논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직조해 나가는 것이다. 유명한 책이라기에 읽게 되었는데, 과연 하이엔드 급 SF 소설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책이었다. 발상도 구성도 표현도 흠 잡을 데가 없다. 놀랍고 매력적이다.


힐라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는 밤의 정체를 깨달았던 것이다. 밤이란 하늘을 향해 드리우는 대지의 그림자였다. - P27

언제나처럼, 한 인간이 수행하는 역할은 그보다 훨씬 더 성숙한 인간에 의해서만 인식된다. 내 눈에 이들은 놀이터에서 노는 어린애들처럼 보인다. 나는 그들의 진지함을 재미있어하고, 과거에는 나도 이들과 똑같이 행동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창피해한다. 이들의 행동은 이들 입장에서 볼 때는 타당하다. 그러나 나는 이제 도저히 그런 일에는 참여할 수 없다. 성인이 되면서 유치한 일들과는 인연을 끊은 것과 같은 문제이다. 이제 보통 인간달의 세계와의 접촉은 오로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부분에만 한정시킬 작정이다. - P81

닐 자신도 휴머니스트 운동의 팸플릿을 읽어본 적이 있었다. 그의 기억에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타락 천사들에 관한 언급이었다. 타락 천사들의 강림은 드물었고 행운도 악운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그들은 신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상상 불가능한 자신들만의 일을 수행하면서 인간계를 잠깐 지나갈 뿐이었다. 그들이 나타날 때면 사람들은 질문을 하곤 했다. 당신들은 신의 의지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당신들은 왜 반란을 일으켰는가? 타락 천사들의 답은 한결같았다. 너희의 일은 너희가 결정하라. 그게 바로 우리가 한 일이다. 너희도 우리처럼 하면 될 것이다. - P340

요즘 같은 세태에서는 사춘기를 거치는 일만으로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또래끼리의 압력만으로도 종이컵처럼 우그러질 수 있는 겁니다.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고민하는 것도 그런 압력 중 하나이고, 그런 압력을 완화할 수만 있다면 그게 뭐든 무조건 좋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외모 문제에 관해서도 좀더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좀더 자신을 가지고 안정된 상태에서 자신의 겉모습에 안주할 수 있게 되지요. 잘생겼든 그렇지 않든 간에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게 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같은 나이에 이렇게 성숙한 수준에 도달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열어섯 살에 그렇게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서른 살 혹은 그 이상이 되어서야 겨우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열여덟 살은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나이이고, 이때가 되면 모든 사람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됩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을 믿고 최상의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습니다. - P375

코카인을 예로 들어 봅시다. 천연 형태의 코카 잎은 쾌감을 줍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요. 그러나 정제하고 순환하면, 그것은 여러분의 쾌락 수용기를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강렬하게 자극하는 약물로 변신합니다. 그러면 중독성이 생기는 거지요. 아름다움 또한 광고주들 덕택에 비슷한 과정을 거쳐 왔습니다. (중략) 백만 명에 한 명밖에 없는 피부와 골상을 가진 사람에게 전문적인 메이크업과 수정을 가한다면, 여러분이 보게 되는 것은 더 이상 천연 형태의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제된 약제급의 아름다움이고, 미모의 코카인입니다. (중략) 우리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에 만족할 수 없게 됩니다. 그들은 슈퍼모델들과는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P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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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궁 분지 강원도달비장수 감비 천불붙이 첫눈 ㅣ 창비 20세기 한국소설 22
천승세.방영웅 외 지음, 최원식 외 엮음 / 창비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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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현의 "분지(糞地)"는 미군에게 강간당하고 자살한 어머니와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여동생을 둔 남자가 미군 상사의 아내를 강간하는 내용의 소설이다. 여성 성기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그로테스크했다. 발표 후 북한 신문에도 실리고, 남북이 함께 좋아했던 모양이다. '굉장한 의식 변화이자 진보'라는 평론가의 말은 이 사람만의 개인 의견이 아니라 문단 대다수가 공감하는 내용인 듯하다. 민족주의의 광기다. 

"원더풀"
얼마 만에야 무슨 위대한 결론이라도 내리듯 이마의 땀을 씻으며 겨우 한마디 하고 여사의 몸에서 내려온 저는 세상이 온통 제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더군요. 치부의 면적이 좁았는지 넓었는지에 관해서는 별반 기억에 없었지만 좌우간 이제 분이를 향하여 자신하고 한 마디 뭔가 어드바이스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감격으로 사뭇 들뜬 기분이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지요. 비취 여사는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헬프 미! 헬프 미!"
위태로운 비명과 함께 정신없이 산을 뛰어내려가더군요. 왜 저럴까. 형클어진 머리며 찢어진 옷. 달아나는 여사의 뒷모습은 분명히 언젠가 당신이 발광하여 돌아오시던 날의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 P143

이제 곧 저는 태극의 무늬로 아롱진 이 러닝셔츠를 찢어 한 폭의 찬란한 새 깃발을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구름을 잡아타고 바다를 건너야지요. 그리하여 제가 맛본 그 위대한 대륙에 누워 있는 우윳빛 피부의 그 윤이 자르르 흐르는 여인들의 배꼽 위에 제가 만든 이 한 폭의 황홀한 깃발을 성심껏 꽂아놓을 결심인 것입니다. - P146

이 작품은 "현대문학" 1965년 3월호에 발표됩니다. 작품 발표 당시에도 그 독특한 문체와 현실풍자로 화제가 되기는 했지만, 정작 문제가 크게 불거진 것은 몇 달 뒤의 일입니다. 즉 이 작품이 북한의 신문 "조국통일"에 실리자 중앙정보부가 수사에 착수했고, 7월 7일 작가 남정현이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가 보름가량 후에 구속적부심사를 통해 석방됩니다. 그러나 그가 석방 1년 뒤인 1966년 7월 불구속으로 기소되어, 이듬해 5월 7년 구형을 받는 결심공판까지 10개월을 거치는 동안 세간에선 논란과 논쟁이 계속됩니다. 결국 1967년 6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이루어진 항소심에서 (중략) 선고유예 판결을 받습니다. - P299

미군과 미국에 대해 이 정도의 비판적 시각을 가지게 된 건 굉장한 의식변화이자 진보라 할 만합니다. (평론가 정홍섭)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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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 건강하게 살다 가장 편안하게 죽는 법
우에노 지즈코 지음, 이주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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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 가구의 노후 행복의 비결로 다음 일곱 가지를 들 수 있다. (1)서로를 이해한다. (2)가사 분담을 확실히 한다. (3)가치관이 달라도 신경 쓰지 않는다. (4)눈앞의 불만은 사소한 거라 생각한다. (5)둘이 있을 때부터 미리 혼자가 되었을 때를 준비한다. (6)시간적, 공간적으로 거리를 둔다. (7)자신의 세계에 파고든다. 아무래도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고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공존의 비결 같다. - P25

당연한 말이지만 가장 외로운 사람은 마음이 통하지 않는 가족과 함께 사는 고령자다. 사실 고령자의 자살률은 예상과 달리 독거 고령자보다 동거 고령자 쪽이 더 높다. - P31

쓰지가와 씨의 조사는 아주 면밀했다. 자녀가 있는 사람, 없는 사람, 가까이에 사는 사람, 멀리 사는 사람으로 나눠 만족도와 고민, 외로움, 불안을 비교했다. 그 내용이 그림8-그림11이다. 그런데 세상에! 자녀가 없는 싱글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데다가 고민은 적고 외로움과 불안도 더 낮았다. 자녀가 가까이에 사는 사람이 멀리 사는 사람보다 고민이 더 많았는데, 역시 눈앞에 안 보이면 일단 잊고 살 수 있는 게 맞는 말 같다. 한편, 자녀가 멀리 사는 사람이 가까이에 사는 사람보다 불안이 높은 것은 그럴 만하다. - P32

자택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하는 데 의료가 개입할 필요는 없다. 의료는 병을 고치는 게 목적이지 죽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의료의 역할은 개입을 삼가고 사후에 사망진단서를 써주는 것이다. - P50

시설은 생활을 24시간 관리한다. 이런 곳을 전제적 기관(total Institution)이라고 한다. 그 전형이 교도소다. 따라서 시설은 어떤 의미에서는 교도소와 같다. 게다가 교도소라면 무기징역이 아닌 한 언젠가는 나갈 수 있지만 고령자 시설은 시신이 되지 않는 한 나갈 수 없다. 외출은 가능하지만 직원의 관리를 받아야 하고 가족이 사는 집에서 외박하고 싶어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 - P62

그렇다면 ‘입회인 없이 죽을까 봐’ 걱정하는 것은 죽어가는 사람일까, 남겨지는 사람일까? 취재하면서 보니 임종을 지켜보고 싶어하는 쪽은 죽는 사람이 아니라 남겨지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를 ‘임종 입회 콤플렉스’라고 이름 붙였다. 엄마와 단둘이 살면서 오랫동안 간병해온 지인은 자신이 외출한 사이에 엄마가 돌아가시자 자신을 탓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냈으니 마지막 잠깐을 놓쳐도 괜찮지 않나 싶었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동안 작별인사와 감사의 말을 전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을 텐데 꼭 죽어가는 사람에게 매달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초고령 사회의 죽음은 속도가 느리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죽음이다. 작별 인사와 감사의 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리미리 하는 게 좋다. - P99

그래서 치매 환자가 혼자서 살 수 있냐고? 생활 습관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도 방문 간병인이 있다면 식사와 입욕이 모두 가능하다. 친근한 간병인이 있다면 시설처럼 저항할 일도 없다. 스스로 식사 준비를 할 수 없게 되면 배식 서비스를 부탁하면 된다. 치매 환자도 음식만 제공해주면 혼자서 제대로 먹을 수 있따. 식욕은 삶의 욕구 중 가장 기본이다. 먹을 수 있는 동안은 잘 먹으면서 즐겁게 지내다가 먹는 게 어려워지거나 누워 지내게 되면 그때는 치매가 있든 없든 팔요한 간병은 똑같다. 실제로 혼자 사는 치매 고령자가 집에서 임종을 맞는 사례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 P118

이런 사례도 들었다. 치매인 아버지는 혼자 살고 아들과 며느리는 근처의 신축 주택에서 살고 있는데, 아버지가 방이나 복도에서 볼일을 볼 때가 많아 집에 들어가면 악취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방문 요양보호사가 묵묵히 그 뒤처리를 해주고 있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아버지를 왜 집으로 모시지 않느냐는 듯한 눈길로 아들 부부를 쳐다보지만, 아들은 케어 매니저와 상담 후 아버지 집은 아버지의 것이니 배설물투성이든 뭐든 하고 싶으신 대로 하셔도 된다고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아들은 그런 방식으로 아내를, 아니 자신과 아내의 부부 관계를 지켜냈다.
이 이야기를 해준 케어 매니저는 진지하게 말했다. "가족의 각오만 있다면 치매여도 혼자 살 수 있어요." - P127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모두가 중도 장애인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그 중도 장애 안에 불편한 몸뿐만 아니라 불편한 머리와 마음, 그 전부 또는 일부가 존재한다면 치매 케어가 가야 할 방향은 장애인 케어와 똑같다. 사회의 배리어프리와 마음의 배리어프리를 지향해야 한다. 가능하면 나 자신이 치매에 걸리기 전에 말이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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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에세이 - 고전세계로 향하는 첫걸음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외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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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순간에도 로마인답게, 남자답게 꾸밈없는 위엄과 자연스러운 호의와 독립심과 정의감을 갖고 의연하게 생하고, 다른 생각은 모두 버려라. 모든 행동을 네 인생의 마지막 행동으로 여긴다면, 온갖 무목적성과 격정에 이끌려 이성적 판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과 위선과 이기심과 주어진 운명에 불만을 터뜨리는 것에서 벗어난다면, 너는 능히 그렇게 할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P31

그분(인용자 주: 안토니누스 피우스)은 붙임성이 좋았고, 당신과 함께하는 식사나 여행에 동행하도록 친구들에게 강요하지 않으셨다. 급한 용무로 동참하지 못한 자들을 늘 한결같이 대하셨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P23

네가 또 다른 삶에 들어서게 된다면, 그곳이라고 하여 신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감각한 상태에 들어서게 된다면, 네 고통과 쾌락은 그칠 것이고, 그것을 섬기는 자보다 훨씬 열등한 그릇을 위하여 머슴살이 하는 일도 그치게 될 것이다. 전자는 이성과 신성이고, 후자는 흙과 오물이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P40

우리가 말하고 행하는 것은 십중팔구 불필요한 것이므로, 그것을 버리면 시간의 여유가 생기고 마음의 동요는 줄어들 것이다. 그러니 매사에 이것도 불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불필요한 행동뿐 아니라 불필요한 생각도 버려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를 빗나가게 하는 행동이 뒤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P57

자신의 악에서 벗어나는 일은 가능한데도 그 악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남의 악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데도 그 악에서 벗어나려 하니 가소로운 일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P122

원로원에서 말할 때나 개인에게 말할 때 적절하고 명료하게 말하라. 건전한 표현을 사용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P131

누군가의 몰염치한 행동에 기분이 상할 때마다 "세상에 몰염치한 자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하고 너 자신에게 즉시 물어보라.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중략) 악당이나 신의 없는 자나 잘못을 저지르는 다른 모든 자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떠올려라. 너는 이런 부류의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상기하자마자 이들 한 명 한 명에 대하여 더 관대해질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P156

둘러서서 임종을 지키고 있는 무리 가운데 그에게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기뻐할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만큼 유복한 자는 아무도 없다. (중략) 내가 그토록 애써주고 기도해주고 배려했던 동료들조차 내가 죽으면 자신이 좀 더 편안해질까 하고 내가 떠나기를 바라는 그런 세상을 나는 떠나고 있다. 그러니 누구든 더 오래 이곳에 머무르려고 아득바득 용을 쓸 까닭이 어디 있단 말인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P173

절약 없이는 어떤 재물로도 충분하지 않고, 절약하면 어떤 재물로도 충분하다. -세네카- - P236

그대는 백발과 주름살만 보고 어떤 사람이 오래 살았다고 믿어서는 안 되오. 그는 오래 산 것이 아니라 오래 생존한 것뿐이니까요. 출항하자마자 사나운 폭풍에 이리저리 밀려다니다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미친 듯 불어오는 바람 탓에 같은 수면 위를 빙빙 돌던 사람을 긴 항해를 해냈다고 생각한다면 터무니없는 일이 아닐까요? -세네카- - P305

지혜가 축성한 것들은 세월도 해할 수 없다. -세네카- - P324

(인용자주: 미덕을 추구하면) 그대는 아무것도 강요받지 않을 것이며,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을 것이오. 그대는 어떤 것도 헛되이 시도하지 않을 것이며, 어디서도 방해받지 않을 것이오. - P359

너무 가난하다 보면 현인에게도 노년은 견디기 쉬운 것이 아니겠지만, 엄청난 재물을 가졌다 해도 어리석은 자에게 노년은 짐스러울 수밖에 없다네. -키케로- - P399

사람은 역시 적절한 때에 죽는 것이 바람직하다네. 자연은 다른 모든 것에도 그렇지만 삶에도 한계를 정해 놓았기 때문일세. 그리고 노년은 인생이라는 연극의 마지막 장인 만큼 거기에서 기진맥진해지는 것은 피해야 하네. -키케로- - P456

우리의 우정에 관한 추억이 무척이나 행복한 것이어서 내 삶도 행복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드네. 나는 (인용자 주: 라일리우스) 스키피오와 함께 살았으니까 말일세. 우리는 공적인 생활에서나 사생활에서나 관심사가 같았고, 같은 집에서 살았으며, 전장에서 군복무도 함께했다네. 우리는 취향과 목표와 의견도 완전히 일치했는데, 바로 이것이 우정의 요체라네. -키케로- - P471

우정을 맺어준 것은 무엇보다도 서로의 미덕에 대한 신뢰인 셈이라네. 따라서 미덕을 저버리면 우정은 존속하기 어려울 걸세. -키케로- - P487

확실한 것은, 말을 하지 않아 이득이 된 경우는 많아도, 말을 해서 이득이 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말하지 않은 것은 언제든 말할 수 있어도, 일단 말한 것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그것은 엎질러진 물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는 건 인간이지만, 침묵하는 법은 신들이 가르치는 것 같다. -플루타르코스- - P542

비밀을 지키지 않았다고 대체 무슨 권리로 남을 나무랄 수 있단 말인가? 알려져서는 안 될 일이라면 남에게 이야기하지 말았어야 할 것이다. 그대가 비밀을 그대에게서 꺼내어 다른 사람 속에 감추려고 한다면, 그대 자신보다 남을 더 신뢰하는 셈이다. -플루타르코스- - P546

노년의 가장 나쁜 점은 저승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서 혼이 이승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 혼이 뒤틀리고 억압되어 몸과의 결합에 의해 주어진 형태를 견지한다는 것이오. -플루타르코스- - P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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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사유의 시선 - 우리가 꿈꾸는 시대를 위한 철학의 힘
최진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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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만든 매우 고효율의 장치다. (중략) 철학이 생산되는 순간은 육체적이고 역사적이다. (중략) 철학 수입자들에게는 애초부터 육체적이고 역사적인 울퉁불퉁함이 지적 사유 대상이 되기 어렵다. 그런 울퉁불퉁함은 특수하다. 공간과 시간에 갇혀 개별적 구체성으로만 있다. - P9

원래 동양에는 ‘철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계와 관계를 맺는 특별한 지적 형식이 없었다. ‘철학’이라는 지적 형식에 맞출 수 있는 내용은 있었지만, 그런 제목을 단 독립적 형식은 없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동양 철학’ ‘중국 철학’ 혹은 ‘한국 철학’이라고 하면, 다루는 자료가 과거의 것들이기 때문에 매우 오래된 학문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 모두가 신흥 학문에 속한다. ‘동양 철학’은 동양의 사상적 혹은 지적 자료를 철학적으로 다루는 학문을 말한다. ‘한국 철학’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사상적이고 지적인 자료를 철학적으로 다룬다는 뜻이다. 철학적으로 다룬다는 이 방법이 동아시아에서는 새로운 것이다. - P36

‘인문人文’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 즉 인간의 동선이다. 인간의 활동을 가장 높은 차원에서 개괄해 이해한다. 인간이 구축한 문명이란 모두 이 인간의 동선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인간의 동선을 파악한 후, 그 높이에서 행위를 결정하면 전략적이다. 그 차원에서라야 비로소 상상이니 창의니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상상이니 창의니 하는 일들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 즉 인간의 동선의 높이에서 튀어나오는 것일 뿐, 그 아래 단계에서는 실현되지 못한다. - P73

조선의 많은 철학자들은 사실 철학자가 아니다. 그들은 대부분 주희(주자)를 닮으려고 안달이었다. 조선의 종속성은 이런 태도에서 기인한다. 문제는 현재 대한민국에도 "조선의 철학자"들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종교인이 철학적이기 어려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 P90

나는 자연과학이나 부강함이 바로 문화력에서 나온다고 본다. 행복, 인의, 자유, 사랑과 같은 덕목이 제대로 기능하는 사회의 높이가 바로 문화적이고 예술적이며 철학적인 단계다. 행복이나 인의나 자비 등과 같은 덕목은 그냥 개인적인 마음 씀씀이 정도로 치부될 일이 아니다. 이런 덕목들이 기능한다는 것은 이런 덕목들이 발휘될 정도로 고양된 인격을 가진 구성원들로 사회가 채워져 있음을 의미하는데, 이런 고양된 인격의 소유자들이 발휘하는 시선이나 활동성은 단계가 매우 높다. - P111

나는 박물관이나 갤러리를 자주 가지 않았었다. 가서도 재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재미를 느끼지 못했을까? 그것은 박물관이나 갤러리의 높이와 내 시선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발산하는 높이와 보는 사람의 시선이 일치하지 않으면 거기서 재미가 생길 수 없다. 일치해야만 비로소 재미가 생긴다. 무엇을 즐긴다는 것은 그것이 발산하는 높이와 자신의 시선이 일치한다는 뜻이다. 박물관이나 갤러리는 인간의 지성을 성장시키는 데 중요하고, 또 성장된 지성의 높이를 가져야만 즐길 수 있다.
- P126

건국-산업화-민주화를 직선적으로 완수한 탄력으로 바로 선진화로 진입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정체를 알기 힘든 투명한 (추상적인) 벽 앞에 서서 당황하고 있다. 그 벽에 막혀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 심지어는 건국 세력까지 뒤엉켜 있는 형국이다. 건국 세력은 건국할 때의 틀로, 산업화 세력은 산업화의 틀로, 민주화 세력은 민주화의 틀만 가지고 서로 자기가 옳다고 아귀다툼을 하고 있을 뿐이다. - P138

인간이 독립을 시도하면서부터 인간은 비로소 자연과 역사에 책임성 있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 책임성은 믿음이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을 독립적으로 발휘하는 태도에 의해서 실현되었다. - P167

한국 학생들은 단체 여행을 할 때 여행 내내 개별적인 행동은 전혀 없이 집단으로 똘똘 뭉쳐 행동한다. 집단으로 모여 있고 뭔가 연결되어 있어야 하고, 서로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미국 학생들의 단체 여행은 그렇지 않다. 모두 함께해야 하는 것으로 정해진 프로그램이 아니면 단독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기차 타고 이동할 때도 우리 학생들은 게임 등을 하면서 다 함께 뭉쳐 있는데, 미국 학생들은 혼자 책을 본다든지 혼자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해서 우리가 함께 여행 온 사람들인가 하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어떤 모습이 더 좋고 나쁘고의 문제라기보다는 문화에 따라 나타나는 차이일 것이다. - P176

공동체나 집단에 선험적 절대성을 부여하게 되면 마치 공동체나 집단을 절대선을 가진 고정 불변의 존재로 받아들이기가 십상이다. 집단에는 그런 힘이 잠재되어 있다. 그래서 개별과 보편, 개인과 집단, 개별자와 공동체 등으로 나누어놓고 저울질하다 보면 당연히 무게중심이 보편이나 집단이나 공동체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집단은 대개 ‘보편’이라는 탈을 쓴 이념의 지배를 받고, 그러면서 권위가 더욱 공고해진다는 것이다. - P177

우리가 보통 개별적 주체들의 주체성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집단적으로 공유된 보편적 이념을 내면화한 다음 그것을 자신의 주체성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래서 주체라고는 하지만 기실은 보편적이거나 집단적 이념에 종속되어 있다. 더군다나 내면화된 보편성은 우주적 차원의 것이 아니라 대부분은 정치적 이념의 공유자들끼리 나누는 보편성이거나 진영의 좁다란 보편성이어서 그렇게 넓고 높지도 않다. 이런 주체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나 공동체는 주체들의 자발성이 발휘되지 못하여 사회가 경색되기 쉽다. 이런 구조에서는 문명의 진행 방향에 능동적이고 선제적으로 반응할 수 없어 종속성을 벗어나기 어렵다. - P177

장자는 가치의 결탁물인 자기를 ‘아我’로 표현하고, 가치의 결탁을 끊고, 즉 기존의 자기를 살해하고 새로 태어난 자기를 ‘오吾’로 새겼다. 가치관으로 결탁된 자기를 살해하지 않으면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드러날 수 없다. 자기 살해를 거친 다음에야 참된 인간으로서의 자신이 등장한다. 참된 인간을 장자는 ‘진인眞人’이라고 한다. ‘무아無我’도 글자 그대로 ‘자신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참된 자기로 등장하는 절차다. 그래서 무아는 ‘진아眞我’와 같아진다. 진인으로 새롭게 등장한달지 진아로 우뚝 서는 일을 다양하게 표현하는데, 그것을 반성이라고도 하고, 각성이라고도 하며, 깨달음이라고도 한다. 자기살해 이후 등장한 새로운 ‘나’, 이런 참된 자아를 독립적 주체라 한다. - P216

능동적 주체를 장자 식으로 표현하면, 자신을 지배하던 규정적 관념, 즉 성심成心으로부터 벗어난 소요逍遙의 경지에 있는 사람이다. 그것을 일반화하여 ‘자유自由’라고 표현해도 된다. ‘자유’라는 말 자체가 ‘자기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자기가 주인이라는 뜻이다. (중략) 자기 이외의 것들은 자기를 키우고 단단하게 하는 수단으로만 사용될 뿐이다. - P220

고전에 있는 ‘진리적’인 것들이 당시의 구체적인 세계와 어떤 유기적 연관성 속에서 형성되었는지를 이해한 후,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유기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시대의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지금 자기가 살고 있는 구체적인 세계에서 포착된 자기만의 문제가 자기에게서 먼저 진리로 드러나는 것이 관건이지, 경전에 있는 진리를 묵수하는 것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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