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양장)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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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장르의 특징은 과학적인 사고에 기반해서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고, 그 세계관을 바탕으로 타당한 논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직조해 나가는 것이다. 유명한 책이라기에 읽게 되었는데, 과연 하이엔드 급 SF 소설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책이었다. 발상도 구성도 표현도 흠 잡을 데가 없다. 놀랍고 매력적이다.


힐라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는 밤의 정체를 깨달았던 것이다. 밤이란 하늘을 향해 드리우는 대지의 그림자였다. - P27

언제나처럼, 한 인간이 수행하는 역할은 그보다 훨씬 더 성숙한 인간에 의해서만 인식된다. 내 눈에 이들은 놀이터에서 노는 어린애들처럼 보인다. 나는 그들의 진지함을 재미있어하고, 과거에는 나도 이들과 똑같이 행동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창피해한다. 이들의 행동은 이들 입장에서 볼 때는 타당하다. 그러나 나는 이제 도저히 그런 일에는 참여할 수 없다. 성인이 되면서 유치한 일들과는 인연을 끊은 것과 같은 문제이다. 이제 보통 인간달의 세계와의 접촉은 오로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부분에만 한정시킬 작정이다. - P81

닐 자신도 휴머니스트 운동의 팸플릿을 읽어본 적이 있었다. 그의 기억에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타락 천사들에 관한 언급이었다. 타락 천사들의 강림은 드물었고 행운도 악운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그들은 신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상상 불가능한 자신들만의 일을 수행하면서 인간계를 잠깐 지나갈 뿐이었다. 그들이 나타날 때면 사람들은 질문을 하곤 했다. 당신들은 신의 의지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당신들은 왜 반란을 일으켰는가? 타락 천사들의 답은 한결같았다. 너희의 일은 너희가 결정하라. 그게 바로 우리가 한 일이다. 너희도 우리처럼 하면 될 것이다. - P340

요즘 같은 세태에서는 사춘기를 거치는 일만으로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또래끼리의 압력만으로도 종이컵처럼 우그러질 수 있는 겁니다.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고민하는 것도 그런 압력 중 하나이고, 그런 압력을 완화할 수만 있다면 그게 뭐든 무조건 좋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외모 문제에 관해서도 좀더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좀더 자신을 가지고 안정된 상태에서 자신의 겉모습에 안주할 수 있게 되지요. 잘생겼든 그렇지 않든 간에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게 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같은 나이에 이렇게 성숙한 수준에 도달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열어섯 살에 그렇게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서른 살 혹은 그 이상이 되어서야 겨우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열여덟 살은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나이이고, 이때가 되면 모든 사람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됩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을 믿고 최상의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습니다. - P375

코카인을 예로 들어 봅시다. 천연 형태의 코카 잎은 쾌감을 줍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요. 그러나 정제하고 순환하면, 그것은 여러분의 쾌락 수용기를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강렬하게 자극하는 약물로 변신합니다. 그러면 중독성이 생기는 거지요. 아름다움 또한 광고주들 덕택에 비슷한 과정을 거쳐 왔습니다. (중략) 백만 명에 한 명밖에 없는 피부와 골상을 가진 사람에게 전문적인 메이크업과 수정을 가한다면, 여러분이 보게 되는 것은 더 이상 천연 형태의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제된 약제급의 아름다움이고, 미모의 코카인입니다. (중략) 우리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에 만족할 수 없게 됩니다. 그들은 슈퍼모델들과는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P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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