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궁 분지 강원도달비장수 감비 천불붙이 첫눈 창비 20세기 한국소설 22
천승세.방영웅 외 지음, 최원식 외 엮음 / 창비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남정현의 "분지(糞地)"는 미군에게 강간당하고 자살한 어머니와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여동생을 둔 남자가 미군 상사의 아내를 강간하는 내용의 소설이다. 여성 성기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그로테스크했다. 발표 후 북한 신문에도 실리고, 남북이 함께 좋아했던 모양이다. '굉장한 의식 변화이자 진보'라는 평론가의 말은 이 사람만의 개인 의견이 아니라 문단 대다수가 공감하는 내용인 듯하다. 민족주의의 광기다. 

"원더풀"
얼마 만에야 무슨 위대한 결론이라도 내리듯 이마의 땀을 씻으며 겨우 한마디 하고 여사의 몸에서 내려온 저는 세상이 온통 제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더군요. 치부의 면적이 좁았는지 넓었는지에 관해서는 별반 기억에 없었지만 좌우간 이제 분이를 향하여 자신하고 한 마디 뭔가 어드바이스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감격으로 사뭇 들뜬 기분이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지요. 비취 여사는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헬프 미! 헬프 미!"
위태로운 비명과 함께 정신없이 산을 뛰어내려가더군요. 왜 저럴까. 형클어진 머리며 찢어진 옷. 달아나는 여사의 뒷모습은 분명히 언젠가 당신이 발광하여 돌아오시던 날의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 P143

이제 곧 저는 태극의 무늬로 아롱진 이 러닝셔츠를 찢어 한 폭의 찬란한 새 깃발을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구름을 잡아타고 바다를 건너야지요. 그리하여 제가 맛본 그 위대한 대륙에 누워 있는 우윳빛 피부의 그 윤이 자르르 흐르는 여인들의 배꼽 위에 제가 만든 이 한 폭의 황홀한 깃발을 성심껏 꽂아놓을 결심인 것입니다. - P146

이 작품은 "현대문학" 1965년 3월호에 발표됩니다. 작품 발표 당시에도 그 독특한 문체와 현실풍자로 화제가 되기는 했지만, 정작 문제가 크게 불거진 것은 몇 달 뒤의 일입니다. 즉 이 작품이 북한의 신문 "조국통일"에 실리자 중앙정보부가 수사에 착수했고, 7월 7일 작가 남정현이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가 보름가량 후에 구속적부심사를 통해 석방됩니다. 그러나 그가 석방 1년 뒤인 1966년 7월 불구속으로 기소되어, 이듬해 5월 7년 구형을 받는 결심공판까지 10개월을 거치는 동안 세간에선 논란과 논쟁이 계속됩니다. 결국 1967년 6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이루어진 항소심에서 (중략) 선고유예 판결을 받습니다. - P299

미군과 미국에 대해 이 정도의 비판적 시각을 가지게 된 건 굉장한 의식변화이자 진보라 할 만합니다. (평론가 정홍섭)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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