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콜드 블러드 ㅣ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트루먼 카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06년 3월
구판절판


페리가 확실히 신의 자비와 용서를 구할 만큼 심각하게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고 있는 것일까? 페리는 말했다.
"미안하게 생각하냐고? 그런 뜻으로 물어본 거면 아니라고 할 수 있어. 나는 그 일에 아무 감정을 못 느껴. 나도 내가 뭔가 느꼈으면 좋겠어. 하지마만 그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심란하지 않아. 그 일이 일어난 후 반시간쯤 지나니까 딕은 농담을 해댔고 나는 그 농담을 듣고 웃었지. 어쩌면 우리는 인간이 아닌지도 몰라. 난 내 자신에 대해서는 유감을 느낄 정도로는 인간적이지. 넌 여기서 나갈 수 있어도 난 여기서 나갈 수 없다는 게 유감이야. 하지만 그게 다지."
그렇게 초연한 태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컬리번은 믿을 수가 없었다. 페리는 혼란해서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어떤 인간도 그렇게 양심이나 동정이 없을 수는 없는 것이다. 페리는 말했다.
"왜? 군인들이 잠을 설치는 것도 아니잖아. 군인들은 살인을 하고 훈장을 받아. 캔자스의 착한 사람들은 나를 살해하고 싶어하겠지. 그리고 교수형 집행인들은 기꺼이 그 일을 맡을 거고. 사람을 죽이는 건 쉬워."-448-449쪽

뿔테 안경을 끼고 몸무게는 거의 163킬로그램에 육박했던 앤드루스는 캔자스 대학 2학년생, 생물학 전공의 장학생이었다. 그는 비록 고독하게 방 안에 틀어박혀 거의 사람들과 교류가 없는 학생이었지만, 대학에서나 고향 캔자스 월컷에서나 모두들 그를 아주 상냥하고 '천성이 부드러운' 청년으로 보고 있었다. (중략) 앤드류스의 가족들, 부모와 나이 차가 별로 안 나는 누나 제니 마리는 1958년 여름과 가을 내내 앤드루스가 무슨 백일몽을 꾸었는지 알았더라면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었다. (중략) 마침내 11월의 어느 날 밤, 계획을 실행에 옮길 준비가 되었다.
마침 추수감사절 주간이라 앤드루스는 명절을 지내러 집에 와 있었다. 누나 제니 마리도 집에 있었다. 제니 마리는 똑똑했지만 오클라호마의 대학에 다니는 평볌한 소녀였다. 11월 28일 저녁 7시쯤 되었을 때, 제니 마리는 부모님과 함께 응접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앤드루스는 침실 문을 잠그고 들어앉아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마지막 장을 읽었다. 다 읽고 나서 그는 면도를 하고 가장 좋은 양복을 입은 뒤, 22게이지 반자동 엽총과 22구경 루거 권총에 총알을 장전했다. (계속)-480-483쪽

(위에서 계속) 권총은 허리에 차고, 엽총은 둘러멘 뒤 앤드루스는 아래층 복도로 느릿느릿 내려가 응접실로 들어갔다.
응접실 안은 텔레비전 화면에서 나오는 불빛이 깜박이고 있는 것 말고는 어두웠다. 앤드루스는 전등불을 켜고 엽총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겨 누나의 눈 사이를 맞춰 즉사시켰다. 그는 자기 어머니에게 세 발을 쏘았고, 아버지에게는 두 발을 쏘았다. 어머니는 눈을 게스츠레 뜨고 발을 뻗어 그를 향해 비틀비틀 걸어왔다. 어머니가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닫았지만, 앤드루스는 그냥 "입 닥쳐"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자기 말을 확실히 듣게 하려고, 그는 어머니를 향해 세 발을 더 쏘았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아직도 살아 있었다. 아버지는 흐느끼고 낑낑대면서 바닥을 기어 부엌으로 갔다. 하지만 부엌 문지방에 이르렀을 때 아들은 권총을 뽑아서 장전된 총알을 모두 발사한 다음, 다시 한 번 무기를 장전해서 다시 한 번 총알이 다 떨어질 때까지 쏘았다. 그의 아버지는 모두 열일곱 발의 총알을 맞았다.
(아래에 계속)-480-483쪽

로웰 리 앤드루스는 본인이 작성한 진술서에 따르면 "그 일에 대해서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고 했다. "때가 왔으니,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거기서 일어난 일은 그런 것뿐이죠."
총을 쏜 후, 앤드루스는 자기 침실 창문을 떼어내 방충망을 걷어내고 나서, 집 안을 여기저기 다니면서 옷장 서랍을 빼서 안의 내용물을 마구 흩트려놓았다. 범죄의 책임을 도둑에게 돌리려는 의도였다. 후에 자기 아버지 차를 몰고 앤드루스는 눈 때문에 미끄러운 길을 65킬로미터 정도 달려 캔자스 주립 대학이 있는 로렌스로 돌아갔다. 가는 도중, 앤드루스는 다리에 차를 세워놓고는 총기를 분해해서 부속을 하나하나 캔자스 강에 빠뜨려버렸다. 하지만 물론 그 여행의 진정한 목적은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이었다. 먼저 그는 자기가 세 들어 살고 있는 하숙집에 들렀다. 타자기를 가지러 왔다면서 거기서 집주인과 잠깐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월컷에서 로렌스로 오는데 날씨가 너무 나빠서 2시간 정도 걸렸다고 말했다. 그곳을 떠나면서 앤드루스는 영화관에 들러 별 특징 없이 극장 안내인과 사탕 판매원가 잡담을 나누었다. (아래에 계속)-480-483쪽

(위에서 계속) 11시에 영화가 끝나자 앤드루스는 월컷으로 돌아갔다. 집에서 기르는 잡종개가 현관 포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개는 배가 고파서 낑낑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앤드루스는 집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시체를 넘어 부엌으로 가서는 우유를 한 대접 데우고 옥수수 죽을 만들어 개에게 주었다. 개가 그걸 핥아먹는 동안 그는 보안관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말했다. "내 이름은 로웰 리 앤드루스입니다. 전 월컷 드라이브 6040번지에 사는데요, 강도가 들었어요....."-480-4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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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9-02-20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59년 11월 15일 일요일이 막 시작될 무렵, 캔사스 주 피니 군의 홀컴이라는 외딴 마을에서, 부유한 농장주 허버트 클로터와 그 아내 보니, 16살과 15살인 낸시와 캐년 남매가 살해당했다. 범인인 딕 히콕과 페리 스미스는 1965년 4월 14일 랜싱에 있는 캔사스 주립 교도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 책은 이 살인 사건과 수사 기록을 다룬 책이다. 저자 트루먼 카포티는 수많은 사건 관계자들을 인터뷰하여, 3인칭 서술자의 시점으로 마치 소설과 같이 사건을 재구성해냈다.
솔직히, 책을 읽으면서 범인들에 대해 분노도 동정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이 범죄자들은 이런 사람들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이 합쳐져서 이런 성격이 나오는 거겠지만, 확실히 좀 안됐긴 하다. 물론, 범죄의 희생자들도 안 됐고. 인생에는 정말 온갖 위험이 다 있다.
(뒤에 길게 인용한 대목은 딕과 페리의 사형수 복도 동료였던 앤디에 대한 것. 스쳐지나가는 삽화였지만 인상적이었다. 앤디는 1962년 11월 30일 금요일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보험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진실
김미숙 지음 / 엘도라도 / 2007년 11월
절판


만일사망보험금이 1억 원이라면 지금 받는 사람에게는 적지 않은 목돈이 된다. 하지만 현재 30세인 사람이 오래 살아서 80세에 사망했다면 1억 원은 화폐가치를 감안할 때 2천280만 원(물가상승률3%) 정도에 불과하게 된다. 이는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가장 큰 비밀 중 하나다.
20년 전에는 2천만 원으로 번듯한 집을 살 수 있었지만 지금 이 정도 돈은 겨우 차 한 대 값에 불과하다. 지금은 1억의 보험금이 커 보여도, 20년 뒤에는 차 한 대 겨우 살 돈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사망 시 1억'을 크다고 생각하는가?-39쪽

<모집인은 무조건 보험회사 편>
설사 모집인이 '사기 행위'를 사주하지 않았다 해도, 보험사와 가입자 간의 분쟁이 일어났을 때 해당 모집인은 보험사 편을 들 수밖에 없다. 보험사를 감독할 목적으로 제정된 보험업법에는 '보험가입자 권리 보장 법조항'이 딱 하나 있는데, '보험업법 제102조'가 그것이다. '보험사 임직원과 설계사, 보험대리점 등이 부실 판매 등으로 가입자에게 손해를 입히게 되면 보험사는 가입자에게 배상을 해야 하고, 대신 보험사는 나중에 모집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법인대리점에서 채용한 대리점 모집사용인의 부실 판매로 가입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하여간 모집인은 그저 보험사 주장이 옳다고 해야 자신에게 떨어질 불똥(구상권)을 피할 수 있다. 혹시 보험사가 배상하더라도 보험사는 손해될 게 없다. '모집인의 과실 때문에 보험금을 지급했다'고 주장하여 구상권을 행사해 모집인으로부터 회수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76-77쪽

또 한 번 강조하지만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으며, 예측할 수 있다는 듯이 포장하는 것도 위험하다. 보험은 '최소의 비용'만 보험사에 기부한다는 생각으로 가입하라. 그 이상은 보험사 좋은 일 시켜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151쪽

암 입원비나 수술비 등을 '고액'으로 가입한 가입자도 보험금을 받기가 힘들다. 입원일수 1일당 20만원을 받는 조건은 1일당 10만원을 받는 조건보다 보험료가 높다. 가입시킬 때 입원비가 높거나 수술비가 높은 상품이 좋은 상품임을 강조해서 보험료를 다 냈는데, 정작 보험사고가 터지면 '고액'이기 때문에 받기가 더 힘들다. 장기 입원할수록 보험금을 더 준다는 조건을 제시해서 보험료를 추가로 냈을 뿐인데, 보험사가 "입원하지 않고 통원치료 해도 되는데 왜 입원하느냐, 보험금을 노리고 일부러 입원하느냐?"고 의심하면 당하는 수밖에.
가입시킬 때는 장점이 되던 고액 입원비, 고액 수술비는 보험금 받을 때는 '사기꾼' 취급 당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판이다. 혹시라도 핳루 입원일당을 높게, 수술비를 높게 설계해 가입한 분이라면 '조심조심 입원하고 조심조심 수술'하자. 필자가 괜히 겁을 주는 게 아니라 무수히 보아왔기에 하는 말이다.-158쪽

일부 의사들은 보험사와의 분쟁에 휘말리기를 싫어하므로 척추 질환과 같은 사건이 생기면 대충 넘어가거나 판독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MRI나 CT 등의 검사를 한 후 일부 진단만 내리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후방 십자인대 파열은 영구장애 29%를 인정받을 수 있는데, 진단서에는 인대 파열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었다. 가입자는 나중에야 이런 사실을 알고, 병원 측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한 '진료비용 청구명세서'를 기준 삼아 교통사고를 원인으로 발생한 장애임을 입증 받은 적이 있다. 자칫하면 수천만 원의 장애보험금을 받지 못했을 사건이었다.
(중략)척추 질환과 관련된 보험금을 빼앗기지 않는 방법 중 하나는 사고일로부터 4~7일이 되는 시점에 MRI를 찍는 것이다.(중략)너무 일찍, 또는 너무 늦게 찍으면 퇴행선 질환과 사고로 발생된 증세를 구별하기 힘들어 분쟁이 커질 수 있다. (중략)
MRI 필름과 판독지는 목숨처럼 지켜야 한다. 함부로 보험사에 보여주거나 제공하면 '조작(?)'이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그래서 진료기관에 "어떤 경우에도 본인의 동의 없이 진료기록 일체를 열람하거나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해야 한다.-249-250쪽

보험금 청구할 때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진단서'나 '후유장애진단서'는 한 번 발급받을 때마다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다. 만일 진단서 등을 제출해야 할 보험사가 여러 곳이라면 굳이 일일이 준비하지 말자. 한 부만 발급받아서 보험사에 원본을 제공한 후 "복사해서 '원본 대조필'을 찍어 보관하고 원본은 다시 주세요."라고 요구하면 된다. (중략) 보험사 지점에서 보험금을 청구할 때 담당자가 원본을 고집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때는 본사에 확인하라고 하자. 보험사도 이를 인정해줄 것이다.-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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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9-02-05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0만 명 이상 가입한 다음의 절약 관련 카페의 보험게시판에 누군가가 이 책의 소개를 올렸는데, 그 사이트에서 영업하는 설계사 대부분이 빈정거리면서 무시하는 덧글을 올렸다. 이 책을 읽고 그런 덧글을 단 설계사들은 절대 신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 있는 사실들 대부분은 보험설계사라면 당연히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손님에게 손해가 가지 않도록 충분히 알려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 그런 설계사는 극소수인 모양이므로, 보험 가입자 스스로가 제대로 공부하고 대응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이다.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ㅣ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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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레시아스: 지혜가 아무 쓸모없는 곳에서 지혜롭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오이디푸스 왕> 316-41쪽

코로스: 필멸의 인간은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하지 마시오. 그가 드디어 고통에서 해방되어 삶의 종말에 이르기 전에는.
<오디푸스 왕> 1529-1530 (마지막 행)-90쪽

크레온: 내 제우스에 맹세코 말하니 잘 들어두어라. 만약 너희들이 그렇게 매장 의식을 치른 장본인을 찾아내어 내 눈앞에 세우지 못한다면, 그 벌은 너희들이 죽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리라. 너희들은 그 범행을 자백할 때까지 머저 산 채로 매달릴 것이다. (중략)
파수꾼: 말씀드려도 될까요? 아니면 돌아서서 물러갈까요?
크레온: 모르겠느냐? 이제는 네 말소리도 듣기 싫다.
파수꾼: 귀가 아프신가요, 마음이 아프신가요?
크레온: 어찌하여 너는 내 아픈 곳을 따지려드는 게냐?
파수꾼: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범인이고, 저는 귀를 아프게 할 뿐이지요.
<안티고네> 305-319-107-108쪽

코로스장: 왕이시여, 그의 말이 적절하다면 그대는 그에게 배워야 하오. 도련님도 아버지에게 배우시오. 두 분 말씀이 다 옳으니까요.
크레온: 내가 이 나이에 이런 애송이한테 사리를 배워야 한단 말이오?
하이몬: 옳지 않은 것은 배우지 마세요. 제가 아직 젊다면 제 나이가 아니라 제 행위를 보세요.
크레온: 그 행위란 반역자들을 존중하는 것이냐?
하이몬: 저는 범법자들을 존중하라고 권하지는 않아요.
크레온: 그녀가 범법자가 아니라는 말이냐?
하이몬: 테바이 백성들이 하나같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어요.
크레온: 내가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지 백성들이 지시해야 하나?
하이몬: 거 보세요. 이제는 아버지께서 애송이처럼 말씀하시네요.
크레온: 이 나라를 내가 아닌 남의 뜻에 따라 다스려야 한다고?
하이몬: 한 사람만의 국가는 국가가 아니지요.
크레온: 국가를 통치하는 자가 곧 국가의 임자가 아니란 말이냐?
하이몬: 사막에서라면 멋잇게 독재하실 수 있겠지요.
크레온: (코로스장에게) 보아하니, 이 애는 여자들 편인 것 같소이다.
하이몬: 아버지께서 여자시라면. 제가 염려하는 것은 아버지시니까요.
(아래에 계속)-125-126쪽

(위에서 계속)
크레온: 이 천하에 고약한 녀석! 아버지와 시비하려 들다니.
하이몬: 제가 보기에, 아버지의 행동이 잘못되고 부당하기 때문이죠.
크레온: 내 자신의 통치권을 존중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냐?
하이몬: 존중하신다고요? 신들의 명예를 짓밟으시면서?
크레온: 못난 녀석! 한낱 계집에게 굴복하다니!
하이몬: 하지만 제가 치욕에 굴복하는 것은 보지 못하실 거예요.
크레온: 아무튼 네 말은 모두 그 계집을 위한 것이다.
하이몬: 아버지와 저와 지하의 신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요.
크레온: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너는 절대로 그녀와 결혼 못해.
하이몬: 그러면 그녀는 죽게 되고 죽으면서 누군가를 데려가겠지요.
크레온: 뻔뻔스럽게 이제는 위협까지 하는 게냐?
하이몬: 어리석은 결심에 항의하는 것도 위협인가요?
크레온: 정신나간 주제에 나를 가르치려 들다니! 후회하게 되리라.
하이몬: 제 아버지만 아니셨다면, 정신 나간 분이라고 했을 거예요.
크레온: 계집년의 노예인 주제에 감언이설로 나를 속이려 들지 마라.
하이몬: 말씀을 하시기만 할 뿐 대담은 듣지 않으시겠다는 건가요?-125-126쪽

테이레시아스: 그러니 그대는 이런 일들에 관해 심사숙고하시오, 내 아들이여!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실수를 하더라도 자기가 저지른 실수를 고칠 줄 알고 고집을 부리지 않는 자는 더 이상 행복으로부터 버림받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오. 다름 아닌 고집이 어리석음의 죄를 짓게 하는 것이오.
<안티고네> 1023-1028-136쪽

안티고네: 정당한 것을 청하는 사람이 오래 간청한다는 것은 아름답지 못해요. 그리고 선행을 받고도 보답할 줄 모르는 사람도 아름답지 못하고요.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1201-1203-205쪽

테우크로스: 당신의 발자국을 찾아다니다가 당신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듣고 지금 당신 곁으로 돌아온 이 길이 내게는 모든 길 가운데 가장 슬픈 길이었습니다.
<아이아스> 994-996 (인용자 일부 수정)-275쪽

아가멤논: 오뒷세우스, 그대는 나에 맞서 그를 두둔하는 게요?
오뒷세우스: 그래요. 나는 그를 미워했소이다. 미워하는 것이 정당할 때는.
아가멤논: 그가 죽었으니 그대가 그를 짓밟아서는 안 된다는 것인가요?
오뒷세우스: 아트레우스의 아들이여, 정당하지 못한 이익을 기뻐하지 마시오.
아가멤논: 통치자가 자비를 베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오.
오뒷세우스: 하지만 좋은 조언을 해 주는 친구를 존중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요.
아가멤논: 선량한 사람은 마땅히 윗사람의 말을 들어야 하오.
오뒷세우스: 그쯤 해 두시지요. 친구들에게 지는 것이 그대가 이기는 것이외다.
아가멤논: 그대가 어떤 사람에게 이런 호의를 베풀려는 것인지 숙고해보시오.
오뒷세우스: 그는 내 적이었소. 하지만 고매한 사람이었소이다.
아가멤논: 어쩌자는 것이오? 죽은 적을 존경하겠다는 것인가요?
오뒷세우스: 나에게는 그의 탁월함이 그의 적대감보다 더 우세하니까요.
아가멤논: 하지만 그건 변덕스런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지요.
오뒷세우스: 숱한 사람들이 오늘은 친구지만 내일은 적이지요.
(아래에 계속)-289-290쪽

(위에서 계속)
아가멤논: 그대는 그런 사람들을 친구로 삼으라고 권하는 것이요?
오뒷세우스: 나는 마음이 완고한 사람은 권하고 싶지 않아요.
아가멤논: 하지만 그대는 오늘 우리를 겁쟁이처럼 보이게 할 것이오.
오뒷세우스: 모든 헬라스인들에게 정의를 존중하는 사람들로 보이게 하겠지요.
아가멤논: 그래서 그대는 나더러 시신의 매장을 허용하라고 명령하는 것이오?
오뒷세우스: 그래요. 나도 결국 그랬을 테니까요.
아가멤논: 매사가 한 가지로군요. 누구나 자신을 위하니 말이오.
오뒷세우스: 나를 위하는 것보다 누구를 위하는 것이 더 옳지요?
아가멤논: 그렇다면 이것은 내 소행이 아니라 그대의 소행이라 불리게 하시오.
오뒷세우스: 어떻게 하시든 그대는 아무튼 잘하신 셈이 될 것이오.
아가멤논: 하지만 이 점은 잘 알아두시오. 나는 그대에게 이보다 더 큰 호의도 기꺼이 베풀고 싶소이다. 하더라도 나는 이 사람을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가장 미워할 것이오.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하시구려! (아가멤논 퇴장)
<아이아스> 1346-1373-289-290쪽

코로스: 소녀들이여, 그대들도 함께 이집을 떠나도록 해요. 그대들은 이 집에서 방금 끔찍한 죽음과 온갖 이상한 고통을 보았어요. 하지만 그 중에 제우스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어요.
<트라키스 여인들> 1275-1278 (마지막 행)-348쪽

엘렉트라: 말은 잘하는데 틀린 말을 한다는 건 무서운 일이지.
크뤼소테미스: 내가 할 말을 언니가 하는군요.
엘렉트라: 뭐라고? 너는 내 말이 옳다는 생각은 하지 않니?
크뤼소테미스: 하지만 정의도 해로울 때가 있지요.
<엘렉트라> 1039-1042-394쪽

고대 그리스인들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이 동시에 일어난 것으로 기술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3대 비극작가들의 생에에 관해서도 살라미스 해전과 관련지어, 아이스퀼로스는 전사로서 몸소 이 전투에 참가했고, 소포클레스는 소년합창단의 선창자로서 이 전투의 승리를 감사드리는 찬신가를 주도했으며, 에우리피데스는 전투가 있던 바로 그날 태어났다는 일화를 남기고 있다. 이 일화는 에우리피데스에 관한 부분은 다소 신빙성이 떨어지지만 세 비극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도저히 사실로 믿기지 않은 기적 같은 승리에서 페르시아인들의 '오만'(hybris)을 응징하는 신들의 위대한 힘과 교육적 의지를 몸소 겪었던 아이스퀼로스는 평생 동안 자신의 드라마에서 신들의 위대함을 찬미하고 신들의 섭리에 관하여 사색했다. 반면, 다른 세대로부터 이 승리를 전해 들었을 뿐인 에우리피데스는 소피스트(sophistes)의 상대주의에도 영향을 받아 모든 정신적 유산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를 견지했다. 그런데 소포클레스는 아테나이의 욱일승천과 서산낙일을 모두 경험했다.
(아래에 계속)-515-516쪽

(위에서 계속)
아이스퀼로스 못지 않게 신들의 위대함을 인식하고 신을 공경하는 경건한 생활을 하지만 그에게 신은 항상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다. 아이스퀼로스가 시종일관 신들의 섭리를 증명하려 했다면, 소포클레스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보여주려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신에 대하여 불가지론적인 입장을 취하는 소포클레스의 종교관은 따라서 델포이 신전의 문 위에 새겨져 있다는 '너 자신을 알라'는 금언에 가깝다 하겠다. 신에 대한 이러한 상이한 태도는 아이스퀼로스의 비극에서는 신이 주역이지만, 소포클레스 비극에서는 인간이 주역이 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515-516쪽

그때 막사에서 나온 아이아스는 마음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처자를 버리지 않겠다, 바닷가에 나가 목욕재계하고 신들과 화해하겠다, 가축떼를 도륙하는데 썼던 재앙의 칼은 인적이 끊긴 곳에 숨기겠다, 세상만사가 변하듯 나도 마음을 바꿔 아트레우스의 아들들과 화해하겠다고. (중략) 주위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자살하겠다는 자신의 결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런 거짓말이 불가피하다. 그리고 한 꺼풀만 벗기면 그의 '거짓말'은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 신들과 화해하되 죽음을 통한 칼을 숨기되 자신의 몸 안에 숨기는 것으로 그는 자살을 암시한다. (중략) 어쨌거나 코로스는 이 '거짓말'을 믿고 아이아스가 떠난 뒤 환호한다. 이것을 '비극의 확대' (parekstasis tragica)라고 하는데, 코로스로 하여금 파국 직전에 안도의 노래를 부르게 하는 이런 기법을 소포클레스는 즐겨 사용한다. -525-5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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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9-02-01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아스>(BC442), <안티고네>, <트라키스 여인들>, <오이디푸스 왕>, <엘렉트라>, <필록테레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BC409)>. 소포클레스의 비극 중 현전하는 것은 연대순으로 이 일곱 편이다.
인물들이 고상하고 지혜로워서, 바람처럼 몰아치는 언쟁들이 하나같이 흥미진진했다.
 
촌놈들의 제국주의 - 한.중.일을 위한 평화경제학 ㅣ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3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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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제국을 갈망하는 쇼비니즘의 에너지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처음 정형화되었을 터인데, 이 흐름을 타고 2004년 이라크에 한국군이 파병되었다. (중략) 이라크 파병으로 최초의 제국주의형 군사 진출을 결정한 한국 사회는 2004년부터 문화 진출에 해당하는 '한류 열풍'에 휩싸이게 된다. 문화라는 요소 자체가 원래 복합적인 측면이 있어서 단순하게 볼 수는 없지만, 많은 한국 국민들에게 한류는 '수출'과 '민족주의형 쇼비니즘'이라는 두 가지 요소의 결합으로 인해 '무조건 좋은 것'으로 인식되었다. (중략) 제국주의를 향한 이런 사회문화적 전환이 노무현 정권기 중 절정에 달한 때는 2005년이었다. 그 클라이맥스를 장식한 건 다름 아닌 '황우석 사건'이다.-89-91쪽

중남미형 경제에서는 카우디요(caudillo. 카리스마를 지닌 사나이란 뜻으로 중남미 토호의 별칭)가 부동산을 매개로 한 일종의 '부등가 교환'(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이를 가경 상승에 의한 '재산 효과'라고 부른다.)를 통해 거대 권력으로 작동한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들과 국회의원들은 토호들과 쉽게 결탁하게 되고, 특정 지역의 개발계획으로 대토지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국부가 거의 무상으로 이전되게 만든다. 이 게임에서 국내 거주민의 대부분이 패배하고, 승리자는 이중국적자와 카우디요들, 그리고 미국의 제품을 수입하거나 혹은 미국으로 수출하는 일부 제조업 소유자들이었다. (아래에 계속)-144-145쪽

(위에서 계속) 이렇게 상류층은 매우 쉬운 방식으로 거대한 부를 얻게 된다. 이들은 자기 2세들을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고, 고급 지식을 획득한 자기 2세들을(이들은 '시카고 보이'라고 불린다)은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모국의 경제를 미국 경제에 더욱 깊이 편입시키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상류층은 더욱 부자가 되지만 대다수 중산층은 도시빈민 혹은 농촌빈민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 와중에 공무원들은 더욱 부패하게 되고 공기업을 차라리 미국에 파는 것이 오히려 '개혁'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마저 벌어지게 된다.
이는 칠레,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에서 실제로 1980~90년대에 걸쳐 폭넓게 진행되었던 역사적 사실이다. 1950년대에 세계 5대 강국의 하나였던 아르헨티나 경제가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서 붕괴했는데, 한국 경제의 현재 전개 과정은 30년 전 중남미에서 일반적으로 벌어졌던 이런 '미국화'와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중남미에서는 국립대학이 무상교육의 틀을 버리지 않고 버텼지만, 한국은 대학이 먼저 붕괴했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144-145쪽

지난 50년간 한국에서 석유 소비가 줄어들었던 해는 딱 한 해, 바로 1998년 IMF경제위기 때이다. 그리고 3년 후, 경제가 다시 회복되면서 2001년에 최초의 경차였던 티코가 단종되었고, 2002년에 아토스가 단종되었다. 일본은 국민소득 2만달러를 지나면서 800cc경차가 국민차가 되었고, 4만 달러를 바라보는 유럽 국가들은 최근 600cc도시용 승용차 개발에 국민경제의 승부를 걸려고 하는 중이다. 반면 한국은 2만 달러를 막 넘은 시점에서 십대들의 승용차 구매 90%가 2000cc급 이상이다. 미국을 제외하면 승용차 크기가 두 번째로 큰 나라 한국, 승용차 평균 크기가 2000cc인 위대하고 훌륭하신 나라! 이대로 1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한마디로, 망한다!-203쪽

전쟁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난 그렇게 믿지 않는다. 전쟁을 하면 이득을 얻는 사람이 있고, 민족의 강해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져서 지갑을 열고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 경제적 이득이 되는 구조를 만들기가 쉽지 않고, 평화를 지키는 일에 기꺼이 지갑을 열면서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기가 어렵다는 점이다.-259-260쪽

프랑스와 독일이 국민소득 2만 달러이던 시절에 대학의 연간 등록금은 10만 원이 안 되었고, 미국의 최상급 대학보다는 못할지 몰라도 지금의 한국 대학들보다는 훨씬 우수한 시설과 훌륭한 자원들을 가지고 대학이 운용되었다. 정말로 대학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한국 수준에서는 연간 50만 원 정도 받으면 충분하다. 그리고 정부가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서 고민하는 것이 좋은 나라이지, 정부가 이 모든 것을 방치하고 가정에서 대신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좋은 나라인가?-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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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9-01-15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2 월드컵 열광과 2004년의 이라크 파병을 나 역시도 끔찍하고 지긋지긋해했었지만, 단순히 미학적 감성의 문제라고만 여겼지, 거기서 '제국주의의 욕망'을 읽어내지는 못했다. 수출주도형의 한국 경제가 필연적으로 식민지를 욕망하게 되는 체제라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깨달았다. 이대로 가면 30년 후의 한국에 예정되어 있는 것은 이웃 국가들(특히나 증오해 마지않는 일본과 중국)과의 전쟁이라는 경고는 너무 현실감이 넘쳐서 무섭기까지 하다. 역시 자식 따위 낳으면 안 돼. 남은 인생 제대로 즐기자고.
 
직선들의 대한민국 - 한국 사회, 속도.성장.개발의 딜레마에 빠지다
우석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품절


국제적 상식에서 정상적으로 보면 김대중은 중도우파, 노무현은 민족주의와 극우파, 그리고 기탸 분류되지 않는 수많은 것들의 '아말감'과 같은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개인적인 판단이다. -17쪽

돈을 사랑하려면 돈을 벌 수 있는 합리적인 수단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마치 동학교도들이 부적을 몸에 지니고 다니듯이, '돈 버는 법'이나 <마시멜로 이야기>류의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이 과연 부자가 되는 데에 단 1퍼센트라도 도움을 줄까? 이런 종류의 책은 사는 순간 책값만큼 손해이고, 책을 읽는 시간에 또 그만큼 손해라는 경제적 비용편의 분석이 명확하게 나온다. 이걸 경제학 용어로 표현하면, 목적과 수단이 조응하지 않는 비합리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90-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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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9-01-15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고 경제학 박사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덧붙여 돈 버는 데 관심 있다면 차라리 마케팅 이론서를 한 번 보라는 얘기가 <촌놈들의 제국주의> 어딘가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