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의 협력일기 - 어느 친일 지식인의 독백
박지향 지음 / 이숲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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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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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이제 서양에서 저항과 협력을 윤리적으로 판단하는 일은 중심과제가 되지 못한다. 강제력에 대한 협조는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인정받게 된 것이다. 협력은 복잡한 이슈이며 다양한 형태를 취했다는 사실도 당연시된다. 우리 사회에서 발견되는 "저항하지 않으면 다 협력자"라는 식의 이분법적 판단은 서양 학계에서 이미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태평양전쟁 중 일본에 중국 지역을 연구한 브룩(Timothy Brook)은 언뜻 보기에 협력은 민족주의의 반대 같지만, 20세기에 나타난 협력은 전적으로 민족주의적 용어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협력주의자나 민족주의자는 그 신념에서 다를 바 없으며 그들은 모두 민족의 언어로, 민족을 대신해서, 민족의 이익을 위해 발언했다는 것이다.

80
한편, 저항과 협력은 권력의 분배와 연관되어 있었다. 호프만(Stanley Hoffmann)은 프랑스의 군사적 패배가 권력 구조 밖에 있던 많은 사람에게 기득권층과의 사적인 관계를 청산할 기회를 제공했다고 지적한다. 아프리카 토착사회에서도 억압받은 집단들의 권위주의자적 지배자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제국주의 세력에 협력하였다. 일본에 점령된 중국에 대한 연구도 협력자들은 국민당 정부하에서 닫혀 있던 정치적 기회의 개방을 바랐고 그 기회를 이용했으며 중국인 협력자 가운데서는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도 많이 포함되었다고 지적한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대중은 굳이 협력에 동좋지 않았다고 해서 저항을 지지한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놀랄 정도의 수동적 태도를 보였는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하루하루 삶의 어려움, 그리고 당국의 정책이 그러한 태도를 더욱 조장하였다. 최근 연구는 평범한 사람들은 일상생활에 대한 관심에 지배되기에 저항에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적대적이 될 수 있으며, 지배체제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도 대결을 피하며, 레지스탕스에 적대감을 보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어찌 되었든 일상생활을 영위한 대중의 협력 행위와 그들의 상충하는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98-99
더욱 중요한 사실은 윤치호에게 자유란 우선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의미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그는 영국을 세계 최고 수준의 문명국으로 인정하였는데, 그는 영국인들이 이 세상의 "실질적 지배자"가 된 이유를 "개인의 독립을 공동체적 의존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한 데서 찾았다. 윤치호는 민족을 위하여 개인의 복리를 희생하라고 강요하는 폭력을 거부하였다. 당시 위세를 떨치던 민족주의의 조류 속에서도 ‘민족’이라는 집단적 관념에서 역사를 바라보지 않고 개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점은 놀랄 만하다.

101-102
19세기 말 조선왕조가 극도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윤치호는 조선이 청나라의 지배에 떨어지는 것보다는 영국이나 러시아의 지배를 받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되면 나라가 망한다 해도 조선 사람들은 많은 부분 "고통이 제거"된 상황을 맞을 것이고 "여러 이득"을 향유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국가가 사라지도 지배층이 변하여도 국민 개개인이 예전보다 더 많은 안정과 행복을 얻게 되면 그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즉, 국가의 목적은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유지해 주는 것이고 만약 정부가 포악하여 국민을 압제하고 수탈한다면, 그런 정부하의 독립이란 무의미한 것이 되며, 동족에 의한 가혹한 통치보다는 오히려 이민족에 의한 관대한 지배가 낫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106
"물지 못하면 짓지도 마라"가 이를테면 윤치호의 좌우명이었고, "물지도 못하면서 방바닥을 두드리며 울부짖는" 조선 사람들을 가엾게 여겼다. 3.1운동 당시 윤치호는 만세만 가지고는 절대로 일본을 굴복시킬 수 없으며 일본인들은 무장하지 않은 저항에는 꼼짝도 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하였다. 외치는 것은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아무리 정당해도 일본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만들 힘이 없는 한, 그러한 선동은 조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뿐이라는 것이었다. "이 세상은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쫓아내는 곳이다. 울고 짜고 해봐야 소용없다." "조선 민족은 이 철과 혈의 세상이 어린아이 같은 울음으로 제거되기라고 믿는 어리석음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따라서 윤치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고나 그리스같은 작은 나라들이 히틀러의 잔인한 세력에 저항했을 때 감탄하기보다는 이상하게 여긴다.

120
윤치호는 무엇보다도 3.1운동에 동조하지 않았기에 친일파라는 악명을 얻었는데, 그가 반대한 이유는 국민이 독립이 무엇인지를 모르면서 단지 선동에 따라 독립을 외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즉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듯이 독립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선동가들에게 설득당하거나 협박당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일본의 과도한 반응을 비난하고, 애국심이 발동한 젊은이들이 위험을 향해 뛰어드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지만, 동시에 그들을 그런 死地로 몰아넣는 "무책임한 선동가"들에게 분노를 느꼈다.

111-113
조선 정부의 행태에 대한 윤치호의 비판은 러일전쟁 시기에 최고조에 달하였다. 2주간의 격전 끝에 일본군이 러시아를 묵덴에서 몰아내고, 일본 정부는 조선을 노예로 만들려는 정책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데,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조선의 황제는 "관직을 팔아넘기고, 장난감 궁궐을 짓고, 굿을 해서 산천의 신들에게 러시아가 이길 것을 빌고 있다"는 것이었다. 윤치호가 판단하기에 다른 사람들도 황제를 혐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중략) 또한 왕비 민씨에 대해서 윤치호는 한 마디로 "그 영리하고 이기적인 여인이 미신 섬기는 것의 반만큼이라도 백성을 열심히 섬겼더라면 그녀의 왕실은 오늘 안전했을 것"이라고 평했다. 권좌에 있는 내내 왕비의 신념은 "우리 세 사람만 안전하다면 무슨 일이든 일어나도 상관없다"였다. 그 세 사람은 왕, 왕비, 왕자인데, 그러한 극단적인 이기심이 파멸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129
윤치호는 경제적 도움을 줄 때에도 실용성 여부를 가장 먼저 고려하였다. 많은 사람이 윤치호에게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였는데, 예를 들어 하루 한나절 사이에 아홉 명이 찾아와 돈을 요구한 적도 있었다. 그는 실용적인 공부를 하겠다는 학생들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었고 실용적 결과과 예상되는 제안을 하는 사람에게 돈을 대주었다. 그러나 그는 철학을 공부한다는 조선 학생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영국에 유하한 5촌 윤보선이 "단지 문학공부를 위해!" 학비로 800파운드를 보내 달라고 했다는 사실에 고소를 금치 못한다. 윤치호는 또한 동경에 있는 조선 유학생들의 99%가 사회학, 철학, 정치학 등에 "코를 묻고" 있는데 그들의 "게으른 혀를 굴리는 데 사회주의는 이상적인 분야"라고 조롱조로 적고 있다.

143
윤치호가 공산주의를 싫어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연구자들은 그가 공산주의를 싫어한 이유를 그의 보수적 성향에서 찾지만, 사실상 그 혐오감의 핵심은 공산주의가 사람들로 하여금 결국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남의 노고에 얹혀살기를 조장한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그 점에서 유교 사회의 윤리와 공산주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보았다. "조금 먹고 살 만한 사람들에게 달라붙어 있는" 친척, 친구들을 볼 때 조선은 옛날 옛적부터 공산주의를 해왔다는 것이 윤치호의 주장이다. 조선 사람들이 볼셰비즘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이는 이유도 유교와 공산주의의 기생주의가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데 공산주의는 유교보다 더 나쁘다. 유교는 구걸하는 것을 용서할 만한 ‘약점’으로 만들지만, 조선 버전의 볼셰비즘은 강도짓을 ‘무산자의 영광’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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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나의 것
사키 류조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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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에노키즈 이와오의 젊은 시절 별명은 센이치(千一)였다.

천 마디 말을 하면 그 중에 하나만 사실이고 나머지는 다 거짓말이라는 의미.

사람을 죽이고 도피하면서도 그는 숨을 쉬듯이 거짓말을 계속하며 사기로 도피 자금을 마련해 간다. 

체포된 후 취조 과정에서 그는 도피 중에도 여자는 계속 있었다는 것을 자랑하는데, 

여자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잘난 척하는 것이 이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라는 느낌이다.

그 감각으로는 중학교 중퇴에 전과가 있는 가난뱅이라는 자신의 본모습에 만족할 수 없으니까,

부잣집 아들이라느니, 교수라느니, 변호사라느니 하는 거짓말을 계속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되겠지.



이렇게까지 극단으로 나가는 사람은 잘 없지만, 

비슷하게 자신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사실 적지 않다.

이번 생은 망했지만, 나는 사실은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니야.... 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

주인공이 대대로 내려온 가톨릭 집안의 자식이고, 어렸을 때 신부가 될 생각을 했다는 것도 씁쓸한데,

종교라는 것의 본질도 결국은 허세와 거짓말이 아닌가 해서이다.

사형을 앞둔 주인공을 찾아가는 신부가 시신을 인수하러 온 친척에게

사실은 자기가 주인공의 중학교 1년 후배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래서 좀 소름이 돋았다.

종교도 국가도 본질은 거짓말이라면,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나왔듯이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이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라면)

그런 점에서 이 글은 인간의 가장 깊숙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제목에 대해서는 

작가가 주인공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으니, 그대로 받아들여주면 된다.

주인공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작가의 역할, 

거기에 대해 판단하고 갚아주는 것은 신의 역할.

그러니까 '나'는 신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이 범죄가 세상에 대한 주인공의 복수라고 보는 것은 재미는 있지만 너무 나간 해석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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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
마이클 부스 지음, 김경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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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경제적 평등이 사회적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이론이 사실이라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경제적으로 가장 평등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전 세계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세계 지니계수 순위는 해마다 달라지며, 1위는 보통 스웨덴(현재 1위이며, 몇 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니면 명예 북유럽 국가인 일본이 차지한다. 덴마크는 다양한 연구자와 연구 기관, 또 오프라 윈프리가 꼽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이지만, 지니계수 순위에서는 북유럽 국가들 중 제일 낮은 5, 6위쯤을 차지한다.

123-124
다음이 얀테의 법칙(Law of Jante)이며, 북유럽 여행을 준비 중이라면 반드시 숙지해야 할 사회 규범이다.
1.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2. 당신이 남들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3. 당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4. 당신이 남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지 마라.
5. 당신이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6. 당신이 남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7. 당신이 모든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8. 남들을 비웃지 마라.
9. 누구도 당신에게 관심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10. 당신이 남들에게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133
얀테의 법칙과 함께 덴마크의 순응주의를 만드는 주된 요인이 두 가지 더 있다. 휘게hygge와 폴켈리folkelig다. 둘 다 번역하기 까다로운 단어들이다. 휘게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느긋하고 편안한 덴마크 고유의 아늑함과 유쾌함을 뜻하며, 전제 군주에 버금가는 끊임없는 압력을 행사하며 순응을 요구하는 엄격한 사회적 의식들과 함께 실제로 고도로 성문화되어 있다. 폴켈리는 일종의 광범위한 문화 대중주의로, 덴마크 주류 문화 전반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폴켈리는 미다스의 손과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손에 닿는 것을 모두 쓸모없게 만들어버린다.

187
"이 사람들은 너무 오랫동안 고립되어 지냈고 이제야 세계로 진출하기 시작해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척 궁금해합니다. 이와 관련된 농담도 있어요." 샤츠가 쿡쿡 웃었다. "핀란드인은 이걸 코끼리 농담이라고 부릅니다. 독일인, 프랑스인, 핀란드인 남자 셋이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코끼리 한 마리를 봤습니다. 독일인이 말합니다. ‘내가 저 코끼리를 죽여서 상아를 팔면 얼마를 벌 수 있을까?’ 프랑스인이 말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동물, 놀라운 생명체야.’ 그리고 핀란드인이 말합니다. ‘오 세상에, 저 코끼리는 핀란드를 어떻게 생각할까?’"

199-200
핀란드인 친구가 관련된 일화를 하나 들었는데, 인간의 상호작용이라는 일반적 관습을 향한 핀란드인의 태도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친구가 친구의 처남과 함께 눈보라 속에 시골길을 운전해 가는데 두 사람이 탄 차가 고장이 났다. 30분을 기다렸더니 마침내 다른 차가 지나갔다. 차가 멈추고 운전자가 밖으로 나와 두 사람을 도왔다. 남자는 보닛 안을 들여다보며 열심히 차를 고쳤다. 내내 말 한 마디 없이. 알겠다는 듯 한두 번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 친구가 맹세컨대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고는 남자는 차를 몰고 사라졌다. 친구가 말했다. "오, 우리 운이 좋았네. 저 사람 대체 누구지?" 그말에 친구의 처남이 대답했다. "아, 유하라고, 학교 동창이에요."

201
핀란드인은 대화 쪽으로는 제일 답답한 파트너이며, 핀란드인 못지않게 과묵한 스웨덴인이 그 다음이다. 이어서 노르웨이인, 아이슬란드인 순이다. 덴마크인은 그 부분에서는 거의 인간적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 무역상으로 일한 전통이 있고, 유럽 본토에서 가깝기 때문에 잡담을 더 편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휘게는 직장에서 필수다. 그 결과 다른 스칸디나비아 사람은 덴마크인을 약간 의아하게 바라본다.

216-218
시수sisu는 끈기와 강인함, 남성다움의 정신을 뜻하며, 조용하고 결연하며 신뢰할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극복하기 힘든 역경 앞에서 흔들림 없는 결의를 보이는 능력, 일종의 준비된 극기심이라고 할 수 있다. 버스가 고장 날 때 시수의 정신은 승객들에게 버스에서 내려 불평 없이 버스를 밀게 한다. 시수는 핀란드 남성들이 열망하는 모든 것이며 핀란드의 흙 아래 숨은 화강암 기반이다. (중략) 무뚝뚝하고 강인하고 ‘한결같이 결연한’ 술꾼이라는 핀란드인의 자아상은 전부 남성 중심적이다. 심하게 남성 우월적인 이탈리아인조차 자아상에 여성적 요소를 허용하지만, 핀란드인은 그렇지 않다. 이런 현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들이 대통령과 총리, 그리고 직업인으로 핀란드 사회에서 보여준 두드러지는 역할과 유럽 최초로 여성 참정권이 생긴 나라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상하다. (중략) 하지만 현대 핀란드 남자들은 음주의 건강상 위험과 반사회적 결과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감무쌍하게도 계속 술을 마신다. 마치 나자다움을 보여주는 일종이 의식이거나 남자로 사는 슬픔을 술로 달래기라도 하듯이.

422
스웨덴인이 서로 ‘유능하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을 때는 ‘라곰lagom‘한 인상을 주려고 애쓸 것이다. ’라곰‘은 스웨덴의 또 다른 중요한 좌우명이다. ’적당한‘, ’합당한‘, ’타당한‘, ’상식적으로 해동하는‘, ’합리적인‘이라는 의미다. 확실히 루터교 교리를 떠올리게 하며, ’라곰‘의 어원은 훨씬 더 오래전인 바이킹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해지는 말로는 모닥불 주변에서 뾰족한 잔에 벌꿀술을 나눠 마실 때 이 조심성 많고 배려심 깊은 바이킹들은 너무 많이 마시지 않으려고 주의하면서 잔을 옆 사람에게 건넸다고 한다. (그런 뒤 나가서 수도승의 목을 잡아 찢었다.) 라게트 옴laget om은 대강 번역하자면 ’돌리다pass around‘의 뜻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라곰’으로 변했다고 한다. 오늘날에 와서는 집단의 자발적인 절제를 의미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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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역사를 경계하여 미래를 대비하라, 오늘에 되새기는 임진왜란 통한의 기록 한국고전 기록문학 시리즈 1
류성룡 지음, 오세진 외 역해 / 홍익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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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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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87
저녁이 되자 임금께서는 개성부에 묵었다. 임금께서 남문 밖 관청에 행사하셨는데, 대간들이 교대로 글을 올려 영의정 이산해가 사람들과 결탁하여 나라를 그르쳤다며 탄핵을 주장했다. 그러나 임금은 이를 윤허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다음 날에도 대간들이 계속 파직을 요청해 결국 영의정이 파면되었다. 내가 영의정으로 승진하고 최흥원은 좌의정에 윤두수는 우의정에 임명되었다.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신할을 해임하고 개성부로 오게 하였다. 이날 정오에 임금께서 친히 개성의 남성 문루에 가서 백성들을 위로하고 각자 생각하는 것을 말하게 하였다. 그러자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서 엎드리나 임금께서 물으셨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가?" 그 사람이 대답했다. "바라옵건대 정 정승을 불러들이시옵소서." 이때 정철은 평안북도 강계에 귀양 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임금께서 "잘 알았다."라고 대답하시고는 즉시 정철을 불러 행재소에 오도록 명하시고 저녁에 행궁으로 돌아오셨다. 나는 죄로 인하여 파직되었다. 유홍을 우의정으로 삼고 최홍원과 윤두수가 차례로 승진해 영의정과 좌의정이 되었다. 왜군이 아직 한양에 이르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리자 사람들은 모두 임금이 한양을 버리고 떠난 것은 실수였다고 비난하였다. 이에 승지 신잡을 한양으로 보내 형세를 살피고 오도록 하였다. 5월 3일에 왜군이 한양에 들어오니 유도대장 이양원과 도원수 김명원은 모두 도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201
하루는 명나라의 여러 장수들이 식량이 떨어졌다는 핑계를 대며 제독에게 군사를 데리고 돌아가자고 청하였다. 이에 제독이 화를 내며 나와 호조판서 이성중, 경기 좌도 관찰사 이정형을 불러서 뜰 아래 무릎을 꿇게 하고는 큰소리로 꾸짖으며 군법을 시행하려고 하였다. 나는 계속해서 사죄하다가 나랏일이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제독이 나를 불쌍하게 여겼는지 다시 명나라 장수들에게 화를 내며 말하였다.
"너희들이 예전에 나를 따라 西夏를 정벌할 때, 군사들이 여러 날 동안 먹지 못하여도 감히 돌아가자는 말을 하지 못하였고 결국에는 대업을 이루었다. 그런데 지금 조선에서 우연히 며칠 동안 식량을 공급받지 못하였다고 감히 회군하자는 말을 하는가? 너희들은 가고 싶으면 떠나라. 나는 적을 섬멸하지 않고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나 응당 말가죽으로 내 시신을 싸소 돌아갈 뿐이다."
제독의 말에 여러 장수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였다. 문 밖으로 나와서 나는 제때 식량을 공급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개성 경력 심예겸의 곤장을 쳤다. 그 뒤 강화에서 식량을 실은 배 수십 척이 있다라 서강 뒤편에 도착하여 겨우 무사할 수 있었다. 이날 저녁에 제독은 총병 장세작을 보내 나를 위로하고 또 군사에 관해 논의하였다.

293
우리나라 사신이 북경에서 돌아오면서 금석산의 하씨 성을 가진 사람의 집에 묵은 적이 있는데, 그 집의 주인이 이런 말을 하였다.
"조선의 역관들이 ‘당신에게 3년 묵은 술, 5년 묵은 술이 있으면 아끼지 말고 즐겁게 드시오. 오래지 않아 병란이 일어나면 당신에게 술이 있다 한들 누가 그 술을 마시겠소?’라고 하였다네. 이 말 때문에 요동 사람들은 조선이 중국에 대해 다른 뜻을 품고 있다고 의심하고 많은 사람이 놀라고 당혹스러워한다네."
사신이 돌아와서 그 일을 아뢰자 조정에서는 역관 중 반드시 말을 만들어내고 사건을 일으켜 나라를 모함하려는 자가 있다고 판단했다. 여러 역관들을 잡아다가 인정전 뜰에서 국문하여 압슬과 단근질까지 하였으나 모두 인정하지 않고 죽어버렸다. 이는 신묘년에 일어난 일로, 이듬해인 임진년에 과연 왜변이 일어났다.

322-334
심유경은 평양에서 적진을 오가며 적지 않게 애를 썼다. 그러나 그는 강화를 명분으로 삼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최후에 왜군은 오랫동안 부산에 머무르며 바다를 건너가지 않았다. 그때 명나라 책봉 사절 이종성이 적진에서 도망쳐서 돌아갔다. 그러자 명나라 조정에서는 심유경을 부사로 삼아 정사 양방형과 함께 왜국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나 끝내 성과를 얻지 못하고 돌아왔다. 고니시 유카나가와 가토 기요마사 등도 돌아와 해안 지방에 주둔하였다. 이에 명나라와 우리나라에서는 논의가 자자하게 일어나고 그 책임이 모두 심유경에게 돌아갔다. 심지어는 심유경이 왜군과 공모해서 배반할 것 같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승려 송운(사명대사-역주)이 서생포의 적진에 들어가 가토 기요마사를 만나고 돌아오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왜군은 명나라를 침범하려 하고 있으며 도리에 맞지 않는 흉악한 말을 하였다." 이에 즉시 그 내용을 명나라 조정에 자세히 아뢰었다. 이 소식을 들은 명나라 사람들은 더욱 분노하였다. 심유경은 자신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곧 김명원에게 편지를 써서 자초지종을 설명함으로써 자신을 변호하고자 하였다. 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세월이 빨리 흘러 지나간 일들이 마치 어제 일과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 왜군이 귀국의 국경을 침범하여 바로 평양까지 쳐들어왔으니 그들의 안중에는 원래 조선 팔도는 없었던 것입니다. (중략) 저는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격문을 보내 그를 불러내어 건복산에서 만나 서쪽으로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약속대로 몇 달 동안 감히 서쪽을 넘어 침범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명나라 대군이 도착하여 평양성 전투에서 승리를 이뤄냈습니다. 만약 그때 제가 오지 않았더라면 왜군은 그 전에 조승훈의 부대를 무찔렀던 기세를 몰아 의주까지 쳐들어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중략) 마침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일본의 국왕으로 책봉한다는 조건을 걸고 여러 왜장들을 구슬려 부산이라는 궁벽한 바닷가에 그들을 손을 묶어두고 3년간 책봉의 명을 기다리며 감히 경거망동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이어서 책봉에 대한 논의가 결정되자 저는 명을 받들고 한양에서 양국 간의 화의를 돕고, 귀하와 이덕형 등을 다시 만나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지금 왜국에 가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책봉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이 물러날지 모르겠습니다. 귀하의 나라에서는 뒷수습을 잘 할 계획이 있습니까?" (중략) 뒷수습을 잘 하는 일은 귀국의 책임이라고 하시고서, 어찌 원대한 계획은 들려오지 않고 황제의 궁궐 아래에서 우는 계획만 있을 분입니까? 병서에서 말하길, 약자는 강자에 맞설 수 없고, 적은 수로 맣은 수를 당해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중략) 저는 귀국의 謀臣과 책사들이 다방면으로 이간질하고 소문을 내어, 안으로는 위태로운 말로 우리 조정의 분노를 사고, 밖으로는 약한 군졸을 도발하게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중략) ‘명나라를 우러러보고 명나라에 의지하는 것을 萬全之計로 여기고, 마땅히 명나라의 명을 따르고 처분을 기다림으로써 무한한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였으니, 부디 잘못된 계책을 써서 날마다 고생만 하고 졸렬한 결과를 맞이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지극히 부탁드리며, 할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이미 줄입니다.

(중략) 평양성 전투 이후에 다시 적진에 들어가는 일을 사람들은 모두 어렵게 여겼다. 심유경이 마침내 무기나 군사가 아닌 언변으로써 많은 왜군들을 몰아내고 수천 리의 땅을 되찾았다. 그런데 마지막 하나의 일이 잘못되어 큰 화를 면하지 못하였으니 애석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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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8-12-10 0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사 교육이 임진왜란의 실상을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지를 잘 가르쳐 준 책. 국가를 방위할 능력이 없었던 조선을 둘러싸고 명과 일본의 외교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알지 못하면 이 전쟁에 대한 인식은 장님 코끼리 만지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의병 전설은 그야말로 지엽적인 문제.
 
전쟁의 문헌학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번역서인 <고문서 반납 여행>과 대중을 대상으로 한 역사서인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에 이어 읽는 세 번째 김시덕 책. 이번에는 학술서라 이전 책보다 딱딱했다. 어려운 부분은 대충대충 넘기면서 읽음.
이 사람, 자기 생각을 얘기할 때는 그저 그런 심심한 느낌인데, 남의 글을 인용할 때는 아주 매력이 넘친다. 옛 책을 읽는 게 직업인 사람인 만큼 재미있는 얘기를 정말 많이 알고 있고, 그걸 아주 성실하고도 재미있게 풀어놓을 줄 안다. 앞으로도 이 사람 책이 보이면 열심히 빌려 읽을 계획.
인상적이었던 인용문을 두 개 베껴 놓는다. "성호사설"에 나오는 오성과 한음 이야기는 소름이 돋음. 어렸을 때, 만화책으로 본 그 장난꾸러기 소년 오성과 한음 맞지? 친구가 목이 달아날 뻔한 걸 이렇게 살려 줬구나.;;;


222
李瀷의 "星湖僿說" 9 ‘人事門 善戱謔’에 수록된 유명한 대목이다.
林白湖 悌는 기개가 호방하여 예법의 구속을 받지 않았다. 그가 병이 들어 장차 죽게 되자 여러 아들들이 슬피 부르짖으니 그가 말하기를 四海 안의 모든 나라가 帝를 일컫지 않는 자 없는데, "유독 우리나라만이 예부터 그렇지 못했으니 이와 같은 陋邦에 사는 신세로서 그 죽음을 애석히 여길 것이 있겠느냐?" 하며, 명하여 哭하지 말하고 하였다. 그는 또 항상 희롱조로 하는 말이 "내가 만약 五代나 六朝 같은 시대를 만났다면 돌려가면서 하는 天子 쯤은 의당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였다. 그래서 한 세상의 웃음거리로 전했었다. 임진의 변란에 이르러, 漢陰 李 政丞이 명나라 장수 이여송을 伴接하자, 그는 한음의 인물을 대단히 추앙하여 심지어는 감히 말하지 못할 말까지 하는 것이어서, 일은 비록 진정이 아닐지라도 역시 스스로 편안하지 못했다. 李白沙는 詼諧를 잘하는데 어느 날 夜對가 있어 시골 구석의 누한 습속까지도 기탄없이 다 아뢰는 것을 즐겁게 여겼으며 마침내 林의 일까지 미치자 주상은 듣고서 웃음을 터뜨렸다. 백사는 또 아뢰기를 "근세에 또 웃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니 주상이 "누구인가?" 하고 묻자, 대하기를 "李德馨이 왕의 물망에 올랐답니다."하여, 상은 크게 웃었다. 백사는 이어 아뢰기를 "성상의 큰 덕량이 아니시라면 제놈이 어찌 감히 천지의 사이에 용납되오리까?"하자, 상은 "내 어찌 가슴속에 두겠느냐?"하고 드디어 빨리 불러오게 하여 술을 내려 주며 실컷 즐기고 파했다. "시경"에 이르기를 "戱謔을 잘하도다" 하였는데, 백사가 그 재주를 지녔다 하겠다.

126-127
아래에 古賀精里(1750-1817)의 글을 인용한다.
조선은 작은 땅으로, 진, 한, 당에게 공격받고 합병된 바이다. 중국에 일이 많을 때 스스로 왕을 세워 다시는 그 판도에 들어가지 않았다. 만약 금, 원 등의 제국의 수도가 팔도에 가까웠다면 병탄되고 멸망되어 속국이 되었을 터이다. 어찌 유약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흥망의 때에 태도를 잘 바꾸어, 앞에서는 복종하다가 뒤에 가서는 반역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국이 이를 취하여 하였으나 명분이 없었으므로, 그 사악함으로 인하여 도요토미 씨의 징벌을 받았으나 실처럼 멸망하지 않고 이어졌다. 그가 명나라와 화의를 논한 일은 피차에 의견이 엇갈렸으니 오랫동안 비웃음거리가 되었으나, 한국으로서는 하늘의 도움이었다. (중략) 도요토미 씨가 한국을 통해 명나라를 취하여 한 것은 매우 나쁜 전략이었다. 만약 우리가 군대를 온축하면서, 명나라가 반란군에 의한 내홍과 만주 오랑캐에 의한 외침을 겪는 때에 조금 늦게 군대를 보냈다면, 그리고 멀리 요서 지방이 아니라 吳會, 金陵, 兩淮를 먼저 취하고 나서 명나라의 내외가 서로 피폐해진 뒤에 서서히 전쟁을 펼쳤다면 어부지리를 거두어 중원을 석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위의 인용문은 그의 문집인 "精里全書" 권18 ‘懲毖錄後’의 첫 구절이다. (중략) 고가 세이리의 이런 주장은 후대의 결과를 통해 선대를 예측하려는 오류라고 하겠다. 명청 교체기에 조선이 중립을 지켰어야 한다는 현대 한국 일각의 조선 왕조 비판 역시 마찬가지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임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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