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문헌학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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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인 <고문서 반납 여행>과 대중을 대상으로 한 역사서인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에 이어 읽는 세 번째 김시덕 책. 이번에는 학술서라 이전 책보다 딱딱했다. 어려운 부분은 대충대충 넘기면서 읽음.
이 사람, 자기 생각을 얘기할 때는 그저 그런 심심한 느낌인데, 남의 글을 인용할 때는 아주 매력이 넘친다. 옛 책을 읽는 게 직업인 사람인 만큼 재미있는 얘기를 정말 많이 알고 있고, 그걸 아주 성실하고도 재미있게 풀어놓을 줄 안다. 앞으로도 이 사람 책이 보이면 열심히 빌려 읽을 계획.
인상적이었던 인용문을 두 개 베껴 놓는다. "성호사설"에 나오는 오성과 한음 이야기는 소름이 돋음. 어렸을 때, 만화책으로 본 그 장난꾸러기 소년 오성과 한음 맞지? 친구가 목이 달아날 뻔한 걸 이렇게 살려 줬구나.;;;


222
李瀷의 "星湖僿說" 9 ‘人事門 善戱謔’에 수록된 유명한 대목이다.
林白湖 悌는 기개가 호방하여 예법의 구속을 받지 않았다. 그가 병이 들어 장차 죽게 되자 여러 아들들이 슬피 부르짖으니 그가 말하기를 四海 안의 모든 나라가 帝를 일컫지 않는 자 없는데, "유독 우리나라만이 예부터 그렇지 못했으니 이와 같은 陋邦에 사는 신세로서 그 죽음을 애석히 여길 것이 있겠느냐?" 하며, 명하여 哭하지 말하고 하였다. 그는 또 항상 희롱조로 하는 말이 "내가 만약 五代나 六朝 같은 시대를 만났다면 돌려가면서 하는 天子 쯤은 의당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였다. 그래서 한 세상의 웃음거리로 전했었다. 임진의 변란에 이르러, 漢陰 李 政丞이 명나라 장수 이여송을 伴接하자, 그는 한음의 인물을 대단히 추앙하여 심지어는 감히 말하지 못할 말까지 하는 것이어서, 일은 비록 진정이 아닐지라도 역시 스스로 편안하지 못했다. 李白沙는 詼諧를 잘하는데 어느 날 夜對가 있어 시골 구석의 누한 습속까지도 기탄없이 다 아뢰는 것을 즐겁게 여겼으며 마침내 林의 일까지 미치자 주상은 듣고서 웃음을 터뜨렸다. 백사는 또 아뢰기를 "근세에 또 웃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니 주상이 "누구인가?" 하고 묻자, 대하기를 "李德馨이 왕의 물망에 올랐답니다."하여, 상은 크게 웃었다. 백사는 이어 아뢰기를 "성상의 큰 덕량이 아니시라면 제놈이 어찌 감히 천지의 사이에 용납되오리까?"하자, 상은 "내 어찌 가슴속에 두겠느냐?"하고 드디어 빨리 불러오게 하여 술을 내려 주며 실컷 즐기고 파했다. "시경"에 이르기를 "戱謔을 잘하도다" 하였는데, 백사가 그 재주를 지녔다 하겠다.

126-127
아래에 古賀精里(1750-1817)의 글을 인용한다.
조선은 작은 땅으로, 진, 한, 당에게 공격받고 합병된 바이다. 중국에 일이 많을 때 스스로 왕을 세워 다시는 그 판도에 들어가지 않았다. 만약 금, 원 등의 제국의 수도가 팔도에 가까웠다면 병탄되고 멸망되어 속국이 되었을 터이다. 어찌 유약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흥망의 때에 태도를 잘 바꾸어, 앞에서는 복종하다가 뒤에 가서는 반역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국이 이를 취하여 하였으나 명분이 없었으므로, 그 사악함으로 인하여 도요토미 씨의 징벌을 받았으나 실처럼 멸망하지 않고 이어졌다. 그가 명나라와 화의를 논한 일은 피차에 의견이 엇갈렸으니 오랫동안 비웃음거리가 되었으나, 한국으로서는 하늘의 도움이었다. (중략) 도요토미 씨가 한국을 통해 명나라를 취하여 한 것은 매우 나쁜 전략이었다. 만약 우리가 군대를 온축하면서, 명나라가 반란군에 의한 내홍과 만주 오랑캐에 의한 외침을 겪는 때에 조금 늦게 군대를 보냈다면, 그리고 멀리 요서 지방이 아니라 吳會, 金陵, 兩淮를 먼저 취하고 나서 명나라의 내외가 서로 피폐해진 뒤에 서서히 전쟁을 펼쳤다면 어부지리를 거두어 중원을 석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위의 인용문은 그의 문집인 "精里全書" 권18 ‘懲毖錄後’의 첫 구절이다. (중략) 고가 세이리의 이런 주장은 후대의 결과를 통해 선대를 예측하려는 오류라고 하겠다. 명청 교체기에 조선이 중립을 지켰어야 한다는 현대 한국 일각의 조선 왕조 비판 역시 마찬가지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임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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