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에서 나가라 - 하
무라카미 류 지음, 윤덕주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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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지촌 소년"이었던 무라카미 류는 미국에 대해 특별한 애증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 애증이 미국에 맞서 싸우는 몇 안 되는 나라(이른바 악의 축!) 북한에 대한 특별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북한을 보는 작가의 시선에는 공포와 혐오에 더해 아련한 부러움의 그림자가 어린다. 

 10년 전 <5분 후의 세계>를 읽으면서 소설 속 반미 전투국가가 어딘가 북한과 닮았다고 느꼈다. 음침하고 공포스러운 면을 빼고 동화처럼 이상화해 놓기는 했지만. 그런 동화는 이 책, <반도에서 나가라>에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음침함은 음침함, 공포는 공포, 잔인함은 잔인함, 어리석음은 어리석음, 그리고 죽음은 죽음일 뿐이다. 단지 북한이라면 무조건 비판해야 하는(빨갱이로 오해받는 것만은 사양이니까) 우리와는 달리 이 일본인 작가는 비교적 자유롭게 기괴한 이웃 국가를 성찰한다. 거대한 퇴폐, 자신과 다른 것을 배제하려는 성향과 같은 본질적인 문제부터 한 사람 한 사람의 굶주림과 고통, 불안과 공포, 용기와 프라이드, 죄책감과 사랑의 갈등까지 한국인이 미처 보지 못했던 북한이 소설의 옷을 입고 우리 앞에 펼쳐진다. 그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여기에 덧붙여 전투와 범죄, 테러의 묘사에는 무라카미 류만한 작가가 드물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개가 급박하고, 묘사가 날카롭고.... 읽기 시작한 순간 빨려 들어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무지무지하게 재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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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가하라전투 1 - 히데요시의 죽음
시바 료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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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이 중앙도서관과의 이별이었다. 단행본 열람실의 서가 사이에 서서 오래 된 책 냄새를 폐 깊숙히 들이 마시면 이별의 아쉬움에 가슴이 떨렸다. 그 도서관에서 내가 가장 사랑했던 소설이 시바 료타로의 "언덕 위의 구름"이다. 그래서 내게 "시바 료타로"의 이름은 특별하다.

동네 시립도서관에서 "세키가하라 전투"를 빌려 잔뜩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결론은 "역시 시바!"라는 것이다.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라는 믿음이 간다. 등장 인물 하나 하나 에피소드 하나 하나가 살아 있다. 특히나 일본 근대사에 관심이 많은 내게는 300년 후 유신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마즈, 모리 등 도자마 다이묘들의 행적이 너무 재미있었다. "료마가 간다"의 배경이 되는 도사의 조소카베와 야마우치 가문의 흥망에 얽힌 이야기는 좀처럼 잊기 힘들 것 같다.

번역도 근사하다. 시바 료타로의 재기발랄한 입담을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다. 특히 인명, 관직명, 지명, 군사 용어 등의 고유명사를 정확히 음역한 뒤 한자를 붙이고, 각주까지 붙인 정성이 독자를 기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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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성 인류학 - 무의식에서 발견하는 대안적 지성, 카이에 소바주 5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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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 리뷰 쓰려고 들어와 보니 다른 분들의 평가가 좋지 않아서 의외였다. 그러고 보니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잣대로 평가할 때 약점이 있는 책인 것은 맞다.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록이어서 정리가 덜 된 부분이 있다는 점, 다른 하나는 저자 자신이 기존의 합리적 형이상학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측면은 동시에 이 책이 가지는 매력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우선 전자는 실재로 강의를 듣는 듯한 현장감과 경쾌함을 느끼게 한다. 2년 동안 <까이에 소바쥬> 강의가 이루어진 <주오 대학>은 최고 레벨이라기에는 무리가 있는 그저 중간 정도의 학교다. 따라서 저자가 구사하는 화법은 보통 정도의 인문적 소양을 지닌, 고등학교 무난하게 졸업한 사람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런 쉬운 화법으로 신화, 민속, 인류학, 정치, 경제, 종교, 과학을 망라하는 흥미진진한 세계를 발빠르게 오가는 이 강의는 대학 시절, 두 시간이 어찌 가는지 모를 정도로 푹 빠져 들곤 했던 인기 강좌들을 떠올리게 한다. 단언하건데, 아주 즐겁게 읽히는 책이다.

근대적 합리성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 역시 중요한 측면이다. <합리적 이성>이란 대단히 매력적인 것이지만, 때로는 그 뒤에 숨어 있는 권력의 의도를 교묘히 위장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복종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절대 권력들을 세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는데, 정치적으로는 <국민국가>,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사상적으로는 <기독교>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가 제시하는 진리에 대하여 "믿습니다!"라고 말해 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최선인지 의문을 품고, 대안을 모색해 보는 것은 교육 받은 사람이 져야 할 중요한 의무이다. 저자의 방식이 유일한 해법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런 식의 대안적 사고는 분명히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역자 후기에 소개된 저자의 다마 대학 예술인류학연구소 소장 취임사 가운데서 재미 있는 표현을 발견했다. 현대인은 가축화되고 있다. 야생의 사고를 회복해야 한다는 말. <국민국가>와 <자본주의>라는 목장의 울타리를 깨부수고 어두컴컴한 신화의 숲으로 달려나가는 상상으로 나는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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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apagos55 2006-02-16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4권이 너무 붕 뜬 느낌으로 진행되서인지 잘 와닿지 않는 면이 있었는데, 지금 5권을 읽으면서 1,2,3,4권의 내용이 비로소 크게 통합되는 느낌이 들어요. 굉장히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손쉬운 현대문학 - 문학의 기본을 다지는
황재웅 외 지음 / 미래엔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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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부터 70년대까지 시대 순으로 수록되어 있어서 문학사 전체에 대한 거시적인 관점을 형성해 준다.  시, 소설, 희곡, 수필까지 전 장르를 망라하고 있어서 지겹지가 않다. 문제 수도 적절하고 여백도 적절하고, 컬러 그림이 들어 있어서 눈이 편하다. 각 작품별 필수 문항들이 부담 없이 술술술 풀리고, 가끔 수능 타입의 문제가 섞여 있어 심심하지 않다. 짧은 시간 안에 현대문학을 싹 끝내고 싶은 고 1,2 학생에게 강추 . 이걸로 기초 끝내고 학교 수업으로 실력을 다지면 이상적이겠다. 30시간 방학 보충 수업의 주교재로 썼는데 대만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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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환상문학전집 4
마가렛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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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이야기에 대한 내성은 나이가 들면서 길러지는 것 같다. 어릴 때는 이런 식의 불행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살면서  고생을 좀 해 보니, 주인공이 처해 있는 입장에 자신을 대입시키는 것도 그리 괴로운 일이 아니다.  뭐, 피해갈 수 없는 거라면 그렇게라도 살아야지. 그럼 이제, 길리어드의 거리에 나를 가져다 두어 볼까?

여자를 걸어다니는 자궁으로 이용한다는 데 대한 거부감이나 기괴한 섹스나 출산 장면에 대한 공포는 별 거 아니다. 그런 거야 잠깐만 참으면 끝인 걸 뭐. 인간 관계의 삭막함 쪽은 보다 무섭다. 친밀한 대화를 나누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 하고 우정을 쌓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이 나라의 성서에는 '말이 없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되어 있고, 곳곳에 비밀경찰의 끄나풀들이 있다. 그러나, 하녀들끼리 아내들끼리 또는 남자들끼리 감시의 눈을 피해 수다 떠는 일들도 있는 듯 하니 이것 역시 나름대로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게 있어서 제일 끔찍한 규칙은 여자가 책을 읽으면 팔을 자른다는 것이다. 여자에게는 문자의 사용이 금지된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아주 적은 뉴스와 남자가 읽어 주는 왜곡되고 편집된 성서가 전부. 기도조차도 기계가 만들어 내고 기계가 읽어 준다. 만약 내가 불온분자로 체포되어 콜로니로 추방당한다면, 죄상은 아마 저런 것과 관계되어 있을 듯 하다. 한 쪽 팔은 없겠지, 아마.

아주아주 멋진 책이다. 흥미진진하게 푹 빠져서 읽었다.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게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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