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 개정판
데이비드 콰먼 지음, 강병철 옮김 / 꿈꿀자유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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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과학적 사실들에 대한 친절하고 이해하기 쉬운 설명, 몸을 아끼지 않고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체험한 모험들의 생생한 기록 , 여러 인물들에 대한 매력적인 묘사, 세련되고 지적인 유머가 있는 책이다. 

양도 아주 넉넉해서 오랫동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포식자란 외부로부터 먹잇감을 찾아 잡아먹는 비교적 큰 맹수들이다. 반면 병원체(바이러스 등 질병을 일으키는 매개체)는 내부로부터 먹잇감을 찾아 잡아먹는 비교적 작은 맹수들이다.
- P26

실험실에서 일하는 바이러스학자들은 왁자지껄 떠들고 다니는 타입이 아니다. 술집에서 과장된 손짓을 해가며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는지 자랑삼아 떠벌이는 바이러스학자는 없다. 이들은 대개 핵엔지니어처럼 집중력이 뛰어나고 말쑥하며 조용하다. 하지만 야생에서 바이러스가 어디 사는지 찾아내는 일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예를 들어 그리즐리 곰을 잡아 서식지를 옮겨놓는 일처럼 위험수준을 통제하기 어려운 현장업무다. 물론 야생에서 바이러스를 추적하는 사람들 또한 실험실의 전문가들처럼 소란스럽고 부주의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럴 여유도 없다. 그러나 그들의 일은 훨씬 시끄럽고 어수선하며 예측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다.
- P33

내게 수학이란 직접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번역된 문학작품을 통해 존경심을 갖고 있는 언어와 비슷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러시아 문학이나 카프카, 무질, 토마스 만 등의 독일 문학과 같달까. 학창시절에는 라틴어만큼이나 대수학도 열심히 공부했지만 타고난 재주가 신통치 않았던지 아이네이스의 비밀스런 음율만큼이나 미분방정식의 오묘한 음악도 도통 내 귀엔 들리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20세기 초에 말라리아와 다른 감염병의 유행을 둘러싼 연구에서 비롯된 다른 두 가지 수학적 질병이론이 중요할 뿐 아니라 흥미롭다고 말한다면 독자들은 믿어도 좋을 것이다. 나같은 사람조차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면 틀림없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P178

"현장에서 일하시나요?"
"아니요. 저는 분자생물학자입니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에게 주택 페인트 작업도 하느냐고 질문한 격이었을지 모르지만 레오 푼Leo Poon은 불쾌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칭찬할 사람을 칭찬하는 데도 인색하지 않았다. 제 동료 중에 고양이과 야생동물을 연구하는 구안 이Guan Yi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역학자의 감각을 지니고 있는 데다 황동으로 만든 마카크원숭이만큼이나 배짱이 좋지요. 이 친구가 중국에 가서 지방 관리들을 구워삶았답니다. 선전에서 살아 있는 동물을 취급하는 시장 중에 제일 큰 곳을 찾아가 동물들의 인후와 항문, 그리고 배설강에서 면봉으로 검체들을 채취해왔다지 뭡니까.
- P230

그러나 어쩌면 가장 중요한 또 한 가지 요인은 SARS-CoV가 인체를 침범하는 방식 자체일 것이다. 우선 증상이 감염력이 매우 높아지기 전에 나타난다. 두통, 발열, 오한, 아마 기침까지도 본격적으로 바이러스를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리기 전에 시작된다. (중략) 독감을 비롯한 많은 질병에서는 이 순서가 반대다. 증상이 나타나기 며칠 전부터 이미 감염을 퍼뜨리고 다닌다. 위험이 닥친 후에야 경고가 따라오는 셈이다. 사스라는 질병이 이랬다먼 2003년 유행은 그리 쉽게 끝나지 않고 훨씬 암울하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 P258

11월의 코네티컷 숲 속에 사는 흰꼬리사슴은 금요일 밤 맨해튼 남부의 독신자 전용 술집만큼이나 짝을 찾는 음란한 동물들로 바글거린다. 불쌍하게도 암사슴 한 마리의 몸 위에 검은다리진드기 성체가 1천 마리 정도 붙어 있을 수도 있다. 사슴의 피부를 기어다니던 진드기 수컷이 이미 자리를 잡고 사슴의 피를 빠느라 꼼짝할 수 없는 암컷과 마주치는 순간 짝짓기가 이루어지는데 이때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절지동물의 섹스에 로맨스 따위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배를 채운 암컷과 욕정을 채운 수컷은 사슴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다른 파트너를 찾는다. 이런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므로 4주에 걸친 진드기 생식 기간 동안 한 마리의 흰꼬리사슴이 200만 개의 진드기 수정란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혈액을 공급한다. 반만 부화해도 사슴 한 마리당 백만 마리의 유충이 기생하게 된다.
- P314

오스트펠트Richard Ostfeld는 ‘모든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 생태학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지 않다. 그건 모호하고 뻔한 소리일 뿐이다. 과학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동물종이 다른 동물종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어떻게 변화나 교란이 일어나고, 그 결과는 어떤 것인지 이해하는 일이다.
- P324

광견병의 숙주는 대개 개나 여우, 스컹크, 또는 날카로운 이빨로 다른 동물을 무는 육식동물이다. 광견병 바이러스는 이들의 뇌로 들어가 공격적인 행동을 유발한다. 숙주는 미쳐 날뛰며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다. 그 사이에 바이러스는 뇌뿐만 아니라 침샘으로도 이동한다. 침을 통해 새로운 희생자의 몸속으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결국 숙주가 광견병으로 죽거나, 애티커스 핀치Atticus Finch의 총에 맞아 죽더라도 바이러스는 새로운 숙주를 전염시키는 데 성공한다.
- P372

마지막 박쥐를 놓아주기 전에 앱스타인Jon Epstein은 아리프의 통역으로 주민들에게 짧게 연설을 했다. 우선 과일나무와 다른 식물들에게 도움이 되는 멋진 박쥐들이 그토록 많다는 데 대해 마을 사람들의 큰 행운을 축하하며, 자신과 팀원들은 박쥐의 건강을 연구하면서 동물들이 다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주지시켰다. (중략) 나중에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저 여섯 마리 중 얼마나 많은 녀석들이 (니파 바이러스에:인용자)감염되어 있을지 모릅니다. 그게 어려운 점이에요. 완벽하게 건강해 보이죠? 겉으로는 구별해낼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조심을 하는 거지요."
- P427

사람들은 걱정한다. 심각하다는 정도는 어렴풋이 안다. 하지만 과학적인 사실들을 자세히 알아볼 시간이 없고, 관심도 없다. 경험상 그런 주제, 즉 무시무시한 신종 질병이나 치명적인 바이러스, 전 세계적인 유행병에 관해 책을 슨다고 하면 자세한 내용을 궁금해하기보다 결론만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질문한다. "우린 다 죽는 건가요?" 언제부턴가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기로 했다. 물론, 우리는 모두 죽는다.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모두 세금을 내야 하고,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하지만 우리들은 대부분 오리나 침팬지나 박쥐로부터 인간에게 전파된 신종 바이러스보다는 훨씬 평범한 원인들로 죽을 것이다.
- P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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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김명남 엮고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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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번역자 김명남은 199@년 KAIST 학부 입학시험의 여학생 수석 합격자였다. 내가 이 사실을 아는 이유는 그 해 봄에 김명남이 대학 입학을 위해 2년 만에 ‘수료’ 하고 떠난 과학고등학교에 내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 학교에는 ‘김명남 전설’이라고 부를 만한 일화들이 여럿 돌아다니고 있었다. 입학 두 달 후, 스승의 날을 맞아 모교를 찾아온 ‘1기 선배님들’ 중에서, 친구들 틈에 작은 몸을 숨기듯이 하고 생글생글 웃고 있는 커트 머리 여자애를 ‘저 사람이 김명남이구나.’하고 눈여겨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14년 후, 도서관에서 우연히 빌린 “시크릿 하우스”라는 책을 통해 그 대단했던 선배가 과학자가 아닌 번역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놀라움과 반가움에 이어 ‘역시나’ 하는 납득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시절 ‘김명남 전설’을 말씀하시던 여러 선생님 중에서도 가장 열렬한 찬미자는 영어를 가르치신 김정희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우리 꼬마 명남이”를 무척 자랑스러워하셨던 김정희 선생님의 구호는 “grammar보다 usage!!"였다.. 선생님은 주교재였던 성문종합영어 외에도 영어의 usage를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교재들을 어리버리한 고1 아이들 위에 폭격처럼 쏟아부으셨다. 여러 가지 주제의 잡지 기사들, 휘트먼과 프로스트의 시들, 영한대역의 ”이솝 이야기“, ”아이아코카 자서전“, ”역사란 무엇인가“ 등에 나는 일찌감치 두 손 들고 항복해 버렸고, 수업 시간마다 나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는 단어들에 대한 쪽지시험을 거의 백지로 내면서, 열등생의 암울함을 곱씹어야 했다. 이 책에 실린 아홉 편의 글 중 가장 큰 존재감을 가진 글이 ”권위와 미국 영어 어법 Authority and American Usage"이었던 덕분에, 좀 이상했지만 미워할 수 없었던 옛 선생님에 대한 그리운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선생님의 애제자였던 김명남은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인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에 대한 열렬한 애호를 마음껏 드러내고 있다. “나는 이 책의 표제작인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만큼 짜릿한 글을 어디에서도 읽어본 적이 없다.”라는 그의 말은 책날개와 광고 문구에도 인용되었다. “번역가 김명남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글이라니 어디 한번 읽어 보자.”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집어든 독자는 아마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많은 독자들이 “역시나 좋은 글이군.”이라는 감상을 가지고 책을 덮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글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 외에 마음속에 남는 것은 이번에도 납득이다. “이러니까 김명남이 좋아하겠구나.”라는 납득. 그 납득의 이유는 저자와 번역자가 공유하고 있는 재능과 성실함이다. 첫 번째 글을 읽을 때부터, 월리스라는 사람은 표지 그림의 머릿수건과 장발과 수염이 만들어내는 인상과 달리 ‘자유로운 영혼’은 아니라는 느낌이 왔다. 에세이를 가장한 광고에 분노하고, 학생들이 써낸 작문의 틀린 영어 어법에 좌절하고, 9.11 테러 이후의 애국적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패닉에 빠지는, WASP 남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고민하고 미국에 대한 애증에 시달리다 결국 자신이 자신이라는 것을 견디지 못해 자살했다는 이 남자는, 사실은 무섭게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의 글들이 소리 높여 주장하고 있었다.

 

  타고난 기질, 부모의 가치관, 그리고 정성스러운 교육에 의해 어린 시절부터 확실하게 몸에 붙은 그런 성실성이 비범한 재능과 만나서 만들어내는 결과들은 보는 이를 흐뭇하게 한다. 김명남의 번역이 그렇고, 월리스의 에세이가 그렇고, 그 둘이 만나서 이루어낸 이 보물 같은 작은 책이 그렇다. 

미국인들이 꿈꾸는 궁극의 휴가가 죽음과 부패의 거대한 원시 엔진 속에 들어앉는 일이라는 사실은 언뜻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7NC 호화 크루즈에서, 우리는 죽음과 부패를 넘어서는 승리의 환상을 다양하고 교묘하게 구축할 수 있다. 한 가지 방법은 엄격한 자기 개선을 통해서 ‘승리’하는 것이다. 각성제를 맞은 듯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선원들의 선박 유지 보수 활동은 다이어트, 운동, 비타민 보조제, 성형수술, 프랭클린 다이어리 시간 관리 세미나 등등 개인적인 자기 관리에 대한 노골적인 비유나 마찬가지다. 죽음을 외면하는 방법은 또 있다. 관리가 아니라 자극이다. 열심히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노는 것이다. 7NC의 쉼 없는 활동, 파티, 축제, 명랑함과 노래는 아드레날린, 흥분, 자극이다. 그것은 당신에게 활기와 생기를 안긴다. 당신의 존재를 불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 P31

호화 크루즈 여행에서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절망은, 내가 무슨 수를 써도 나의 본질적이고 새삼 불쾌한 미국인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일부 비롯한다. 그리고 이 절망은 항구에서 절정에 달한다. 난간에 서서 어쩔 수 없이 그 안에 속하는 사람들 무리를 내려다볼 때, 이 위에 있든 저 밑에 있든 나는 미국인 관광객이고, 따라서 그 정체성상 크고, 살찌고, 벌허고, 시끄럽고, 거칠고, 오만하고, 자기 생각뿐이고, 응석꾸러기이고, 외모에 신경 쓰고, 창피해하고, 절망하고, 탐욕스럽다. 우리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알려진 솟과 육식동물이다.
- P106

가족 내 오래된 농담에 따르면 SNOOT가 "언어 감각은 지속적으로 갈고 닦아야 한다 Sprachgefuhl Necessitates Our Ongoing Tendance"의 약자인지 "우리 시대의 문법 바보 Syntax Nudniks Of Our Time"의 약자인지는 당신이 둘 중 어느 쪽에 속하느냐에 달려 있다.
- P189

나는 대학에서 강사로 영어를 가르친다. 주로 작문이 아니라 문학이다. 하지만 나는 어법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나머지, 매 학기 똑같은 일을 벌인다. 학생들이 제출한 첫 페이퍼를 읽으면, 정규 강의 계획서를 당장 내버리고 3주에 걸친 ‘응급 어법 및 문법 교정 단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내 태도는 정맥주사를 쓰는 약물 사용자들에게 HIV 예방법을 가르치는 사람의 태도와 같다. (중략) 나는 화가 나고, 그런 내가 옳다고 확신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각자 고향의 고등학교 위원회를 고소해야 한다고 말하고, 이 말은 진심이다. 아이들은 겁에 질린다. 나한테, 그리고 나를 위해서.
- P190

솔직히 민주적 정신의 조건인 엄정함, 겸손함, 스스로에 대한 솔직함은 어떤 문제들에 관해서는 유지하기가 워낙 어려워서, 우리는 그냥 기성의 여러 교조적 진영들 중 하나를 받아들이고 싶은 욕망에 저항하기가 어려운 지경이다. 그냥 그 문제에 관해서 그 진영의 노선을 추종하고, 그 진영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힘으로써 유연성을 잃고 다른 진영들은 모두 사악하거나 정신이 나갔거나 둘 중 하나라고 믿고, 나아가 그 다른 진영들에게 소리치는 데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이다. 내가 볼 때, 복잡한 동시에 감정까지 격한 문제에서는 민주적 정신보다 교조적 정신을 품는 편이 단연코 더 쉽다. 그리고 현대 미국 영어 어법에서 ‘정확성’을 둘러싼 문제는 바로 그 복잡한 동시에 감정까지 격한 문제에 해당한다.
- P193

기술주의는 미국 영어 교육을 아주 신속하고 철저하게 장악했기 때문에 1970년경 이후 중학교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누구나 글쓰기를 기술주의적 방식으로 배웠다. ‘자유롭게 쓰기’, ‘브레인스토밍 하기’, ‘일기 쓰듯 쓰기’ 등의 기법을 통해서. 이것은 글쓰기를 소통 수단이라기보다는 자기탐구와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고, 체계적 문법, 어법, 의미론, 수사법, 어원은 내다버리는 시각이다.
- P208

모든 사전 편찬자에게는 이데올로기가 있다. 사전 제작이 이데올로기를 회피하거나 초월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 자체가 특정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생각이다.
- P216

아이들은 학교에서 집단-포함과 집단-배제를 배운다. 전자에는 보상이 주어지고 후자에는 벌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배우고, 친밀함과 포함의 신호로서 방언이나 구문이나 속어를 사용하는 법을 배운다. 아이들은 곧 담론 공동체를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영어나 사회 수업에서 배우는 것이다. 놀이터, 버스, 점심시간에 배운다. 또래들이 스누틀릿을 배척하거나, 그에게 끔찍한 사중 웨지를 가하거나(wedgie는 남의 팬티를 바지 엉덩이 위로 끌어당겨 드러내는 장난이다 - 옮긴이), 그를 붙들고 돌아가며 침을 뱉을 때, 그 현장에서는 진지한 배움이 이뤄지고 있다. 스누틀릿을 제외한 모두가 배운다. 사실 스누틀릿이 배우지 못한다는 점이야말로 그가 애초에 핍박받는 이유다.
- P243

스누틀릿이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또래 집단은 가족을 제치고 제일 중요한 집단으로 올라선다. 이 집단은 정의상 전통적 권위를 거부하는 집단이다. 그런데 이들이 인식하는 주류 성인 사회의 방언이 표준 문어체 영어이기 때문에, 표준 문어체 영어만큼 전통적 권위를 잘 상징하는 것은 또 없다. 사춘기가 속어와 암호와 하위 방언의 하위 방언이 사방에서 폭발하는 시기인 것, 부모들이 갑자기 자식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다고 하소연하는 시기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 P245

유행어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모든 문장은 최소한 두 가지 소통 기능을 수행하고 -하나는 명식적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 다른 하나는 화자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 두 기능 사이에 균형을 잡기 마련인데, 유행어는 그 균형을 깨뜨린다는 것이다. 유행어가 "별 목적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가너의 말은 틀렸다. 유행어는 오히려 화자를 특정 모습으로 내세우려는 목적을 너무 많이 수행한다. (설령 그 목적이 유행을 잘 아는 사람인 척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더라도).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는 일종의 헛소리 감지 안테나가 있어서, 그 불균형을 무의식적으로 포착해낸다. 스누트가 아닌 사람들조차 유행어를 짜증스럽고 진저리나게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이다.
- P259

어쩌면 내가 직업상 이런 글을 너무 많이 읽는다는 점과 내 타고난 스누트성이 결합된 탓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학술 영어가 그저 하나의 방언이 아니라 표준 문어체 영어가 그로테스크하게 타락한 형태가 아닐까 싶어 걱정스럽다. 나는 이 언어를 과장되고 부조리한 대통령 영어나 우스꽝스러운 경건함을 띤 비즈니스 언어보다 더 혐오한다. 그리고 내 철저한 경멸과 불관용을 지지해줄 사람으로 권위자 중의 권위자를 댈 수 있으니, 그는 바로 조지 오웰이다. 오웰은 이미 50년 전에 학술 영어를 "모호함과 순수한 무능의 혼합"으로 규정하고 "거의 아무 의미 없이 길기만 한 문장이 수시로 나온다"라고 지적했다.
- P263

대학 신입생 작문 수업에서도 학생들의 나쁜 글은 게으름이나 무능의 결과가 아니라 두려움의 결과인 경우가 훨씬, 훨씬 더 많다. 선생이 학생들의 두려움을 파악하고 돕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그들에게 또 다른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는 데까지는 채 이르지도 못할 때가 많다.
- P265

수사적 용어로 말하자면,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윤리적 호소, 논리적 호소(=논증의 타당성 혹은 건전성), 감정적 호소(=논증의 감정적 영향) 사이의 구분이 거의 무너졌다. 혹은 세 종류의 호소가 서로 영향을 너무 많이 주고받기 때문에 이제 오직 ‘이성’에만 근거해서 논증을 전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 P266

철두철미한 규범주의자들이 오늘날 미국 문화에서 아주 미미한 주벼부 집단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인의 대화란 기본적으로 논쟁이기 때문이다. 미국인은 실수, 무정부 상태, 고모라풍 퇴폐보다는 신권정치, 독재정치, 그 밖에도 그 목적이 논쟁이나 설득이 아니라 토론 자체를 무기한 중단시키는 것인 이데올로기를 훨씬 더 두려워한다.
- P273

한편 강경한 기술주의자들은, 스스로 냉철한 과학주의를 따르며 가치보다 사실을 선호한다고 공언함에도 불구하고, 수사적으로는 주로 파토스에, 즉 본능적으로 와 닿는 감정적 호소에 의존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때 관여하는 감정은 1960년대에서 비롯한 좌파적 감정이다. 권위적 관습, 엘리트주의적인 거만함, 고지식한 제약, 궤변, 백인 남성 위주의 편견, 속물성, 모든 형태의 뚜렷한 자부심 등등에 대한 반감이다. 요컨대 문법학자들의 깐깐한 감시와 버클리풍 엘리트들의 나른한 지적에 드러나는 태도에 대한 반감인데, 공교롭게도 바로 이 두 집단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아서 가장 자주 눈에 띄는 스누트들이다. - P273

방법론적 진영이든 철학적 진영이든 유사 진보적 진영이든, 모든 기술주의자는 본질적으로 선동가다. 그리고 사실 기술주의자들에게는 교조적 규범주의자야말로 가장 귀중한 자산이다. 미국인은 교조주의와 엘리트주의적 둔감함에 본능적으로 반감을 품으니, 교조적 규범주의의 존재는 기술주의의 감정적 호소에 기꺼이 귀 기울일 청중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 P273

관광객으로서의 나는 경제적으로는 유의미하지만 실존적으로는 혐오스러운 존재가 된다. 시체에 들러붙은 벌레 같은 존재가 된다.
- P313

이 밖에도 도스토옙스키의 많은 인물들은 -프랭크가 "엄청난 생명력"이라고 불렀던 것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살아 있다. 그저 그들이 인간의 여러 유형이나 여러 측면을 능숙하게 그려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그럴싸하고 도덕적이고 설득력 있는 플롯 속에서 행동하면서 모든 인간의 가장 심오한 부분, 가장 갈등이 많은 부분, 가장 진지한 부분, 즉 가장 많은 문제가 걸려 있는 부분을 드라마화하기 때문이다.
- P354

요컨대, 도스토옙스키는 정말로 중요한 것들에 관해서 소설을 썼다. 그는 정체성, 도덕적 가치, 죽음, 의지, 성적인 사랑 대 영적인 사랑, 탐욕, 자유, 집착, 이성, 믿음, 자살에 관해서 소설을 썼다. 게다가 자신의 인물들을 대변인으로 격하시키거나 자신의 책들을 팸플릿으로 격하시키지 않고서도 그 일을 해냈다. 도스토옙스키의 관심은 늘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였다. 즉, 어떻게 진짜 인간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 P355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프랭크의 전기를 다 읽은 미국의 진지한 독자/작가는, 왜 현재 우리의 소설가들이 고골이나 도스토옙스키에 비해 (심지어 레트몬토프나 투르게네프처럼 좀 더 경량급 작가들에 비해서도) 주제 면에서 얕고 가벼우며 도덕적으로 빈곤한지를 골똘히 생각해보게 될 것이라고. 프랭크의 전기를 읽은 우리는 절로 이렇게 자문하게 된다. 왜 우리는 우리의 예술이 심오한 신념이나 절실한 질문으로부터 늘 어느 정도 아이러니한 거리를 두도록 만들까? 그래서 오늘날의 작가들은 그런 신념이나 질문을 우스개 취급한다. 설령 다루더라도 텍스트간 인용이나 부조화스러운 병치 따위의 형식적 장난으로 위장하여, 진짜 절박한 내용은 무슨 다면적 낯설게 하기 전략 따위의 쓸데없는 짓으로 별표 사이에 가둬두곤 한다.
- P364

그러니 그는 -우리는, 우리의 소설가는- 진지한 예술을 통해서 어떤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는 일은 감히 시도하지 않을 (못할) 것이다. 그런 작업은 메나르의 "돈키호테" 같아 보일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를 비웃거나 우리 때문에 당황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고 이 상황은 기정사실이다), 우리의 진지한 소설들의 진지하지 못함을 누구 탓으로 돌려야 할까? 문화? 비웃는 사람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만약 도덕적으로 열정적이고 열정적으로 도덕적인 소설이 그와 동시에 독창적이면서도 아름답도록 인간적이기까지 하다면, 감히 비웃지 않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작품을 어떻게 만들까? 어떻게 -오늘날의 작가가, 제아무리 재능이 있는 작가라도- 그것을 시도할 배짱이라도 부릴 수 있을까? 확실한 공식이나 약속은 없다. 하지만 본보기는 있다. 프랭크의 전기는 바로 그런 본보기 하나를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정말로 교훈적으로 보여준다.
- P368

모든 인간 문화는 가짜 신화이든 정치경제적 서사이든 이야기를 통해서 스스로를 독립된 문화로 규정한다. 모든 사람은 여러 사건과 변화로 구성되고 최소한 시작과 중간이 있어서 남에게 들려줄 수 있는 하나의 이야기로 자기 인생을 이해한다. 우리는 시공간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이야기는 인간에게 내재된 속성이다.
- P429

그런데 오늘날 CY작가들의 입장에서, 미국 독자들이 가장 많이 노출되는 이야기 패턴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아무리 너그러운 기준으로 봐줘도, 이야기 예술로서 텔레비전은 몹시 저급한 형태다. 텔레비전은 변화시키거나, 계몽시키거나, 확장시키거나, 새로운 방향을 알려주려고 애쓰는 이야기 예술이 아니라 -심지어 꼭 ‘즐겁게 해주려고’ 애쓴다고도 할 수 없다- 그저 관심을 끌고자 하는 이야기 예술이다. 텔레비전의 유일한 목적은 -공공연히 인정되는 목적은- 지속적 시청을 확보하는 것이다.
- P429

텔레비전의 최대 매력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관심을 잡아둔다는 점이다. 시청자는 자극을 계속 겪으면서도 쉴 수 있다. 아무것도 주지 않고 받기만 한다. 이 점은 오로지 지속적 관심과 후원만을 목표로 삼는 모든 저급 예술이 다 마찬가지다. 재미와 편안함을 동시에 제공한다는 바로 이 특징이 그런 예술의 호소력이다.
- P429

쓰레기 소설은 구조와 호소력 면에서 대체로 텔레비전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독자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관심을 붙잡아 두기만 하기 때문이다.
- P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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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의 시칠리아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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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가 인기 있는 것을 보고 조금 궁금했던 김영하의 여행기. 달리기를 하지 않고 출신 대학을 사랑하는, 한국 남자 버전의 무라카미 하루키? 읽기 편하게 글을 잘 쓴다는 건 인정. 그러나 특별한 매력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다시 찾아 읽을 것 같지도 않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나오는 동네들의 근황을 알 수 있었다는 점이 제일 좋았다.

무엇보다도 선생에게는 자신이 가르치는 것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며 따라서 너희들은 이것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념이 없다면 수업은 맥이 빠진다. 내겐 그게 없었다. 과연 소설 쓰기라는 게 배워서 되는 것일까? 내가 가르치면 뭐가 좀 나아지는 것일까? 오히려 재능 있는 학생들을 망치는 것이 아닐까? 늘 이런 의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 P22

1960년대 갓 취업한 이십대의 젊은이는 첫 월급의 반 이상을 양복을 구입하는 데 썼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방직기술의 발전과 값싼 재료의 등장으로 옷값이 기록적인 수준으로 낮아졌다. 덕분에 옷장은 입지도 않는 옷들로 가득차게 되었다.
- P33

그때까지 나는 방송 프로듀서나 카메라맨도 나와 같은 일종의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겪어보니 그들은 예술가라기보다 군인에 가까웠다. 밤늦도록 일하고도 새벽이면 벌떡 일어나 카메라와 삼각대를 지고 밖으로 나갔다. 아그리젠토의 신전 위로 떠오르는 해를 찍고 그 위로 흘러가는 구름떼를 찍었다. 아무리 시칠리아라도 12월의 새벽은 추웠다. 카메라맨은 홑겹의 윈드브레이커 하나로 묵묵히 새벽 추위를 견디며 뷰파인더를 노려보았다. ‘느린 다큐’를 표방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오랜 촬영이 필요했다. 몇 시간 동안 타임랩스로 찍은 화면을 삼 초에 보여주는 것. 이것이 바로 ‘느린 다큐’의 정체였고 우리가 이런 영상을 TV에서 자주 보지 못하는 이유였다. (중략) 카메라맨과 프로듀서는 아무 불평 없이 이런 화면들을 찍었다. 이십 년 가까이 함께 일해온 사이라더니, 눈빛만 봐도 손발이 척척이었다. 나약한 소설가가 이불 속에서 끙끙대는 동안 그들은 자외선 차단 크림을 바르고 벌판으로 나가 찬바람을 맞으며 촬영을 했다.
- P48

시칠리아에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혼자 상상해오던 이탈리아가 있었다. 따사로운 햇볕과 사이프로서 그리고 유쾌하고 친절한 사내들, 거대한 유적들과 그 사이를 돌아다니는 주인 없는 개들, 파랗고 잔잔한 지중해와 그것을 굽어보는 언덕 위의 올리브나무, 싸고 신선한 와인과 맛있는 파스타, 검은 머리의 여성들과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 예전에 나는 로마와 피렌체, 베네치아를 여행한 적이 있지만 어디에서도 이런 것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몰려드는 관광객들, 장사치들, 약삭빠른 도시인들과 척박한 사람, 테마파크를 닮은 번드르르한 대리석 건물들만 보았던 것이다. 내가 꿈꾸던 이탈리아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그저 영화나 관광엽서, 여행사의 팸플릿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단 말인가? 아니, 그것들은 모두 시칠리아에 있었다. 나는 다큐멘터리 제작팀과 함께 팔레르모 공항을 떠난 지 불과 다섯 달 만에 아내와 함께 다시 그 섬으로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 P50

배에서 내려 사방을 둘러보며 정세를 살피는 우리에게 바르톨로 빌리니 씨와 한 명의 노파가 다가왔는데 모두 자기 아파트를 설명하는 명함 크기의 광고지를 들고 있었다. 그 광고지는 하나같이 ‘발코니, 냉장고, 샤워, 부엌’을 강조하고 있었다. 시원하게 샤워를 한 후,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발코니에서 맥주를 마시고 동네에서 사온 신선한 토마토로 스파게티를 먹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또한 그것은 다소 억지스럽지만, 세계가 물, 불, 흙, 그리고 공기라는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그리스 철학자 (그러나 그는 지금의 그리스가 아닌 시칠리아의 아그리젠토에서 태어났다) 엠페도클레스의 학설을 연상시켰다. 샤워는 물, 부엌은 불, 발코니는 흙, 마지막으로 냉장고는 (차가운) 공기와 관련돼 있다. 이 네 가지는 현대의 인간이 조금이라도 오래 어딘가에 머물고자 할 때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 P83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연기과 대학생들이 이런 무거운 인물들을 연기하는 것은 사실 역부족이다. 아무리 훌륭한 연출가가 붙어도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연기하는 그리스극을 보는 맛은 따로 있다. 장황한 그리스 운문을 번역한 부자연스런 한국어 대사, 인물의 내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연기, 코러스와 대사의 부조화 때문에 관객들은 극 속으로 결코 깊이 빠져들지 못한다. 브레히트가 말한 ‘소외효과’가 여기에서 이상한 방식으로 달성된다. "오레스테아"를 보는 내내 나는 연극이 촉발한 딴생각들에 사로잡혀 있었다.
- P161

돌아보면 20세기는 인류 역사상 여행하기에 가장 안전한 시대였다. 민간 항공기가 출현했고 해적이나 산적, 마적은 거의 사라졌다. 나라와 나라 간의 이동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간단했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가치가 안정돼 있어 달러만 가지면 어느 나라에서든 밥을 사 먹고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2011년 9.11 테러 이후로 그런 시대는 이제 서서히 저물고 있다. 위험지역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우티스들도 부유한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을 적극적으로 노리고 있다. (중략) 지금 와 돌이켜보면 인류의 역사에서 20세기만이 오히려 예외처럼 보인다. 중세에는 유럽과 지중해 일대에서도 해적질과 인신납치가 성행했으며 귀족들조차 친지들이 몸값을 내주지 않으면 엉뚱한 곳으로 팔려가곤 했다.
- P200

시라쿠사는 그리스문명의 토대 위에 로마문화를 더하고 그 위에 기독교적 색채를 가미한, 일종의 크레이프 케이크 같은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한눈에 그리스문명과 로마문명을 일별할 수 있는 도시는 흔치 않다. 시라쿠사에서는 그리스인들과 로마인이 어떻게 다른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이야기를 사랑한 그리스인들과 아드레날린에 중독된 로마인들의 차이는 그들이 지어놓고 떠난 극장과 경기장으로 드러난다. (중략) 그리스극장과 로마경기장 사이에는 거대한 채석장이 있다. 기원전 413년에 사로잡힌 아테네 포로들이 노역을 하다가 노예로 팔려간 곳이 바로 이곳이다. 본래는 꽤 높은 언덕이었던 이곳은 유명한 1693년의 지진과 오랜 세월의 채석으로 인해 지금은 한 입 크게 베어 문 사과처럼 아래로 푹 꺼져 있고 군데군데 올리브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그리스 후예들이 비극 "아가멤논"을 보고 있는 동안 로ㄴ마의 후예들은 유로2008에 출전한 이탈리아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러 카페에 모여 있었다.
- P220

우리가 묵은 호텔의 주인은 아그리젠토 남자의 한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식사를 하러 식당에 들어가자 그는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나비넥타이를 매고 흰 양복 윗도리를 걸치고서야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는 무뚝뚝했지만 정중했다. 자신의 힘과 위세를 충분히 과시하면서도 필요한 친절은 잊지 않았다. 허겁지겁 메뉴를 결정하려는 우리를 만류하며 그는 우아한 태도로 차가운 물 한잔을 권했다.
"부인, 천천히 하시지요. 날이 덥습니다." (중략)
그후로 오랫동안 아내와 나는 힘든 일을 당하며 낙심할 때마다, 혹은 당황하여 우리 중 누군가가 허둥댈 때마다 그 멋쟁이 사장의 느긋한 대사를 서로에게 들려주었다. 이탈리아 원어로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은 간결하고 산뜻한 표현이 된다. "Signora, prego. E caldo." 우리는 마법의 주문처럼 이 말을 외우고 그럴 때마다 거짓말처럼 다시 인생에 대한 느긋한 태도를 되찾을 수 있었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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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의 건축 - 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
정기용 지음 / 현실문화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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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이야기가 재미있었던 것과 별도로, 정치적인 맥락도 재미있게 읽힌다. 노무현 시대를 살던 좌파들의 순수하고 지적인  태도가 흥미로웠다. 위험한 선동가들이 좌파의 목소리를 독점하고 있는 지금, 이런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지......

건축가들은, 쉽게 말하면, 땅을 바라보고 교감하는 능력을 키워온 사람들이다. 필자에게도 마찬가지로 땅을 예사롭게 보지 않는 독특한 판단력이 축적되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건축가들에게는 우연한 만남이지만, 안성면에서 펼쳐진 흔치 않은 땅과 필자 사이의 교감은 어떤 면에서는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한 남자가 평생 그리워하던 여인과 우연히 처음 만났을 때처럼 버갯불이 튀는 듯한 사건이라고 할까? 그런 정도의 열정적인 교감이 안성면과 필자 사이에 이루어졌다고 기억한다. 바로 이것이 한 건축가를 10여 년 동안 무주에서 일하게 한 계기다. - P28

무주에서 10년을 작업하면서 느낀 것은 군청의 모든 직원은 감사원을 두려워한다는 이것은 대한민국의 모든 공무원들이 다 같은 처지다. 직원들이 정말로 무서워하는 것은 일이 잘되느냐 못되느냐가 아니라 감사에 걸리느냐 안 걸리느냐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무서워하는 대상은 국민이 아니라 감사원이거나 여러 법의 저촉 여부인 것이다. 이 일이 국민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는 그다음 문제다. 그러나 진정한 군수라면 감사원이나 검찰이 아니라 군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군민, 주민의 삶을 향상시키려면 자기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좋은지를 물어야 한다. 김세웅 무주군수가 그런 결심을 하게 된 배경에는 지금의 시스템, 지금의 건축 발주방식으로는 좋은 건축을 할 수 없다는 아주 확고하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 P39

필자는 수의계약을 통해 무주 프로젝트를 10년간 진행할 수 있었다. 군수는 여러 가지 일로 검찰에 두 차례나 소환당했다. 심지어는 필자도 검찰에 불려갈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차라리 필자는 검찰이 정말로 필자를 불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의계약이라는 것은 규모가 큰 설계 일도 최소한의 한도 내에서 진행해야 하는 터라 일을 할수록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검찰이 부르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게 근거자료를 만들어두고 싶었던 것이다. - P40

건축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과 식물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지, 건축가가 처음부터 다 건축을 완성하는 것으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과 식물은 무엇으로 건축을 완성시키는 것인가? 바로, 흐르는 시간이다. (중략) 특히 불특정 다수의 삶과 관계있는 공공건축은 다중의 삶을 미리 확정하는 일이기도 해서 보편적이면서도 시간에 따르는 변화 또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가장 큰 어려움은 지금까지 축적된 지혜와 지식을 동원해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오늘 결정해야 하는 데 있다. 그래서 건축가가 이런 어려움에 대응하는 방법은 건축이 지닌 근원적 모순을 직시하고 그 한계를 미리 예측하며, 불확정적인 것까지 오늘 확정할 수 있는 지혜와 상상력을 겸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 P43

도시는 자연을 먹고사는 짐승이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도시라 하더라도 안성면처럼 자연에 세우는 도시는 자연이 파괴되는 것보다 1000배, 1만 배 이상의 이익을, 그것을 가능하게 한 자연에 또 그 땅을 지킨 주민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 그런 한도 내에서만 기업도시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가치로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 P87

건물에서의 창은 풍경을 오려내고 안으로 불러들인다. 불려온 풍경은 거리를 소멸시키고 안에 있는 사람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 P95

부남면을 논하면서 어떻게 하늘의 별들을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필자는 부남면이 별을 볼 수 있는 장소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부남면에 별 보는 집을 지은 이유다. 그리고 그것은 이곳 주민들에게 필자가 선사하고 싶었던 부남면에 사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도 연결되었다. 건축가는 건물만 지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반영하고 의미 있게 조직해 주는 사람인데, 부남면 같은 오지의 면사무소를 리노베이션 한다는 것이 바로 마을의 정체성을 찾아주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 P100

공공건축이란 ‘공공이 발주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사람, 주민, 시민)가 원하는 동시에 땅이 원하는 건축이며, 시대가 원하는 건축이고 그리고 끝으로 지구가 원하는 건축까지를 포괄하는 것이다. 무엇인가 대단한 요구처럼 보이지만 이런 것이 진정한 공공건축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사실 아무리 작은 공공건축이라 해도 건축을 제안한다는 것은 한 사회를 상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P113

관공서 건물은 두 가지 점에서 선도적이어야 한다. 하나는 도시 환경 속에서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그 도시에 사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줄 만큼 평화롭고 아름다운 건축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어서 격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시민들과 호흡하는 편안한 장소, 그런 공적 영역의 특질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본이 갖추어지지 않은 관공서 건물은 지금이라도 개선의 여지를 두고 노력해야 한다. - P139

어떻게 보면, 어른들은 ‘형식’을 아이들은 실재하는 ‘현실’을 더 잘 포착해 낸다. 건축의 내외부 공간을 미끄러지듯 즐겁고 유쾌하게 넘나드는 아이들의 몸짓 속에 진정한 건축이 있다. 아이들이 자기 삶을 공간 속에서 조직해 내는 능력은 신비할 정도다. (중략) 어른 건축가들은 유쾌하게 놀 줄 모른다. 유쾌한 어린이집. 그것은 아이들만이 설계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어른 건축가들은 그것을 찾는 방식을 개발해야 할 것 같다. - P186

적상산 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전쟁 무렵 북한으로 이전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중에도 "조선왕조실록"이 소실되지 않았을 만큼 깊고 특별한 산인 적상산은 가을에 단풍이 들면 여인이 붉은색 치마를 두른 것 같다 하여 적상이라 하는데, 지금도 그 정상에 올라가 보면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 P202

섬세하고 작은 것들의 축적을 고마워하고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할 때, 사회는 진정으로 한 발자국씩 진보할 것이다. 진보란 소위 좌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마음과 손길 속에 있는 것이다. 필자 생각에 무주군 보건의료원은 큰 건물이 아니라 보건의료원을 작동시키는 작은 마음들의 결집 속에 큰 위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 P262

지난 10여 년간 필자가 무주에서 한 작업들은 그래서 필자에게 결과적으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져준다. "건축을 완성하는 것은 시간이며, 그것은 사람과 식물들에 의해 헤어려지면서 가능하게 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이것이 바로 건축을 오브제처럼 단독적이고도 개별적인 사건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으로 확장된 전일적 접근holistic approach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P297

건축이 탈산업사회에서 농촌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기능과 공간으로 포섭하고 자유로운 형태로 사람들을 유혹할 일이 아니라 근접성의 법칙과 체험에 각인되는 삶의 현실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체험은 정신적으로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갈등까지를 포함하는 ‘가까운 것들’. 사랑, 평화, 애정이 깃든 모든 것은 근접한 데서 시작된다.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것들 사이에서 어떤 관계가 생길 수 있겠는가! - P298

필자가 공설운동장만이 아니라 무주에서 한 수많은 일은 건축가의 새로운 정의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조절자social coordinator’로서의 역할을 한 것과 같다. 그래서 현대 건축가는 형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판단력 있게 조절하고 건축의 행위로 이행시키는 사람이다. - P306

감응. 감응이라고 하는 키워드. 무주의 모든 일은 감응인 것 같다. 이를 영어로 말하면 correspondence. 쌍방적인 것. 무엇을 느끼고 응하고...... (중략) 무주 공설운동장도 그렇고 안성면 주민자치센터도 그렇고 또 부남면 주민자치센터 등도 그렇고, 내가 보통 때 건축하던 방식과 전혀 다르게, 감응은 쌍방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거기에는 사실 자연과 풍경과 말씨와 음식 등의 친근함에서 오는 프록시proxy의 미, 내가 무주에 살지 않지만 무주에 사는 사람의 풍경에 감응되어서 거기에 사는 사람이 되어버린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 P330

무주 프로젝트를 돌아보면서, 이런 공공건물이 들어서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주민들에게 필요한 시설이라고 판단한 지방자치단체장과, 쓰임새와 구조, 생김새 등을 협의해 결정지은 건축가가 있었기 때문이고, 양쪽의 관계가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기용 선생은 이를 ‘권력’의 문제라고 말했다.
"우선은 김세웅 전 무주군수가 일방적으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일종의 ‘전횡’이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건축가 또한 아닌 척하면서 은근히 가지고 있는 ‘폭력’이란 게 있다. 건축가들은 이처럼 자기가 폭력을 저지를 수 있다는 상황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한다. 사실 건축가들이야말로 그런 상황을 빠져나가는 데 무시무시하게 빠른 사람들이다. 무주를 냉정하게 바라보면, 지방자치단체장이 결정할 수 있는 권력과 건축가들의 숙명적인 직업적인 권력, 그 두 권력이 우연히도 충돌하지 않고 결합된 것이다. 그 두 권력이 결합돼서 마치 새로운 사건처럼 탄생한 것이다. (계속) - P365

(위에서 계속) 하지만 권력이 모였을 때 공공건축물을 가능하게 한 걸 보면서, 과연 공공건축이란 게 꼭 그렇게 나와야 하느냐,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 P365

당시 무주군 조례는, 용역비 3,000만 원 이상이면 공개입찰, 그리고 3,000만 원 미만이면 수의계약을 할 수 있도록 정해 놓고 있었다. 제대로 된 공공건축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정기용 선생은, 무주군과 수의계약을 맺기 위해 설계비, 감리비 한도를 모두 3,000만원 이하로 낮춰야 했다. 때로는 실비도 안 나올 때도 있었다. 이는 고스란히 사무실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당시 기용 건축이 입은 경제적 손실이 얼마나 컸느냐고 물어보니, 한 실장은 "무주 프로젝트 때문에 밀린 월급 700만원을 아직도 받지 못하고 있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다른 퇴사한 직원들도 아직 ‘무주 월급’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회사가 얼마나 골병이 들었을까 짐작이 간다. -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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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4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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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신입생 때 <이기적 유전자>를 처음 읽었다. 생물학 관련 교양 과목들의 필독 도서여서 내 또래의 이과 대학생들 대부분이 읽었을 것 같다. "생명의 이해"라는 꽤 재미있었던 3학점 짜리 수업에서, 이 책과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를 가지고 레포트를 써서 제출했던 기억이 난다.



   24년 만에 다시 읽은 <이기적 유전자>는 그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스무 살 때는 그냥 열심히 공부하면서 읽었던 책인데, 마흔넷에 다시 보니 대박 재미있다!!!. 그 동안 나의 인생, 나의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것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책에 나오는 설명들을 나의 삶에 대입시켜서 생각해 보는 것이 엄청나게 재미있었다. 지금까지 경험하고 관찰해 온 많은 인간 행동과 사회 현상들이 도킨즈의 이론을 통해 심플하면서도 분명하게 설명되고 해석된다. 이 책에서의 도킨즈는 머리가 좋고 유머러스하며, 냉철하지만 망설임 없이 싸움에 임한다. 책 전체에 매력이 철철 넘친다.이제 중년이 된 20여 년 전의 대학생 독자가 혹시 이 책을 다시 읽을까 생각하며 나의 리뷰를 보고 계신다면, 꼭 다시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지금 바닷속을 유유히 떠다니는 자기 복제자(replicators)를 찾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들은 이미 먼 옛날에 자유를 포기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기 복제자는 덜거덕거리는 거대한 로봇 속에서 바깥세상과 차단된 채 안전하게 집단으로 떼지어 살면서, 복잡한 바깥세상과 의사소통하고 원격 조정기로 바깥세상을 조종한다. 그들은 당신 안에도 내 안에도 있다. 그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론적 근거이기도 하다. 자기 복제자는 기나긴 길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이제 그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며, 우리는 그들의 생존 기계(survival machine)다.
- P75

개체는 안정적이지 않다. 정처 없이 떠도는 존재다. 염색체 또한 트럼프 카드의 패처럼 섞이고 사라진다. 그러나 섞인 카드 자체는 살아남는다. 바로 이 카드가 유전자다. 유전자는 교차에 의해서 파괴되지 않고 단지 파트너를 바꾸어 행진을 계속할 따름이다. 물론 유전자들은 계속 행진한다. 그것이 그들의 임무다. 유전자들은 자기 복제이고 우리는 그들의 생존 기계다. 우리의 임무를 다하면 우리는 폐기된다. 그러나 유전자는 지질학적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이며, 영원하다.
- P100

사자는 영양을 잡아먹고 싶어 하나 영양은 전혀 생각이 다르다. 보통 이것을 자원에 대한 경쟁이라고는 보지 않는 경향이 있으나,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때의 자원은 고기다. 사자의 유전자는 자기의 생존 기계의 먹이로서 그 고기를 ‘원한다’. 영양의 유전자는 자기의 생존 기계를 위해 일하는 근육이나 기관으로서 그 고기를 필요로 한다. 그 고기의 두 가지 용도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것이다.
- P179

대개의 경우 (영역 동물의: 인용자 주) 암컷은 영역이 없는 수컷과는 짝짓기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짝지은 수컷이 다른 수컷에게 패해 그 영역의 주인이 바뀌면 암컷이 재빠르게 그 승자에게 들러붙는 일도 종종 있다. 성실하게 일부일처제를 지키는 종의 경우에도 암컷이 수컷 그 자체와 결속하기보다는 오히려 수컷이 소유하는 영역과 결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P230

복지 국가란 지금까지 동물계에 나타난 이타적 시스템 중 아마도 가장 위대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타적 시스템도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그것은 그 시스템을 착취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이기적 개체에게 남용당할 여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키울 수 있는 것 이상의 아이를 낳은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무지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므로, 그들이 의식적으로 악용을 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나는 다수의 아이를 낳도록 의도적으로 선동하는 지도자나 강력한 조직에 대해서는 그 혐의를 풀 수 없다고 생각한다.
- P237

여성이 자기가 낳은 아이가 어른이 될 평균 확률이 동갑내기 손자가 어른이 될 확률의 1/2보다 낮아지는 연령에 도달할 때, 자기 아이보다 오히려 손자 쪽으로 투자하게 하는 유전자가 유리하게 되어 번창할 것이다. 이 유전자는 손자 네 명당 한 명의 비율로 전해지는 반면, 그것과 경쟁 관계에 있는 유전자는 자식 두 명당 한 명에게 옮겨지지만, 손자의 기대 수명이 이 관계를 역전시키기 때문에 ‘손자에 대한 이타적 행동’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유전자 풀 속에 널리 퍼지게 된다. 자기 아이를 계속 낳는 여성은 손자에게 충분히 투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년기에 이른 여성이 번식 능력을 상실하도록 작용하는 유전자가 점점 증가했을 것이다.
- P255

(물고기의-인용자) 암컷은 수컷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난자를 빨리 방출했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다. 난자는 비교적 크고 무거워서 잠시 동안 한 덩어리가 되어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고기의 암컷은 먼저 산란하는 ‘위험’을 감수할 여유가 있다. 반면 물고기의 수컷은 이런 위험을 감수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수컷이 서둘러 정자를 방출해 버리면 암컷이 준비되기 전에 정자가 흩어져 버릴 것이고 그러면 암컷은 난자를 방출할 가치가 없으므로 산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확산 문제 때문에 수컷은 우선 암컷이 난자를 방출하기를 기다렸다가 정자를 뿌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덕분에 암컷은 실로 귀중한 몇 초를 얻을 수 있다. 그 사이에 사라짐으로써 난자를 수컷에게 떠맡겨 수컷을 트리버스의 딜레마에 빠뜨릴 수 있다. 그래서 이 이론은 수컷의 자식 돌보기가 왜 물속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고 건조한 육상에서는 보기 드문 일인지를 깔끔하게 설명한다.
- P304

현재까지 핸디캡 원리를 타당한 모델로 만들려는 수리유전학자들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이는 핸디캡 원리가 타당성 없기 때문이거나, 도전한 수리유전학자들이 총명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 중에는 메이너드 스미스도 포함된다. 내 생각으로는 전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 P311

바이러스는 도망친 ‘반역’ 유전자에서 진화한 것으로, 이제는 정자와 난자라고 하는 일반적 운송 수단에 얽매이지 않고 생물의 몸에서 몸으로 직접 공중을 여행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가설이 제기되었다. 이 가설이 옳다면 우리 자신을 바이러스의 집합체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이 바이러스의 일부는 상리 공생적 협력 관계를 맺고 정자와 난자에 실려 몸에서 몸으로 이동한다. 이들이 관례적인 ‘유전자’다.
- P346

인간의 비대한 대뇌와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성향이 더 교활하게 사기를 치거나 남의 사기를 좀 더 잘 간파하기 위한 메커니즘으로 진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돈은 지연된 호혜적 이타주의의 공식적인 징표다.
- P356

밈 풀(meme pool) 속에서의 신의 밈이 나타내는 생존 가치는 그것이 갖는 강력한 심리적 매력의 결과다. 실존을 둘러싼 심원하고 마음을 괴롭히는 여러 의문에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한 해답을 준다. 그것은 현세의 불공정이 내세에서는 고쳐진다고 말한다. 우리의 불완전함을 ‘영원한 신의 팔’이 구원해 준다고 한다. 이는 마치 의사가 처방하는 가짜 약과 같이 상상을 통해 그 효력을 갖는다. 이것이 신의 관념이 세대를 거쳐 사람의 뇌에 그렇게 쉽게 복사되는 이유 중 하나다. 인간의 문화가 만들어내는 환경 속에서, 신은 높은 생존 가치 또는 감염력을 가진 밈의 형태로만 실제한다.
- P365

맹신이라는 밈은 이성적인 물음을 꺾어 버리는 단순한 무의식적 수단을 행사하여 불멸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맹신은 어떤 것도 정당화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신을 믿고 있거나 같은 신을 믿고 있거나 같은 신을 믿더라도 다른 의식을 행한다면 맹신은 그 사실만으로도 그가 죽어야 한다고 선고할 수 있다. 십자가에 매달거나, 화형을 시키거나, 십자군의 검으로 찌른다거나, 베이루트의 노상에서 사살한다거나, 벨파스트의 술집에서 폭탄을 날린다거나, 그 무엇이든 정당화시킬 수 있다. 맹신의 밈은 특유의 잔인한 방법을 통해 스스로 번식해 간다. 애국적 맹신이든 정치적 맹신이든 종교적 맹신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 P373

우리가 사후에 남길 수 잇는 것은 유전자와 밈 두 가지다.
- P375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 P378

크리스마스에 영국과 독일 부대가 중간 지대에서 일시적으로 전투를 중단하고 같이 술을 마신 일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암암리에 ‘우리도 살고 남도 살리자 live and let live‘라는 불가침 협정이 모든 전선에서 1914년부터 적어도 2년간 착실히 지켜졌다는 사실은 별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나에게는 이 사실이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 P416

TFT(tit for tat)류의 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경기자가 배신에 의해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보복의 위협은 항상 존재해야 한다. 보복할 수 있음을 과시하는 것은 ’우리도 살고 남도 살리자‘ 방식의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양 진영에서의 일급 사격수들은 적군 병사들이 아니라 적군 병사들 가까이에 있는 무생물의 표적을 향해 놀랄 만한 사격 솜씨를 과시한다. 이 기교는 서부 활극 영화에도 나온다. (촛불을 쏘아 끄듯이). 왜 최초의 두 원자 폭탄이 (그 개발을 담당했던 일류 물리학자들이 강하게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란한 촛불 사격과 같은 방식으로 사용되지 않고 두 도시를 파괴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누구도 만족스러운 해답을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 P418

여태까지 병목형 생활사가 왜 분명히 구분된 단위 운반자로서 생물 개체의 진화를 촉진하는가에 대해 세 가지 이유를 살펴보았다. 이 세 가지에는 각각 ‘제도팜으로의 회귀’, ‘주기의 규칙성’, ‘세포의 획일성’이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다.
- P478

옌Yan Wong은 옥수퍼드대학 뉴 칼리지 소속 내 학부생 제자였는데, 그가 나한테 배운 것보다 내가 그한테 배운 것이 훨씬 많다. 옌은 대학원 시절에는 애런 그라펜Alan Grafen의 제자였는데, 앨런도 학부생 때는 내 제자였고 학부를 졸업하고도 내 제자가 되었으며 지금은 내 지적 스승이 되었다. 그리 옌은 내 학생이기도 하고 내 손주 학생 -앞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되는 근연도에 대한 멋진 밈적 비유- 이기도 하다. 물론 문화가 유전되는 방향은 이런 간단한 말로 나타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지만 말이다.
- P495

개인적으로 나는 오히려 컴퓨터 프로그램이 (체스의-인용자) 세계 선수권을 석권할 것을 기대한다. 인간성humanity은 겸손humility의 교훈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 P514

철학 교육을 지나치게 받은 일부의 사람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에도 그 학문적 도구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싶어 안달이 나는 모양이다. ‘고도의 문학적, 학문적 취미를 가졌으나 자신의 분석적 사고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교육을 받아 온 많은 사람들’이 ‘허황된 철학 이야기’에 매력을 갖는다는 메더워의 말이 생각나다.
- P515

형제가 공유하고 있는 1/2은 모든 개체가 공유하는 90퍼센트( 그 수치가 어떻든 간에)를 빼고 난 나머지 유전자의 1/2을 말한다는 것이다.
- P531

로즈, 카민, 르원틴은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에서 ‘환원주의’라는 두려움의 존재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최고의 환원주의자는 ‘결정론자’일 것이며, 더 적합하게는 ‘유전자 결정론자’일 것이라고 말한다. (중략) 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믿기 어렵겠지만), 유전자가 인간 행동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견지와, 그 영향력이 다른 요인에 의해 무효가 되거나 전혀 반대 양상이 나타나거나 하는 식으로 조정될 수 있다는 견지를 동시에 갖는 것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점이다. 유전자는 자연선택을 거쳐 진화한 모든 행동 양상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력을 반드시 행사한다. (아래에 계속) - P596

(위에서 계속)
로즈 등도 다른 모든 형질이 자연선택을 거쳐 진화한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성적 욕구가 자연선택을 거쳐 진화했다고 믿을 것이다. 따라서 유전자가 다른 무엇에라도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적 욕구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가 있었다는 것에도 동의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들은 아마도 사회적으로 필요하다 싶을 때에는 별문제 없이 성적 욕구를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원적 아닌가? 분명히 아니다. 그리고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대한 반역’을 내가 옹호하는 것도 이원적이 아니다.
- P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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