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 4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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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신입생 때 <이기적 유전자>를 처음 읽었다. 생물학 관련 교양 과목들의 필독 도서여서 내 또래의 이과 대학생들 대부분이 읽었을 것 같다. "생명의 이해"라는 꽤 재미있었던 3학점 짜리 수업에서, 이 책과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를 가지고 레포트를 써서 제출했던 기억이 난다.



   24년 만에 다시 읽은 <이기적 유전자>는 그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스무 살 때는 그냥 열심히 공부하면서 읽었던 책인데, 마흔넷에 다시 보니 대박 재미있다!!!. 그 동안 나의 인생, 나의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것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책에 나오는 설명들을 나의 삶에 대입시켜서 생각해 보는 것이 엄청나게 재미있었다. 지금까지 경험하고 관찰해 온 많은 인간 행동과 사회 현상들이 도킨즈의 이론을 통해 심플하면서도 분명하게 설명되고 해석된다. 이 책에서의 도킨즈는 머리가 좋고 유머러스하며, 냉철하지만 망설임 없이 싸움에 임한다. 책 전체에 매력이 철철 넘친다.이제 중년이 된 20여 년 전의 대학생 독자가 혹시 이 책을 다시 읽을까 생각하며 나의 리뷰를 보고 계신다면, 꼭 다시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지금 바닷속을 유유히 떠다니는 자기 복제자(replicators)를 찾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들은 이미 먼 옛날에 자유를 포기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기 복제자는 덜거덕거리는 거대한 로봇 속에서 바깥세상과 차단된 채 안전하게 집단으로 떼지어 살면서, 복잡한 바깥세상과 의사소통하고 원격 조정기로 바깥세상을 조종한다. 그들은 당신 안에도 내 안에도 있다. 그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론적 근거이기도 하다. 자기 복제자는 기나긴 길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이제 그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며, 우리는 그들의 생존 기계(survival machine)다.
- P75

개체는 안정적이지 않다. 정처 없이 떠도는 존재다. 염색체 또한 트럼프 카드의 패처럼 섞이고 사라진다. 그러나 섞인 카드 자체는 살아남는다. 바로 이 카드가 유전자다. 유전자는 교차에 의해서 파괴되지 않고 단지 파트너를 바꾸어 행진을 계속할 따름이다. 물론 유전자들은 계속 행진한다. 그것이 그들의 임무다. 유전자들은 자기 복제이고 우리는 그들의 생존 기계다. 우리의 임무를 다하면 우리는 폐기된다. 그러나 유전자는 지질학적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이며, 영원하다.
- P100

사자는 영양을 잡아먹고 싶어 하나 영양은 전혀 생각이 다르다. 보통 이것을 자원에 대한 경쟁이라고는 보지 않는 경향이 있으나,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때의 자원은 고기다. 사자의 유전자는 자기의 생존 기계의 먹이로서 그 고기를 ‘원한다’. 영양의 유전자는 자기의 생존 기계를 위해 일하는 근육이나 기관으로서 그 고기를 필요로 한다. 그 고기의 두 가지 용도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것이다.
- P179

대개의 경우 (영역 동물의: 인용자 주) 암컷은 영역이 없는 수컷과는 짝짓기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짝지은 수컷이 다른 수컷에게 패해 그 영역의 주인이 바뀌면 암컷이 재빠르게 그 승자에게 들러붙는 일도 종종 있다. 성실하게 일부일처제를 지키는 종의 경우에도 암컷이 수컷 그 자체와 결속하기보다는 오히려 수컷이 소유하는 영역과 결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P230

복지 국가란 지금까지 동물계에 나타난 이타적 시스템 중 아마도 가장 위대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타적 시스템도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그것은 그 시스템을 착취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이기적 개체에게 남용당할 여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키울 수 있는 것 이상의 아이를 낳은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무지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므로, 그들이 의식적으로 악용을 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나는 다수의 아이를 낳도록 의도적으로 선동하는 지도자나 강력한 조직에 대해서는 그 혐의를 풀 수 없다고 생각한다.
- P237

여성이 자기가 낳은 아이가 어른이 될 평균 확률이 동갑내기 손자가 어른이 될 확률의 1/2보다 낮아지는 연령에 도달할 때, 자기 아이보다 오히려 손자 쪽으로 투자하게 하는 유전자가 유리하게 되어 번창할 것이다. 이 유전자는 손자 네 명당 한 명의 비율로 전해지는 반면, 그것과 경쟁 관계에 있는 유전자는 자식 두 명당 한 명에게 옮겨지지만, 손자의 기대 수명이 이 관계를 역전시키기 때문에 ‘손자에 대한 이타적 행동’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유전자 풀 속에 널리 퍼지게 된다. 자기 아이를 계속 낳는 여성은 손자에게 충분히 투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년기에 이른 여성이 번식 능력을 상실하도록 작용하는 유전자가 점점 증가했을 것이다.
- P255

(물고기의-인용자) 암컷은 수컷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난자를 빨리 방출했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다. 난자는 비교적 크고 무거워서 잠시 동안 한 덩어리가 되어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고기의 암컷은 먼저 산란하는 ‘위험’을 감수할 여유가 있다. 반면 물고기의 수컷은 이런 위험을 감수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수컷이 서둘러 정자를 방출해 버리면 암컷이 준비되기 전에 정자가 흩어져 버릴 것이고 그러면 암컷은 난자를 방출할 가치가 없으므로 산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확산 문제 때문에 수컷은 우선 암컷이 난자를 방출하기를 기다렸다가 정자를 뿌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덕분에 암컷은 실로 귀중한 몇 초를 얻을 수 있다. 그 사이에 사라짐으로써 난자를 수컷에게 떠맡겨 수컷을 트리버스의 딜레마에 빠뜨릴 수 있다. 그래서 이 이론은 수컷의 자식 돌보기가 왜 물속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고 건조한 육상에서는 보기 드문 일인지를 깔끔하게 설명한다.
- P304

현재까지 핸디캡 원리를 타당한 모델로 만들려는 수리유전학자들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이는 핸디캡 원리가 타당성 없기 때문이거나, 도전한 수리유전학자들이 총명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 중에는 메이너드 스미스도 포함된다. 내 생각으로는 전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 P311

바이러스는 도망친 ‘반역’ 유전자에서 진화한 것으로, 이제는 정자와 난자라고 하는 일반적 운송 수단에 얽매이지 않고 생물의 몸에서 몸으로 직접 공중을 여행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가설이 제기되었다. 이 가설이 옳다면 우리 자신을 바이러스의 집합체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이 바이러스의 일부는 상리 공생적 협력 관계를 맺고 정자와 난자에 실려 몸에서 몸으로 이동한다. 이들이 관례적인 ‘유전자’다.
- P346

인간의 비대한 대뇌와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성향이 더 교활하게 사기를 치거나 남의 사기를 좀 더 잘 간파하기 위한 메커니즘으로 진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돈은 지연된 호혜적 이타주의의 공식적인 징표다.
- P356

밈 풀(meme pool) 속에서의 신의 밈이 나타내는 생존 가치는 그것이 갖는 강력한 심리적 매력의 결과다. 실존을 둘러싼 심원하고 마음을 괴롭히는 여러 의문에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한 해답을 준다. 그것은 현세의 불공정이 내세에서는 고쳐진다고 말한다. 우리의 불완전함을 ‘영원한 신의 팔’이 구원해 준다고 한다. 이는 마치 의사가 처방하는 가짜 약과 같이 상상을 통해 그 효력을 갖는다. 이것이 신의 관념이 세대를 거쳐 사람의 뇌에 그렇게 쉽게 복사되는 이유 중 하나다. 인간의 문화가 만들어내는 환경 속에서, 신은 높은 생존 가치 또는 감염력을 가진 밈의 형태로만 실제한다.
- P365

맹신이라는 밈은 이성적인 물음을 꺾어 버리는 단순한 무의식적 수단을 행사하여 불멸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맹신은 어떤 것도 정당화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신을 믿고 있거나 같은 신을 믿고 있거나 같은 신을 믿더라도 다른 의식을 행한다면 맹신은 그 사실만으로도 그가 죽어야 한다고 선고할 수 있다. 십자가에 매달거나, 화형을 시키거나, 십자군의 검으로 찌른다거나, 베이루트의 노상에서 사살한다거나, 벨파스트의 술집에서 폭탄을 날린다거나, 그 무엇이든 정당화시킬 수 있다. 맹신의 밈은 특유의 잔인한 방법을 통해 스스로 번식해 간다. 애국적 맹신이든 정치적 맹신이든 종교적 맹신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 P373

우리가 사후에 남길 수 잇는 것은 유전자와 밈 두 가지다.
- P375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 P378

크리스마스에 영국과 독일 부대가 중간 지대에서 일시적으로 전투를 중단하고 같이 술을 마신 일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암암리에 ‘우리도 살고 남도 살리자 live and let live‘라는 불가침 협정이 모든 전선에서 1914년부터 적어도 2년간 착실히 지켜졌다는 사실은 별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나에게는 이 사실이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 P416

TFT(tit for tat)류의 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경기자가 배신에 의해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보복의 위협은 항상 존재해야 한다. 보복할 수 있음을 과시하는 것은 ’우리도 살고 남도 살리자‘ 방식의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양 진영에서의 일급 사격수들은 적군 병사들이 아니라 적군 병사들 가까이에 있는 무생물의 표적을 향해 놀랄 만한 사격 솜씨를 과시한다. 이 기교는 서부 활극 영화에도 나온다. (촛불을 쏘아 끄듯이). 왜 최초의 두 원자 폭탄이 (그 개발을 담당했던 일류 물리학자들이 강하게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란한 촛불 사격과 같은 방식으로 사용되지 않고 두 도시를 파괴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누구도 만족스러운 해답을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 P418

여태까지 병목형 생활사가 왜 분명히 구분된 단위 운반자로서 생물 개체의 진화를 촉진하는가에 대해 세 가지 이유를 살펴보았다. 이 세 가지에는 각각 ‘제도팜으로의 회귀’, ‘주기의 규칙성’, ‘세포의 획일성’이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다.
- P478

옌Yan Wong은 옥수퍼드대학 뉴 칼리지 소속 내 학부생 제자였는데, 그가 나한테 배운 것보다 내가 그한테 배운 것이 훨씬 많다. 옌은 대학원 시절에는 애런 그라펜Alan Grafen의 제자였는데, 앨런도 학부생 때는 내 제자였고 학부를 졸업하고도 내 제자가 되었으며 지금은 내 지적 스승이 되었다. 그리 옌은 내 학생이기도 하고 내 손주 학생 -앞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되는 근연도에 대한 멋진 밈적 비유- 이기도 하다. 물론 문화가 유전되는 방향은 이런 간단한 말로 나타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지만 말이다.
- P495

개인적으로 나는 오히려 컴퓨터 프로그램이 (체스의-인용자) 세계 선수권을 석권할 것을 기대한다. 인간성humanity은 겸손humility의 교훈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 P514

철학 교육을 지나치게 받은 일부의 사람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에도 그 학문적 도구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싶어 안달이 나는 모양이다. ‘고도의 문학적, 학문적 취미를 가졌으나 자신의 분석적 사고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교육을 받아 온 많은 사람들’이 ‘허황된 철학 이야기’에 매력을 갖는다는 메더워의 말이 생각나다.
- P515

형제가 공유하고 있는 1/2은 모든 개체가 공유하는 90퍼센트( 그 수치가 어떻든 간에)를 빼고 난 나머지 유전자의 1/2을 말한다는 것이다.
- P531

로즈, 카민, 르원틴은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에서 ‘환원주의’라는 두려움의 존재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최고의 환원주의자는 ‘결정론자’일 것이며, 더 적합하게는 ‘유전자 결정론자’일 것이라고 말한다. (중략) 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믿기 어렵겠지만), 유전자가 인간 행동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견지와, 그 영향력이 다른 요인에 의해 무효가 되거나 전혀 반대 양상이 나타나거나 하는 식으로 조정될 수 있다는 견지를 동시에 갖는 것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점이다. 유전자는 자연선택을 거쳐 진화한 모든 행동 양상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력을 반드시 행사한다. (아래에 계속) - P596

(위에서 계속)
로즈 등도 다른 모든 형질이 자연선택을 거쳐 진화한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성적 욕구가 자연선택을 거쳐 진화했다고 믿을 것이다. 따라서 유전자가 다른 무엇에라도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적 욕구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가 있었다는 것에도 동의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들은 아마도 사회적으로 필요하다 싶을 때에는 별문제 없이 성적 욕구를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원적 아닌가? 분명히 아니다. 그리고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대한 반역’을 내가 옹호하는 것도 이원적이 아니다.
- P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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