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 개정판
데이비드 콰먼 지음, 강병철 옮김 / 꿈꿀자유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과학적 사실들에 대한 친절하고 이해하기 쉬운 설명, 몸을 아끼지 않고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체험한 모험들의 생생한 기록 , 여러 인물들에 대한 매력적인 묘사, 세련되고 지적인 유머가 있는 책이다. 

양도 아주 넉넉해서 오랫동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포식자란 외부로부터 먹잇감을 찾아 잡아먹는 비교적 큰 맹수들이다. 반면 병원체(바이러스 등 질병을 일으키는 매개체)는 내부로부터 먹잇감을 찾아 잡아먹는 비교적 작은 맹수들이다.
- P26

실험실에서 일하는 바이러스학자들은 왁자지껄 떠들고 다니는 타입이 아니다. 술집에서 과장된 손짓을 해가며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는지 자랑삼아 떠벌이는 바이러스학자는 없다. 이들은 대개 핵엔지니어처럼 집중력이 뛰어나고 말쑥하며 조용하다. 하지만 야생에서 바이러스가 어디 사는지 찾아내는 일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예를 들어 그리즐리 곰을 잡아 서식지를 옮겨놓는 일처럼 위험수준을 통제하기 어려운 현장업무다. 물론 야생에서 바이러스를 추적하는 사람들 또한 실험실의 전문가들처럼 소란스럽고 부주의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럴 여유도 없다. 그러나 그들의 일은 훨씬 시끄럽고 어수선하며 예측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다.
- P33

내게 수학이란 직접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번역된 문학작품을 통해 존경심을 갖고 있는 언어와 비슷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러시아 문학이나 카프카, 무질, 토마스 만 등의 독일 문학과 같달까. 학창시절에는 라틴어만큼이나 대수학도 열심히 공부했지만 타고난 재주가 신통치 않았던지 아이네이스의 비밀스런 음율만큼이나 미분방정식의 오묘한 음악도 도통 내 귀엔 들리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20세기 초에 말라리아와 다른 감염병의 유행을 둘러싼 연구에서 비롯된 다른 두 가지 수학적 질병이론이 중요할 뿐 아니라 흥미롭다고 말한다면 독자들은 믿어도 좋을 것이다. 나같은 사람조차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면 틀림없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P178

"현장에서 일하시나요?"
"아니요. 저는 분자생물학자입니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에게 주택 페인트 작업도 하느냐고 질문한 격이었을지 모르지만 레오 푼Leo Poon은 불쾌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칭찬할 사람을 칭찬하는 데도 인색하지 않았다. 제 동료 중에 고양이과 야생동물을 연구하는 구안 이Guan Yi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역학자의 감각을 지니고 있는 데다 황동으로 만든 마카크원숭이만큼이나 배짱이 좋지요. 이 친구가 중국에 가서 지방 관리들을 구워삶았답니다. 선전에서 살아 있는 동물을 취급하는 시장 중에 제일 큰 곳을 찾아가 동물들의 인후와 항문, 그리고 배설강에서 면봉으로 검체들을 채취해왔다지 뭡니까.
- P230

그러나 어쩌면 가장 중요한 또 한 가지 요인은 SARS-CoV가 인체를 침범하는 방식 자체일 것이다. 우선 증상이 감염력이 매우 높아지기 전에 나타난다. 두통, 발열, 오한, 아마 기침까지도 본격적으로 바이러스를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리기 전에 시작된다. (중략) 독감을 비롯한 많은 질병에서는 이 순서가 반대다. 증상이 나타나기 며칠 전부터 이미 감염을 퍼뜨리고 다닌다. 위험이 닥친 후에야 경고가 따라오는 셈이다. 사스라는 질병이 이랬다먼 2003년 유행은 그리 쉽게 끝나지 않고 훨씬 암울하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 P258

11월의 코네티컷 숲 속에 사는 흰꼬리사슴은 금요일 밤 맨해튼 남부의 독신자 전용 술집만큼이나 짝을 찾는 음란한 동물들로 바글거린다. 불쌍하게도 암사슴 한 마리의 몸 위에 검은다리진드기 성체가 1천 마리 정도 붙어 있을 수도 있다. 사슴의 피부를 기어다니던 진드기 수컷이 이미 자리를 잡고 사슴의 피를 빠느라 꼼짝할 수 없는 암컷과 마주치는 순간 짝짓기가 이루어지는데 이때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절지동물의 섹스에 로맨스 따위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배를 채운 암컷과 욕정을 채운 수컷은 사슴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다른 파트너를 찾는다. 이런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므로 4주에 걸친 진드기 생식 기간 동안 한 마리의 흰꼬리사슴이 200만 개의 진드기 수정란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혈액을 공급한다. 반만 부화해도 사슴 한 마리당 백만 마리의 유충이 기생하게 된다.
- P314

오스트펠트Richard Ostfeld는 ‘모든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 생태학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지 않다. 그건 모호하고 뻔한 소리일 뿐이다. 과학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동물종이 다른 동물종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어떻게 변화나 교란이 일어나고, 그 결과는 어떤 것인지 이해하는 일이다.
- P324

광견병의 숙주는 대개 개나 여우, 스컹크, 또는 날카로운 이빨로 다른 동물을 무는 육식동물이다. 광견병 바이러스는 이들의 뇌로 들어가 공격적인 행동을 유발한다. 숙주는 미쳐 날뛰며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다. 그 사이에 바이러스는 뇌뿐만 아니라 침샘으로도 이동한다. 침을 통해 새로운 희생자의 몸속으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결국 숙주가 광견병으로 죽거나, 애티커스 핀치Atticus Finch의 총에 맞아 죽더라도 바이러스는 새로운 숙주를 전염시키는 데 성공한다.
- P372

마지막 박쥐를 놓아주기 전에 앱스타인Jon Epstein은 아리프의 통역으로 주민들에게 짧게 연설을 했다. 우선 과일나무와 다른 식물들에게 도움이 되는 멋진 박쥐들이 그토록 많다는 데 대해 마을 사람들의 큰 행운을 축하하며, 자신과 팀원들은 박쥐의 건강을 연구하면서 동물들이 다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주지시켰다. (중략) 나중에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저 여섯 마리 중 얼마나 많은 녀석들이 (니파 바이러스에:인용자)감염되어 있을지 모릅니다. 그게 어려운 점이에요. 완벽하게 건강해 보이죠? 겉으로는 구별해낼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조심을 하는 거지요."
- P427

사람들은 걱정한다. 심각하다는 정도는 어렴풋이 안다. 하지만 과학적인 사실들을 자세히 알아볼 시간이 없고, 관심도 없다. 경험상 그런 주제, 즉 무시무시한 신종 질병이나 치명적인 바이러스, 전 세계적인 유행병에 관해 책을 슨다고 하면 자세한 내용을 궁금해하기보다 결론만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질문한다. "우린 다 죽는 건가요?" 언제부턴가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기로 했다. 물론, 우리는 모두 죽는다.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모두 세금을 내야 하고,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하지만 우리들은 대부분 오리나 침팬지나 박쥐로부터 인간에게 전파된 신종 바이러스보다는 훨씬 평범한 원인들로 죽을 것이다.
- P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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