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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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990년판의 페이지이다.

이 책 속에 담긴 일련의 상징들은 삶의 에피소드, 무대 장치, 오락 따위의 모든 것을 지워 버리고 남은 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 보이고 있다.
- P25

空의 매혹이 뜀박질로 인도하게 되고, 우리가 한 발을 딛고 뛰듯 껑충껑충 이것저것에게로 뛰어가게 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공포심과 매혹이 한데 섞인다. 앞으로 다가가면서도 (동시에 도망쳐) 뒤로 물러나는 것이다. 제자리에 가만히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그칠 사이 없는 움직임의 대가를 받는 날이 찾아오는 것이니, 말 없이 어떤 풍경을 고즈넉이 바라보고만 있어도 욕망은 입을 다물어버리게 된다. 문득 空의 자리에 충만이 들어앉는다. 내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그것은 다만 저 절묘한 순간들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게 하기로 굳게 마음먹은 것은 저 투명한 하늘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空의 매혹 L‘Attrait du Vide>
- P34

나는 그를 사랑한다. 물루는, 내가 잠깰 때마다 세계와 나 사이에 다시 살아나는 저 거리감을 지워 준다. <고양이 물루 Le Chat Mouloud>
- P40

사람을 싫어하는 이들과 이기주의자들은 고양이를 좋아한다. 행동인은 고양이를 좋아할 시간이 없다. <고양이 물루 Le Chat Mouloud>
- P51

그토록 대단한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아 동네에 원수를 많이 만들어 놓은 것이 분명한 이 짐승을 그냥 버리고 떠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중략) 그 집 남자는 고양이라면 원수같이 여긴다고 했다. 그는 개들을 흥분시켜 가지고 고양이를 못살게 만들면서 잔인한 쾌감을 맛보는 것이었다. 안될 일이었다. 물루를 남에게 맡기고 간다는 것은 못할 짓이었다. 동네 안에 그를 미워하는 적이 있다면 결국 그가 끊임없이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그를 희생시키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저 고통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고작인 형편이었다. 수의사인 쎄르벨 씨가 한 마리에 12프랑씩을 받고 개나 고양이를 죽여 준다는 소문이 있었다. 출발 전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마음을 정했다. <고양이 물루 Le Chat Mouloud>
- P58

혼자서 살다가 혼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은 생각만 해도 심장이 멈춰 버릴 것만 같다. 터무니 없는 직분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는 반항심을 불러일으킨다. 러시아 사람들이 笞刑과 시베리아 수용소에 의하여 얻어낸 안이한 효과를 구하지 않고 비밀과 가난 속에 은신할 때 우리는 모멸에 의하여 靈感에 몸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어떤 여행자가 쓴 케르겔렌 群島의 묘사로 이 글을 끝내고자 한다. 이 묘사는 내가 다가가고 있는 명상의 방향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케르겔렌 군도는 선박이 다니는 일체의 항로 밖에 위치하고 있어서...... 약 삼백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잇고 그 해안에는 흔히 안개가 끼어 있으며 그 주위에는 위험한 암초들이 둘러싸고 있으므로 그곳에 접근하는 선박들은 극도로 경계한다....... 그 고장의 내부는 완전히 황폐하고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케르겔렌 群島 Les Iles Kerguelen>
- P75

나는 획득했다고 그날 나는 몇 번이나 되뇌었다. (1924년 성탄절이었다.) 나는 획득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잃고, 또 헛되이 다시 만회하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그시간에, 내가 꼬집어 말할 수 있는 그 장소에서, 획득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단숨에 획득했다. (중략) 바다 위에 떠가는 꽃들아, 가장 예기치 않은 순간에 보이는 꽃들아, 海草들아, 시체들아, 잠든 갈매기들아, 배의 이물에 갈라지는 그대들아, 아, 내 행운의 섬들아! 아침의 예기치 않은 놀라움들아, 저녁의 희망들아. 나는 그대들을 이따금씩 다시 보게 되려는가? 오직 그대들만이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다. 그대들 속에서만 나는 나 자신의 모습을 알아 볼 수 있다. 티없는 거울아, 빛없는 하늘아, 대상 없는 사랑아. <행운의 섬들 Les Iles Fortunees>
- P85

"당신도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남들과 교제하고 싶고 재미있게 놀고 싶어해요. 다만 당신은 신경이 예민한 분이라 다른 사람들 때문에 기분이 상하고 싶지 않아서 속으로 웅크리기만 하는 거예요. 나도 당신 같았어요. 그 때문에 나는 죽게 된 거예요. 나는 나만을 위해 사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남들을 위해서 살고 있었던 거예요." <復活의 섬 L‘ile de Paques>
- P93

나는 파크 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대목을 열었다. 그 섬은 해골과 뼈들이 널려 있는 거대한 棺과 다를 바 없다. 그 섬이 기막힌 것은 그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오백 개나 되는 거대한 彫像들 때문이다. 그 어느 사멸한 종족이 무엇을 위하여 그것들을 만들어 세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엄청난 우상들이 섬 가장자리에 가물가물한 높이로 세워져서 여행자들을 그토록이나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를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백정은 돌연 정신나간 듯 외치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눈에 보여요, 그것들이 눈에 보여요." 하고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고 그의 얼굴은 겁에 질려 떨리고 있었다. 마치 그가 어떤 우물의 번들거리는 벽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그 우물 위로는 오직 그 야만의 우상들만이 솟아오르는 듯했다. <復活의 섬 L‘ile de Paques>
- P100

어떤 문명에 의해 형성된 어떤 정신의 소유자는 우리들의 문제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자기가 몸담고 사는 사회가 그의 명상을 방해하지 않아 주는 일뿐이다. <상상의 印度 L‘Inde Imaginaire>
- P107

마죄르 호반의 자갈밭과 난간을 따라가며 사는 것은 불가능하니 그저 그것의 영광스러운 대용품들이나 찾을 밖에! 그럼 무엇을? 태양과 바다와 꽃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나에게는 보로메 섬들이 될 것 같다. 그리고 가냘프게 그리고 인간적으로 보호해주는 마른 돌담 하나만으로 나를 격리시켜 주기에 족할 것이고 어느 농가의 문턱에 선 두 그루의 씨프레 나무만으로도 나를 반겨 맞아 주기에 족할 것이니...... 한 번의 악수, 어떤 총명의 표시, 어떤 눈길..... 이런 것들이 바로 이토록 가까운 이토록 잔혹하게 가까운 나의 보로메 섬들일 터이다. <보로메의 섬들 Les Iles Borromees>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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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 SNS부터 에세이까지 재미있고 공감 가는 글쓰기
이다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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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도 별로고, 뒤표지에 있는 “글을 쓰고 싶은데, 정말 쓰고 싶은데.....” 하는 소개 문구에도 공감이 가지 않았다. 무슨 당연한 얘기야? 쓰고 싶으면 쓰면 되지....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별로 기대하지 않고 읽었는데, 내용은 의외로 좋았다. 도움이 될 것 같은 말들이 많았다. 퇴고할 때는 첫 단락을 없애보고 마지막 몇 문장을 지워보라는 얘기는 글을 많이 써 본 경험에서 나온 귀한 충고였다.

  


  읽는 사람은 없는데 쓰고 싶은 사람만 많은 현실에 대한 저자의 불안 섞인 의문에 공감했다. TMI 수필이 잘 팔리는 것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는 친구 사귀는 걸 귀찮아 하는 세태를 보여주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했다. 진짜 친구를 사귀려면 돈도 들고 시간도 들고 감정도 소모되니까, 친구인 척 하는 책을 읽으면서 만족하는 거겠지. 그런데, 그런 식으로 편하게만 살다가 안 그래도 낮은 관계 능력이 더 떨어지면 어쩌지? 이거 좀 위험하지 않나?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기’, ‘나를 불편하게 만든 것에 대해 쓰기’, ‘내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 쓰기’는 어떨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이유, 불편한 이유, 싫어하는 이유다. 나를 들여다보는 글쓰기에서는 특히 이 세 가지가 중요한데, 남에게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길게 쓸수록 좋다. 그 표면적인 ‘이유’가 거짓말일 때가 많아서다.
- P27

소수의 사람들이라도 반드시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면, 그 리뷰는 반드시 읽힌다고 해도 좋다. 폭넓은 소비층이 아니어도 소수의 확실한 팬덤이 있다면, 열성적인 검색을 통해 당신의 글은 독자를 확보하게 된다. 어쩌면 당신 자신이 그런 소수의 충실한 팬덤에 속해 있을지도 모르겠다. 2차 창작, 팬아트는 특정 작품을 완전히 숙지한 사람들이 즐기는 고도의 리뷰 행위이기도 하다. 당신의 글에 앞으로 꾸준히 관심을 가질 독자를 얻기에 좋은 소재 선정일 수 있다.
- P72

조지 손더스는 시러큐스 대학교 학생들을 위한 졸업 연설에서, 삶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에 대해 말했다. 가장 후회되는 순간. 가난? 남에게 보일 만하지 못한 일을 해야 했던 것? 망신당한 일? 노년에 이른 작가가 후회하는 일은, 친절하지 못했던 것이다.
- P132

내가 읽고 싶은 글이 세상에 없어서 내가 쓴다. 남이 읽어주는 것은 그 다음의 행복이다. 일단 쓰는 내가 느끼는 즐거움이 존재한다.
- P133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해 배우던 때의 일이다. (나는 일반상대성이론을 배웠다고만 했기 이해했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유념해달라.) 너무 어려워서 ‘말하자면 이런 건가요?’ 하고 자꾸 이상한 비유를 가져다 대는 학생에게 물리학과 교수가 말했다. "세상에는 한 번 정도 어렵게 어렵게 고민해서 이해해야 하는 것도 있다. 모든 걸 다쉽게 설명할 순 없다. 복잡해서 복잡한데 어떻게 쉽게 풀어주느냐." 필자가 이해를 못해서 어렵게 보이게 쓰는 일도 있지만, 어려운 이야기를 쓰느라 어려워진 글도 있다. 복잡한 현상을 ‘쉽게’ 설명하려고 가지를 다 쳐내고 나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경우도 있다. 철학이 대표적인 경우고, 역사 또한 그렇다. 철학자가 쓴 책을 이해할 수 없어서 해설서(심지어 비전공자의)만 읽고 철학자의 사상에 대해 논할 수는 없다!
- P170

데즈카 오사무는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창작법>에서 만화를 그릴 때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으로 기본적인 인권만은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며, 다음의 세 가지를 주의하라고 썼다. 전쟁이나 재해의 희생자를 놀리는 것, 특정 직업을 깔보는 것, 민족이나 국민, 그리고 대중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꽤 명쾌하지 않은가. 이 정도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의 글을 굳이 읽어야 할지 의문이다.
- P196

퇴고하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중략) (5)고유명사는 맞게 들어갔나 인용은 정확한가 (6)도입부가 길지 않은가. 한 단락을 지워본다. (7)마지막 단락이 지지부진하지 않은가. 몇 문장을 지워본다. (9)반복되는 표현, 습관적으로 쓴 단어(특히 부사와 접속부사)는 없는지. (후략)
- P197

소설의 인기는 전 같지 않고, 자기계발서도 전만큼 읽히지 않는다. 인기 에세이의 주인공 중에는 ‘보노보노’ ‘곰돌이 푸’가 있다. 귀염성 없는 인간과 싸워도 승산이 없는데 보노보노와 싸워 이길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 P212

이런 책들의 내용을 TMI에 비유한 것은, 우울증에 대한 책이라고 우울증 얘기만 있는 게 아니고, 떡볶이 얘기도 등장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중략) 그렇게 특정된 사연은 특정된 독자를 불러 모은다. 공감, 혹은 창작자가 읽는 나를 ‘알아(봐)준다’는 느낌이 중요해졌다. 책을 한 권 읽으면 같은 고민을 가진 한 사람의 친구를 얻는 것과 같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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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니샤드 - 인간의 자기 발견에 대한 기록
정창영 옮김 / 무지개다리너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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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힌두교 스승들의 가르침인 <우파니샤드>를 읽는 내내 종교라는 것들은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힌두교의 가르침은 불교와 특히 비슷하지만, 도교와도 비슷하고, 기독교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 생각에 종교란 뇌의 특정한 생화학 반응에서 비롯되는 신비 체험과 대중을 움직이게 만드는 이야기의 조합인 듯하다. 대중에게 그들이 바라는 '잘 모르겠지만 대단해 보이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제공해주는 종교는 대중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 종교의 결과는 좋은 쪽으로 나올 수도 있지만 터무니 없이 나쁜 쪽으로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성 있는 자들은 마땅히 종교를 경계해야 한다.




카타 우파니샤드 3부 3장 4절
육체를 벗기 전에 브라만을 깨달으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물질과 육체의 속박에서 영원히 벗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육체를 입고 여러 세상에 거듭거듭 태어나지 않을 수 없다.
- P54

카타 우파니샤드 3부 3장 14절
마음 속에 있는 모든 욕망을 포기하면 죽을 존재가 불멸의 존재가 된다. 가슴을 얽어매고 있는 모든 매듭이 풀리면 죽을 존재가 불멸의 존재가 된다. 그는 이 세상에서 살면서도 완전한 자유를 누린다. 이것이 우파니샤드 가르침의 결론이다.
- P57

문다카 우파니샤드 3부 1장 1절
늘 함께 다니는 정다운 새 두 마리가 같은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 그 가운데 한 마리는 열매를 딱먹느라고 정신이 없다. 하지만 다른 한 마리는 아무 집착이 없어 열매를 탐닉하고 있는 친구를 초연하게 바라보고만 있다. 열매를 탐닉하고 있는 새는 에고이고, 그것을 초연하게 바라보고 있는 새는 참 자아이다. 그 둘이 함께 앉아 있는 나무는 육체이고 열매를 탐닉하는 새가 따먹고 있는 열매는 행위이다.
- P84

슈베타슈바타라 우파니샤드 2장 10절
명상에 적합한 장소를 찾아라. 깨끗하고 조용하고 시원하고 너무 높지도 않고 너무 낮지도 않고 바닥에 울퉁불퉁한 돌이 없고 먼지가 많이 일지 않고 비와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동굴 같은 곳, 그러나 너무 안락하지 않은 곳을 찾아 그곳에서 명상 수행에 몰두하라.
- P106

슈베타슈타바라 우파니샤드 2장 12절
요가 수행자가 강인한 수행을 통해 5가지 원소로 구성된 육체를 통제할 수 있게 되면 질병과 늙음과 죽음을 뛰어넘는 새로운 육신을 얻는다. 수행의 첫 번째 결과는 육체의 건강이다. 몸의 이곳저곳에 쌓이 불순물이 제거되고 피부과 탄력과 윤택을 되찾으며 목소리가 부드러워지고 몸에서 향기가 난다. 이런 증거가 나타나면 수행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보아도 된다.
- P106

만두키야 우파니샤드 2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브라만이다. 참 자아 아트만이 곧 이 브라만이다.
- P168

브리하다란야카 우파니샤드 4부 4장 5절
사람은 행하는 그대로 됩니다. 선한 행위를 하면 선한 사람이 되고 악한 행위를 하면 악한 사람이 됩니다. 선한 행위는 사람을 순수하게 만들고 악한 행위는 사람을 더럽힙니다. 인간은 자신의 영혼이 바라는 대로 되는 존재입니다. 바라는 대로 의지가 형성되고 의지는 행위를 낳고 행위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행위에 따라 그에 걸맞는 결과가 따라옵니다.
- P197

이샤 우파니샤드 1절
변하는 세상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브라만의 품안에 있다. 그러니 인간들이여, 집착을 버리고 브라만 안에서 영원한 기쁨을 찾으라. 모든 것이 브라만에게 속해 있으니 무엇을 갖고자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 인위적인 욕망을 품지 말고 그때그때 주어지는 것을 수용하며 자기가 해야 할 행위를 하라. 그러면 이 세상 일로 하여 더 이상 고통 받지 않으리라.
- P215

찬도기야 우파니샤드 3부 18장 1절
육체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모든 사람의 마음을 브라만으로 알고 숭배해야 한다. 모든 사람의 마음이 브라만이기 때문이다. 신적인 능력의 입장에서 본다면, 허공을 브라만으로 알고 숭배해야 한다. 마음과 허공은 둘 다 텅 비어 있으면서 충만한 닮은꼴이다.
- P229

찬도기야 우파니샤드 4부 4장 3절
사트야카마는 히라드루마타 가우타마를 찾아가서 말했다.
"선생님,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가우타마가 물었다.
"자네는 어느 가문 출신인가?"
"죄송합니다만 그걸 모릅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머니께서 젊었을 때 하녀로 이집 저집 옮겨 다니는 도중에 저를 낳았기 때문에 누구의 피를 받았는지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저의 어머니께서는 제 이름은 사트야카마이고 저의 어머니 이름은 자발라이니까 제 이름을 사트야카마 자발라라고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스승 가우타마는 감탄하며 말했다.
"진정한 브라만 가문 출신이 아니면 그 누구도 그대처럼 진실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너를 제자로 받아들이겠다. 부디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라."
- P231

찬도기야 우파니샤드 6부 16장 1절
사람들이 재판장에게 어떤 사람을 두 손을 꽁꽁 묶은 채로 끌고 와서 "이 사람이 도둑질을 했소. 벌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끌려온 사람은 자기는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고 끝까지 부인했다. 그러면 재판장은 도끼 자루를 불에 달구어서 그 자루를 잡아보라고 한다. 그러면 겁을 먹고 도둑질을 했다고 자백을 하든지, 아니면 뜨거운 도끼 자루를 잡아 손을 데고 형벌을 받게 되든지 한다. 그러나 정말로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결백을 맹세하고 도끼 자루를 잡는다. 그가 진정으로 결백하다면 그 진실이 그를 보호하여 뜨겁게 달구어진 도끼 자루를 잡아도 손을 데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풀려난다. 진실을 말하기로 맹세한 사람이 실제로 결백하다면 뜨거운 도끼 자루를 잡아도 손을 데지 않는 것처럼, 진실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거듭해서 태어난다.
- P246

타이티리야 우파니샤드 3부 10장 1절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마라. 이것은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다. 배고픈 사람이 찾아올 것을 대비해 항상 음식을 준비해두어라. 배고픈 사람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하면 자기도 좋은 음식을 받고, 적당히 대접하면 자기도 그렇게 받을 것이고, 소홀하게 대접하면 자기에게도 음식이 늘 부족하리라.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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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그 자리에 - 첫사랑부터 마지막 이야기까지
올리버 색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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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여름엔 ‘영국 신사’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몇 차례 했다. 조지 오웰의 책을 전부 읽은 것을 시작으로 해서, 윌리엄 새커리의 <허영의 시장>을 읽었고, 데이비드 호크니의 전시회를 보고 왔고, 이번에는 올리버 색스다. 번역서가 굉장히 많이 나와 있는 유명한 사람 같은데, 뒤늦게라도 알게 되어서 기쁘다. 


  1부는 어린 시절 이야기, 2부는 신경과 의사로 일하면서 만난 환자들의 사례를 더한 뇌 이야기, 3부는 죽음으로 다가가는 노년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엄청나게 기발한 내용은 아니지만 시종일관 지적이고 교양이 넘쳐서 기분 좋게 읽을 수 있었다. 지나간 시대의 미덕을 잘 간직하고 있는 80대의 지적인 노인과 여유롭게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이 정말 좋았다. 


  처자식 이야기가 없어서 게이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역시 그랬다. 유럽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법적 처벌을 없애는 계기가 된 것은 나폴레옹 점령에 따른 법 체계의 정비였다고 한다. 그래서 영국을 비롯해 나폴레옹에게 점령되지 않은 나라들은 20세기에도 동성애를 가혹하게 처벌했다는데, 그런 분위기가 호크니와 색스의 미국 이주에도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싶다. 젊은 시절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인 미국을 동경했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여기에도 그런 맥락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올해의 독서 경험을 근거로 판단하기에, 영국의 신사 교육은 매우 훌륭하다. 그 전통 있는 지적 토양에서 자라난 사립학교의 도련님들이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과학의 연구로 인류에 공헌해 왔다니, 건강하면서도 낭만적인, 아름다운 이야기다.


내가 사우스켄싱턴에서 맨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은 언제나 과학박물관이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내가 제일 처음 방문했던 박물관으로, 내게는 고향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어린 시절, 어머니는 간혹 나와 형들을 그곳에 데려가곤 했다. (중략) 어머니는 손가락으로 구식 탄광램프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나의 아버지, 그러니까 너희 외할아버지가 저걸 발명하셨단다." 고개를 숙여 안내판을 들여다보니, 다음과 같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이 란다우 램프Landau lamp는 1869년 마르쿠스 란다우에 의해 발명되어, 험프리 데이비 램프를 대체했다." 그 후로 나는 그 안내판을 읽을 때마다 이상야릇한 흥분을 느끼며, 그 박물관과 (1837년에 태어나 돌아가신 지 한참 지난) 외할아버지에 대한 개인적 유대관계를 느꼈다.
- P20

자연법칙의 위엄성과 불변성, 그리고 우리가 충분히 노력하면 이해할 수 있다는 느낌은 사우스켄싱턴 과학박물관의 주기율표 앞에 선 열 살짜리 소년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그 느낌은 평생 동안 나를 떠나지 않았으며, 50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조금도 퇴색하지 않았다.
- P22

환각은 그 내용이 계시적이든 평범하든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며, 인간의 의식과 경험의 통상적 범위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영적 생활에서 나름의 역할을 담당하고, 개인에게 커다란 의미를 제공할 수 있음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믿음의 근거로 삼고, 그것을 바탕으로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지만, 환각이 여하한 형이상학적 존재나 장소의 존재에 대한 근거를 제공할 수는 없다. 그것은 환각을 창조하는 뇌의 힘에 대한 근거를 제공할 뿐이다.
- P120

만약 우리가 운 좋게 건강한 노년에 도달한다면,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의 열정과 생산성을 유지해주는 것은 ‘삶의 경이로움’일 것이다.
- P215

형 마이클은 열다섯 살 때 급성 정신병에 걸려, 도처에서 ‘메시지’를 보며 자기 생각이 읽히거나 방송되고 있다고 느꼈다. 또한 형은 발작적으로 킥킥거리며, 자신이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1940년대에는 환각제가 드물었으므로, 내 부모님(두 분 다 의사였다)은 마이클이 정신병을 초래하는 질병, 이를테면 갑상샘 질환이나 뇌종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마이클은 조현병에 걸린 것으로 밝혀졌다.
- P234

독서란 매우 복잡한 과제로, 수많은 뇌 영역을 호출한다. 그러나 독서는 언어와 다르다. 즉, 언어는 인간의 뇌에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지만, 독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독서는 인간이 진화를 통해 획득한 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독서는 비교적 최근(아마도 5000년 전)에 진화했으며, 뇌의 시각피질 중 미세한 부분에 의존한다. 우리가 오늘날 시각단어형태영역visual word form area(VWFA)이라고 부른 이 부분은, 좌뇌 뒤쪽 근처에 있는 피질영역의 일부다. (중략) 사람들은 독서와 관련하여 제각기 독특한 신경회로neural pathway를 형성하며, 개인의 독서 행위는 기억과 경험만이 아니라 감각양식sensory modality과도 제각기 독특하게 결합한다.
- P315

그러나 이제 (기적을 용납하지 않는) 인생의 마지막 주간을 맞이하여 (구역질이 너무 심해, 액체나 젤리형 고체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음식물을 삼키기 어렵다), 나는 게필테 피시gefilte fish의 진가를 재발견하고 있다. 비록 한 번에 100그램 이상을 섭취할 수 없지만, 깨어 있는 동안 한 시간에 한 번씩 게필테 피시 1회분을 섭취하면 꼭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받을 수 있다. (중략) 나는 네 살 적에 먹어본 게필테 피시의 맛을 기억하고 있지만, 내 입맛은 그 이전에 이미 형성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정통 유태인 가정에서는 유아의 이유식으로 종종 영양분이 풍부한 게필테 피시의 젤리를 먹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게필테 피시는 인생의 알파요 오메가인 셈이다. 지금으로부터 82년 전 나를 이 세상에 데려다주었듯이, 조만간 나를 이 세상에서 데려갈 테니 말이다.
- P343

나는 좋은 글쓰기, 미술, 음악을 높이 평가하지만, 품위, 상식, 선견지명, 불행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 같은 인간의 미덕을 바탕으로 수렁에 빠진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은 과학뿐이라고 생각한다.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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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사생활
와타나베 유키 지음, 윤재 옮김 / 니케북스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도서관에서 세 번 빌려 읽고 결국 소장하기로 결심했다. 과학적 사실들을 쉬운 말로 재미있게 설명하고 설명을 다시 알기 쉽게 요약해 준다. 읽기 쉬운 문장과 참신한 비유 온화한 유머가 편안하고 즐겁다.


 필자가 너무나 행복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책을 읽다 보면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외딴 곳에서 동물들과 함께 사는 생활의 고달픔이나 거듭된 실패의 괴로움도 연구의 행복 앞에서는 별 일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동물들도 너무 착해 보이고 그들을 따라다니는 과학자들도 다들 너무 착해 보인다.


 과학에 관심 있는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어린 시절 과학을 동경했던 어른들에게도 틀림없이 행복을 전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먹이를 찾기 위해 이동한다는 동기에는 변함이 없다. 앨버트로스가 좋아하는 오징어는 물고기에 비해 유영 능력이 모자란 탓에 해류와 해류의 경계선에서 무리 지어 서식한다. 앨버트로스의 지구 일주 경로는 남극 해류라는, 남극 대륙을 빙그르르 둘러싸고 동쪽으로 흐르는 강한 해류와 딱 겹쳐져 있었다. 그렇다면 왜 모든 앨버트로스가 지구를 일주하지 않는 것일까? 다양한 비행경로는 무엇을 의미할까? 생태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런 경우는 종내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앨버트로스끼리 먹이가 있는 곳을 둘러싸고 격렬한 싸움을 벌인 결과, 최상의 자리를 얻은 강자와 척박한 변두리 땅으로 쫓겨난 약자로 나뉘는 것이다. (중략) 최대 경쟁 상대가 종종 동족 안에 있는 다른 개체라는 사실은 인간 사회에도 꼭 들어맞는, 생태학의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이다. - P47

화장실도 수도도 샤워 시설도 없지만 생활은 간소하고 즐거웠다. 낮 시간에는 내내 조사를 진행하고, 밤이 되면 배불리 먹고 잤다. 그뿐이었다. 식사는 자기가 만들고 싶은 음식을 만들고 싶은 만큼 만들면 된다. (중략) 카레와 밥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빼려 오두막 문을 열면 사냥감을 물고 터벅터벅 둥지로 돌아가고 있는 펭귄의 모습이 보인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행복한 것은 수면 시간. 하얀 숨결이 비치는 빙점 아래 오두막 안에서, 게다가 소리 하나 없이 정적이 흐르는 곳에서 온몸이 폭신폭신한 침낭에 싸이는 행복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따스함을 즐기고 있노라면 왠지 초등학교 시절의 두서없는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어느새 깊은 잠으로 곯아떨어진다.
- P81

관찰하다 보면 부모 새가 샐러리맨처럼 바지런히 바다와 둥지를 왔다 갔다 하며 먹이를 가지고 돌아와 크고 건강한 새끼를 키우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부모 새가 어디서 농땡이를 부리는지 둥지로 돌아오는 빈도가 낮아 새끼가 작고 영양 부족에 시달리는 문제 가정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 다 야생 동물의 자연스러운 모습이겠지만, 기록계를 부착한 부모 새가 둥지로 잘 돌아가지 않으면 곤란하므로 되도록 샐러리맨 부모가 꾸리는 가정으로 대상을 좁혀 나간다.
- P82

그린란드 상어는 여러 가닥의 실과 낚싯바늘이 견결된 주낙으로 낚는데, 우선 먹이를 준비해야 한다. 적당히 다금바리 같은 어류를 쓰려나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제대로 된 노르웨이 방식이 등장했다. 내가 조사선 위에서 기다리는 사이 몇 명의 사람들이 라이플총을 들고서 보트를 타고 나가 커다란 턱수염바다표범을 한 마리 잡아 온 것이다. 우리는 한데 모여 바다표범을 해체해 두께 7-8센티미터에 달하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피하지방을 잘라 주낙 미끼로 썼다. 상어에게는 군침이 돌 미끼였다. 물론 정부의 허가를 받은 사냥이었지만, 어류를ㄹ 잡기 위한 미끼를 구하기 위해 바다표범을 총으로 쏴 죽이는 나라는 노르웨이뿐이다. 역시 바이킹의 후예답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 P99

그는 개복치에 매료되어 개복치와 함께 살기를 결의한, 전 세계에서도 드문 개복치 마니아이다. 그는 개복치 샘플을 모으기 이해서라면 전 일본, 아니 전 세계 어디라도 간다. 손에 넣은 샘플은 하루 종일 계측하고 해체하고 질리지도 않고 자세히 조사한다. 개복치 포를 만들어 방에 걸고, 개복치 티셔츠를 직접 디자인해서 입고, 뿐만 아니라 개복치 센류(川柳)를 지어 트위터에도 올린다. 사와이가 대체 왜 그렇게까지 개복치에게 매료되었느냐, 그 이유가 또한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다. 그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어느 패밀리컴퓨터 게임의 캐릭터가 개복치였는데 그것이 너무 귀여웠다고 한다. 4차원 세계의 개복치에 빠진 사람이 실제 개복치를 해체하고, 소화기관 내 기생충을 조사하고,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린 위 속 내용물을 씻어 현미경으로 관찰하다니, 세상에는 이런 일도 다 있구나, 나는 묘한 감탄을 했다. 이런 연유로 나와 사와이는 둘이 함께 매일 오쓰치 만에서 정치망 어선을 타고 개복치 수집에 나서게 되었다. - P131

오쓰치 만 바깥쪽에 설치된 정치망까지는 배를 타고 편도 20분이 걸린다. 유명 인형극 ‘우연히 마주치 표주박 섬’의 모델이 되었다는 호라이지마의 등대 옆을 빠져 나간 어선은 고요한 밤바다를 미끄러져 나아간다. 그동안 나는 종종 갑판에 걸터앉아 어부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이곳 어부들은 젊은 시절에는 원양어선을 타고, 쉰을 넘길 무렵고향이 오쓰치 정에 돌아와 정치망 어선 일을 하게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자카스펭귄이나 싱가폴에서 유명한 포장마차와 같이 의외의 구석에서 이야기가 잘 통한다. 모우카는 염통을 회 떠서 먹는 게 최고라든가, 카스베는 된장국에 넣는 것이 최고로 맛있다는 등의 어부들만 아는 음식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나오는 것도 재미있다. 진지한 대화 중간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쏟아질 듯 하늘을 가득 메운 별, 별들.
- P133

바이오로깅 데이터 결과에 따르면 개복치의 평균적인 유영 속도는 시속 2.2킬로미터였다. 나와 사와이가 사랑한 물고기, 개복치. 이상야릇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 외모, 몸속 구조, 부력, 헤엄치는 방식까지 특이하지만 유영 속도만은 극히 평범한 물고기.
- P143

쿠이먼은 자신이 연구 프로벡트를 진행하고 있던 남극의 미국 기지로 기록계를 가지고 가 웨델바다표범에 부착했다. 웨델바다표범은 천적이 없기 때문에 남극 얼음 위에 한 마리 오동통한 해삼처럼 누워 유유자적한다. 그런 웨델바다표범을 잡고 기록계를 부착하는 데는 힘들일 일이 없었고, 또한 며칠 뒤 다시 포획해 기록계를 회수하기도 쉬었다. 기기 회수 없이는 데이터를 얻을 수 없는 바이오로깅의 최대 난관은 뜻밖에도 남극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63년 이렇게 느는 웨델바다표범의 잠수 행동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 P164

나 역시 극지연구소 직원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데, 극지연구소 직원에게 가장 큰 일은 남극에 가는 일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나이토가 처음 극지연구소에 들어왔을 당시에는 연구소가 설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인원이 다 갖춰지지 않아 특히 더 큰일이었을 터이다. 일본 남극 관측대는 여름을 보내는 하대는 5개월을, 겨울을 보내는 월동대는 1년 5개월이나 머나먼 여정을 떠나야 한다.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비행기로 날아가는 오늘날 관측대의 일정은 그때보다 약 한 달 가량 짧아졌다. 출장을 반복하다 보면 당연히 일본에 머무를 시간은 거의 없어진다. 나이토 세대의 극지연구소 직원들은 대부분은 30-40대 무렵에 자녀 양육을 거의 돕지 못해서 아직도 가족 앞에서는 고개를 1밀리미터도 들지 못한다. - P175

빨판과 기록계 세트를 긴 막대기 끝에 붙이고 배 위에서 고래의 등을 향해 막대를 뻗어 직접 찰싹 붙인다. 또는 배 위에서 빨판과 기록계 세트를 보건으로 쏘아 원격으로 고래 등에 붙이는 방법도 있다. 나의 대학원 후배이자 오랜 세월 향유고래를 연구하고 있는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 연구원 아오키 카가리는 ‘보건’의 명사수이다. 벌써 10년 가까이 이전 일인데, 대학원생이던 시절 그녀는 조사선에 구비된 쌀가마니 같은 완충재를 가상의 고래로 가정하고 사격 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해 보건 같은 건 어디에서 샀냐고 묻자 "무기상에서 샀어요."라고 슬쩍 대답해 주었는데, 게임도 아니고 무기상이라니, 그런 곳은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걸까. - P233

스크립스 해양연구소에는 ‘거인’ 숄랜더부터 ‘선구자’ 쿠이먼으로 이어지는 정통 잠수 생리학 계보가 있으며, 폰가니스는 그 유서 깊은 흐름을 이어받은 후계자이다. 여담인데, 미국의 연구자들과 대화를 할 때 부러운 것은 그들의 은사 이름을 밝힐 때 반드시 ‘앗!’ 하고 놀랄 만한 전설적인 인물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일본인 연구자들이 감명을 받아 끈질기달 정도로 재독을 거듭한 논문의 저자를 그들은 직접 알 뿐만 아니라 직접 실험의 조언을 받고, 또 더 중요한 연구를 대하는 자세를 배우기도 한다. 매ㅣ국의 높은 학술 수준의 토대에는 은사가 제자에게, 그 제자가 또 자신의 제자에게 대대로 학문을 제대로, 그리고 올바르게 전수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 P245

폰가니스는 여느 사람들과는 다른 일중독자이다. 그와 그의 학생들이 일시적으로 함께 머물던 집에 나도 연이 닿아 일주일 정도 신세를 진 일이 있었다. 나와 학생들이 ‘피곤하다!’를 외치며 침대로 파고들 시간, 폰가니스는 여전히 홀로 책상에 조용히 앉아 있었고, 우리가 ‘잘 잤다’ 하며 일어나기 시작할 시간, 폰가니스는 벌써 책상에 앉아 있었다. 이미 커피도 나와 학생들의 몫까지 정성스레 내려 둔 그에게 경의를 표해야만 할 것 같기도 하고, 면목이 없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이 사람에게는 이길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246

전파 수신은 해발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 우리는 산 중턱에서 바이칼 호 호반을 따라 바라노프의 미츠비시 봉고차를 타고 오를 수 있을 법한 산을 발견하면 즉시 전파 수신기와 안테나를 들고 산 정상에 올랐다. 산 정상에서 전파 수신을 시도해 보고 안 되면 하산, 바로 다음 고지로 향했다. 오직 이것만을 반복했다. 땀범벅이 되어 등산과 하산을 반복하는 우리가 설마 바다표범을 조사하는 중이라고는 아마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그렇게 2주에 걸쳐 전파 탐지를 계속했건만, 들려온 것은 전파 수신기의 변함없는 사악사악하는 노이즈뿐. 나는 작은 단서조차 얻지 못한 채로 바라노프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고 깊은 낙담 속에 귀국하는 처지가 되었다. - P262

일본에 귀국한 지 3주쯤 지났던 어느 날의 일이다. 바라노프에게서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마키타에게 부착했던 기록계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뱃놀이를 하던 관광객이 호수면에 떠오른 기록계를 우연히 발견해 보내 주었다고 했다.
‘잠깐 기다려!’ 하며 나는 연구실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바이칼 호는 이노카시라 공원 연못이 아니다. 규슈만 한 면적을 가진 거대한 호수인 데다 주변에는 울창한 원시림이 들어차 있고, 그 군데군데에는 전기도 통하지 않는 촌락만 띄엄띄엄 자리해 있다. ‘뱃놀이’를 하던 ‘관광객’이 ‘우연히 발견하는 일’ 같은 게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 기적이라고 밖에는 말할 방법이 없다. 분명 우리는 기록계에 "이것을 발견하신 분께는 5000루블을 드리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바라노프의 연락처와 함께 러시아어로 적어 두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呪文이었지, 실제로 이런 일이 가능할 거라 믿은 것은 아니었다. - P263

바이칼바다표범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담수에서만 생식하는 바다표범이다. 담수는 해수에 비해 몸이 쉽게 가라앉기 때문에 몸을 띄우려면 보다 많은 지방이 필요하다. 나의 계산에 따르면 같은 부력을 달성하려면 담수에서는 해수에서보다 30퍼센트 이상 더 많은 지방을 몸에 지녀야만 한다. 한편 에너지 저장고로써의 기능, 방한복으로써의 기능은 담수에서나 해수에서나 다를 바가 없다. 결론을 지어보면, 둥근 공처럼 생긴 바이칼 바다표범의 몸은 특수한 담수 환경에서 중성 뷰력을 달성하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적응해 온 결과이다. - P271

일반적으로 몸이 큰 동물일수록 중력에 반하는 세로 방향 이동을 힘겨워한다. 몸이 작달막한 다람쥐는 힘들이지 않고도 나뭇가지를 수직으로 곧잘 뛰어오르지만, 몸이 큰 코끼리는 야트막한 오르막조차 오르기 힘들어한다. 사람의 경우에도 언덕을 잘 오르는 달리기 선수나 자전거 선수의 몸집은 대부분 작다. (중략) 체중이 2배 큰 동물은 고도를 1미터 올리는 데 2배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필요한 대사 에너지는 1.7배밖에 가지고 있지 않으니, 몸이 클수록 중력을 거스르는 상하 이동에 힘들어할 수밖에 없다. - P287

영국의 한 연구팀이 최신 바이오로깅 조사로 히말라야를 넘는 인도기러기의 3차원적 이동 궤적을 밝혀냈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연구 팀이지만 다이내믹한 데이터가 멋지게 기록된 것을 확인했을 때는 대단히 기뻐했을 거라 상상이 간다. 분명 자료의 기밀 유지 따위는 뒷전으로 두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떠벌리고 다녔을 것이다. - P289

포르토프랑세 기지에서부터 가마우지 조사지인 푸안 수잔까지는 약 20킬로미터 거리를 도보로 이동한다. 등에 거대한 등산 배낭을 짊어지고 여섯 시간 동안 행군해야 하는 이동은 상당히 힘든 일이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경치가 마음을 온화하게 해 준다. 케르겔렌 제도는 다양한 자연 풍광을 지녔는데, 나무는 단 한 그루도 없기에 멀리까지 지면을 둘러볼 수 있어 재미있다. (중략) 녹색 풀밭 위에는 오렌지색 부리가 선명한 젠투펭귄들이 새끼 양육에 한창이고, 주변을 뛰어다니는 개 비슷한 회색 짐승은 남극물개 암컷이다. (중략) 바닷물이 고인 바위 주변에는 대체로 곰같이 생긴 남극물개 수컷이 있는데 "우웍우웍" 하는 기괴한 소리를 지르며 암컷을 쫓아다닌다. 어쩔 수 없이 바닷물이 고인 지점 한 군데를 노리고 볼일을 보겠다고 마음을 정하면, 동물들의 옆을 살그머니 지나가 주변을 꼭 경계하며, 때는 이때다 하는 마음가짐으로 날렵하게 처리해야 했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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