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의 사생활
와타나베 유키 지음, 윤재 옮김 / 니케북스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도서관에서 세 번 빌려 읽고 결국 소장하기로 결심했다. 과학적 사실들을 쉬운 말로 재미있게 설명하고 설명을 다시 알기 쉽게 요약해 준다. 읽기 쉬운 문장과 참신한 비유 온화한 유머가 편안하고 즐겁다.


 필자가 너무나 행복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책을 읽다 보면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외딴 곳에서 동물들과 함께 사는 생활의 고달픔이나 거듭된 실패의 괴로움도 연구의 행복 앞에서는 별 일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동물들도 너무 착해 보이고 그들을 따라다니는 과학자들도 다들 너무 착해 보인다.


 과학에 관심 있는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어린 시절 과학을 동경했던 어른들에게도 틀림없이 행복을 전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먹이를 찾기 위해 이동한다는 동기에는 변함이 없다. 앨버트로스가 좋아하는 오징어는 물고기에 비해 유영 능력이 모자란 탓에 해류와 해류의 경계선에서 무리 지어 서식한다. 앨버트로스의 지구 일주 경로는 남극 해류라는, 남극 대륙을 빙그르르 둘러싸고 동쪽으로 흐르는 강한 해류와 딱 겹쳐져 있었다. 그렇다면 왜 모든 앨버트로스가 지구를 일주하지 않는 것일까? 다양한 비행경로는 무엇을 의미할까? 생태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런 경우는 종내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앨버트로스끼리 먹이가 있는 곳을 둘러싸고 격렬한 싸움을 벌인 결과, 최상의 자리를 얻은 강자와 척박한 변두리 땅으로 쫓겨난 약자로 나뉘는 것이다. (중략) 최대 경쟁 상대가 종종 동족 안에 있는 다른 개체라는 사실은 인간 사회에도 꼭 들어맞는, 생태학의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이다. - P47

화장실도 수도도 샤워 시설도 없지만 생활은 간소하고 즐거웠다. 낮 시간에는 내내 조사를 진행하고, 밤이 되면 배불리 먹고 잤다. 그뿐이었다. 식사는 자기가 만들고 싶은 음식을 만들고 싶은 만큼 만들면 된다. (중략) 카레와 밥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빼려 오두막 문을 열면 사냥감을 물고 터벅터벅 둥지로 돌아가고 있는 펭귄의 모습이 보인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행복한 것은 수면 시간. 하얀 숨결이 비치는 빙점 아래 오두막 안에서, 게다가 소리 하나 없이 정적이 흐르는 곳에서 온몸이 폭신폭신한 침낭에 싸이는 행복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따스함을 즐기고 있노라면 왠지 초등학교 시절의 두서없는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어느새 깊은 잠으로 곯아떨어진다.
- P81

관찰하다 보면 부모 새가 샐러리맨처럼 바지런히 바다와 둥지를 왔다 갔다 하며 먹이를 가지고 돌아와 크고 건강한 새끼를 키우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부모 새가 어디서 농땡이를 부리는지 둥지로 돌아오는 빈도가 낮아 새끼가 작고 영양 부족에 시달리는 문제 가정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 다 야생 동물의 자연스러운 모습이겠지만, 기록계를 부착한 부모 새가 둥지로 잘 돌아가지 않으면 곤란하므로 되도록 샐러리맨 부모가 꾸리는 가정으로 대상을 좁혀 나간다.
- P82

그린란드 상어는 여러 가닥의 실과 낚싯바늘이 견결된 주낙으로 낚는데, 우선 먹이를 준비해야 한다. 적당히 다금바리 같은 어류를 쓰려나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제대로 된 노르웨이 방식이 등장했다. 내가 조사선 위에서 기다리는 사이 몇 명의 사람들이 라이플총을 들고서 보트를 타고 나가 커다란 턱수염바다표범을 한 마리 잡아 온 것이다. 우리는 한데 모여 바다표범을 해체해 두께 7-8센티미터에 달하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피하지방을 잘라 주낙 미끼로 썼다. 상어에게는 군침이 돌 미끼였다. 물론 정부의 허가를 받은 사냥이었지만, 어류를ㄹ 잡기 위한 미끼를 구하기 위해 바다표범을 총으로 쏴 죽이는 나라는 노르웨이뿐이다. 역시 바이킹의 후예답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 P99

그는 개복치에 매료되어 개복치와 함께 살기를 결의한, 전 세계에서도 드문 개복치 마니아이다. 그는 개복치 샘플을 모으기 이해서라면 전 일본, 아니 전 세계 어디라도 간다. 손에 넣은 샘플은 하루 종일 계측하고 해체하고 질리지도 않고 자세히 조사한다. 개복치 포를 만들어 방에 걸고, 개복치 티셔츠를 직접 디자인해서 입고, 뿐만 아니라 개복치 센류(川柳)를 지어 트위터에도 올린다. 사와이가 대체 왜 그렇게까지 개복치에게 매료되었느냐, 그 이유가 또한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다. 그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어느 패밀리컴퓨터 게임의 캐릭터가 개복치였는데 그것이 너무 귀여웠다고 한다. 4차원 세계의 개복치에 빠진 사람이 실제 개복치를 해체하고, 소화기관 내 기생충을 조사하고,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린 위 속 내용물을 씻어 현미경으로 관찰하다니, 세상에는 이런 일도 다 있구나, 나는 묘한 감탄을 했다. 이런 연유로 나와 사와이는 둘이 함께 매일 오쓰치 만에서 정치망 어선을 타고 개복치 수집에 나서게 되었다. - P131

오쓰치 만 바깥쪽에 설치된 정치망까지는 배를 타고 편도 20분이 걸린다. 유명 인형극 ‘우연히 마주치 표주박 섬’의 모델이 되었다는 호라이지마의 등대 옆을 빠져 나간 어선은 고요한 밤바다를 미끄러져 나아간다. 그동안 나는 종종 갑판에 걸터앉아 어부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이곳 어부들은 젊은 시절에는 원양어선을 타고, 쉰을 넘길 무렵고향이 오쓰치 정에 돌아와 정치망 어선 일을 하게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자카스펭귄이나 싱가폴에서 유명한 포장마차와 같이 의외의 구석에서 이야기가 잘 통한다. 모우카는 염통을 회 떠서 먹는 게 최고라든가, 카스베는 된장국에 넣는 것이 최고로 맛있다는 등의 어부들만 아는 음식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나오는 것도 재미있다. 진지한 대화 중간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쏟아질 듯 하늘을 가득 메운 별, 별들.
- P133

바이오로깅 데이터 결과에 따르면 개복치의 평균적인 유영 속도는 시속 2.2킬로미터였다. 나와 사와이가 사랑한 물고기, 개복치. 이상야릇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 외모, 몸속 구조, 부력, 헤엄치는 방식까지 특이하지만 유영 속도만은 극히 평범한 물고기.
- P143

쿠이먼은 자신이 연구 프로벡트를 진행하고 있던 남극의 미국 기지로 기록계를 가지고 가 웨델바다표범에 부착했다. 웨델바다표범은 천적이 없기 때문에 남극 얼음 위에 한 마리 오동통한 해삼처럼 누워 유유자적한다. 그런 웨델바다표범을 잡고 기록계를 부착하는 데는 힘들일 일이 없었고, 또한 며칠 뒤 다시 포획해 기록계를 회수하기도 쉬었다. 기기 회수 없이는 데이터를 얻을 수 없는 바이오로깅의 최대 난관은 뜻밖에도 남극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63년 이렇게 느는 웨델바다표범의 잠수 행동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 P164

나 역시 극지연구소 직원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데, 극지연구소 직원에게 가장 큰 일은 남극에 가는 일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나이토가 처음 극지연구소에 들어왔을 당시에는 연구소가 설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인원이 다 갖춰지지 않아 특히 더 큰일이었을 터이다. 일본 남극 관측대는 여름을 보내는 하대는 5개월을, 겨울을 보내는 월동대는 1년 5개월이나 머나먼 여정을 떠나야 한다.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비행기로 날아가는 오늘날 관측대의 일정은 그때보다 약 한 달 가량 짧아졌다. 출장을 반복하다 보면 당연히 일본에 머무를 시간은 거의 없어진다. 나이토 세대의 극지연구소 직원들은 대부분은 30-40대 무렵에 자녀 양육을 거의 돕지 못해서 아직도 가족 앞에서는 고개를 1밀리미터도 들지 못한다. - P175

빨판과 기록계 세트를 긴 막대기 끝에 붙이고 배 위에서 고래의 등을 향해 막대를 뻗어 직접 찰싹 붙인다. 또는 배 위에서 빨판과 기록계 세트를 보건으로 쏘아 원격으로 고래 등에 붙이는 방법도 있다. 나의 대학원 후배이자 오랜 세월 향유고래를 연구하고 있는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 연구원 아오키 카가리는 ‘보건’의 명사수이다. 벌써 10년 가까이 이전 일인데, 대학원생이던 시절 그녀는 조사선에 구비된 쌀가마니 같은 완충재를 가상의 고래로 가정하고 사격 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해 보건 같은 건 어디에서 샀냐고 묻자 "무기상에서 샀어요."라고 슬쩍 대답해 주었는데, 게임도 아니고 무기상이라니, 그런 곳은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걸까. - P233

스크립스 해양연구소에는 ‘거인’ 숄랜더부터 ‘선구자’ 쿠이먼으로 이어지는 정통 잠수 생리학 계보가 있으며, 폰가니스는 그 유서 깊은 흐름을 이어받은 후계자이다. 여담인데, 미국의 연구자들과 대화를 할 때 부러운 것은 그들의 은사 이름을 밝힐 때 반드시 ‘앗!’ 하고 놀랄 만한 전설적인 인물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일본인 연구자들이 감명을 받아 끈질기달 정도로 재독을 거듭한 논문의 저자를 그들은 직접 알 뿐만 아니라 직접 실험의 조언을 받고, 또 더 중요한 연구를 대하는 자세를 배우기도 한다. 매ㅣ국의 높은 학술 수준의 토대에는 은사가 제자에게, 그 제자가 또 자신의 제자에게 대대로 학문을 제대로, 그리고 올바르게 전수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 P245

폰가니스는 여느 사람들과는 다른 일중독자이다. 그와 그의 학생들이 일시적으로 함께 머물던 집에 나도 연이 닿아 일주일 정도 신세를 진 일이 있었다. 나와 학생들이 ‘피곤하다!’를 외치며 침대로 파고들 시간, 폰가니스는 여전히 홀로 책상에 조용히 앉아 있었고, 우리가 ‘잘 잤다’ 하며 일어나기 시작할 시간, 폰가니스는 벌써 책상에 앉아 있었다. 이미 커피도 나와 학생들의 몫까지 정성스레 내려 둔 그에게 경의를 표해야만 할 것 같기도 하고, 면목이 없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이 사람에게는 이길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246

전파 수신은 해발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 우리는 산 중턱에서 바이칼 호 호반을 따라 바라노프의 미츠비시 봉고차를 타고 오를 수 있을 법한 산을 발견하면 즉시 전파 수신기와 안테나를 들고 산 정상에 올랐다. 산 정상에서 전파 수신을 시도해 보고 안 되면 하산, 바로 다음 고지로 향했다. 오직 이것만을 반복했다. 땀범벅이 되어 등산과 하산을 반복하는 우리가 설마 바다표범을 조사하는 중이라고는 아마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그렇게 2주에 걸쳐 전파 탐지를 계속했건만, 들려온 것은 전파 수신기의 변함없는 사악사악하는 노이즈뿐. 나는 작은 단서조차 얻지 못한 채로 바라노프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고 깊은 낙담 속에 귀국하는 처지가 되었다. - P262

일본에 귀국한 지 3주쯤 지났던 어느 날의 일이다. 바라노프에게서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마키타에게 부착했던 기록계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뱃놀이를 하던 관광객이 호수면에 떠오른 기록계를 우연히 발견해 보내 주었다고 했다.
‘잠깐 기다려!’ 하며 나는 연구실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바이칼 호는 이노카시라 공원 연못이 아니다. 규슈만 한 면적을 가진 거대한 호수인 데다 주변에는 울창한 원시림이 들어차 있고, 그 군데군데에는 전기도 통하지 않는 촌락만 띄엄띄엄 자리해 있다. ‘뱃놀이’를 하던 ‘관광객’이 ‘우연히 발견하는 일’ 같은 게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 기적이라고 밖에는 말할 방법이 없다. 분명 우리는 기록계에 "이것을 발견하신 분께는 5000루블을 드리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바라노프의 연락처와 함께 러시아어로 적어 두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呪文이었지, 실제로 이런 일이 가능할 거라 믿은 것은 아니었다. - P263

바이칼바다표범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담수에서만 생식하는 바다표범이다. 담수는 해수에 비해 몸이 쉽게 가라앉기 때문에 몸을 띄우려면 보다 많은 지방이 필요하다. 나의 계산에 따르면 같은 부력을 달성하려면 담수에서는 해수에서보다 30퍼센트 이상 더 많은 지방을 몸에 지녀야만 한다. 한편 에너지 저장고로써의 기능, 방한복으로써의 기능은 담수에서나 해수에서나 다를 바가 없다. 결론을 지어보면, 둥근 공처럼 생긴 바이칼 바다표범의 몸은 특수한 담수 환경에서 중성 뷰력을 달성하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적응해 온 결과이다. - P271

일반적으로 몸이 큰 동물일수록 중력에 반하는 세로 방향 이동을 힘겨워한다. 몸이 작달막한 다람쥐는 힘들이지 않고도 나뭇가지를 수직으로 곧잘 뛰어오르지만, 몸이 큰 코끼리는 야트막한 오르막조차 오르기 힘들어한다. 사람의 경우에도 언덕을 잘 오르는 달리기 선수나 자전거 선수의 몸집은 대부분 작다. (중략) 체중이 2배 큰 동물은 고도를 1미터 올리는 데 2배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필요한 대사 에너지는 1.7배밖에 가지고 있지 않으니, 몸이 클수록 중력을 거스르는 상하 이동에 힘들어할 수밖에 없다. - P287

영국의 한 연구팀이 최신 바이오로깅 조사로 히말라야를 넘는 인도기러기의 3차원적 이동 궤적을 밝혀냈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연구 팀이지만 다이내믹한 데이터가 멋지게 기록된 것을 확인했을 때는 대단히 기뻐했을 거라 상상이 간다. 분명 자료의 기밀 유지 따위는 뒷전으로 두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떠벌리고 다녔을 것이다. - P289

포르토프랑세 기지에서부터 가마우지 조사지인 푸안 수잔까지는 약 20킬로미터 거리를 도보로 이동한다. 등에 거대한 등산 배낭을 짊어지고 여섯 시간 동안 행군해야 하는 이동은 상당히 힘든 일이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경치가 마음을 온화하게 해 준다. 케르겔렌 제도는 다양한 자연 풍광을 지녔는데, 나무는 단 한 그루도 없기에 멀리까지 지면을 둘러볼 수 있어 재미있다. (중략) 녹색 풀밭 위에는 오렌지색 부리가 선명한 젠투펭귄들이 새끼 양육에 한창이고, 주변을 뛰어다니는 개 비슷한 회색 짐승은 남극물개 암컷이다. (중략) 바닷물이 고인 바위 주변에는 대체로 곰같이 생긴 남극물개 수컷이 있는데 "우웍우웍" 하는 기괴한 소리를 지르며 암컷을 쫓아다닌다. 어쩔 수 없이 바닷물이 고인 지점 한 군데를 노리고 볼일을 보겠다고 마음을 정하면, 동물들의 옆을 살그머니 지나가 주변을 꼭 경계하며, 때는 이때다 하는 마음가짐으로 날렵하게 처리해야 했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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