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4월. 레포트를 쓰느라 읽는 책은 아무래도 필요한 부분만 읽게 되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는 책이 드물다. 김만중, 박지원, 이광수, 최서해와 관련해서 이것저것 발췌해 읽었지만 제대로 다 읽은 책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는 책을 생각해 보니 공부보다는 취미를 위해 읽는 책이 많은 것 같다. 

 우한용의 <채만식 소설 담론의 시학>을 대출 기한이 임박해서 허겁지겁 다 읽었다. 덕분에 <탁류>도 읽고, <과도기>, <냉동어>, <소년은 자란다>도 읽었다. 내가 보기에 채만식은 균형 감각이 뛰어난 작가이다. 인간에 대해 덮어놓고 신뢰하지 않는, 냉소와 의혹의 눈초리가 좋다. 그의 냉소와 의혹은 자본가와 지식인과 기층민중 모두를 향하며, 군국주의 일본뿐만 아니라 신생 대한민국도 놓치지 않는다. 전쟁 전에 험한 꼴 안 보고 죽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좀 더 오래 살아서 냉소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글들을 조금 더 써주지 않은 것이 아쉽다.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는 민족주의의 고전이다. 서양사학과의 민족주의 수업을 청강하기로 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막연했던 민족주의가 머릿속에서 어렴풋하게 윤곽을 잡아가기 시작한다. 레포트를 하나 써 보면 또 한 발 나갈 수 있겠지.

 

 

 

 

 

 

 

 

어느 우울한 오후에 공부를 걷어치우고 도서관에서 미사키 아키의 <이웃 마을 전쟁>을 빌려 잠적했다. 이 작가의 단편 <버스 탈취 사건>을 퍽 재미있게 봤는데, 장편은 아직 멀었다는 느낌. 아이디어는 상쾌하나 이야기를 구성해가는 역량이 조금 부족하다. 

 

 

 

 

 

 

  


좋아하는 선생님과 같이 주경철의 <문명과 바다>를 대상으로 한 독서토론회 포스터 옆을 지나다가 "저 책 읽어."라는 말씀을 들었다. 도서관에 있는 두 권은 모두 대출중이어서 서점에서 네 시간 만에 독파했는데, 서점에서 독파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흥미진진한 책이다. 지도와 그림이 아름답고 글이 쉽다. 선원들의 비참한 생활상에 대한 것과 노예 무역에 대한 것이 특히 좋더라.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려 드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예 무역의 바탕에 서양인의 탐욕 뿐 아니라 아프리카 인들 자신의 생활양식도 존재한다는 것은 조금 충격적인 발견. 저자가 대중적인 글쓰기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재미있어서, 토론회에서는 이 쪽의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

 

 

 

 

 

 

   



문학사를 따라 현대 소설을 설렁설렁 살펴보는 중이다.  경향을 지나 모더니즘에 도달했는데, 말만 많이 들었지 그게 뭔지 전혀 모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강상희의 <한국 모더니즘 소설론>은 비교적 쉽고 명쾌하게 중요한 점들을 짚어 주고 있다는 느낌이다. 작품을 다 읽으면 훨씬 더 이해가 잘 되겠지만 도서관에서 찾기가 쉽지 않은 것들도 많군. 

 

 

 

 

 

 

 

 


그래서 레포트 주제는 박태원으로 결정했다. 크게 도움은 안 되겠지만 사진도 많고 지도도 있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 보여서 조이담의 <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를 읽었다. 박태원은 부잣집 아들이었구만. 아버지는 약사, 삼촌은 의사, 고모는 고등학교 교사인 초인텔리 집안. 구보 하나 정도 소설 쓰고 있어도 아무 문제 없는 경제 환경이었다. 쬐끔 재수 없어졌다. 그치만, 그런 도련님이 월북했다니, 만년은 엄청 고달펐겠구나 싶어서 동정하는 마음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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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공동체 -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 나남신서 377
베네딕트 앤더슨 지음, 윤형숙 옮김 / 나남출판 / 2003년 10월
구판절판


그러므로 나는 인류학적 정신에서 다음과 같은 민족의 정의를 제안한다. 즉 민족은 본래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정치공동체이다.
민족은 가장 작은 민족의 성원들도 대부분의 자기 동료들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며 심지어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도 못하지만, 구성원 각자의 마음에 서로 친교(communion)의 이미지가 살아있기 때문에 상상된 것이다. 르낭(Renan)이 "민족의 핵심은 전 소속원들이 많은 것을 공유한다는 사실이며, 동시에 전 소속원들이 많은 것을 망각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다."라고 썼을 때 그는 그의 유쾌한 화법으로 이 상상함(imagining)을 언급한 것이다. 겔너(Gellner)가 "민족주의는 민족들이 자의식에 눈뜬 것이 아니다. 민족주의는 민족이 없는 곳에 민족을 발명해낸다"라고 얼마간 잔인하게 규정했을 때 위와 유사한 논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화의 결점은 민족주의가 잘못된 구실 아래 가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너무 애쓴 나머지 '발명'을 '상상'이나 '창조'보다는 '허위날조'와 '거짓'에 동화시킨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민족과 병치될 수 있는 '진정한'공동체들이 존재함을 암시한다. (계속)-25-27쪽

(위에서 계속)
사실 면대면의 원초적 마을보다 큰 공동체는(그리고 아마 이 마을조차도) 상상의 산물이다. 공동체들은 그들의 거짓됨이나 참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상상되는 방식에 의해서 구분되어야 한다. (중략)
민족은 제한된 것으로 상상된다. 왜냐하면 10억의 인구를 가진 가장 큰 민족도 비록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한정된 경계를 가지고 있어 그 너머에는 다른 민족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민족도 그 자신을 인류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어떤 구세주적 민족주의자들도 기독교도들이 어느 시대에 기독교도만 모인 행성(planet)이 도래할 것이라고 꿈꾸는 것과 같이, 모든 인류의 성원이 그들의 민족에 동참하는 날이 올 것을 꿈꾸지는 않는다.
민족은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된다. 왜냐하면 이 개념은 계몽사상과 혁명이 신이 정한 계층적 왕국의 합법성을 무너뜨리던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아래에 계속)-25-27쪽

(위에서 계속)오늘날은 어떤 보편적인 종교의 가장 신앙심 깊은 추종자라도 보편적인 종교들이 여럿 존재한다는 사실과, 각 신앙의 존재론적 주장과 영토적 한계 사이에 이질동형(allomorphism)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런 인간의 역사 단계에서 민족들은 자유롭기를 꿈꾸며 만일 신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면, 직접 받기를 꿈꾼다. 이 자유의 표식과 상징은 주권국가이다.
마지막으로 민족은 공동체로 상상된다. 왜냐하면 각 민족에 보편화되어 있을지 모르는 실질적인 불평등과 수탈에도 불구하고 민족은 언제나 심오한 수평적 동료의식으로 상상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지난 2세기 동안 수백만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제한된 상상체들을 위해 남을 죽이기보다 스스로 기꺼이 죽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 형제애이다.-25-27쪽

이 단순한 관찰들을 이야기하는 주된 이유는 서유럽에서 18세기는 민족주의의 여명기일 뿐 아니라 종교적 사고양태의 황혼기이기 때문이다. 계몽주의와 합리적 세속주의의 세기는 그 자신의 근대적 어둠도 동반하였다. 종교적 믿음이 쇠퇴했다고 해서 믿음이 일부 진정시켰던 고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낙원의 붕괴로 숙명만큼 종잡을 수 없는 것도 없게 되었다. 영혼의 구원이 어리석은 생각이라면 다른 형태의 연속성만큼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없었다. 따라서 숙명을 연속성으로, 우연을 의미 있는 일로 전환시키는 세속적인 작업이 필오하였다. 앞으로 살펴보게 되겠지만, 이러한 목적에 민족이라는 개념보다 더 적합한 것은 별로 없었으며, 현재도 별로 없다. 민족국가가 '새로운' 것이고 '역사적인' 것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면 민족국가가 정치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민족들은 언제나 기억할 수 없는 과거에서부터 나타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민족은 끝없이 미래로 미끄러져 들어간다는 것이다. 우연을 운명으로 바꾸는 것이 민족주의의 마술이다.-31-32쪽

많은 왕조들은 정통성의 원칙이 조용히 시들어 갈 때 '민족'이라는 표어에 손을 뻗고 있었다. 프레드릭 대제(1740-1786통치) 군대에 지휘관이 대부분 '외국인들'로 구성되었던 반면에, 그의 장조카인 프레드릭 빌헬름 4세(1797-1840통치) 군대의 지휘관은 샨호르스트, 그나이세나우와 클라우제비츠의 눈부신 개혁의 결과로 전적으로 '프러시아 민족(national-Prussian)으로 구성되어 있었다.-45쪽

기본적으로 나는 민족을 상상하는 가능성 자체가 역사적으로 볼 때 아주 오래된 세 가지 근본적인 문화개념이 인간의 사고에 대해 갖고 있던 공리적 통제력(aximatic grip)을 잃어버린 때와 장소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이 세 가지 문화개념 중 첫째는 특정한 정본 언어(script-language)가 바로 진리와 분리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존재론적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을 제공한다는 개념이었다. 기독교세계와 이슬람세계 그리고 기타 세계의 초대륙적 대 연대감을 낳게 한 것은 바로 이 개념이었다. 둘째는 다른 인간들과 구별되며 어떤 우주적(신성한) 형태의 섭리에 의해 통치하는 군주라는 상위 중심부의 주변과 그 밑에서 사회가 자연스럽게 조직된다는 믿음이었다. 지배자는 경전처럼 존재에 접근하는 접목점이었으며 존재 안에 본래부터 내재하였기에 인간의 충성심은 반드시 서열적이고 구심점을 향하여 있었다. 셋째는 우주관과 역사가 구별되지 않고 세계의 기원과 인간의 기원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보는 시간의 개념이었다. (아래에 계속)-62-63쪽

(위에서 계속) 이러한 개념들은 서로 어우러져서 존재의 일상적인 숙명성(무엇보다 죽음, 상실, 예속)에 어떤 의미를 주며 여러 방식으로 그것들로부터 구원을 제공하며 인간의 삶을 사물의 본질 자체에 굳게 뿌리내리게 했다.
이러한 상호 연결된 확실성들이 서서히 불균등하게 퇴조하면서 우주관과 역사 사이에 엄한 쐐기를 박았다. 세 문화개념들의 퇴조는 경제변동, '발견'(사회적인 발견과 과학적인 발견), 그리고 가일층 빨라진 커뮤니케이션의 발달 등의 영향을 받아 처음에는 서유럽에서 일어나고 그 후에는 다른 곳에서도 일어났다. 그렇다면 형제애와 권력과 시간을 의미 있게 서로 연결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인쇄자본주의보다 이러한 모색을 촉진시키고 성공적으로 만든 것도 없을 것이다. 인쇄자본주의는 빠르게 늘어나는 사람들이 심오하게 새로운 방식으로 그들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그들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연결할 수 있게 해주었다.-62-63쪽

우리는 인간언어의 숙명적 다양성 위에 자본주의와 인쇄술이 수렴됨으로써 그 기본 형태에 있어 근대 민족(nation)을 준비하는 새로운 형태의 상상의 공동체가 형성될 가능성을 창조했다고 말함으로써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할 수 있다. 이 공동체들의 잠재적 영역은 본래적으로 제한되어 있고 동시에 현존하는 정치적 경계들과 아주 우연적인 관계만을 가졌다.-75쪽

새 인쇄소를 시작하는 인쇄업자들은 신문을 그들의 생산에 포함시켰다. 흔히 인쇄업자들 자신이 신문의 주요 기고자요 때로는 유일한 기고자이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인쇄업자 겸 신문인들은 처음에는 본질적으로 북아메리카적인 현상이었다. 인쇄업자 겸 신문인들이 당면한 주요 문제는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편부와 매우 밀접한 연대를 발달시켜 흔히 한쪽이 다른 한쪽을 겸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인쇄업소는 북아메리카 통신의 중심이자 지역의 지적 생활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스페인령 아메리카에서는 비록 느리고 간헐적이었지만 유사한 과정이 일어나 18세기 후반에 최초의 지방신문이 출현하였다.
남아메리카에서든 북아메리카에서든 무엇이 아메리카 대륙의 최초의 신문의 특성이었을까? 신문은 본질적으로 시장의 부속물로 시작했다. 초기 신문들은 본국에 대한 소식 외에 식민지의 정치적인 발령, 부호들의 결혼 등에 관한 소식과 함께 상업소식(언제 배가 도착하고 떠나며, 어느 항구에서 어떤 물건의 시세가 어떤지 등)을 실었다. (아래에 계속)-94-95쪽

(위에서 계속)달리 말하면, 같은 면에 이 결혼과 저 배, 이 가격과 저 대주교에 관해 같이 실을 수 있게 한 것은 식민행정부와 시장체계 자체의 구조였다. 이런 식으로 까라까스(Caracas)의 신문은 아주 자연스럽게, 심지어는 비정치적이라 할 수 있게, 독자라는 특정 무리에게 상상의 공동체를 창조해 주었다. 이 배, 신부(brides), 대주교, 가격들은 독자들에게 속하는 것이었다. 물론 적절한 시기에 정치적 요소가 들어오는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일이었다. -94-95쪽

한 자본가가 대개 다른 자본가의 딸과 결혼하지도 않았고 서로의 재산을 상속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과 비슷한 수천 명의 존재들을 활자어를 통하여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문맹한 자본가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세계사적 조건에서 자본가는 본질적으로 상상의 기반 위에 결속력을 성취한 최초의 계급이었다.-111쪽

결론적으로 말해 필자는 19세기 중엽부터 시튼왓슨이 '관주도 민족주의'라고 부른 민족주의가 유럽에서 발전했다고 논하였다. 관주도 민족주의는 대중적 언어민족주의가 출현할 때까지 역사적으로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사실 관주도 민족주의는 대중의 상상된 공동체에서 배제되거나 주변화될 위협을 느낀 세력집단들-주로 왕조와 귀족의 세력집단들-에 의한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1918년 이후와 1945년 이후 일종의 지각상의 대변동이 일어나 이 세력집단들을 에소토릴(Estoril)과 몬테 까를로(Monte Carlo)에 있는 하수구 쪽으로 쏟아버렸다. 그런 관주도 민족주의는 앞서 일어난 대규모의 자발적인 대중 민족주의의 모형에서 각색한 반동적이면서 보수적인 정책들이었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유럽과 레반트(Levant) 지역에 국한되지 않았다. 제국주의의 이름으로 비슷한 정책들이 19세기에 복속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방대한 지역에 있는 비슷한 종류의 집단들에 의해 추진되었다. 마지막으로 비유럽 문화와 역사 속으로 굴절되어 관주도 민족주의는 직접적인 예속을 피한 소수 지역(그 중에는 일본과 샴이 있다)에 있는 토착지배 집단에 의해 포착되고 모방되었다.-147-148쪽

방대한 교육산업은 미국 젊은이들이 1861-65년의 전쟁을 잠시 존재하였던 두 주권 민족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 '형제'간의 '시민' 정쟁으로 기억/망각하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만일 남부연방군이 독립을 유지하는 데 성공하였다면, 이 '시민' 전쟁은 기억에서 매우 비형제적인 어떤 것으로 대체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영국 역사책은 모든 학생들이 '정복자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이라고 부르도록 가르침을 받은 위대한 시조의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학생들은 정복자 윌리엄이 영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그 시대에는 영어가 없었기 때문에 사용할 수도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지 못한다. 또한 학생들은 '무엇의 정복자인가?'에 대해서도 배우지 못한다. 왜냐하면 알기 쉬운, 유일한 근대적 대답은 '영국의 정복자'이기 때문이다. 이 모범답안은 옛 노르만인 약탈자를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성공적인 선구자로 만든다. 그래서 '정복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즉각적으로 망각할 의무가 있는 어떤 것을 상기시키는 '생 바르뗄레미'와 같은 종류의 생략부호로 작동한다.-255-256쪽

의식에서의 모든 심오한 변화는 성격상의 변화와 함께 특징적인 건망증을 가져온다.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그러한 망각으로부터 서술이 나온다. 사춘기가 낳은 체질적, 감정적 변화를 경험한 후 어린 시절의 의식을 '기억하기'는 불가능하다. 유아시절과 초기 성년시절 사이에 있는 얼마나 많은 수천의 날들이 직접적으로 회상하기 어려운 곳으로 사라지는가! 바랜 사진 속의 양탄자나 침대 위를 행복하게 기어다니는 벌거벗은 아이가 당신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중략) 이런 소외로부터 '기억될 수 없기 때문에' 서술되어야 할 인성(personhood), 정체성(identity:그렇다. 당신과 벌거벗은 아이가 동일하다)의 개념이 나온다. (중략)
민족도 근대적 인간과 마찬가지이다. 세속적, 연속적 시간에 매몰되어 있다는 인식은 연속성에 관한 모든 암시로 인하여, 또한 18세기 단절의 산물인 연속성의 경험을 '망각'하는 것에 관한 모든 암시로 인하여 '정체성' 서술의 필요성을 낳는다.-258-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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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9-04-18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족주의 이야기를 하려면 읽지 않을 수 없는 고전이라는 의무감으로 읽었다. 앤더슨은 민족 형성에 있어서 대중의 자발성을 강조하는 학자이다. 그의 이야기에 조금 미심쩍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내가 워낙 대중을 불신하기 때문이겠지.
 
중급한문 기초교육교재 시리즈 2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엮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원문과 최소한의 주석이 있는 수업 교재. 교내서점보다 쌈. 배송도 의외로 빨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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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담론 - 영화와 소설의 서사구조
시모어 채트먼 지음, 한용환 옮김 / 푸른사상 / 2003년 9월
절판


구조주의 이론은 각각의 서사물은 두 개의 부분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야기, 사건들(행위, 돌발사 등)의 내용과 그 연쇄 및 사물적 요소(등장인물이나 배경을 구성하는 것)라고 부를 만한 것이 합쳐진 이야기가 그 하나라면, 표현, 혹은 내용이 전달되는 방식인 담론이 그 다른 하나이다. 단순화시킨다면 이야기란 묘사된 서사물 속의 '무엇'이며, 담론이란 '어떻게'에 해당하는 것이다.-19쪽

서사적 담론, 즉 '어떻게'는 다시 두 개의 하부 구성인자로 나누어진다. 서사적 형태 그 자체 -서사적 전달 구조- 와 그것의 발현 -언어나 영상, 발레, 음악, 팬터마임 등등의 특정한 물리적인 매체를 통해 나타남- 이 그것이다. 서사적인 전달은 이야기의 시간과 이야기를 진술하는 시간의 관계, 혹은 이야기의 출처나 저작적 특성(화자의 목소리나 '시점', 기타 그와 유사한 점 등)과 연관된다. 당연히 매체는 전달에 영향을 미친다. -22쪽

이러한 문제는 현상학적인 미학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가 박물관이나 도서관, 극장 등에서 부딪히게 되는 '실제적 대상'과 '미적 대상'간의 근본적인 차이점에 대해서 밝혀낸 바 있는 로만 잉가르덴에 의해 해결되었다. 실제적 대상이란 바깥 세계에 존재하는 사물-대리석 조각, 그림물감이 굳어 있는 캔버스, 규칙적으로 울리는 공기의 진동파, 한 덩어리로 제본된 인쇄된 종이뭉치-이다. 반면 미적 대상이란 관찰자가 그러한 사물들을 미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관찰자의 마음속에 구축(또는 재구축)되는 것이다. 미적 대상은 실제적 대상의 부재 속에 존재하게 된다. 우리는 순수한 상상 속의 대상들에서도 어떤 미적 경험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시를 기억 속에 살려낼 때 우리는 '글자들'이나 그에 해당하는 발음들을 단지 상상하게 될 뿐'인 것이다. (중략) '단순한' 독서는 조각을 단순하게 관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적 경험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미적 경험의 예비적인 절차일 뿐이다. 대상을 지각하는 사람은 어느 지점에서 미적 대상의 '영역', 혹은 '세계'를 정신적으로 구축해야 한다.-28-29쪽

사건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서의 서사행위 자체와 그것의 직접적인 표출 방식으로서의 실연 사이의 구분은 diegesis와 mimesis 사이의 고전적 구분, 또는 현대적인 용어로는 '말하기'와 '보여주기' 사이의 구분과 일치한다.-35쪽

몇몇 비평가들은 배경이 플롯과 인물에 관련될 수 있는 방법의 범주화를 제안했다. 자연적 배경에 관심을 기울였던 로버트 리들(R. Liddell)은 이를 다섯 유형으로 구분했다.
첫째, 공리적, 혹은 실용적 배경은 단순하고 중요성이 적고 행동에 최소한의 영향을 미치고, 일반적으로 감정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 배경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좋은 예가 된다.
둘째는 상징적 배경인데, 행위와 밀접한 결합을 강조한다. 여기서 배경은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행위와 '유사'하다. 소란스러운 돌발사들은 "위대한 유산"에서의 습지 같은 소란스러운 장소에서 일어난다. "황폐한 집"에서의 비 오는 날씨는 데드로크 양의 가슴속에 있는 눈물과 일치한다.
셋째는 무관계한 배경이다. 즉 풍경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인물들은 특별히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다. 시골에 묻혀 있는 샤를르 보바리를 따르는 마담 보바리의 경우가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이와 인접하거나 그 하위로 분류될 수 있는 유형은 아이러닉한 것으로 거기에서의 배경은 인물의 감정 상태나 지배적인 분위기와 일치하지 않는다. "대사들"에서 몇 년 전에 보스톤 회랑에서 (아래에 계속)-156-157쪽

(위에서 계속)보랑비네의 풍경화를 연상시키는 '푸르고 신선한 풍경을 그 프랑스풍의 시골'에서 발견하고 흥분해 있던 스트레더는 우연히 비오네 부인과 채드가 보우트에서 밀회를 즐기는 현장을 목격한다. 스트레더에게 있어 '그것은 마치 꿈속에서와 같이 별안간 나타난 갑작스럽고, 환상적인 위기였다.'
리들이 제시하는 네 번째 배경은 '마음속의 배경'이다. 즉, 이블린의 회상 속에 있는 내면 풍경이 그것이다.
다섯째는 만화경적인 배경인데, 물리적인 외부 세계에서 상상의 세계로 재빨리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에서 이러한 예를 찾을 수 있다.-156-157쪽

마지막으로 검토해야 할 부분은 화자의 개입이 있거나,혹은 없는 이야기의 전달이다. (중략) 그러한 구분에 대한 유용한 기초가 최근에 발전된 '화행 이론'이라 불리는 학문에 의해 제공되고 있다. (중략) 그 이론은 영국의 존 오스틴에 의해 발전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문장들이 의도하는 것 -오스틴이 그것을 '언표내적(illocutionary)' 국면이라 부르는 것-은 단순히 문법적인, 혹은 '언표적(locutionary)' 국면과, 그것들이 실제로 전달되는 것, 즉 청자에 미치는 영향 혹은 '완전언표적(perlocutionary)' 국면과 날카롭게 구분된다. 그리하여 한 사람의 화자가 영어로(혹은 다른 자연언어로) 한 문장을 말할 때 그는 적어도 두 가지, 어쩌면 세 가지 일을 하고 있다. (1)그는 문장을 만드록 있다. 즉 영문법의 규칙에 의하여 문장을 형성하고 있다. ('언표화 하기'). (2)그는 그러한 언어 행위의 '내부에서', 비언어적 수단에 의해서도 똑같이 수행될 수 있는 완전히 분리된 하나의 행위를 수행하고 있다. ('언표내화 하기')
(아래에 계속)-168-169쪽

(위에서 계속)
예를 들어, 만일 그가 '물 속으로 뛰어들어'라고 말한다면, 그는 (1)명령법 구문에 관한 표준 영어 규칙에 의해서 '물 속으로 뛰어'라고 하는 어법을 수행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2)ㅂ물웅덩이의 가장자리에서 뚜이ㅓ드는 시늉을 함으로써 전달될 수도 있는 행동인 '명령하기'의 언표내화를 수행하고 있다. 만일 그가 자신의 대화 상대자로 하여금 물웅덩이에 뛰어들게 함으로써 언표내화의 의도를 달성한다면 (3)그는 설득이라는 완전언표화를 성취한 것이다. -168-169쪽

우리가 텍스트상의 의미론적 분석에 대하여 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된다면 대화 유형들에 유효한 분류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인상적이긴 하지만 모리스 블랑쇼는 이미 세 가지의 유용한 구분법을 제안했다. 그가 내세운 보기들은 말로, 제임스, 카프카이다. 말로의 작품에서는, 전통적인 소크라테스적 의미로, 대화는 수수한 토론의 기능을 제공한다. 그의 인물들은 그들의 열정적인 강렬함에도 불구하고, '이성저깅ㄴ 순간에... 갑자기, 시대의 압력이 의견 합치에 이르는 것을 방해할지라도, 진리를 발견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토론한다. 반면에 제임스의 인물들은 (호오도온이 말한 것처럼) '늙은 부인들과 더불어 차나 마시는' 한가한 담소의 마음으로 대화를 수행한다. 그러나 그러한 대화 속에 갑자기 하나의 '예외적인 설명'이 끼어든다. (아래에 계속)-190-191쪽

(위에서 계속) 즉 어떤 전달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내용을 둘러싼 한동안의 대화 속에서, 그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은밀한 분위기와, 그들로 하여금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게 하는 상호 이해 때문에 마땅히 서로가 모르고 있으리라고 생각한 그 숨겨진 비밀을 통해 주인공들이 놀랍게도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는 설명이 그것이다. 카프카의 인물들은 그들의 역할상 서로를 벗어나 반대의 목적으로 말하도록 영구히 운명지워진다. 이 인물들은 실제로 대화자들이 아니다. 실제로 발화들은 교환되지 않고, 표면적 의미는 닮았을지라도 그것들은 결코 동일한 비중이나 현실성을 갖지 못한다. 어떤 것은 말 이상의 말이며, 판단과 계울과 권위와 유혹의 말들인 반면, 또 다른 것은 그 대화들이 서로 오고 가지 못하게 만드는 책략과 도피와 기만의 말들이다.-190-191쪽

우리는 정신 행위의 두 가지 유형을 분리할 수 있다. 즉 '언어화'를 수반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거칠게 말해서 인식(cognition)과 지각(perception) 사이의 구분이 그것이다. (중략) 인식이란 이미 언어적 구성물이기 때문에, 또는 수비사리 언어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언어적 서사물로의 전환은 간단하고도 직접적인 것이다. 그러나 지각의 전달은 언어로의 변형을 필요로 한다. (중략) 비언어적 지각 내용들은 '지정되지 않은' 언어적 형태로 변형될 수 있는가? '내적 독백'에 의해 그것은 가능하다.
등장인물의 사고 내용을 다루는 가장 명백하고 직접적인 방식은 그것들을 '비언표적 언술'로 취급하는 것, 득 '그는 생각했다'와 같은 인용 표현과 더불어 그것들을 인용부호로 묶는 것이다. (중략) 최근에 올수록 인용 표현 또한 생략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는 '직접 자유 사고(direct free thought')이다. -195-196쪽

그러나 '감각 인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의식의 흐름'을 사용해야만 하는가? 왜 '감각 인상'은 그 자체로 완전히 적절한 용어가 되지 않는가? 우리는 보울리으이 가치 있는 구분법을 역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즉 두 개의 하위 분류를 지시하게 하는 것이다. '개념적인 내적 독백'은 등장 인물의 마음속을 스쳐 가는 실질적인 말에 대한 기록을 일컫는 것이고, '지각적인 내적 독백'은 관례적인 언어적 변형에 의해 등장인물의 발음되지 않은 감각 인상들을 전달하는 (화자의 분석 없이) 것을 일컫는 것이다.
따라서 '의식의 흐름'은 따로이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즉 그것은 생각과 인상들을 임의로 배열하는 것이다. '흐름'이라는 말은 그것을 적절히 암시한다. 이 경우 정신은 어떤 목적을 가진 생각과는 정반대의 극을 이루는 연상의 일상적인 흐름에 몰두하는 것이다. -204쪽

만약 화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포작가와 내포독자 사이에 의사 전달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그 내포작가는 아이러닉하며 화자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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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9-03-29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쉬운 설명을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는 동안에 더 헷갈려 버린 책. 그래도 앞부분 읽은 게 아까워서 반납하기 전에 억지로 끝까지 읽긴 했다. 문학이론을 번역서로 읽는 건 정말 고역이다.
 
괴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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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해 주셨던 이야기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경우가 있다. 그 시간에 배웠던 교과 내용은 벌써 예전에 깨끗이 지워졌는데, 이야기만은 오래 남는다. 비단 기억의 문제만이 아니다. 공부하기가 지겨워서 몸을 비틀며, "선생님, 재미있는 얘기 해 주세요~"라고 조르던 기억,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미야베 씨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이러한 '이야기' 자체의 재미가 극대화된 책이 <괴이>이다.

소설의 재미를 만드는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회 현상에 대한 통찰력과 날카로운 문제 제기가 서늘한 파문을 남기기도 하고, 인물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가 독자를 끌어당기기도 한다.  감칠맛 나는 문체나 독자를 쥐고 흔드는 서스펜스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스토리' 자체에 매력이 넘치는 소설, 그리하여 인물을 바꾸고 배경을 바꾸어도 여전히 재미있을 것 같은 소설을 만나는 것은 분명 귀중한 체험이다. 

<괴이>에 실린 아홉 편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이들을 언젠가는 바꾸어서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무서운 이야기', '귀신 이야기' 를 한 도막 해야 할 상황이 있지 않은가? 배경은 에도 시대지만 꼭 에도 시대가 아니어도 좋다. 인물은 가게의 심부름꾼 소년이지만 꼭 심부름꾼이 아니어도 좋다.  보편적인 원한과 보편적인 공포, 인간의 마음 속에 깃들인 보편적인 어둠을 이토록 은근하면서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라면 어디의 누가 나오든 한결같이 재미있을 것이다. 몇 번이고 정성들여 다시 읽어, '나의' 이야기 주머니 속에 소중하게 갈무리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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