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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8월
평점 :
학교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해 주셨던 이야기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경우가 있다. 그 시간에 배웠던 교과 내용은 벌써 예전에 깨끗이 지워졌는데, 이야기만은 오래 남는다. 비단 기억의 문제만이 아니다. 공부하기가 지겨워서 몸을 비틀며, "선생님, 재미있는 얘기 해 주세요~"라고 조르던 기억,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미야베 씨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이러한 '이야기' 자체의 재미가 극대화된 책이 <괴이>이다.
소설의 재미를 만드는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회 현상에 대한 통찰력과 날카로운 문제 제기가 서늘한 파문을 남기기도 하고, 인물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가 독자를 끌어당기기도 한다. 감칠맛 나는 문체나 독자를 쥐고 흔드는 서스펜스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스토리' 자체에 매력이 넘치는 소설, 그리하여 인물을 바꾸고 배경을 바꾸어도 여전히 재미있을 것 같은 소설을 만나는 것은 분명 귀중한 체험이다.
<괴이>에 실린 아홉 편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이들을 언젠가는 바꾸어서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무서운 이야기', '귀신 이야기' 를 한 도막 해야 할 상황이 있지 않은가? 배경은 에도 시대지만 꼭 에도 시대가 아니어도 좋다. 인물은 가게의 심부름꾼 소년이지만 꼭 심부름꾼이 아니어도 좋다. 보편적인 원한과 보편적인 공포, 인간의 마음 속에 깃들인 보편적인 어둠을 이토록 은근하면서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라면 어디의 누가 나오든 한결같이 재미있을 것이다. 몇 번이고 정성들여 다시 읽어, '나의' 이야기 주머니 속에 소중하게 갈무리해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