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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중독자들 - 인터넷 의존증이 바꿔놓은 세상
베르트 테 빌트 지음, 박성원 옮김 / 율리시즈 / 2017년 3월
평점 :
인터넷 중독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독일 의사가 쓴 글.
심각한 중독 환자들을 치료한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독의 원인과 치료법을 설명한 3장, 4장보다 디지털 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을 교육과 연관지어 다룬 5장이 더 인상적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인터넷과 디지털 매체들을 제대로 다루는 인간은 '디지털 네이티브'가 아니라 '디지털 이미그런트'란다. 실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관계에 대한 스킬들은 우리가 디지털 세계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하다. 어렸을 때부터 디지털 매체에 익숙해진 아이는 거기에 종속되고, 세계의 인식, 타인과의 공감, 사회적 참여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특히 8살 이전의 아이는 직접 보고 만지고 몸을 움직이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타인과 접촉하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신체와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을 먼저 배워야 한다. 아이를 얌전히 있게 하려고 디지털 미디어를 내주는 부모는 자기 자식을 심각한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평소에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말을 접할 때마다 과연 문자 매체에 대한 리터러시가 없는 인간들, 읽고 쓰기가 제대로 안 되는 인간들이 미디어 리터러시를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아날로그 매체의 중요성을 확신하게 되었다.
부록처럼 붙은 마지막 장에서 인터넷을 통한 자기 실현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의 허구성을 밝히는 부분도 많은 사람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318-319 미디어 사용 능력이 있다는 말은 언제 무엇을 위해 디지털 미디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의미 있는지를 구별할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 말은 특정한 상황에서는 디지털 미디어 사용을 자제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성년 자녀들이 이를 이해하고 이런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선 교사들이 이에 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학교는 학생들이 이러한 미디어 사용 자제 능력을 기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중략) 소아 연령의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공놀이를 하고 나서 수업에 참여할 때와 스마트폰으로 혼자서 게임을 하고 나서 수업에 참여할 때를 비교해보면 수업에 대한 집중도와 참여도에서 현저한 차이가 난다.
359 삶이 디지털화되면서 인간의 육체적 운동과 구체적 행위가 줄어들고 있음을 증명해주는 여러 정황이 있다. 우리는 수많은 이메일과 문자, 컴퓨터 게임의 캐릭터들을 끊임없이 이곳저곳으로 움직여보지만, 그럼으로써 우리의 삶과 사회는 별달리 바뀌지 않는다. 철학자 로베르트 팔러Robert Pfaller는 이러한 현상을 ‘쌍방향 수동성interpassivity’이라는 용어로 정확히 지적한다. 어쩌면 많은 이들이 칭송하는 사이버 ‘쌍방향 능동성interactivity’이 실상은 사이비 능동성에 가깝지 않을까?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마치 최면에 걸린 토끼처럼 영상 매체 앞에서 무력하게 보내고 몸을 더 안 쓰게 되면 점점 수동적으로 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의 현 시대를 지배하는 인터넷의 경제 원칙은 인간의 관심과 주의를 최대한 오랫동안 인터넷에 집중시키고, 육체적 능동성을 상실한 채 모니터 앞에 앉아 있도록 잡아두는 것이다.
362 디지털 미디어에 자신을 표현하고 과시하려는 경향에 휩쓸려 바깥세상에 비치는 모습을 중요한 척도로 삼으면, 우리는 그릇된 자아상에 종속된다. 모든 초점을 자신에게 맞추고 자신의 자아상에 몰두하며, 타인은 단지 자신을 인정하고 칭찬해주는 존재로만 여기는 이들은 점점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해간다. 남들이 감탄하는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려면 남들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이들의 모습이 아무리 완벽하다 해도 진정으로 사랑스럽지는 않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항상 아주 가까이 있다는 착각 속에 살지만, 결국에는 소셜 네트워크 때문에 사람들과 더 멀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369 모든 것을 사진과 동영상에 담으려는 우리의 비정상적인 욕구는 망각과 관련한 정서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우리 중에는 미디어를 사용해 기록해놓아야만 실제로 체험했다는 기분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만일 멋지고 감명 깊은 것을 보는 순간 반사적ㅇ로 카메라 혹은 스마트폰을 꺼낸다면, 이러한 멋진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고 집중할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멋진 장면과 그것을 보며 느낀 감명을 마음속에 담아두면 그 영향이 지속되어 삶이 충만해진다는 믿음을 잃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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