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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가루.석별.옛날이야기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서재곤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7월
평점 :
<인간 실격>과 <사양>, <달려라 메로스>를 20대 초반에 읽었지만 크게 관심이 가지는 않았는데, 미시마 유키오가 다자이를 그렇게나 싫어했다는 얘기에 호기심이 끓어 올라 읽고 있다.
생각보다 너무 좋다.
이 책에 실린 세 편은 모두 2차대전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성 상실의 위기 속에서 쓰여진 작품들이다.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글들이다. 그런데도 작가는 괴롭다고 울부짖지 않는다. 담담한 진술, 때로는 자조적인 유머. 그 속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고결함이 느껴지는 것이 신기하다.
<석별>, 204-205 센다이 사람들도 도호쿠 방언이 심했지만 내가 살던 시골은 훨씬 심해 무리해서 도쿄 표준어를 사용하려고 하면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어차피 시골 출신이라는 것이 알려져 있는데 아니꼽게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것은 시골 출신만이 알 수 있는 심리로 시골 사투리를 그대로 써도 비웃음을 하고 또 애써 표준어를 사용하면 더 큰 비웃음을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결국은 무뚝뚝한 과묵거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무렵 다른 신입생들과 소원했던 것은 이와 같은 언어 문제 때문이기도 했지만, 또 하나는 나도 의학전문학교 학생이라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까마귀도 한 마리 홀로 나목(裸木)에 앉아 있으면 그 모습이 그리 나쁘지 않고 새까만 날개가 멋지게 빛나 보이기도 하지만 수십 마리가 모여서 떠들면 쓰레기같이 보이는 것처럼, 의학전문학교 학생도 떼를 지어 큰 소리로 웃으면서 거리를 활보하면 사각모의 권위도 떨어지고 정말로 바보스럽고 불결하게 보였다. 어디까지나 고급 학생으로서 자부심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그들을 피해 다녔다고 하면 모양새가 좋겠지만, 한 가지 더 자백하면 나도 입학 당시에는 그저 흥분해서 무턱대고 센다이 시내를 돌아다녔고 실은 학교 수업도 종종 무단결석을 했다. 그랬기에 다른 신입생들과 소원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고 마쓰시마 유람선에서 그 신입생과 마주쳤을 때, 가슴이 철렁했고 왠지 모르게 거북했다. 나는 승객 중에서 유일하게 고고한 학생으로서 크게 폼 잡으며 마쓰시마를 구경하고 싶었는데, 또 한 사람, 나와 같은 교복과 교모 차림의 학생이 있어서는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 학생은 도시인처럼 세련되었고 아무래도 나보다 수재인 것 같아 풀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매일 성실하게 등교해서 공부를 하는 학생임에 틀림없었다. 맑고 시원한 눈으로 내 쪽을 흘끗 보았기에 나는 비굴한 웃음으로 답했따. 아무래도 안 좋아. 까마귀 두 마리가 뱃전에 앉아 있는데 한 마리는 여위어 초라하고 날개 색도 좋지 않으니 전혀 돋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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