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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소리 ㅣ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
미시마 유키오 지음, 이진명 옮김 / 책세상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미시마의 <파도 소리>를 이제서야 읽었다.
유명한 "그 불을 넘어 와"의 앞뒤 상황도 알게 되었는데, 굉장히 의외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젊은이들이 이렇게 순결하게 사랑하는 소설이 세상에 존재했었구나!
매우 훌륭한 작품.
79-81
"하쓰에!" 신지가 외쳤다. "그 불을 넘어와. 그 불을 넘어오면." 소녀는 숨을 헐떡거리며 맑디맑은 목소리로 가쁘게 말했다. 맨살의 신지는 주저하지 않았다. 불빛에 비친 그의 몸은 불길 속을 날아올랐다. 그 다음 순간 그는 이미 소녀 바로 앞에 당도해 있었다. 신지의 상체가 하쓰에의 가슴에 가볍게 스쳤다. "이거야. 이전에 빨간 스웨터 아래로 내가 상상했던 것은 바로 이 탄력이야." 신지는 감동했다. 그리고 둘은 껴안았다. 소녀는 앞으로 부드럽게 쓰러졌다. "솔잎 때문에 아파." 라고 소녀가 말했다. 손을 뻗어 하얀 속옷을 집어든 신지는 그것을 소녀의 등 밑에 깔려고 했다. 하지만 소녀는 한사코 이를 거부했다. 하쓰에의 양손은 더 이상 신지를 안으려 하지 않았다. 마치 어린애가 풀숲에서 벌레를 잡았을 때와 같이 무릎을 움츠리고 양손으론 속옷을 말아넣으며 완강하게 몸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하쓰에는 도덕적인 말을 했다. "싫어. 시집가기 전의 처녀가 그런 일을 하면 안 돼." 맥이 풀린 신지는 힘없이 말했다. "도저히 안 되겠니?" "안 돼." 소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모습은 훈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위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안 돼. 나, 너에게 시집가기로 마음먹었어. 시집가기 전까지는 정말로 안 돼." 신지의 마음 속에는 도덕적인 것에 대한 지고지순한 경건함이 있었다. 첫째로 그는 아직 여자를 몰랐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여자라는 존재가 지니고 있는 도덕적인 해4심을 건드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강요하지 않았다. 신지가 팔로 소녀의 몸을 꼭 감싸안은 채 둘은 서로의 맨몸으로 전해오는 고동을 들었다. 오랜 입맞춤은 채울 수 없는 젊음에 고통을 주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그 고통은 신비하게도 행복감으로 승화되었다. 이제야 장작불이 잦아드는지 이따금씩 튀기 시작했고 그 소리와 높은 창문을 스쳐드는 폭풍의 휘파람이 두 사람의 고동에 섞였다. 그러자 신지는 오래도록 깨어날 수 없을 듯한 취한 기분과 문밖의 파도 소리, 나무 끝을 뒤흔드는 바람의 반향이 자연 속에서 서로 동등하게 고조되어 물결치고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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