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여 년 전부터 어딜 가나 ‘죽기에는 암이 좋다’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이 이야기를 책으로도 써냈다. 그러다 보니 ‘과연 어떻게 죽나 보자’라며 나의 임종 자리에 꼭 참석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생겨날 정도로 뭇시선을 끌기도 했다. 사람들 입장에서는 나의 주장이 곱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죽기에는 암이 최고’라는 생각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 P119
첫째,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주변에 보이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마지막 의무라 여기기 때문이다. 서서히 쇠약해져가는 데에는 암이 적격이다. (중략) 둘째, 비교적 마지막까지 의식이 맑은 상태로 의사표시를 하기에는 암이 더할 나위 없이 좋기 때문이다. (중략) 암으로 인한 사망은 머지않은 미래의 집행일을 비교적 확실히 정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신변 정리를 깔끔히 할 수 있고 신세를 진 사람들에게 감사와 작별의 인사를 제대로 전할 수 있다. - P120
아무리 지독한 암이라도 그 가운데 30퍼센트는 통증을 수반하지 않는다. 요컨대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아프지 않다는 것이다. (중략) 사람들이 암을 ‘지독하게 아픈 병’이라고 여기는 까닭은 방사선이나 맹독성 항암제로 암세포를 어설프게 괴롭히기 때문이다. - P120
누구에게나 죽을 때를 대비한 자기만의 훈련 과정이 필요하다. 죽음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다소 아프거나 괴롭고 힘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한 상황에 미리 대비하기 위한 것이 훈련의 목적이다. 나의 경우는 가족들 앞에서 될 수 있는 한 아프다, 힘들다는 나약한 말은 입에 올리지 않는 것, 한숨을 쉬거나 근심 어린 표정을 짓는 일도 삼가고 평소처럼 행동하는 것, 그리고 앓는 것은 가능한 혼자 있을 때 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다. 상대가 가족인데 너무 냉정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가까운 사이에도 예의는 필요한 법이다. 눈만 마주치면 아프네, 괴롭네 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아무리 가족이라도 못 견딜 노릇이다. - P163
태어나는 것(生)은 나의 의지가 아니지만 늙고 병들고 죽는 것(老病死)는 오로지 나만의 몫이니 스스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젊고 건강할 때부터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보고, 마음 자세를 가다듬는 훈련이야말로 자연스럽고도 건강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길이다. - P163
오래전 큰아들 녀석이 고등학교 2학년일 때의 일이다. 하루는 다짜고짜 오토바이를 사달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책임질 능력도 없는 녀석에게 그런 건 사줄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자 한창 반항기에 있던 녀석은 ‘부모의 횡포’라며 대들기 시작했다. 나도지지 않고 "내가 우리 집의 법이다!"라며 폭군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다 언쟁으로 번져 한참 옥신각신하다가 녀석을 다리후리기로 넘어뜨려 제압한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아들놈은 예전의 꼬맹이가 아니었다. 그 큰 덩치로 죽자 살자 발버둥치는 바람에 5분도 지나지 않아 나는 심장이 터질 듯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그제야 새파래진 아들 녀석이 "구급차!"라고 외치는 순간 나는 "부르지 마!"라고 소리쳤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구급차는 부르지 않는다, 타지 않는다, 입원하지 않는다, 타지 않는다’라는 신조를 신주단지처럼 여기고 있다. - P178
내가 양팔로 가슴을 부여잡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자니 곁에서 아내와 딸은 엉엉 울고, 아들 녀석은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등 슬픔과 애통으로 가득한 현장이 연출된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예상한 대로 30분쯤 지나자 그럭저럭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상상이지만, 만약 그때 숨이 끊어졌다면 당사자가 구급차를 완강히 거부했다고 주장한들 증거는 없고, 가족들은 ‘보호책임자 유기치사’로 경찰의 수사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아들 녀석은 평생 ‘친부 살해’라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 점은 아비 된 자로서 대단히 무책임하고 경솔한 행동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때 나는 별 탈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늘 귀를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제 딴엔 어지간히 놀랐던지 아들 녀석은 그 일이 있은 뒤로 절대 내게 덤벼드는 일이 없다. - P179
노화란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특별한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늙어도 무조건 건강해야 한다’고? 늘는다는 것은 곧 건강하지 않게 되는 것인데도 자꾸 이런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 몸이 불편한 것도 서러운데 마음마저 커다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꼴이다.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이 젊음의 판타지에 너무 연연한 나머지 나이 탓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피하려고만 한다. 놀랍도록 발달했다는 근대의료에 과도한 기대감을 안고, 심지어는 노화를 병으로 간주하기까지 한다. 또한 각종 시술이나 약으로 젊음을 되돌릴 수 있는 것마냥 포장하지만 그런다고 노화를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작용과 피로감만 남을 뿐 세월 앞에 장사 없다. - P214
‘나이가 들면 어딘가 안 좋은 것이 정상’이다. 늙는다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이치임을 확실히 깨달아 건강에 너무 구애받지 말고 함께 가는 것이 더 건강하게 사는 법이 아닐까.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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