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표지 디자이너 ① John Gray of Gray 318 에 이어 랜덤 하우스의 Peter Mendelsund 를 두번째로 소개해보고자 한다.
랜덤 하우스의 쟁쟁한, 북디자이너계의 파르테논 신전과도 같은 그곳에서 하필 Peter Mendelsund를 먼저 소개하는 것은 피터를 거느리고 있는 신전의 신들이(아래에 이름이 나오는 칩 키드의 경우 오바마, 푸틴과 함께, 타임의 영향력 있는 100인에 꼽히기도 했다.) 얼마나 대단한가를 먼저 살짝 먼저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Peter Mendelsund의 표지 중 우리 눈에 익은 표지를 들자면 스콧 스미스의 공포소설 <폐허>를 들 수 있다.



번역본 표지 디자인이 원서만큼이나 잘 빠졌다. 이 소설은 멕시코의 유적지 폐허를 찾아가는 미국 여행객들의 이야기로
빨간 꽃은 식인 식물, 나무줄기들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서 움직이며, 여행객들을 잡아먹;; 뭐, 그런 류의 이야기이다.
강렬한  검정 바탕에 빨간 꽃이 치명적 아름다움을 암시한다.

사진이 꼭 비고 모텐슨처럼 나왔는데, 사실은 좀 nerd과에 가까운 모습이지 않나; 하는 생각. 뒤에 나오는 사진을 보고 판단하심. 이 사진은 그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사진이다. 

그가 북디자이너가 된 이력은 신기하다. 어떻게 이렇게 유명한 사람들 안에서 일하는 유명한 북디자이너가 되었을까 싶을 정도인데, 그 의외성이 그의 천재성을 증명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린시절, 그의 집안에는 예술적 기질이 넘쳐 흘렀다고 한다. 아버지는 건축가였다가 조각가가 되었고, 여동생은 화가였으며, 어머니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일했다. 가족 중에 유일하게 예술가기질도, 센스도 결핌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는 피아노를 가르쳤고, 콜롬비아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면서, 철학과 문학 시간 외의 대부분의 시간을 피아노를 치면서 보냈다. 졸업하고 나서도 그는 디자인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피아노를 가르치고, 치면서 근근히 입에 풀칠이나 하다가, 첫 딸이 생기자 돈벌이를 위해 CD 라벨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인연이 되어 (라고 하지만, 인연이 아니라 운명, 내지는 천운?) 어느날 정신차리고 보니 존 갈의 방문 앞에 있더라는... 그렇게 그는 랜덤 하우스의 올스타 라인업에(존 갈, 케롤 디바인 칼슨, 칩 키드) 조인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빈티지 북스에서 일하다가, 8개월후 크노프Knopf 하드커버 라인에서 일하게 되었고, 랜덤 하우스의 기라성 같은 선배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그들이 당신을 고용한 이유는...?

PM: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 제가 간 날 랜덤 하우스 물에 약이라도 탔나봐요. 그들은 제가 괜찮은 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저는 그들이 작업하고 있는 책들을 읽었거나 최소한 익숙하게 알고 있었지요. 여기서는 두가지 특성이 필요하다고 해요. 공간과 색에 대한 탁월한 센스, 그리고 문학에 대한 높은 이해도. 이런 것들이 이 직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입니다.  그들은 디자인 학교에서 처음 배우는 것을 가르쳤어요. (어떻게 볼 것인가), 나는 두번째(문학)을 어떻게 커버링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지요. 그래서 나는 디자인 수업에서 지속적으로 말합니다. 디자인과 관련되지 않은 책을 많이 읽으라고요.

아무튼, 그런 이유로 그들이 나를 뽑았어요. 플러스, 물에 탄 약이랑요. 아마 칩과 캐롤, 존만이 확실한 이유를 알겠지요.

*인터뷰 참조  

그가 디자인한 마오쩌둥에 관한 책 'Mao'의 디자인을 보자.



일단 우리가 아는 그 티피컬한 마오의 사진이 아니라는 것이 반갑다. 빨강의 강렬한 배경색은 초록과 노랑의 동양적 격자 무늬 틀 안에 들어 있다. 이 강렬한 표지로 그는 북디자인계에서 처음 눈길을 끌었을지도 모르겠다.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우리의 마오쩌둥 디자인들을 모아 보았다. (진짜 안 내켰다.)

 

'Mao'외에 인물을 주제로 한 피터의 다른 커버 디자인들을 보도록 하자.



왼쪽부터 카프카, 르 꼬르뷔지에, 쇼스타코비치와 스탈린이다.
이 중에서 카프카에 대한 이야기인 'K'는 정말 멋지다. 제목이 'K'이고, 그것이 카프카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쨌든 'K'라는 글자만으로 카프카에 대한 이야기인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만들었다. 
깔끔하고, 우아하고, 기발하다. 
르 꼬르뷔지에도 일단은 르 꼬르뷔지에와 어울리는 구성이다.

워낙에 북디자이너가 표지 디자인을 할 때 그 책을 먼저 읽어볼 것을 권한다. 최소한 내용을 알고 그 책의 디자인을 하여야
할텐데, 피터는 그 점에서 특히 강점을 지녔다. 대학때 전공한 철학과, 책을 좋아하는 문학소양은 북디자이너로서 그의 큰 강점이다. 그런 이유로 그가 고전 작품들의 표지 디자인을 맡아 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고, 그이기에 특별한 점도 있다.  

 

그의 '전쟁과 평화' 북커버이다. 최고다! 정말 구매욕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표지이지 않은가.

"'전쟁과 평화'의 경우, 나는 Pevear 와 Volokhonsky의 번역을 오래도록 기다려왔다. 그들이 번역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었을 때 내가 지금까지 알아왔던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했었다.톨스토이에 대해서도 같은 느낌이었다. 바이킹 출판사에서 안나카레리나를 그들의 번역으로 출판했을때, 나는 리차드 피버와 통화를 하기도 했고, '전쟁과 평화'가 나온다고 했을때 나서서 뛰어들었다. "

고전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깊은 북디자이너는 그렇지 않은 북디자이너에 비해 분명한 플러스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의 심플한 표지들을 모아보았다. 



이 중에서 'lonliness'와 'FROST', 'PEACE'를 좋아한다.
론니니스(외로움)의 알파벳 'i'위의 점이 얼마나 외롭게 홀로 떨어져 있는지 보이는가? 아.. 외롭다.
프로스트의 저 샤한- 느낌도 맘에 든다.   

그가 영향을 많이 받은 사조는 '구성주의' 인데,  그가 추구하는 표지이기도 하다. 그는 알빈 루스티히Alvin Lustig의 표지와 같은 추상적인 표지들의 빅팬이라고 한다.  

구성주의
구성파라고도 한다. 일체의 재현() 묘사적() 요소를 거부하고, 순수 형태의 구성()을 취지로 하며, 따라서 회화나 조각의 영역에서는 기하학적 추상()의 방향을 취한다. 금속이나 유리, 그 밖의 근대 공업적 신재료를 과감히 받아들여 자유롭게 쓰지만, 자기표출()로서의 예술이기보다, 공간구성 또는 환경형성을 지향했다. 필연적으로 기능성이 중시되고, 기계주의적 내지는 역학적()인 표현이 강조되었다. 재래의 회화나 조각의 개념을 풀어 헤치고, 새로운 공업시대에 적응하는 조형의 방법을 찾으려는 자세가 뚜렷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백치>의 표지가 눈에 띄고, 발터 벤야민의 표지도 눈에 띈다.
카프카의 구성주의적인 표지 또한 멋들어진다.  

당신의 표지중 많은 부분이 기하학적 요소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의식적인 선택인가요?
PM : 도스토예프스키 커버에 대해서는 의식적으로 그렇게 했다. 그리고, Walter Abish's memoir 'Double Vision'을 만들때도 물론 의식적인 결정이었다. 나는 보통 북쟈켓에 사진보다는 일러스트를 사용하기를 좋아하고, 더 추상적일수록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 접근이 독자들에게 더 많은 상상의 여지를 남겨 둔다고 생각한다.

  

  

디자인 백그라운드 없이, 빠른 시간 내에 스타가 되어, 많은 작업을 마친 Peter Mendelsund. 지금까지 보여준 것도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지니고 있는만큼, 앞으로의 모습이 더욱 기대되는 디자이너 중 하나이다. 


 

   

 

 

그외의 피터의 디자인들



 * 잘 봤으면 추천해도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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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9-02-09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의 표지는 정말 강렬하군요. 구성주의라... 정말 실감납니다.

하이드 2009-02-09 20:02   좋아요 0 | URL
페이퍼 정리하면서 구성주의가 뭔지 몰라 찾아봤어요.

"러시아 혁명을 전후하여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일어나, 서유럽으로 발전해 나간 전위적(前衛的)인 추상예술 운동"

라고 나오는데, '러시아 혁명'은 뭐지? 하고 있으니, 저의 무지는 끝도 없습니다;; 기회 될때 더 찾아보고 싶어요. ^^

위에 언급된 알빈 루스티히에 대해서도 준비중입니다. 알빈 루스티히의 표지들과 2-30년대 체코의 구성주의 표지들을 모아서요. 글 쓰면서는 구성주의 표지들 긴가민가 했는데, 다시 보니 강렬하고, 더 관심이 가네요. (막, 자기가 쓰고, 읽고, 관심 간다는 이 북장구치기는 뭔가요? ^^;)

무해한모리군 2009-02-09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자와 그림이 잘 어울려있네요. 멋지다..

starla 2009-02-09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고맙습니다. ^^

비연 2009-02-09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챦네요. 심플한 디자인들에 많이 끌린다는...^^
그나저나 우리나라 마오쩌뚱 표지들은 안습입니다..;;;

2009-02-09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9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9-02-09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사실, 마오쩌둥 표지만 그런게 아니겠지요. 휴우-
starla님, 재미있게 봐주셔서 다행입니다. ^^ 이제 2번이지만, 앞으로 쭉쭉- 몇번까지 하는지 관심있게 지켜봐주세요.
휘모리님, 그렇죠? ^^

Kitty 2009-02-10 0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디자이너계의 파르테논 신전 <- 완전 동감 ㅋㅋㅋ 기가 막힌 비유십니다 ㅋㅋ
그야말로 명품 페이퍼네요.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추천 하나만 누르기 미안한 1인;;;;
발터 벤야민 책 표지는 정말 멋지다 생각했는데 이 사람이 디자인한 것이로군요!!

하이드 2009-02-10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 북디자이너를 찾으려면 랜덤하고 펭귄만 훑어도 된다는;; ㅎㅎ
추천 감사합니다. ^^ 표지 페이퍼에는 유난히 추천을 밝히고 있는 하이드입니다요;

발터벤야민도 그렇고, 도스토예프스키도 볼수록 맘에 드네요.

jjinssong 2009-02-10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eter Mendelsund. 멋진 북 표지들을 디자인한 일러스트레이터를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겁게 읽었어요^^!!

하이드 2009-02-10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앞으로도 쟁쟁한 북디자이너들 소개할 예정입니다. 그때도 관심있게 봐주세요~

하루(春) 2009-02-11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늦었지만, 제가 갖고 있는 'Extremely loud &..'도 gray318이 디자인한 걸로 책 뒷표지에 나와 있더군요.
 
애널리스트
존 카첸바크 지음, 나선숙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카첸바크의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을 무척이나 인상깊게 봤다.
정신병자, 파이어맨, 여검사와 '천사'라 불리우는 잔인한 범죄자가 등장하는 아름답고 드라마틱한 이야기였다.

<애널리스트>가 전작에 비해 평이하게 느껴지는 것은 등장인물이 전지전능한 범인과 정신과 의사인 희생자, 단 둘에 국한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외의 조연들의 역할은 미미하고, 캐릭터가 죽어 있다. 무엇보다도 초반부에 정신과 의사인 리키 스탁스를 파멸시키기 위해 범인이 사용하는 방법들이 '전지전능'해서, 의사와 생일이 같은 친척 소녀의 생일에 사물함에 포르노 사진을 넣어둔다거나, 의사의 환자를 죽인다거나. 까지는 모르겠는데, 의사의 모든 계좌의 돈을 빼버린다거나, 집이 있는 건물 자체를 태풍에 휘말린듯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거나, 편지 한장으로 의사가 쌓아온 모든 경력을 무로 돌려버린다거나 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그 범인이 엄청난 증오로 의사에게 몇년에 걸쳐 복수하게 된 동기도 희박하다.

그러니, 저자가 640페이지라는 어마무시한 두께의 책을 술술 읽히게 하는 필력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읽는 내내 미심쩍은 마음이 한켠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약간의 억지스러운 설정을 소설적 장치려니, 무시한다면, 소설은 재미나게 읽히고, 진짜 이유도 모른채 '파멸' 바로 근처, '지옥문' 바로 그 앞까지 간 리키의 입장에서 미스터 R을 찾아 반격하는 리키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고, 쫓고 쫓기는 범인과 희생자의 이야기도 나름의 서스펜스를 갖추고 있다. 

희생자가 '정신과 의사'라는 점도 이 이야기의 매력포인트이다. 존 카첸바크는 누가 뭐라해도 심리소설의 대가이지 않겠는가. 정신과 의사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을 이용해 자신을 파멸시키고자 하는 존재에게 대항한다.  두명의 남자가 투탑으로 나오는.. 이라고 하기에는 미스터 R의 존재가 모호하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정신과의사 리키가 북치고 장구치는격.

장점이 많은 책이긴 한데, 설정이 약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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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02-0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번역은 괜찮던가요?

하이드 2009-02-09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히 거슬리지는 않았습니다.

비연 2009-02-09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약했죠..이 책은. 어느 미친사내의 고백에 비해서.

루나 2009-03-02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이책 보고 반해서 어느 미친사내의 고백 읽었는데... 이책 참 좋던데요~^^

하이드 2009-03-02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생각나는 좋았던 장면들이 있긴 한데, 주인공이 좀 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에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필연성도 좀 떨어지는것 같고 말이죠. 좋은 작가고, 좋은 글인건 분명해요. ^^
 
악의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와 온다 리쿠를 열광적으로 맞이했던 독자들 중에 하나고, 적극적으로 마음 돌리고 욕한 독자들 중 하나다.
안 읽으면 그만이지, 욕은 왜 하나. 라고 한다면, 좋아했던 마음이 기대 이하의 범작들로 인한 실망으로 지속적으로 무너져갈 때 겪게 되는 배신감 때문일 것이다. 플러스, 정말 많은 작품이 번역되어 나오기도 했고, 그 중에는 진짜 시간 아깝고, 돈 아까운 책들도 많기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이건 정말 괜찮아라고 해도 돈 주고 사기 싫어지는 지경까지 와 버렸으며, 내가 열번 속지, 열한번 속냐. 하는 심정으로 기대치를 확 낮추어 놓은 상태이다.

잡설은 그만하고, 꽤나 평이 좋은 작품인 <악의>를 읽게 되었다.
꼬인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좋은 이야기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치고는 지루하고, 히가시노 게이고 치고는 진중했다. 고 평하고 싶다.

이야기는 노노구치의 수기로 시작한다. 
학교 선생이다 그만두고 동화작가의 길로 들어선 노노구치와 손에 꼽히는 베스트셀러 작가에 문학성까지 인정 받은 히다카는 어린시절의 죽마고우다. 부인이 죽고 5년이 지나 재혼한지 한달이 된 히다카는 이제 곧 캐나다로 떠나 휴식기를 가지려 한다. 노노구치는 그를 방문해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고 돌아오는데, 그 날 밤 히다카의 전화를 받는다. 의논할 일이 있으니 와달라는. 마침 출판사 직원이 방문중이라 8시경에 찾아가기로 하는데, 막상 찾아가자 집안에 불이 모두 꺼져 있고, 집에는 아무도 없는듯하다. 부인에게 전화를 하고, 근처 찻집에서 기다렸다가 부인을 만나 집으로 들어가자, 히다카가 교살된채 죽어 있는데...  

노노구치는 사건을 조사하는 과거에 같은 학교에서 교사를 했던 가가형사를 만나게 되고, 자신이 평생 겪기 힘들 사건에 대한 수기를 쓴다는 것을 이야기하자, 가가형사는 그 수기를 보여달라고 한다. 사건의 진행에 따른 노노구치의 수기와 가가형사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면서 밝혀지는 진실, 아니 똘똘뭉친 인간의 악의惡意

이 책에는 정도가 각각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음기인 악의가 등장한다.
'악의'는 아주 어릴적의 학교 왕따 문제부터 시작한다. 왕따를 하던 대장겪의 못된놈은 '아무튼 그애가 싫었어요' '아무튼 그애가 싫었어요' 라는 말을 반복한다. 이유 없이 치솟는 나쁜 감정 '악의' 못된놈이 무리를 모아 그 악의들을 한 아이에게 쏟아 붓고, 그 악의는 또 다른 곳으로 더욱 증폭되어 전달된다.

도대체 이 이유없는 나쁜 감정 '악의'는 어디에서부터 생기는 것일까? 질투, 시기, 열등감, 등등의 밭에서 자라난 '악의'라는 재료를 히가시노 게이고는 훌륭하게 요리했다. 개인적으로 마침내 사건이 해결되고 나서, 탐정역의 인물이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사건 해결을 설명하는 것에 지루해하는 편인데,(이미 독자는 다 아는 얘기라구.) 이 책은 결말까지 나같이 성급한 독자의 눈을 놓치 않는다. 사건을 해결함에 있어서 who done it? why done it? how done it? 을 다루게 된다면, 이 책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은 why done it?이다. 범인은 진작에 밝혀졌는데, 왜? 범죄를 저질렀는가, 즉. 범죄의 동기는 무엇인가? 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과정에서 사건의 진정한 전말을 파악하게 된다.    

'세상에 시시한 책은 없다. 시시하고 편협한 마음의 독자만 있을 뿐이다' 라는 어느 일본 작가의 저자 후기를 본 적이 있다. 그런 얘기를 '저자'가 해봤자.. 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에 시시한 책은 열라 많고, 쓰레기 같은 책도 열라 많다고 생각하지만, 편협한 마음의 독자는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나도 가끔 '편협한 마음'의 독자가 된다는 것도 인정해야겠다. 이름만으로 사는 작가가 있는 반면, 이름만으로 절대 안 사. 했던 작가들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온다 리쿠가 그 둘. 이제 그 둘에 대한 편협한 마음을 버리고, '좋은 작품'을 엄선해서 읽어봐야 겠다고 반성했다.

*리뷰 제목은 <닥터 노먼 베쑨>중 닥터 노먼 베쑨의 연설문 중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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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9-02-08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완독. 아직 후끈. 저 역시, 살짝 식었다가, 이 책은 아주 맘에 들었담다.

하이드 2009-02-09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까지 흠잡을데가 없더군요. (막 흠잡으려고 작정하고 봤음에도 불구하고요 ^^;)

Beetles 2009-02-21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하이드님의 추천은 절 실망시키지 않는 듯..이스트사이더의 남자까지 최근 읽었네요...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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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발단은 잘못 보낸 이메일이었다. 모든 사랑에 빠지길 원하는 여자들의 로망인 '우연'에 의해, 그들의 만남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에미는 <라이크> 잡지의 구독을 중지하기 위해 메일을 보내는데, 몇번이나. 그 메일은 i 앞에 항상 e를 쓰는 그녀 특유의 자판 버릇 덕분에( 이 버릇에 대한 그녀의 장광설이 나를 바로 사로잡았다.) 레오라는 연령미상 남자에게 메일을 보내게 된다. 예의 바르게 수정해주는 레오의 이메일이 오고, 예의바르게 사과하고. 그렇게 '우연'은 그들의 만남을 엮어주었다.

여기 두 번째 '우연'이 다가 온다. 잘못된 주소가 잘못 저장되어, 레오에게 '판에 박힌' 연말 메세지를 보내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우연에 남자와 여자는 대화를 시작하고, 서로의 메일에 작은 스파크를 느끼게 된다. 일년 동안, 그들이 주고 받는 이메일로만 이 책이 이루어져 있고, 그걸로만도 넘치게 가슴 떨리고, 흥미 진진한 러브스토리를 보여 주었다는 것. 과연 에미와 레오는 만나게 될까? 를 궁금해하며, 게걸스럽게 책장을 넘기고, 마지막 장을 읽고 나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어리석은 남자와 여자의 상황에 지독한 현실성을 느끼게 된다. 

이야기는 그가 아마도 아주 매력적인 남자고, 그녀가 아마도 아주 매력적인 여자라는 전제에서 비현실적이고, 소설같다. (아참, 소설이지.)  세상에 아주 매력적인 여자가 지역에 사는 아주 매력적인 남자에게 두 번이나 우연히 메일을 (세상에 메일 주소가 몇개나 될까? 수억개? 수십억개? 아니 그 보다 더 많이?) 보내는 일은 현실에서는 일어날 법 하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그 점이 그들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지속시켜 줬다고 한다면, 한 쪽이 덜 매력적이었을때, 홀딱 깨면서 그 관계가 일장춘몽 박살 나는 것이 눈에 보이는 다음 수순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 나도 에미처럼 외모지상주의? 

에미에게는 단란하고 완벽한 가족이 있고, (남편을 포함한다!) 레오에게는 헤어지지 못하고 자꾸 만나는 여자친구가 있다.

설정은 평범하다.

이 소설을 한 번 잡으면, 끝장까지 넘기게 하는 힘은, 그들의 재치이다. 그리고, 이메일에 글로만 드러난 그들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 잡아 일년이 넘게 유지하게 것은 어쨌든 우리가 보고 있는 바로 이 메일들이다. 공평하군. '새 메일이 도착할 때 들리는 그 짧고 무덤덤한 신호음에, 툴 바의 그 코딱지만한 편지봉투 아이콘에 제 인생이 달려 있었어요.' 아, 독일어로도 유머가 가능하군. 키득거리게 만드는 유머 아닌 유머의 향연. '온라인 연애'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준 그 글들이 에미 앞에서와 똑같이 내 앞에도 펼쳐져 있다.  

때로는 말도 못하게 유치하고, 때로는 창피할만큼 성급하고, 또, 때로는 후회를 불러오는 액션과 노액션들. 
그런 후회와 유치함들이 안타깝게도, 현실에서의 사랑과 꼭 닮아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레오건 에미건 둘 중의 하나를 불러 앉혀 놓고, 와인 한 잔(이라고 말하고, 한 병이상이라고 읽는다.) 마시면서 연애 어드바이스를 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물론 조언을 해 주는 쪽이 레오라면, 조언이고 나발이고 덮쳐 버릴 확률도 높다. '나의 강아지 이름도 레오에요. 하지만 그녀는 여자에요. 왜 여자에게 레오라는 이름을 붙여 줬는지 들어볼래요?'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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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2-07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로맨스는 유치해지지 않기가 힘들다 생각했는데 이 소설은, 너무 좋아서 차마 아직도(!!!!) 마지막 장을 못넘기고 있습니다. 여름엔 독일어로 읽으려는 중이어요.

하이드 2009-02-07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일어로!! 저도 읽고 싶어요! 독일어로도 유머가 가능했구나!란 깨달음을 얻었지요.
대단하세요. 마지막장을 참고 있으시다니! ㅎㅎ

마노아 2009-02-08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장이 제일 마음에 들었는데 그걸 참으시다니! 아, 그나저나 리뷰 마지막 단락이 너무 재밌어요. 하이드님은 선수!
 
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포스트잇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독서의 역사> 올 1월 1일에 읽기 시작하여, 책 읽는 중간중간 야금야금 한 챕터씩 읽어내, 이제 막 마지막 챕터를 덮었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책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이렇게 이상한 표지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것에 전혀 후회는 없지만( 후회라니! 감동이라구!!), 책을 읽기 전에 기대했던 것보다 더 딱딱하고, 역사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있다.(제목이 독서의 '역사'라는 건 뭘로 본건지;)

이 책의 마지막 챕터인 '끝나지 않는 <독서의 역사>' 에 이 책의 컨셉이 잘 나와 있는 말이 있어 옮겨 본다.

'쉽게 접근할듯 하면서도 학구적이고, 정보를 제공하는 듯하면서도 사색적이다.'

이 말이 꼭 맞는 것이, 보르헤스의 말년 보르헤스의 책읽어 주는 아르바이트를 한 것으로도 유명한 망구엘은 자신의 책과 관련된 재미난 일화나 단상들로 챕터를 시작하여, 역사 속의 인물들과 독서에 관한 갖가지 행위들을 끌어내어 분석하고, 고찰하는 것으로 챕터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보르헤스와의 일화들도 나온다.('누군가에게 대신 책을 읽게 하기') 

독서 행위의 '역사'에 관해, 저자는 종이가 생기기 이전의 시대 이야기부터 릴케의 번역에 대한 이야기까지 '독서'라는 광대한 주제 아래, 자유 분방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나간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몇가지는 다음과 같다.

'금지된 책읽기'챕터에서는 농장주들이 극구 막았던 노예들의 책읽기가 나온다. 노예들이 노예로 남아 있지 않게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교육'이고, 그것을 담당하는 것이 '책' 이므로, '읽고', '쓰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리라. 그것은 여자들의 책읽기에도 해당된다. 이 책에서도 여러부분 나오지만,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에서도 책을 몰래 몰래 읽어야 했던 여자 독서가들의 역사가 묘사되고 있다.  처음 책이 나와서 귀족들의 고급문화로만 여겨졌을 당시 - 그도 그럴것이, 당시의 책은 화려한 장정에 필사자들이 일일히 한 글자씩 옮겨야 했으며, 종이 또한 귀했고, 글을 아는 자는 소수였다.- 구텐베르크의 활자가 나오고, 더 많은 대중들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때, 책은 단순히 글자들이 찍힌 종이 모음이 아니라, '지식'을 전달하는 여파를 몰고 오는 혁명의 가장 큰 수단이었다. 당시의 혼란에 관하여 이야기한 챕터도 있다.

'독서가로서의 번역가' 챕터에서는 릴케가 프랑스 시인의 시를 번역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불어와 독어 원문도 등장한다. 프랑스 시인의 그저그런 시를 릴케가 아름다운 독일어의 특성을 백이십분 발휘하여 최고의 시로 거듭나게 했다는 이야기는 재미나면서도 이런저런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혼자만의 은밀한 독서' 챕터에서는 침대 위에서 책읽기. 이야기가 나오고, '책 훔치기'에서는 희대의 책도둑과 책 도둑에 대한 역사적인 사료에 남아 있는 저주문구들이 나온다.(몹시 유용하다. .. 응? )

이와 같은 독서와 관련된 여러가지 주제들이 역사 속의 실존 인물들과 사건들과  어우러지고,  인용되는 이야기들은 물론, 흑백이긴 하지만, 풍부한 관련 도판들은 이 책을 놓칠 수 없는 이유중 하나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인 '끝나지 않는 <독서의 역사>' 가 유독 와 닿는 것은, 이 책을 아끼고, 아껴서 다 읽은 다음에도 여전히 허기지기 때문이다.  나의 독서는 계속되고, 그와 함께 나의 '독서의 역사'도 계속되리라. 수많은 독서가들의 역사와 함께 말이다. 침대 머리맡 책장에 얌전히 놓여진 <독서의 역사>는 외로운 독서가의 많은 동지들이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저기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독서의 역사>에는 끝이 없다. 위의 저자는 이 책 말미에 독자 여러분들이 아직 미래에 일어날 독서 행위와 놓쳐 버린 주제, 적절한 인용, 사건과 등장 인물에 대한 더 많은 사색을 덧붙일 수 있도록 백지 여러장을 남겨 두었다. 거기에는 약간의 위안이 담겨 있다. 나는 그 책을 내 침대 곁에 놓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오늘 밤, 아니면 내일 밤, 그것도 아니면 모레 밤에 그 책을 펼치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모습도 그려 본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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