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 지음, 정승희 옮김 / 작가정신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난 단편집을 좋아한다.
중남미 소설을 좋아한다.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라는 작가의 프로필도 맘에 든다. ' 여성, 동성애자, 좌파'인 그녀는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을 통해 제도와 문명이라는 틀 속에서 살아가는 회의하고 주저하는 일상의 순간, 현대적 삶의 편린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무려 서른개의 단편이 있으니 책도 실하다.
제목들도 너무 멋지다. '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 '장거리 주자 멈추어서다', '언어의 심연' , '도마뱀의 크리스마스' , '침대에서 내려오기 위한 지침들' , '빛이 물고기에게 미치는 영향', '돼지에게 국화 먹이기' ...

단편들의 내용들은 '어디선가 읽은' 이라기 보다 ' 신선한 날것의 새로운' 느낌이다.
동시에 ' 지루해서 죽을 것 같은' 과 ' 잔인해서 눈쌀 찌푸리게 하는 ' 이기도 하다.

이 모든걸 다 함께 지닌 단편집이라니.
읽어볼 시도 해볼만하다.

표제작이기도 한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은 어느 정크야드에 세워진 '쓸모없는 노력' 의 기록을 모아 놓은 박물관과 그 박물관을 매일같이 방문해서 기록을 열람하는 '나'의 이야기이다.
' 가계도를 복원하고, 금을 찾아 광산을 파헤치거나, 책을 쓰는 것 같은 쓸모없는 노력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복권에 당첨되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책에서 이야기되는 '쓸모없는' 은 머릿속에서 계속 퍼져나가서, 이 세상의 모든 행동과 꿈들이 '쓸모없는 짓'으로 분류되어 박물관 어딘가 처박혀 있을 것 같은 염세적인 마음마저 들게 한다.

그 외에도 '모나리자' 에서는 뒤샹의 '모나리자' ( 콧수염 그려진) 을 보고 스토리를 새롭게 만들어 내고 '타잔의 외침' 에서는 은퇴한 배우 자니 와이즈물러( 초대 타잔역) 에 대해 희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등 현재를 관찰해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시간이 약이다' , '창과 벽 사이' ( 스페인 숙어로 곤란에 빠졌다는 뜻) , ' 고집스런 양 한마리' 에서는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의 꼬.투.리.를 잡아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망명작가인 그녀의 경험은 '조각상들과 이방인들의 조건'  ' 도시' 와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으며,
그런 경험에서 나왔을법한 사회와의 화해. 충돌에 관한 이야기들도 ' 침대에서 내려오기 위한 지침' , ' 느슨한 줄에서 살기' 등에서 볼 수 있다.

줄거리만으로는 종합선물세트같은 단편집이 아닐 수 없다.


여기 모인 단편들을 난 '미완성' 혹은 '메모'라 부르고 싶긴 하다. 단순히 길이가 짧아서, 스토리가 완결되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평생 단편만을 썼던 보르헤스의 그 단편들에 집약된 완벽하고 완전하며 완결된 느낌을 받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가 2005-11-03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미스하이드님.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역자입니다. 뻬리 로시의 작품듦은 치밀한듯 한데 또 미완의, 열려진 구조를 갖고 있는 것같아요. 저한테는 한 가지 해석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모호함이 뻬리 로시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저도 독자로서 시작한 번역이니 만큼 작품에 대한 독자들 반응이나 느낌이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글 남겨주셔서 반가워서 댓글 달아봅니다:)

하이드 2005-11-03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닉네임이 멋지시네요. ^^ 좋아하는 곡인데.
내용도 알차고, 새로운 스타일이라 맘에 든 책이었습니다.
처음 읽을때는 미완의 느낌이 그리 편하지 않았는데, 다양한 해석과 결말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렇게 본다면, 또 매력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군요.
 

네. 책장입니다. -_-a
사람모양의 책장. 쿨럭.

Kazmierz Szmauz 란 사람이 디자인한 거라고 하네요.
이사람 CDMan, DVDMan 도 만들었다고 하네요.

아무튼 100여권의 책이 들어갔을때 가장 이상적이라고 합니다.

하나에 1700딸러 180만원정도 하네요. 쿨럭. 쿨럭.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룸 2005-10-08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ㅂ@ 갖고싶다!!!! 갖고싶어요!!!! 갖고싶습니다아아~~~!!!! >ㅂ<
퍼갈래요~~ 퍼갑니다~~~ ^^

숨은아이 2005-10-08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근데 가격에 비해 용량이... ^^;;;

물만두 2005-10-08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날개 2005-10-08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저게 어떻게 유지가 되는거죠? +.+

조선인 2005-10-08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벽에 붙인 게 아닐까요?
 

cuntcunt (2005-07-08 13:54:43)
마크 심슨은 2002년 7월22일자 웹진 살롱(www.salon.com) ‘메트로섹슈얼과 만나다’란 칼럼에서 이렇게 적었다. “메트로섹슈얼 타입은 메트로폴리스 가까이 살면서 돈을 쓰는 젊은 남자다. 왜냐햐면 거기에 최고의 숍, 클럽, 피트니스 클럽, 헤어숍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엄밀하게 게이나 양성애자나 바이섹슈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의 성적 취향은 단지 그의 기쁨을 주기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트로섹슈얼 타입은 대개가 모델이거나 웨이터, 팝 뮤지션, 미디어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인터넷 영어 사전 (www.wordspy.com)는 메트로섹슈얼을 이렇게 정의 내렸다.

“그 자신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그의 도시 라이프스타일 역시 사랑하는 댄디한 나르시시스트. 여성적인 면을 가진 이성애자.”메트로섹슈얼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 건 1994년이다. 1994년 11월15일자 <인디펜던트>에서 마크 심슨은 남자들의 새로운 변화를 언급하며 메트로섹슈얼이란 단어를 썼다. 그리고 그 단어는 <옵 저버>, <헤롤드>, <맥클린> 등을 통해 일파 만파 퍼져서, 스타일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남자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http://100.naver.com/100.php?id=772622

메트로섹슈얼의 패러디로 '메트로 걸'
' You are such a charm,' Judey said to me. ' Just look at you in your brand -new little pink skirt and adorable blond hair. Who would think you smoked cigars and overhauled carburetors? It's like you take metro-sexual to a whole new level. It's like you're Metro Girl.'

쟈넷 에바노비치의 메트로걸.
2005년 9월에 페이퍼백이 나왔으니 비교적 신작이다. 그녀를 세상에 알린 '스테파니 플럼' 시리즈에서 스테파니가 현상금사냥꾼으로 나왔다면,
메트로걸의 알렉스 버나비는 Mechanic 이다.

어릴적부터 아버지의 가게에서 자동차수리를 배웠고, 직접 만든 차로 레이싱도 나가는 터프한 여자다.
나이 서른에.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작업복을 벗어던지고, 살롱에 가서 블론드로 물들이고 잡지에 나오는 세련된 섀기스타일의 머리모양에 핑크색 미니스커트와 하얀탑을 입고 살랑거리고 살아보겠다. 하는 찰나에 마이애미에서 일하고 있는 동생 빌의 전화를 받는다.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는 여자의 비명소리와 함께 갑자기 끊겨버린다.

걱정이 되서 돌게생긴 바니( 버나비의 애칭) 는 마이애미행 비행기를 탄다. 큐트섹시블론드의 모습 그대로. 빌이 일하는 요트에 가서 "후크" 를 만난다. '빌이 그의 보트를 훔쳐갔다'고 주장하는. 섹시한 폭탄같은 후크는 나스카의 인기스타이다.

 

NASCAR란 National Association For Stock Car Auto Racing의 약자로 미국 내에서 시판되고 있는 차와 똑같은 겉모양을 한 차로 레이싱 경기를 하는 주최의 공인단체이다. 나스카는 윈스톤 컵과 Busch, Craftsman시리즈가 있는데 이중 윈스톤 컵은 전 미국공인 레이스가 2000개를 넘고 매번 레이스 마다 15만 이상의 관중을 동원하는 나스카의 대표적인 레이스로 일반적으로 나스카 레이싱이라고 하면 이 경기를 말하는 것이다. Busch는 윈스톤컵의 하위 단계정도이고 Craftman은 트럭이나 픽업형태의 자동차로 레이스를 하는 것을 말한다. NASCA는 미국내에서 F1에 못지않은 인기를 과시하는데 그 이유는 레이스에 참가한 차의 모습이 시판되고 있는 차와 똑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보는 사람은 마치 자신들이 타고있는 차가 레이스에 참가하는듯한 생각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http://kin.naver.com/open100/entry.php?eid=AcExcU486fhsjI4qrYueu09lmKMmjHlE

 

후크의 모습은 'One for the money' 그래 난 돈을 위해 산다 의 죠셉 모렐리에 좀 더 마초스러운 면과 좀 더 백치스러운 면과 좀 더 껄렁한 모습을 씌우면 된다.
말끝마다 NASCAR guy don't do that. because It's NASCAR guy. NASCAR guy is manly man. NASCAR guy never let girl drive. 뻑하면 나스카가이는 이래. 저래. 하는데, 백치스러워보인다. 그래서 더 귀엽다.

반면 우리의 메트로걸 바니는 비록 벌레와 엘레베이터를 무서워하긴 하지만,  맞아서 기절해 있는 후크를 구하기 위해 해머 하나 들고 총 든 두 남자를 상대한다. 그리고 구한다. 하하하.

후크와 함께 사라진 빌과 요트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바니. 
쿠바 나쁜놈 살짜 역시 빌과 함께 사라진 마리아라는 여자가 가지고 있는 금괴와 화학폭탄을 찾기 위해 다른 나쁜놈들을 동원한다.

그렇게 엮이고 엮이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지루함 없이 소설은 해피앤딩으로 끝난다.
그들의 러브라이프는 키스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지만. ( 혹시 시리즈가 계속 나오려나?)
유머가 거의 만담가 수준인 두 멋진 남녀주인공의 투닥거림과 밀고 당기기는 역시나 재미있다.

그녀를 '메트로 섹슈얼' 에 비교하는  '메트로걸'이라 부르는건 좀 억지스럽긴하지만, Whatever. 재밌으면 그만이지.


쟈넷 에바노비치를 아직 모르신다면...  스테파니플럼 시리즈1편
'그래 난 돈을 위해 산다' 를 권해드립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5-10-08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배야~ 이건 넘 염장이십니다요 ㅠ.ㅠ;;;

하이드 2005-10-08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슬슬 스테파니 플럼 시리즈 사 놓은거 읽어보려구요. ^^ ; 더.. 염장인가요? 흐흐

panda78 2005-10-08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e vision of 스테파니 플럼인가? 하는 거 오디오북 받아서 들었는데 재밌었어요. ^^

하이드 2005-10-08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거 시리즈중 하나인가요?

panda78 2005-10-08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것 같던데요. ^^ 크리스마스 이브 날 아침에 느닷없이 스테파니 집 부엌에 나타난 정체 불명의 남자! 로 시작해서.. ^^;;
 
시대의 우울 - 최영미의 유럽 일기
최영미 지음 / 창비 / 199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뷰를 쓰기 전에 올라와 있는 서른 아홉편의 리뷰들을 훑었다.
대부분 그녀를 '시인 최영미' 로 알고 '서른, 잔치는 끝났다' 란 강렬한 제목의 시인으로 알고 있다.
나 역시 이번에 그녀의 '서양미술사 - 문학과 미술의 특별한 만남' 을 듣기 전에는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 그렇다고 그녀의 시집을 찬찬히 읽어본적이 있던것도 아니였지만) 그녀가 서양사를 강의한다기에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녀는 서울대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했고 홍익대학원에서 역시 미술사를 전공한 미술사학도이다.( 그녀 자신 이 표현을 꺼릴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딱 한 번 들어봤지만, 미술사를 강의하는 그녀의 열정은 ' 자신이 가르치는 것을 정말 좋아하고, 수백번을 봤을 슬라이드를 설명하면서도 본인이 또 감탄하는' 그런 열정이었다. 그렇게 짧았던 두시간여의 강의 동안 미술사와 문학 이야기를 절묘하게 섞어내는 그녀는 본인 스스로 말솜씨가 없다. 두서없고, 어수선하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듣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강의를 신청하고 그녀 이름으로 된 책을 두 권 샀다. ' 화가의 우연한 시선'이라는 비교적 최근에 나온 표지도 아름다운 책과 '시대의 우울'이라는 자그마한 책. 무려 십여년전에 나온 책이다. 목차로 봐서는 비슷비슷한 요즘 나온 책들을 여러번 본 터라 사지 말까. 잠시 고민하며 책을 후루룩 넘기는데, 나를 사로잡는 한문장이 있어 대번에 샀다. ' 나는 '잔치는 끝났다'고 말한 적 없다'  그녀를 알기 전에 그 말은 참 도발적으로 다가왔고, 결국, 제목도 표지도 온통 블루인 이 책을 집었던 것이다.

1995년 1996년의 여행동안의 일기 속에 유럽을 혼자 떠돌았던 그녀의 모습은 지난달 이십여일간의 유럽여행을 떠올리게 했다. ' 생은 왜 내게 이다지도 낯설까. 이방의 도시를 전전하며 나는 자신과 끝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68pg '여행을 하면서 나는 점점 내 자신에 근접해갔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 내가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게 무엇인지. 얼마짜리 방이면 만족할 수 있는 인생인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91pg 이런류(?) 의 비슷한 유럽 일기. 함정임의 일기가 문득 생각났다. 그녀의 그 책은 묘지기행이었는데, 너무 오버된 감정으로 보기에 심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대부분인 그림 이야기에 간간히 섞여 나오는 최영미의 독백은 그대로 가슴 털썩스럽다.

이런류(?) 의 책들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이주헌의 책들이다. 그의 글은 솔직담백하며 자연스럽다.
최영미의 글? '깬다 ' 아. 이런글도 쓰는구나. 그저 이런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깜짝깜짝 놀라는데, 그녀가 속해있는 '서양미술사' 공부하는 무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괜찮을까, 그녀? 두번째 책인 '화가의 우연한 시선' 의 책껍데기에는 유홍준의 추천사가 있다. ' 그녀가 내 후배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 고하는 걸보면 왕따는 아니겠지?

언뜻봐도 호오가 분명해보이는 그녀다.
좋아하는 렘브란트의 그림 앞에서는 한없이 무너지고
루벤스의 거대한 캔버스들 앞에서 탄식하며' 거 참 비싼 화폭에 엄청나게도 물감을 싸질렀군'  이라고 말한다.  피터 브뤼겔의 '꿈나라 동산' 을 보는 그녀의 감상은 다음과 같다.
' 맛있는 음식들이 지붕 위에 가득 널려 있고 포식한 세 명의 남자가 늘어지게 누워 자는 한가로운 모습. 피터 브뤼겔의 [꿈나라 동산](1956) 이다. 동화책의 삽화 같은 그림 속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을 법한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오른쪽에 누운 남자의 바지춤이 벌어져 있는 게 아닌가. 너무 배 터지게 먹은 탓에 허리가 잠기지 않은 것이다.  사타구니 가리개가 벌어진 틈으로 혹시.... 아무래도 긴가민가하여 그 부위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혼자서 빙그레, 캔버스 앞에서 웃었다. '꿈나라 동산'이 어린아이의 동화에서 성인만화로 건너뛰는 순간이다. 대식가와 게으름뱅이들을 위한 지상낙원을 묘사한 이 작품의 실제 의도는 과식과 게으름에 대한 비판이라는데, 아무려면 어떤가.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어디선가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의 기억이 새롭다. 그림 속의 과자 접시들은 얼마나 신기하고 맛있어 보였던지. 난 그 음식들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아저씨들이 부러워 군침을 흘렸었다. '132pg

http://www.abcgallery.com/B/bruegel/bruegel-3.html


딱히 할일이 없어서 미술관 돌아다녔다는 그녀.
'나는 쌀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 - 89) 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 오후에 아까데미아 미술관을 나와 달리를 보러 바르똘로메오 교회( Chiesa S. Bartolomeo) 를 방문한 것은 순전히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였다. 내가 예약한 베네찌아발 빠리행 야간열차는 저녁 8시에 떠나는데 그때까지 무려 여섯 시간 동안 딱히 갈 데가 없었던 것이다. 점심을 먹은 뒤 리알또 다리 부근을 얼쩡거리다 심심해서 교회를 찾아들어갔다.' 190pg

호오가 분명하다고 했지만, 이 책에는 물론 그녀를 반하게 한, 그녀를 몇번이고 감탄하게 한 때로는 그녀를 무너지게 한 그림예찬들이 대부분이다. 이런류(?) 의 책들 속에서 '싫다' 는 얘기를 거의 본 적이 없기에 재미있어서 몇가지 인용하였다고 해서 오해말기를.

그래. 그녀. 시집을 낸 시인이었지? 그것도 대박친 시집.
이 책에서 그녀가 가장 열광하는 것은 '렘브란트' 가 아닐까. 그녀는 무언가 답을 찾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고, 그 여행을 끝낼쯤 그 답을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혹은 지금까지도 찾고 있는건지 모르겠지만.그녀가 그토록 열광하는걸 보면 여행중에 여러 도시에서 만난 렘브란트의 '자화상' 들에서 가장 근접한 답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평온하게 가라앉다가도 문득 들끓고, 웃다가 다시 분노하고, 상처받는가 하면 곧 냉소한다. 놀람과 두려움의 차이를, 자포자기와 견인의 미세하고도 심오한 차이를 그보다 더 잘 표현해낸 화가는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으리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의 표정을 한순간에 포착한 그의 초상은 언제 보아도 신선하고 현대적이다. 조금치의 감상도 허용하지 않고 자신을 직시하는 램브란트. 그 끔찍한 자의식은 거의 19세기의 보들레르 수준이다.

나의 신이여, 내가 형편없는 인간이 아니며 내가 경멸하는 자들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증명해줄 아름다운 시 몇편을 쓰도록 은총을 내려주소서.

- 보들레르, [빠리의 우울] -

그래, 바로 이거다. 뒤러가 세상에 대해 그토록 간절히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했다면, 램브란트와 보들레르는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했을 뿐이다. 135pg

그녀는 '그림들의 배후를 추적하는게 버릇' 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깐 좀 우아하게 말하면 '그림의 역사와 배경을 공부하는 것' 인데, 그녀의 그런 툭툭 던지는 말투는 은근히 거만한가? 겸손한가?
소크라테스이전부텀도 '요즘애들 버릇없'었듯이 시대 또한 항상 우울하다. 그래도 그 '우울' 을 힘으로 살아가는건 왠만한 예술가에게도 버거운 일일게다. 나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특별한 ' 우울' 은 찾아오고. 그 우울을 허용하는 시절이 있었다. 그녀의 책 제목 ' 시대의 우울' 은 나에게 그렇게 공명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anda78 2005-10-07 0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 털썩스럽다.. ^ㅂ^)b
시대의 우울, 우연히 읽고는 참 의외다 싶었어요.
서른, 잔치는 끝났다. 시 제목만 알고 있었는데, 그러면서 괜히 우습게 보고 있었는데, 참. 괜찮더라구요. ^^
화가의 우연한 시선도 좋았구요. 멋진 강연 열심히 들으시는 하이드님의 모습이 제일 멋집니다만. ^^

하이드 2005-10-07 0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너스.. 음.. 안 보인다. ^^;;

판다님. 그러게요 .그러게요. 저도 그랬는데, 정말 의외네요. 이 사람.


hnine 2005-10-07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기 시작해서는 단숨에 읽은 책 중의 하나랍니다. 작가의 강의를 어디서 들으시는지, 부럽네요. 시도 솔직하고 직선적이었지만, 저는 이 사람의 이런 수필이 제일 맘에 들더군요. 최근에 낸 소설 '흉터와 상처'는 약간 실망^ ^

클리오 2005-10-07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말, 시인인데 서양미술 쪽으로 넓혀가는 줄 알았었는데... 완전 잘못 짚었었군요.. ^^

kleinsusun 2005-10-10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강의를 어디서 들어시는거예용?
살짝꿍 알려주세용.

카페인중독 2006-09-21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녀의 그 싸한 말투때문에 자꾸 들춰보게 되요...
그 말투가 중독성이 좀 있더라구요...^^
 
스트로베리 숏케이크 Strawberry Shortcakes 1~2(완결) 세트
나나난 키리코 지음 / 하이북스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키리코 나나난
이 울림도 아름다운 소리의 이름을 가진 작가는
어쩌면 이렇게 우울한걸까.

다른 단편에선 그나마 우울 속의 희망. 일상 속의 일탈( 혹은 그 반대) 이 있는데,
이 책에서 모든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 사랑받고싶어사랑받고싶어' 를 힘겹게 되뇌이며
'죽고싶어. 죽어버릴까.' 를 절망속에 되뇌인다.

자신이 한없이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겨지고
냅둬도 잘만흘러가는 시간 앞에 체념하고, 혹은 심지어 두려워하고

내 속에는 분명 이런 우울함이 시도 때도 없이 치고나온다.
그런 우울함을 이렇게 책으로 그려내는 작가는
이렇게나마 자신의 독을 내뿜었으니 이제 살만한걸까?

다른 작품과 달리 간결하면서 성의없는 펜놀림이
더 우울하다.

두권짜리 장편이지만, 한 권 속의 단편보다 더 짧게 읽어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