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 크루소 - 아후벨의 그림 이야기
알베르토 모랄레스 아후벨 지음, 고인경 옮김 / 별천지(열린책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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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4-2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헤라클레이토스는 "가장 훌륭한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리고, 그 중에서 단 하나를 선택한다.'라고 말했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 쉽게 버리지 못하고 너무 고르다가 가장 나쁜 것을 갖는다. 모든 것을 버리고 단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현대사회에 들어설수록 더욱 힘든 일이 되고 있다. 앙드레 지드는 "선택한다는 것은 영원히 언제까지나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는 일이었으며, 그 '다른 것들'이 어떠한 하나의 것보다 좋아보였다."라고 했다. 이는 거꾸로 "선정한다는 것은 선택하는 것이라기보다 선택하지 않는 것을 물리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선택의 다양성'은 지연효과를 가져온다.

슈퍼마켓 잼 실험 : 슈퍼마켓에 6종류의 잼을 진열해 놓았을 때, 다른 쪽에는 24종류의 잼을 진열해 두었을 때 처음에는 잼 종류가 많은 곳으로 사람이 몰리게 된다.40퍼센트가 6종류의 잼 코너를 방문했고 60퍼센트가 24종류의 잼 코너를 방문했다. 그러나 실제로 구입한 사람은 6종류의 잼 코너에서는 30퍼센트였고, 24종류의 잼 코너에서는 3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베리 슈워츠는 이를 '선택의 패러독스 The Paradox of Choice' 라고 한다. '선택사항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선택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선택사항이 많다는 것은 불확실성이 증가한다는 뜻. 후회할까봐 염려되어 선택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불확실성과 책임을 분산하거나 대신 책임을 져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는 전문 매장일 수도 있고 얼리어답터일 수도 있다. 요즘에는 인터넷에서 전문 블로거들이 그런 역할을 한다. 적어도 그들의 도움을 받아 물건을 구입했을 경우에는 그들을 비난하거나 책임을 따져 물을 수 있지만, (으잌;;) 그렇지 않고 전적으로 혼자 생각하고 결정했을 때는 자신에게 닥친 불확실성은 물론 책임도 전가하지 못한다.  

어떤 물건을 사면 다른 물건을 살 수 없다. 이것은 후회의 감정으로 이어진다.

작가 앙드레 브레송은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이 주어진다면 후회가 남을 가능성도 두 가지다."라고 했다. 사람들은 효용보다는 후회의 감정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뒤늦은 후회와 자책감이 사람들을 계속 괴롭히기 때문이다. 

                                                                         ***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 선택을 미루게 된다는 이야기와 좋은 것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후회하지 않기 위한 선택이라는 이야기는 와닿는다. 그러나 그 모든 소비심리의 클리쉐를 뛰어넘어 책을 사고 또 사는 나는 뭐하는 쌈바의 여인인가. 쩝.

기대보다 꽤 재미있게 읽고 있다. '의외의 선택, 뜻밖의 심리학'은 소비심리에 대한 책이다. 한국 저자라 한국의 사례들도 간간히 끌어들이고 있다. 한국 저자인걸 잊고 읽다가, 한국 사례에 반가워하다가 아, 한국 저자였지. 하는 식 ^^;

위의 '선택'에 관한 챕터의 제목은 '여자 아나운서와 여교사 중에는 왜 골드미스가 많을까' 이다. 마지막 두 장정도를 이 여자 아나운서와 여교사 이야기와 선택의 패러독스를 연결시켜 이야기하고 있는데, 중간중간 드는 사례들은 고개 끄덕이게 하지만, 가끔 이렇게 좀 뜬금없는 예가 나오는게 NG라면 NG. 이거랑 '배우자를 찾으려면 나이트에 가라' 에서는 부킹과 전담 웨이터문화를 예로 들고 있는데, 그 또한 꽤 뜬금없었음. 그런 몇 가지를 패스하면, 여러가지 정보와 사례들을 그럭저럭 잘 모아 두어 재미나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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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우 2010-04-21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연히 발견한 주옥같은 블로그네요.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

하이드 2010-04-21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 변방의 블로그인데, 찾아주셨네요.

하이드 2010-04-22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요. 흐흐. 여자의 결혼에 대해서 엄청난 시각차를 가지고 있는 남자 어른분들을 종종 봅니다. 물론 그분들에겐 저의 결혼관이 좁힐 수 없는 갭이겠지만요. ^^
 
내가 함께 있을게 웅진 세계그림책 120
볼프 에를브루흐 글 그림, 김경연 옮김 / 웅진주니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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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 에를브루흐의 <내가 함께 있을게>는 오리 그림으로 시작한다.

"대체 누구야? 왜 내 뒤를 슬그머니 따라다니는 거야?"

"와, 드디어 내가 있는 걸 알아차렸구나"

죽음이 말한다.

"지금 나를 데리러 온거야?"

"그동안 나는 죽 네 곁에 있었어."

늘 곁에 있는 죽음

"사고가 날까 봐 걱정해 주는 것은 삶이야. 삶은 감기라든가.
너희 오리들이 당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걱정하지."

죽음이 친절하게 미소짓는다.
죽음만 아니라면 괜찮은 친구라고, 꽤 괜찮은 친구라고 오리는 생각한다.

"우리, 연못에 갈까?"

"미안, 난 이 축축한 곳에서 나가야겠어."

"추워? 내가 따뜻하게 해 줄까?"

죽음을 덮어주는 오리

다음날 아침 일찍 오리가 먼저 잠에서 깬다.
"나, 아직 죽지 않았어!"

죽음과 오리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늘은 우리 뭘 할까?"
죽음이 기분 좋게 묻고

죽음과 오리는 나무에 올라가기로 한다.

나무 아래 쓸쓸하고 고요한 연못을 보고 오리는 죽은 후를 생각한다.

죽음은 오리의 마음을 읽고 오리를 달랜다.
죽음도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한 주 한 주 시간이 흐르고, 그러던 어느 날 서늘한 바람이 오리의 깃털 속으로 파고들자
오리는 문득 추위를 느끼고 죽음에게 말한다.

"추워. 나를 좀 따뜻하게 해 줄래?"

하늘에선 부드러운 눈이 나풀나풀

죽음은 오리의 깃털을 쓰다듬어 주고
오리를 안고 강으로 간다.

오리가 보이지 않게 될때까지 떠내려가는 오리를 바라보고 있자
죽음은 슬픔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이 삶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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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10-04-20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마 토끼 오쁠라>가 생각나요. 죽음에 관한 그 그림책을 저는 좋아하거든요.

조선인 2010-04-21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경연님은 확실히 믿을만한 책만 번역해요. 끄덕.

하이드 2010-04-21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번역가를 보는 것도 좋은 그림책을 고르는 한 방법이군요.
이 책 참 좋아요.

Joule 님, 저두요. 그림책 중에서도 죽음을 다루는 그림책 꽤 많더라구요. 하긴, 배워야할 것은 삶뿐만 아니라 죽음도.

2010-04-21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21 2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와작와작 꿀꺽 책 먹는 아이 - 올리버 제퍼스의 특별한 선물 그림책 도서관 33
올리버 제퍼스 글.그림, 유경희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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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제퍼스라는 작가를 알게 된건 해외 블로거 사이트에서였다. 일러스트, 책, 애니메이션까지 꽤나 인기 있는 작가. 그의 그림을 모으게 되었고, 나중에야 이미 그의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늘은 그의 책들 중 <책 먹는 아이> 리뷰 -

책을 무척 좋아하는 헨리라는 아이가 있었다.

올리버 제퍼스 특유의 단순하니 와닿는 그림은
복잡한 사물(책,책표지, 봉투, 신문, 수학노트 등)들의 콜라주 배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이 묘한 질감을 가지고 있는 이유다.

헨리가 책을 좋아했는데,

책을 '먹는걸' 좋아했다고.

한 번 먹어보니 .. 맛있더라. 는 이야기.

처음엔 시험 삼아 글자 하나로 시작하고, 다음에는 한 줄, 다음에는 한 장을!

'책을 먹는다' , '책을 소화시킨다'는 표현이 어떻게 쓰이게 되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편식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책을
엄청난 속도로 먹어치웠다.

부러운 것은..
책을 먹으면 먹을수록, 더 똑똑해진다는 거!

금붕어에 대한 책을 먹으면 금붕어에 대해 알게 되고..
아빠의 신문 퍼즐도 하게 되고

결국은..

학교 선생님보다 똑똑해진 헨리!

책의 배경이 되는 방안노트와 칠판 역할을 하는 책표지가 인상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되기 위해
계속 책을 먹는 헨리는
점점 더 똑똑해지고...
더, 더, 똑똑해지고!

체하게 되고, 아프게 된다.

우웩우웩

모든 지식이 엉망진창 섞여 버려
제대로 소화 시킬 시간도 없었고.
말하는 것마저 아주 힘들어지다.

2+6= ??? 코끼리

바보가 된 헨리

책 먹는 걸 그만두고
슬퍼진 헨리

바닥에 먹다 남은 책을 주워든 헨리는

그것을 입에 넣는 대신..........

이제 헨리는 '와작와작 신기하고 놀라운 브로콜리를 먹'으며
항상 책을 읽는다.

가끔 먹기도 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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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0 0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음동자 2010-04-20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책을 소개하는 글은 그냥 읽었는데 말이죠. 그림책을 제가 너무 너무 좋아하는지라, 도저히 로그인을 안 할수가 없네요. 이 책! 너무 너무 귀여워요. 책을 먹기만 하다가 체하다니. 그래서 책을 읽는다니.
귀여워요. 저런 이야기들때문에 그림책을 계속 읽게되네요.
전 오늘도 하이드님 리뷰에 책 충동에 사로잡혀 고민 이랍니다. ^^

moonnight 2010-04-20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악. 너무 귀엽잖아욧! >.<
조카가 좋아할 것 같아요.
하이드님 그림책 리뷰는 읽기 전에 보관함에 먼저 던져넣는다는 ^^
 

미셸 슈나이더의 <죽음을 그리다>를 읽고 있습니다. 이전부터 보관함에 담아두었던 책인데, 표지의 고흐그림과 제목의 '그리다' 라는 것을 보고, 화가들이 그린 '죽음' 뭐 이런 이야기인가보다. 맘대로 상상하고 있었더랬지요.   

이번에 읽기 시작하니, 전혀 그런 내용은 아니고요, 아니, 전혀 아닌건 아닌가, 죽음 앞에 선 작가들 이야기에요. 작가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나오기도 하고, 죽음에 다다랐을 때의 심경이나 죽음에 대해 썼던 글들을 모아 놓기도 했습니다. 가쉽성의 이야기거리가 아닌가 싶을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고. 가쉽과 문학,인문학,철학, 심리학의 사이 정도의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너무 어렵지 않고, 재미있는. 그런 책이요. 게다가 전 알다시피 '죽음', '노년' 이런 주제를 좀 좋아하잖아요.   

리뷰나 다른 페이퍼에서 다른 챕터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게 될 수도 있겠구요. 지금은 '그래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 네, 챕터 제목이에요. 챕터 제목들을 참 잘 뽑았어요. 슈테판 츠바이크 '표절된 죽음', 몽테뉴 '잘린 혀', 볼테르 '나는 살해된 채 태어났다', 푸슈킨 '죽음을 부르는 여인', 체호프 '나는 죽는다' , 도로시 파커 '먼지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등등등  챕터의 제목에 어울리는 좋은 글들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되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 때로는 말랑하게, 때로는 건조하게, 때로는 음침하게, 때로는 가쉽같이 다양한 어조로 다루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그렇다고 일관성이 없거나 한건 아니에요.  

사설이 자꾸 길어지네요. '그래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는 말랑말랑한 어조.라고 해도 되겠죠. 그러니깐, 혹시 이 글을 보고, 이 책의 글이 다 이런가보다 할까봐 그랬어요.  

데팡부인과 당시 사교계의 꽃인 여인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18세기 말 귀족 여성들은 서로 싫어하면서도 함께 어울렸다고 해요. 레피나스, 조프레 부인, 아이세, 그리고 데팡부인. 살롱의 전성기 프랑스에서, 각각 유명한 살롱의 여주인들이었지요.  

러시아 남부에서 노예로 팔려왔다가 우연히 일약 사교계의 스타로 떠오른 아이세. 빼어난 미모에 청순미까지 갖추고 있던 그녀는 누구보다도 강렬하고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었구요. 진심으로 사랑한 블레즈 데디에게 열정이 가득 담긴 편지들을 남겨요. 블레즈 데디는 아이세를 처음 만났을 때는 교활한 남자였지만, 나중에는 세상에서 가장 지조있는 남자가 됩니다. 아이세는 짧은 인생을 무척 고통스럽게 살았는데요, 그래서인지 글을 쓸 때도 간접화법으로 썼대요. 우울하고 아름다운 서간문들을 남겼습니다.  

   
  아이세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그녀의 사망 원인이 결핵이며, 죽을 때 채 마흔도 되지 않았고, 연인 곁에서 죽음을 맞았고, 그 남자는 그녀를 생각하며 남은 생을 보냈다는 사실 외에는.
단지 아이세가 편하게 눈을 감도록 도와준 사람이 파라베르 부인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문장이 왜그렇게 와닿는지 모르겠어요. 그 남자가 그녀를 생각하며 남은 생을 보냈다.라. 아이세가 편하게 눈을 감도록 파라베르 부인이 도와주었다는 것. 아이세의 죽음과 죽음 후를 단 두 문장으로 잘 표현한 것 같아요. 별거 아닌 거 같은데, 마음에 그려져요.   

파티와 음악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던 조프랭 부인은 79세에 전신마비과 왔는데, 웬일인지 죽을 때가 되자 다시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네요. 그 기회를 틈타 폴란드의 국왕이 된 옛 애인 스타니슬라스 포니아토와스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그리고 조프랭 부인은 펜을 놓으며 잉크병을 쓰러뜨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 손이 쓴 마지막 글자가 그이를 위한 것이 되었군."  

 
   

 데팡 부인은 진정 용기 있는 여자였다고 합니다. 어떤 일이 닥쳐도 이성을 잃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여자였다고요. 그녀는 왜 남자 하나 때문에 여자들이 불행해지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남자와 헤어진 다음 느끼게 된 외로움도 별것 아니였지요. 그런 그녀가 56세 때 눈이 멀게 되었어요. 그녀는 책을 쓰거나 한 적은 없지만,  보들레르가 말했듯이 '새로운 문학 장르를 예고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는 편지들로 그녀는 문인의 반열에 올라 있지요.  

"죽음은 전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하루하루가 죽음으로 가는 길이며, 인간은 누구나 마지막에 다다르게 마련이니까."

"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거의 호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죽은 사람들에게만 편지를 쓸 것이다. 마찬가지로 감수성이 예민하고 한가한 여성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 속의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서 속마음을 드러내겠지."

데팡 부인은 나무가 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나무는 의식은 없지만 숨을 쉬고 살아가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는 느룹나무와 떡갈나무가 되고 싶었다. 이들 나무가 오래 살아서가 아니라 어두운 그늘을 많이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어쨌든 데팡 부인은 삶을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숨바꼭질을 하면서 들키지 않게 해달라고 비는 어린아이, 간이 콩알 만해져서 물건을 훔치지 못하는 도둑처럼 한없이 작아졌다.  

데팡 부인의 존재 이유였던 월폴은 말년에 그녀의 편지를 통해 그녀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데팡 부인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마치 죽음의 신이 데팡 부인을 놓칠까 봐 얼른 손을 써서 그녀를 질질 끌고 간 것 같았다.' 고 합니다.  

부인의 하인이자 말년에 그녀의 편지를 대필하였던 비아르는 월폴에게 데팡 부인의 마지막 순간을 글로 알립니다.  

선생님, 마님의 병과 죽음에 대해 자세히 알려달라고 하셨죠. 마님이 보낸 마지막 편지를 아직 갖고 계시면 다시 한 번 읽어보세요. 마님께서 영원한 작별인사를 한 구절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편지 날짜가 8월 18일일 겁니다. 당시 마님께서는 열은 없으셨지만 죽음이 다가온다고 느끼셨습니다. 마님은 선생님께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이제 앞으로 마님 소식은 저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을 거라고요. 
마님 편지를 받아 적으면서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릅니다. 마님께서는 편지를 쓰시고는 다시 읽지도 못할 만큼 힘들어하셨습니다. 목이 메어 말도 안 나옵니다. 마님께서는 이렇게 받아적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날 사랑하나요?'  

 

 

그 장면이 제게는 그 어떤 비극 작품보다 더 슬펐습니다. 비극 작품은 허구지만, 제가 본 장면은 진짜였으니까요. 마님께서는 마음속 진실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제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데팡 부인은 일찍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난 이제까지 한 번도 제대로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녀는 월폴에게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일은 매일 죽는 것과 같아요." 라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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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4-19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죽음에 관한 책이 참 좋아요. 잘 죽고 싶어요^^;; 제목을 잘 짓는 작가는 점수 반은 따고 들어가는 것 같아요. 제목들이 너무 좋네요. 하이드님이 경어를 쓰니까 상큼합니다.^^ 죽음을 그리다, 관심이 많이 갑니다.

하이드 2010-04-19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졸다 말다 하면서 이 책을 읽고 있었는데요, 이 챕터가 문득 너무 좋은 거에요. 왠지 그 기분에 안 쓰던 경어까지 써가며 페이퍼를 후루룩 썼어요. 반정도 읽었는데, 이 책 참 맘에 듭니다.

반딧불이 2010-04-20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처럼 챕터들의 제목이 유혹적이네요. 갑자기 경어를 쓰시니까 소녀가 처녀가 된듯한 느낌이어요~

moonnight 2010-04-20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의 페이퍼. 왠지 자세를 똑바로 하게 되네요. 경어 때문일까요.
바로 보관함으로 넣었습니다. 아아. 왜 이렇게 읽고 싶은 책이 많을까요.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