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슈나이더의 <죽음을 그리다>를 읽고 있습니다. 이전부터 보관함에 담아두었던 책인데, 표지의 고흐그림과 제목의 '그리다' 라는 것을 보고, 화가들이 그린 '죽음' 뭐 이런 이야기인가보다. 맘대로 상상하고 있었더랬지요.
이번에 읽기 시작하니, 전혀 그런 내용은 아니고요, 아니, 전혀 아닌건 아닌가, 죽음 앞에 선 작가들 이야기에요. 작가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나오기도 하고, 죽음에 다다랐을 때의 심경이나 죽음에 대해 썼던 글들을 모아 놓기도 했습니다. 가쉽성의 이야기거리가 아닌가 싶을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고. 가쉽과 문학,인문학,철학, 심리학의 사이 정도의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너무 어렵지 않고, 재미있는. 그런 책이요. 게다가 전 알다시피 '죽음', '노년' 이런 주제를 좀 좋아하잖아요.
리뷰나 다른 페이퍼에서 다른 챕터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게 될 수도 있겠구요. 지금은 '그래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 네, 챕터 제목이에요. 챕터 제목들을 참 잘 뽑았어요. 슈테판 츠바이크 '표절된 죽음', 몽테뉴 '잘린 혀', 볼테르 '나는 살해된 채 태어났다', 푸슈킨 '죽음을 부르는 여인', 체호프 '나는 죽는다' , 도로시 파커 '먼지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등등등 챕터의 제목에 어울리는 좋은 글들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되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 때로는 말랑하게, 때로는 건조하게, 때로는 음침하게, 때로는 가쉽같이 다양한 어조로 다루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그렇다고 일관성이 없거나 한건 아니에요.
사설이 자꾸 길어지네요. '그래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는 말랑말랑한 어조.라고 해도 되겠죠. 그러니깐, 혹시 이 글을 보고, 이 책의 글이 다 이런가보다 할까봐 그랬어요.
데팡부인과 당시 사교계의 꽃인 여인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18세기 말 귀족 여성들은 서로 싫어하면서도 함께 어울렸다고 해요. 레피나스, 조프레 부인, 아이세, 그리고 데팡부인. 살롱의 전성기 프랑스에서, 각각 유명한 살롱의 여주인들이었지요.
러시아 남부에서 노예로 팔려왔다가 우연히 일약 사교계의 스타로 떠오른 아이세. 빼어난 미모에 청순미까지 갖추고 있던 그녀는 누구보다도 강렬하고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었구요. 진심으로 사랑한 블레즈 데디에게 열정이 가득 담긴 편지들을 남겨요. 블레즈 데디는 아이세를 처음 만났을 때는 교활한 남자였지만, 나중에는 세상에서 가장 지조있는 남자가 됩니다. 아이세는 짧은 인생을 무척 고통스럽게 살았는데요, 그래서인지 글을 쓸 때도 간접화법으로 썼대요. 우울하고 아름다운 서간문들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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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세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그녀의 사망 원인이 결핵이며, 죽을 때 채 마흔도 되지 않았고, 연인 곁에서 죽음을 맞았고, 그 남자는 그녀를 생각하며 남은 생을 보냈다는 사실 외에는.
단지 아이세가 편하게 눈을 감도록 도와준 사람이 파라베르 부인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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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이 왜그렇게 와닿는지 모르겠어요. 그 남자가 그녀를 생각하며 남은 생을 보냈다.라. 아이세가 편하게 눈을 감도록 파라베르 부인이 도와주었다는 것. 아이세의 죽음과 죽음 후를 단 두 문장으로 잘 표현한 것 같아요. 별거 아닌 거 같은데, 마음에 그려져요.
파티와 음악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던 조프랭 부인은 79세에 전신마비과 왔는데, 웬일인지 죽을 때가 되자 다시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네요. 그 기회를 틈타 폴란드의 국왕이 된 옛 애인 스타니슬라스 포니아토와스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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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그리고 조프랭 부인은 펜을 놓으며 잉크병을 쓰러뜨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 손이 쓴 마지막 글자가 그이를 위한 것이 되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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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팡 부인은 진정 용기 있는 여자였다고 합니다. 어떤 일이 닥쳐도 이성을 잃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여자였다고요. 그녀는 왜 남자 하나 때문에 여자들이 불행해지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남자와 헤어진 다음 느끼게 된 외로움도 별것 아니였지요. 그런 그녀가 56세 때 눈이 멀게 되었어요. 그녀는 책을 쓰거나 한 적은 없지만, 보들레르가 말했듯이 '새로운 문학 장르를 예고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는 편지들로 그녀는 문인의 반열에 올라 있지요.
"죽음은 전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하루하루가 죽음으로 가는 길이며, 인간은 누구나 마지막에 다다르게 마련이니까."
"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거의 호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죽은 사람들에게만 편지를 쓸 것이다. 마찬가지로 감수성이 예민하고 한가한 여성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 속의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서 속마음을 드러내겠지."
데팡 부인은 나무가 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나무는 의식은 없지만 숨을 쉬고 살아가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는 느룹나무와 떡갈나무가 되고 싶었다. 이들 나무가 오래 살아서가 아니라 어두운 그늘을 많이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어쨌든 데팡 부인은 삶을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숨바꼭질을 하면서 들키지 않게 해달라고 비는 어린아이, 간이 콩알 만해져서 물건을 훔치지 못하는 도둑처럼 한없이 작아졌다.
데팡 부인의 존재 이유였던 월폴은 말년에 그녀의 편지를 통해 그녀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데팡 부인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마치 죽음의 신이 데팡 부인을 놓칠까 봐 얼른 손을 써서 그녀를 질질 끌고 간 것 같았다.' 고 합니다.
부인의 하인이자 말년에 그녀의 편지를 대필하였던 비아르는 월폴에게 데팡 부인의 마지막 순간을 글로 알립니다.
선생님, 마님의 병과 죽음에 대해 자세히 알려달라고 하셨죠. 마님이 보낸 마지막 편지를 아직 갖고 계시면 다시 한 번 읽어보세요. 마님께서 영원한 작별인사를 한 구절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편지 날짜가 8월 18일일 겁니다. 당시 마님께서는 열은 없으셨지만 죽음이 다가온다고 느끼셨습니다. 마님은 선생님께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이제 앞으로 마님 소식은 저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을 거라고요.
마님 편지를 받아 적으면서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릅니다. 마님께서는 편지를 쓰시고는 다시 읽지도 못할 만큼 힘들어하셨습니다. 목이 메어 말도 안 나옵니다. 마님께서는 이렇게 받아적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날 사랑하나요?'
그 장면이 제게는 그 어떤 비극 작품보다 더 슬펐습니다. 비극 작품은 허구지만, 제가 본 장면은 진짜였으니까요. 마님께서는 마음속 진실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제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데팡 부인은 일찍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난 이제까지 한 번도 제대로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녀는 월폴에게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일은 매일 죽는 것과 같아요." 라고 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