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깐, 어제 2010년 좋았던 책들을 추려 보았고,
어제의 기분은 꽤 안 좋았지만 ( 그러니깐, 휴지통 같고, 늙은 말 같았으니깐, 결코 좋은 기분 근처는 아니였을꺼잖아)
오늘은 밤을 새도 피곤하지 않고, 수업 시간에 부케 만들면서 지적 받을 일에 좀 쫄았던 것을 제외하면 아주 기분이 좋아서 룰루랄라였다.  

그래서, 나는 밥과 잠과 꽃을 미루고, 이렇게 학원 다녀오자마자 알라딘에 접속하여 2010년 내맘대로 강력 추천 10권을 꼽아볼까 한다.... 했지만 .. 잠과 밥과 꽃에 미뤄진 페이퍼를 이렇게 아침에 다시 연다.

여러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추천 페이퍼에 많은 추천 부탁드립니다~    

순서는 최근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가 아니라, 거슬러 올라가는 추천입니다.
책의 내용이나 리뷰는 각 코멘트 아래의 리뷰 링크 참조. 좋아하는 책들에 대한 좋은 리뷰들이니 (제가 제 리뷰 좋다고 한다고 막 돌던지고 그러시면 안되구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리뷰 링크도 클릭~

1. 사사키 조 <폐허에 바라다>                         

2010년 제 142회 나오키상 수상작. 난 딱히 나오키상이 취향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 책을 남들도 좋아할까. 싶을 때, 나오키상은 좋은 기준이 되어 준다.  

나는 챈들러를 필두로 한 하드보일드를 좋아하고, 에드 맥베인 이하 경찰소설들을 좋아한다. 사사키 조는 '경찰소설' 베테랑이다. 또 다른 경찰소설의 대가, 요코야마 히데오가 떠오를지도 모르지만, 요코야마 히데오는 휴머니즘과 조직사회를 드러내는 데 강점이 있고, 사사키 조는 시대와 하드보일드 주인공에 강하다. (사사키 조의 책은 이 번이 두 번째라 뭐라 평가하기 이른감이 있긴 하다.)  

그런고로, 나는 요코야마 히데오를 재미나게 읽지만, 사사키 조의 이 책에는 그야말로 환장한다.  

이 책은 여섯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인공은 센도 타카시라는 휴직중인 형사다. 센도 캐릭터는 내가 본 한 과거 어떤 미스터리에서도 보지 못했던 캐릭터다. 낯 익으면서도 낯설다. 그가 휴직중인 이유는 자신의 실수로 인해 피해자가 더 생기고, 범인이 죽는 일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끔찍한 트라우마를 겪게 되기 때문이다. 단편에서 간간히 나오는 그의 과거 이야기는 마지막 단편에서 어떤 일인지 마침내 드디어 나오게 된다.  

범죄에 쿨한, 범죄를 동정하는, 범죄에 분노하는 경찰/탐정은 있었지만, 범죄에 상처 받는 탐정이 과거 있었던가?  
피해자에 동정하고, 가해자를 미워할 수는 있고, 사사키 조는 감정을 절제하여 사건과 관련 인물들을 보여주지만, 그 지독히 절제된 감정의 무게가 싸늘하고, 묵직하다. 그 싸늘하고 묵직한 그것을 녹이는 것이 바로 '센도 타카시' 인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을 읽으라고 쉬이 건네기 뭐하다. 나에겐 큰 울림이었는데, 남들에게도 그런가. 싶은 밍밍한 줄거리들일 수 있어서 말이다. 여튼, 나에게는 올해 읽었던 가장 좋았던 책 중에 한 권으로 당당히 첫번째로 올릴 수 있는 책이다.  

이야기도 좋은데, 표지도 좋아요!  

* 리뷰 ' 나오키수상작, 그 명성에 걸맞는 걸작 추리 단편집'  

 2. 오경아  <영국 정원 산책>                                   

 사실, 우리나라 저자가 쓴 이런류(?)의 소설에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다.
 다만, '영국 정원'이라는 특이한 주제로 책까지 쓸 정도면 내용이 어떻든 좀 사 줘야 하는것이 아닌가. 생각하긴 했다. 

왠걸, 내가 이런류(?)의 책에서 바라는 전문성, 글솜씨, 사진, 저자의 심성 등이 죄다 마음에 들어서, 이게 왠 좋은 책이냐. 했던 책이다.   

영국 정원 따위에 손톱만큼도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초록이 가득한 책장에 눈과 마음이 편안해 진다. 간간히 끼워져 있던 눈雪과 물의 풍경이 겨울이 되니 더욱 와닿는다.  

그녀는 가든디자이너이고, 영국에서 가든 디자이너를 전공하였다. 한국에 오면 .. 할 일이 있을까?? 이 책을 찬찬히 다 읽고 나면 글쎄..  

『영국 정원 산책』은 ‘당신에게 정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이기도 하다. 이 책은 치유(Healing), 의미(Meaning), 유행(Fashion), 위대한 완성(Great Perfection), 사람들(People), 디자인(Design), 사랑(Love), 방문(Visiting), 이렇게 여덟 개 장으로 나뉘어 있다. ‘내게 정원은 이것입니다’라는 대답에 포함될 8개의 키워드가 각 장의 제목이 되었다. 

정원이라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특별하지 않은 것을 특별하게 여김으로써 특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깐, 그것은 그렇게 먼 것도 아니고, 얼마든지 낯익고, 가까운 무언가. 라는 거다.  

* 리뷰 - '영국식 정원으로 초대합니다.'   

 

 

3. 로버트 실버버그 <SF 명예의 전당>     

이 작품집에 어떤 사족을 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떤 분야건 간에 매니아와 전문가.. 매니아이자 전문가인 사람들에 의해 뽑힌 작품집은 그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나는 딱히 SF 매니아는 아니지만 ( 사기만 사고, 잘 읽지는 않는다.) 이 작품집은 장르를 넘어서는 오래오래 남을 '레전드' 작품들로만 꾹꾹 채워져 있다.  

이 작품은 좋고, 이 작품은 별로고.. 요런 멘트조차 불가하는 작품집이다. 책 표지에 떡하니 SF라고 써 있지만, 장르를 넘어서는 소설, 이야기, 철학, 꿈과 희망과 절망을 모두 담고 있다.  오멜라스는 웅진의 임프린트 출판사로 꾸준히 안 팔리는 SF 작품들을 내 주고 있는데, 나는 사기만 한다 'ㅅ' 책을 잘 만든다. 단단하고, 예술적으로다가. 이 책 역시 SF 명예의 전당에 걸맞는 만듦새이다. 올해 출간된 인상적인 작품이었던 로저 젤라즈니의 중단편집이 나달나달했던걸 생각하면, 이 책이 오멜라스에서 나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4. 스콧 슈만 <사토리얼리스트>                                  

사토리얼리스트는 자주 가는 블로그 중 하나긴 했지만, 거리 사진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니깐, 그게 블로그의 좋은 점이자, 나쁜 점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 정수를 (그러니깐, 정수라는게 있다면 말이다.) 지나치는 것 역시 무지 쉽다.  

사진집의 경우 원서를 선호하지만, 이 책은 번역본의 퀄러티도 훌륭하다.

이 책이 '좋은 스트릿 패션 사진집'이라서 탑12에 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패션이라는 것은 '소비'와 뗄래야 뗄 수 없지만, 여기서 '패션'은 '자기 표현', '자기 주장', 나아가서 '자기 실현'에 가깝다. 책에서 사토리얼리스트, 스콧 슈만의 세계관을 알게 되었고, 공감한다. 멋진 여자 사진은 많은데, 멋진 남자 사진은 잘 없어서. 라는 이유 또한 환영한다.

개성과 다양성,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해 준 단지 '좋은 스트릿 패션 사진집'을 넘어서는 책이다.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올해 쓴 리뷰중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포토리뷰가 아니였나 싶다. 현재 74개 ^^a  

* 리뷰 - 'Express yourself 스트리트 패션 블로그, 사토리얼리스트'   

 

 

 5. 크리스토퍼 맥두걸 <본 투 런>                              

멕시코 오지에 사는 타라우마라족의 이야기이다. 달리는 민족. 저자인 크리스토퍼 맥두걸은 AP 종군기자이기도 했고, <맨즈 핼스> 의 객원 편집자이며, 이 밖에도 <에스콰이어>, <맨즈 저널>, <뉴욕 타임즈> 등에 스포츠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달리기 예찬자인 그가 왜 신체공학이 발달하고, 각종 기능성 운동화는 비싸지는데, 발,다리의 부상은 끊임없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고, 취재 중 어느 잡지에서 본 달리는 민족, 타라우마라족을 알게 되면서 '달리기 위해 태어난' 인간에 대해 고찰하는 이야기이다.  

재미있고, 유익하고, 신선하며, 신기하고!, 독자에게(그러니깐,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책이다. (비싼 운동화 필요없다! 없다!)

엄청나게 동네방네 이 책 선전 하고 다녀서, 순위 안에 있지도 않던 책이 인문학 베스트셀러 판매 순위에 올랐다는게 자랑. 좋은 책은 마구 권해도 벌받지 않아요 - 추천 받고 재미있게 읽었다는 피드백도 많아서, 추천한 보람도 있었던 책.  

사실, 요즘, 달리기던 걷기던 운동을 다시 시작해보려는 시점이라, 새삼 이 책에 대한 애정이 새록새록 -  본의 아니게(?) 선물 받아서 비싼 운동화는 두 켤레나 생겼다만.  당연히 단순히 달리자! 는 책은 아니다. 인류학, 고고학, 민족학, 생체역학(?), 사회학, 나쁜 나이키학 ... 응? 무튼, 다양한 분야를 시종일관 재미나게 다루고 있고, 저자의 글발 또한 대단하지만, 편집자 또한 누구신지 몰라도 대단해서, 짜임새 있는 편집으로 머리와 가슴에 쏙쏙 들어오는 글이다.  

* 리뷰 - ' 우리는 모두 달리는 사람이다'  
페이퍼 - http://blog.aladin.co.kr/misshide/3707739
            http://blog.aladin.co.kr/misshide/3712434  

 

 

6. 누쿠이 도쿠로 <우행록>                                      

아마 내 서재를 자주 찾는 분이라면, 내가 이 책을 좋아한 것 까지는 알아도 2010 탑12에 추천한 것은 좀 의외이리라. 이 책은 대 놓고 재미있는(나쁜 뜻으로) 책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내 기준에 반전도 뻔하고, 쓸데없이 자극적이다. 그렇게 많은 분량도 아니라서 훌훌 읽어낼 수 있다.   

근데, 저자가 하려는 이야기. 인간의 우행. 자신의 입장에서밖에 말할 수 없는 어리석음. 결코 진실에 다다를 수 없을 것 같은 각각의 시점이 좀 무서웠다. 이해하지만, 이해인지 체념인지 확실하지 않고.  

 

* 리뷰 - '타인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7. 다카무라 가오루 <마크스의 산>        

겨울이 오니, 다시 그 산에 오르고 싶다. 다카무라 가오루의 글은 쉬이 읽히지 않는다. 미스터리 소설 꽤나 읽는 독자들도 <황금을 가지고 튀어라>를 읽다 만 사람들이 많은 정도다. <리오우>는 호오가 갈리는 주제와 스케일을 가지고 있고, 미스터리 매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한 <마크스의 산>이 드디어 출간 되었을 때,  

다카무라 가오루의 전작을 읽고 생겨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 상태에서도 기대가 컸더랬다.   

다카무라 가오루라는 작가의 글이 워낙 독보적이기도 하지만, 그 중에서도 <마크스의 산>에 나오는 7계의 이야기, 경찰들, 그리고 범인, 피해자, 가해자의 이야기.. 읽는 내내 식은땀이 흘렀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이 책이 앞으로도 오래오래 나와 함께 할 책임을 알 수 있었다. 어둡고, 우울해서, 읽고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알아서 읽으시길, 혹은 읽지 마시길..  

* 리뷰 - ' 그 산에서 무엇을 보았나'   

 

8.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로고테라피의 창시자, 정신분석학자, 살아돌아온 자 .. 빅터 프랭클의 책이다.  
리뷰에도 썼지만, 원제는 Men's Search for Meaning : An Introduction to Logotherapy 다.
수용소, 죽음 이런 단어에 주눅들 필요 없다는 이야기다. 나 역시 수용소의 이야기를 좋아한다거나 한 건 전혀 아니니깐.  

빅터 프랭클이 정신분석학자로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활을 관찰한 이야기가 주이다.
때때로 소름끼치게 담담해서, 그 곳이 '죽음의 수용소'라는 것을 잊게 만든다.  

사지이건, 사지가 아니건, 인간이 이루고 있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그 맥락을 같이 함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정말 좋아하는데, 널리 알려진 개념인 정신분석학, 혹은 미국의 정신분석학과는 다른 유럽식 정신치료의 일면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그 것이 행복을 강요하는 불행을 비정상으로 단정짓고, 우울 등의 많은 심리의 파도를 모두 병으로 규정하는 미국식 정신치료에 대응하는 것이어서 새로운 세계를 엿 본 것 같았다.   

* 리뷰 - ' 하루하루가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는 당신에게 권하는 책'

 

9. 크리스 앤더슨 <프리>                                     

<롱테일 법칙>의 크리스 앤더슨의 책이다. 경영경제마케팅 책들에서 주구장창 인용되는 '롱테일 법칙' . '프리' 역시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지만, 크리스 앤더슨의 '프리'로 주구장창 인용되고 있고, 앞으로도 쭉 인용될 것이다.  

'프리', '공짜'에 대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책이다.  

아이디어들.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던간에 '프리', '비트 경제와 공짜 가격이 만드는 혁명적 미래' 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 리뷰 - '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공짜의 법칙'

10번째 책은 12월에 남겨둔다.  

12월에 변변한 작품을 건지지 못한다면, 다음과 같은 작품들이 후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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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사이 2010-11-24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제가 올해 책읽기도 리뷰도 게으름을 부리긴 했지만,
읽은 책이 한 권도 없어요!!!
게다가, 표지가 눈에 익은 책도 <청춘의 독서> 달랑 한 권 뿐이에요.
이럴 수가!!

하이드 2010-11-24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좀 매니아틱한 책들을 추천했나봐요. 얼추 장르 소설이 반인걸요. ^^
리뷰를 안 써서 빼 먹고 있었는데 <달링짐>과 <메멘토모리>, <작가수업>도 무척 좋았어요.

Joule 2010-11-24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 탑 텐에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일단 집었어요. <마크스의 산>도 눈여겨 보려구요. 근데 일본 소설 저랑은 안 맞는 걸까요. <영원의 아이>도 지인이 입에 침이 안 아깝게 격찬해서 읽어봤는데 꽤 가슴 아픈 '그냥 소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더라구요. 그러고 보니 제가 마음이 좀 동하기라고 한 건 미시마 유키오와 하루키 정도였던 것 같아요.

올해 하이드 님은 마크스의 산을, 줄모 양은 마의 산을 올랐군요.

하이드 2010-11-24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줄님도 좋아할꺼라고 생각해요. 영원의 아이나 마크스의 산이나 위의 폐허에 바라다, 우행록도 마찬가지구요, 소설이란건, 그 속의 이야기나 인물들을 읽는 건 아주 개인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내가 좋은게 남이 안 좋더라도 하나도 안 이상해요.

토토랑 2010-11-24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 제가본건 마지막 휴양소~ 한권 뿐이네요 ^^:;;

summit 2010-11-25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orn to Run 주문했습니다. 요즘 runner's high에 흠뻑 빠져 사는 중입니다^^

moonnight 2010-11-25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책을 사재놓은데도(읽지는 않지만!!!;;;) 여전히 하이드님의 서재에는 제가 갖고 있지 않은 책들이 ^^;
즐거운 마음으로 몇 권 찜합니다. 벌써 올해의 결산이로군요.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bondandy 2015-08-16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 투 런> 빌려 읽을까 했는데 아무래도 사서 봐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