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끝에 담은 화장장엄의 서원
김성규 지음 / 훈민사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1. 저자 김성규는 필자가 잘 아는 단청인이다. 그의 단청작업은 전국에 걸쳐 사찰 단청 작업을 총 지휘하고 있으며 나름대로의 단청 기풍을 자신의 작업에 쏟고 있는 匠人이다. 이 책은 저자 김성규의 단청 작업 현장을 위주로 만들어진 작품집이다. 이 책에 나타난 단청은 전국에 산재한 그의 작업 결과를 찍은 사진을 곁들인것으로 현대의 단청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를 알아 볼 수 있는 계기로 삼을만한 뜻깊은 작품집이라 할것이다.

2. 일반 회화와는 달리 단청이나 불화는 거의 주문자의 사찰 등지에 부동산의 개념으로 남아있게 된다. 물론, 불화중에서 벽에 그려지는 壁畵를 제외한 탱화(禎畵)는 손쉽게 움직일 수 있지만 단청은 그 사찰의 건축물에 남겨지게 되는 것이고 일반 회화와는 달리 그 수명도 지극히 제한되어 있어 시간이 지나면 자연 소멸되고 만다. 따라서 이러한 단청 작업의 결과를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은 단청을 입히는 일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일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단청 작업에 임하는 화원들은 단청을 단순한 작업으로 생각하여 그 기록을 남기는 일에는 소홀히 생각하여 왔으나 지금은 단청도 하나의 예술 작업이라는 인식에서 그 작업 결과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노력을 하고 있다.

3. 이 책에는 필자가 촬영한 사진도 다수 포함되어 있는지라 저자가 "ㅇㅇㅇ선생 혜존"이라는 자필 서명을 담아 전해 줄 때...  그 감회가 새로왔다. 필자는 그동안 단청 작업이나 불화 작업을 하는 화원들에게 그 작품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이유를 누차 강조해 왔었다. 지금은 방금 작업을 했는지라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먼 훗날 이들을 되돌려 보기 위한 기록은 역시 사진 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후학들이 참고로 하기 위해서라도 꼭 작품을 사진으로 남길것을 권해왔던 것인데 이 책은 저자 김성규의 개인적 작품집이라는 의미 이외에 바로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 할것이다.

4. 한편으로는 불화나 단청이 과연 <회화>인가? 라는 의문을 남기게 된다. 일반적으로는 불화나 단청은 단순히 사찰 건축물의 부속품으로 여겨져 사찰 건축물이 국보나 보물로 지정이 되면 단청이나 불화는 그 지정에 딸려가는 형식이었다. 그러던것이 불화는 이동이 용이하고 제작연대와 제작자를 알수 있으며 그 기법이 시대적으로 당 시대의 회화적 기법을 따른다고 판단하여 90년대 부터는 불화 자체만으로도 국보나 보물로 지정하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그 동안 불화가 회화의 범주에 담기지 못하고 천대받은 이유는 불화는 거의 대부분이 제작자의 창의성 보다는 덧칠을 한것이라는 제작상의 이유 때문이었다. 불화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미리 떠 놓았던 초본(草本)을 밑그림으로 사용하여 그 위에 바탕이 되는 재료(주로 한지나 명주,비단 등)를 놓고 밑그림을 그대로 배끼고, 그 배낀 線을 중심으로 안료로 색상을 입히게 되는데 이러한 이유로 불화 제작을 단순한 칠하기 정도로 인식하여 푸대접을 해 왔던 것이다.

5. 단청은 불화 제작자보다 더 푸대접을 받으며 작업을 해 왔고 실제로 불화 화원들은 단청을 하는 사람들을 자신들의 일에 종속되는 정도로 여겨 왔고 불화를 그리는 사람들이 대부분 단청 작업을 병행해서 했는데, 이는 원래 불화를 그려왔던 사람들이 일반인이 아닌 승려들이기에 단청의 밑그림은 승려들이 그리고 채색은 일반 잡부들에게 맡겼기에 자연히 단청 작업에 임하는 사람들을 업수이 여기는 풍조가 있었던 것이다. 단청작업은 이 책에 그 작업과정이 소개되었듯이 단청의 밑그림을 미리 그리고 그 그림을 중심으로 가는 구멍을 뚫고 단청 작업을 할 부분에 이 밑그림을 대고 조개껍질을 곱게 갈은 가루로 타분을 하여 밑그림이 들어나게 한 후 채색을 하는 것인데, 단청을 하는 건물의 규모가 비교적 크기때문에 한 사람이 작업을 다 하지 못하고 대부분 채색은 다른 작업자가 맡게 되는것이다.

6. 이러한 이유로 단청인들은 예술가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지내왔다. 실제 단청작업을 지켜보면 과연 예술로 인정을 해야하는가? 라는 의문을 갖기에 딱 좋다. 그러나 단청은 문양에 채색을 한다는 단순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채색 당시의 색 선택이나 단청의 문양, 그리고 단청 중간에 들어가는 그림(別畵라고 한다) 등은 단순한 색메우기의 기능을 가진 사람은 하기 힘든 작업이다. 불화가 독립적으로 대접을 받듯 단청도 이제는 작품으로서의 대접을 받아야 할것이고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화원으로서의 대접을 받게 되리라 믿는다.

7. 또 하나의 단청이 갖는 치명적인 단점은 영구보존이 어렵다는 것이다. 무슨 예술품이든 영구보존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하겠지만 목제나 콘크리트로 제작된 부재에 색을 입히는 경우는 대부분 그 채색에 사용하는 물감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기에 오랫동안 보존이 불가능 하다는 점이다. 대략 단청의 수명은 100년 안팎으로 본다. 단청에 사용되는 물감은 안료나 염료인데 이 수명이 짧음으로 인해 박락이 심하고 햇빛과 습기에 의한 변형이 쉽다는 단점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점착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아교도 예전에 사용하던 민어부레가 아닌 화학 아교의 사용도 단청의 영구 보존에 하나의 장애요인으로 작용을 하고 있다고 판단이 되고있다. 물론, 햇빛이 안들고 비교적 통풍이 원활한 사찰의 경우 내부 단청은 300년 이상을 잘 견디고 보존되는 경우도 있는 편이지만 대부분의 외부 단청은 짧게는 20년 정도만 지나도 변색되고 퇴락하는 경우도 있다.

8.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자신의 작업으로 채색되어진 단청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한 사람의 예술가이며 전통의 수호자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스스로 격상시킴은 물론 일반인에게 단청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므로써 단청의 예술성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단청임에도 책으로 발간된 경우는 한석성 선생의 저서와 곽동해 교수의 저서 두권이 전부인데 그나마 실무자인 저자 김성규의 현장 작품을 이 책을 통해서 볼 수 있음은 다행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이 책에는 저자의 단청 작품뿐만 아니라 각종 단청에 사용되는 초(草)의 종류와 포벽의 불화등을 함께 실어서 단청을 배우는 사람들이나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참고자료로 사용되게끔 하였다.

 이 책은 전체 도판을 화보로 실어 보는이가 이해하기 쉽도록 되어 있으나 한가지 아쉬운점은 단청에서의 전통성과 정통성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작품집이 출간되었음인데 이는 자칫 여기에 수록된 도판 그림이 단청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통성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단청의 표현에는 문젯점이 있음을 지적하고 싶으며, 차후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해 우리 나라 단청의 시대적 양식이나 문양의 변화가 발표되고 그에 따른 전통성, 혹은 현대적 계승 여부를 다시 거론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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