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3
김이설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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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이게 대체 얼마만의 글인가요. 감동과 감격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홍대 와우북 페스티벌에 놀러 나갔다가 우연히 들어간 은행나무 부스에서 작가님 이름을 보고 눈을 비볐다. 잘못 본 게 아닌가 해서. 내 눈은 정상이었고 폭풍감동을 하며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약간의 사은품들과 함께 품고 나왔더랬다. 아끼고 아끼다 이제야 꺼내보곤 우울의 동굴을 파고 있는걸 보니 역시 그녀의 글답다.

 

존재 자체가 가족들에게 짐이었던 선화. 서른다섯의 선화는 엄마의 안식처였던 꽃집의 사장이다. 물이 마를 틈이 없는 손은 습진 때문에 수시로 껍질이 벗겨지고 진물이 난다. 졸업시즌과 각종 이벤트로 한참 바쁜 날에 엄마의 기일이 다가온다. 서른일곱의 언니는 결혼을 하면서 엄마의 제사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조카가 여덟 살.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흘렀다.

 

선화의 얼굴 한 쪽에는 꽃이 활짝 펴 있다. 그걸로 놀림을 당했고, 이렇게 태어나게 만든 부모와 언니를 미워했고, 세상을 외면했다. 바다에 홀로 외로이 떠 있는 섬처럼 그녀는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 살고 있다. 얼굴에 피어있는 그 꽃 하나 때문에.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을 불러온다. 누구보다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선화에게 불행이 끊이질 않는다. 엄마가 죽었고,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에게는 남아 있는 날들이 별로 없다. 하나뿐인 언니는 형부 때문에 조용할 날이 없다. 자신의 불행을 감싸주지 않던 가족이었지만 선화는 끌어안지도 버려두지도 않는다. 그저 닥친 일을 받아들이고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김이설, 그녀의 글은 언제나 불편하다. 삶의 한 귀퉁이를 덤덤하게 그려나가지만 밑바닥 인생은 결코 담담하지가 못하다. 처음엔 선화도 불편했다. 그녀의 얼굴이 그랬고, 너무 무심한 그녀의 성격에 그랬고, 꽃집 사장답지 않은 그녀의 냉정함이 불편했다. 서른다섯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세상을 마주보기 위해 터득한 그녀의 생존방식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도 계속 찾아 읽을 거다. 가슴 속에 구멍이 뚫린 듯 쓸쓸하고 씁쓸하게 만들어도 그럴 거다. 그녀의 글에서 짙게 맡아지는 삶의 냄새가 너무 진솔해서 저릿하게 만드니까. 다음을 위한 그 기다림이 너무 오래 걸리지만 않기를 바란다.


p.60
내가 싫어하는 계절인 봄이었다. 긴 겨울이 지나면 봄 햇빛처럼 일상이 화사해질 것 같지만,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괜한 헛된 희망을 품게 되는, 그저 허망하기 짝이 없는 계절이 바로 봄이었다. 얇은 옷으로 갈아입고 꽃을 찾지만, 달콤한 초콜릿과 사탕을 유난하게 주고받으며 사랑을 확인하지만, 그저 매년 반복되는 계절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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