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는 악마가 밀리언셀러 클럽 14
루스 렌들 지음, 전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세상에 있는 어떤 소설, 어떤 영화을 다 통틀어도,
이렇게 소심한 살인자는 세계 최초일것이다.

아서 존슨이라는 사람이 있다.

평범하고, 사람들과의 왕래도 없고,
어디에 처박혀 살고 있는지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스스로를 "예의바른 노신사"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 남자는,
어릴때 부모에게 버려져 엄한 고모의 손에 키워지는 바람에, 여자를 대하는 방법이나,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알지못하고,  그저 청결함과 조용함만을 알고 지내온 사람이다.
한창 이성에 눈뜰 사춘기 시절에도, 사회인이된 다음에도, 이 남자는 어떤 여자와도 연애라는 것을 해본적이 없다. 딱 한번 이 남자를 쫓아다니는 여자가 있긴 했는데, 그에게는 그녀가 귀찮을 따름이었다.

이 남자의 유일한 행복은 고모와 함께 있는 것이었고,
마치 그 모습은 어머니를 사랑하는 오이디푸스와도 같아 보인다.
어릴적부터 암묵적으로 억압당하면서 살아와
별다른 취미도 특기도 없는 이 남자는,
이상한 취향쪽으로 기운다.
젊은 시절 어느 스트레스 받은 날, 길에 혼자 걸어가는 여자의 목을 졸라 우발적으로 살인하게 된 이후로,
그는 이쪽으로 취향을 굳힌다.


평생 살면서 모르는 여자 세명을 죽였다.
그리고 이것이 범죄고 더이상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을때 쯤,
그는 지하실에 누군가 버려놓은 마네킨의 목을 조르며 은밀한 취향을 키우게 된다.

고모가 죽고, 허름한 빈민가 주택에서 평생을 혼자 살아온 이 남자는
빠뜨리크 쥐스킨트의 "비둘기"의 주인공처럼, 극히 폐쇄적이고 결벽스러우며 사람들을 꺼린다.
"비둘기"의 주인공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사람이 지나치게 소심하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무시무시한 살인범의 이야기를 다룬 것치고는 개인적으로 우스워보이기 까지 했는데,
그 이유는 이 주인공이 지나치게 소심하기 때문이다.

피해주지 말고 피해받지 말고 사는것이 모토인 이 남자.
때문에 이웃과의 왕래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웃들의 이름과 간단한 가족사까지 다 꾀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이 사람에게 한 사건이 생긴다.
아랫층에 한 젊은 남자가 이사오는데 그의 이름은 앤서니 존슨.
젊고 잘생긴 남자여서인지, 아니면 전혀 모르는 사람이어서인지
엄청나게 경계하기 시작하는 아서 존슨.
둘다 A.존슨으로 비슷한 이름이고 서로 우편물을 섞지 않게 조심하자고 약속을 하는데,
소심한 아서 존슨은 앤서니 존슨에게 온 편지를 잘못 읽어버리고,
하루종일 걸려서 사과문을 써놓는데,
젊은 남자 앤서니 존슨은 사과문과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이 사건을 필두로, 아서존슨의 경계심과 두려움은 극에 다르게 시작한다.
어느 날 축제를 위해 태울 인형을 찾던중 지하실에 내버려진 마네킨을 불에 태우자,
소심한 아서존슨은 처절한 복수를 결심하는데...

복수도 참 쪼잔하게도, 앤서니 존슨에게 오는 애인의 편지를 가로채는 것이다....

얼떨결에 사랑의 방패막이가 되어버린 이 남자는 자신이 엄청난 복수극을 했다고 생각하고,
뿌듯하기는 커녕 언제 보복당할지 괴로워 잠도 제대로 못잔다.
나름대로는 엄청나게 용기낸 보복이지만, 결국 이어질 사람들은 이어진다.

이 소심하기 그지 없는 주인공을 보면서 "왕자병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잘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자신이 "예의 바른 노신사"로 비춰지길 바라는 사람.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도 않고 시선을 주지도 않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한 사소한 짓을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는 사람.
타인을 속으로 비웃으면서, 막상 그들을 대면했을 때는 아무 말도 못하는 사람.

누구나에게 인정받으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며 자기애의 한 종류가 아닐까.
세상에는 아무 짓을 하지 않아도 주는것 없이 싫은 사람도 있는 법인데 말이다.
정작 이웃들은 그를 "강박증으로 가득찬 소심한 정신병자"내지는 "더러운 노인네"라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이것은 자기 안위적으로 삐뚤어진 감정의 잘못된 표현 방식이다.

소설내내 이어지는 사소한 사건들이 예상과 전혀 다른 하나의 결말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황당한 결말로 느껴질수도 있겠다.
내 경우엔 그다지 그렇지는 않지만 말이다.

주인공이 너무 소심해서 소설 읽는 내내 웃기면서도 답답했고,
재미로 따지자면 "그런대로"이다.
어쩌면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것은 꽤 많은 분량의 호화찬란 극찬 해설집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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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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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적의 화장법, 살인자의 건강법, 앙테크리스타에 이어 네번째로 읽는 아멜리 노통의 소설 "오후 4시"

아멜리 노통의 소설을 볼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여자 소설은 좀더 빽빽한 글씨로 지금까지 나온 그녀의 소설을 모두 모아서 600페이지 가량되는 책에 묶어놓으면 다 들어갈것 같다.-_-;
두시간만 투자하면 다 읽을수 있는 아멜리 노통의 소설들은 거의 동화책에 가까운 글자크기와 글사이의 공간으로 어쩐지 사기에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거지...

아멜리 노통의 테마는 "적"이다.
그녀의 소설에서는 언제나 적이 등장하고,
두 주인공이 모두 수다스러운 독설가인 "살인자의 건강법"을 제외하고 나면,
내가 읽었던 소설들의 전개 방식은 너무나도 똑같다.

평범하고 고요한 한사람의 일상에,
비상식적인 "적"이 등장해 갈등이 생기고,
그 평범하며 고요한 사람을 똑같이 망쳐놓고나서 끝나는 것.

"적의 화장법"도, "앙테 크리스타"도,

그리고 이 소설 "오후 4시" 역시 마찬가지 였다.

6살떄 처음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평생을 두사람만 보면서 살아온 60대의 노 부부가 있다.
(사실 이 사람들도 황당할 정도로 비현실적이다.-_-;)
행복하고 조용한 노년을 만끽하기위해 한적한 시골로 온 노부부의 이웃에는
뚱보의사가 산다.
뚱보의사 베르나르댕은 어느날부터인가, 이 부부의 조용한 일상에 끼어들기 시작한다.
오후 4시만 찾아와 아무말도 않고 차를 내놓으라는 이 뻔뻔스러운 이웃때문에,
착하고 예의바른 심성의 부부는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아멜리 노통 다른 소설이 그렇듯이,
그런 비상식적인 뚱보의사를 등장시켜,
모범생에 가까운 인생을 살아온 착하고 예의바른 에밀의 내면에 감추어져있던
동물적인 야수성을 끄집어낸다.

아멜리 노통의 소설을 읽으면 그녀의 소설뿐만이 아니라,  
그녀 자신 자체가 상당히 꼬인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예의바르고, 상냥하고, 타인에게 나쁜 소리 한마디 못하며,
평범하고, 소심하고, 삐뚤어진 구석이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빛의 자식들에 대한

그녀의 냉소적인 시선이 느껴진다.
그녀가 어린 시절의 가난이나 불행이라던가,
컴플렉스에 시달리며 살아온 사람이라 그렇다는 생각도 들지만,
작가 프로필을 읽어보면 별로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지...
그녀가 외교관의 딸로 태어났고, 사회적으로 봤을때 안정된 상위계층의 사람인데도
이렇게 베베 꼬여있다는 것은,
이런 성격이 반드시 후천적인게 아니라 선천적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상류층까지는 아니지만, 인생을 결정지을 정도의 커다란 파도나 극심한 가난을 경험하지 못하고도
성격이 이런 나처럼 말이다.

사실 나는 그녀의 냉소적인 시선에 동감하는 사람이다.
나 역시 착하고 소심한 모범생들은 꼴보기 싫다.
인간 속에 존재하는 추악한 감정을 아름답게 승화시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싫고,
그럴듯한 껍데기로 자신도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어려운 단어 써가면서 지껄이는
본질없이 겉멋만 든 사람들의 말이 싫다.
가식과 허위의식이 싫고, 온 세상이 아름다움에 가득차 있거나,

고상한 가면을 쓰고 자기 속에 간직한 유치함을 숨기는 사람들 또한 싫다.
(말하지 않아도 진짜로 고상해 보이는 사람들 빼고..)

언제나 말하듯이 나는 착한 사람이 싫다.
그런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악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가만히 있어도 그들은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뭐 그런걸 떠나서 나는 본래 그런 사람들과 맞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의 착하고 유순한 대화가 지루하고 가끔은 역겹기까지 할 정도로 싫다.

아멜리 노통이 언제나 진짜로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세상에 널려있는 고지식하고 잘난 모범생들을 향한 냉소가 아닐까.

소설만 놓고 보았을때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아멜리 노통의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 비슷한 얘기구조에 이제쯤은 쬐금 질린다.
다른 소설에 비해서 독설이 상당히 줄어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제 다른 주제의 소설도 좀 써보는 것이 어떠실까, 아멜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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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휴고상 수상작. 텔레파시 능력자들의 출현과 '파괴'형의 실시에 의해 계획적 범죄가 거의 사라진 24세기. 전 태양계를 자신의 지배 하에 두려는 야망에 사로잡힌 재벌 총수 벤 라이히는 '살아 남기 위해' 라이벌 기업의 사장을 살해하려고 결심한다. 그는 불가능에 가까운 이 범죄를 실행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그러나 밤마다 꿈에 나타나 그를 괴롭히는 '얼굴 없는 사내'의 환영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모호하기만 하다. 텔레파시가 실용화된 24세기의 사회를 무대로 펼쳐지는 쫓고 쫓기는 대추적극. 흔히 불꽃 놀이(pyrotechnis)로까지 표현되곤 하는 베스터의 현란한 문체는 병적일 정도로 날카로운 상상력을 구사해서 구축한 리얼리스틱한 미래 사회의 묘사와 어우려져, SF만의 독특한 감동을 준다.

 

알프레드 베스터 (Alfred Bester) - 뉴욕시 맨해튼에서 태어나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심리학과 화학을 공부했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39년 SF 전문지 「스릴링 원더 스토리즈」의 아마추어 단편 콘테스트에서 1위로 입상한 <부서진 공리 The Broken Axion>로 SF계에 데뷔했으며, 1952년에 「갤럭시 Galaxy」지에 게재된 <파괴된 사나이>의 비평적, 상업적인 성공으로 일약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요즘 읽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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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이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보는 색은 빨강이다.
2. 빨강은 사람이 이름붙인 첫번째 색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색 이름이다.
3. 빨강은 열정, 사랑에서 증오까지 나타낸다.
4. 빨강은 피와 생명의 색이다.
5. 빨강은 힘의 색, 용기, 매력의 색이다.
6. 빨강은 불을 상징한다.
(불은 모든것을 파괴하면서 정화한다. 불은 언제나 위로 타오르고,
번개를 통해 내려온 바로 그곳, 하늘로 다시 돌아간다.)
7. 빨강은 위협적인 사악함과 파괴력의 상징이다.
8. 빨강은 남성적인 상징이며, 동시에 여성적인 느낌이다.
9. 빨강은 환희의 색이며 건강을 상징한다.
10. 빨강은 금지의 색이고, 사악한 손길을 막아주는 빨간 신호의 색이다.
11. 빨강은 귀족과 부자의 색이며, 창녀의 색이다.
(예로 부터 빨강색 옷은 그 강렬하고 빛나는 이미지덕에
주로 귀족이나 부자들이나 입는 옷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빨강은 창녀의 색이 되어버렸다.)
11. 빨강은 립스틱, 사치의 색이다.
12. 빨강은 공격적인 전쟁의 색이다.
13. 빨강이 검정을 만나면 위험과 금지의 느낌.
14. 빨강이 보라와 분홍을 만나면, 빨간 섹스.
15. 빨강은 부도덕의 색이다.
(오래된 빨강머리에 대한 멸시와 
부도덕의 상징인 "주홍글씨"에서도 엿볼수 있다.)
16. 빨강은 자유, 노동자,사회주의의 색, 정치적인 느낌이다.
17. 빨강은 역동적인 색이다.
(대부분의 경주용 자동차 페라리는 모두 빨간색이고
코카콜라는 감각을 일깨워주는 젊은 느낌의 빨간색,
권투선수의 글러브도 전통적으로 빨간색,
말보로의 빨강 역시 흡연자의 역동적 이미지를 나타낸다.)
18. 빨강은 광고의 색이다.
(어느 광고에나 빨강이 들어간다.
1950년 경부터 빨강의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한것은
광고에 너무 많이 나와서 사람들이 질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19. 빨강을 인식하는것은 인간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빨강을 보지 못한다.
인간와 벌새만이 빨강을 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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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님. 참 이상하고 슬픈 일이죠.
런던처럼 거대한 도시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 가운데 살고 있는데,
철저하게 혼자 지내서 아무도 그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른다는 일 말입니다.
그 피해자가 그렇게 살았던 것 같군요."
 
 
그는 앉아서 기다렸다. 그는 언제나 앉아서 기다리곤 했다.
그것이 그의 운명이었다.
마침내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아는 남자가 걸어나왔다.
"로버트가 아닌가? 나를 기억하겠나? 트럼피일세."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반가이 말했다. 로버트 파웰은 깜짝 놀랐다.
그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프레드릭 포사이드 "베테랑" 中...
 
이 소설속의 사람들은 왜이렇게 의미없는 존재처럼 세상에서 떨어져서 혼자만의 인생을 살아갈까.
은둔자도 아닌 체 세상에서 도태당해서.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가슴 아프게...
 
거리에서 폭행당해 죽은 남자의 신원을 확인하려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광고를 냈는데도
친인척이나 친구는 고사하고, 알고 있다는 사람 하나 나타나지 않는 남자나,
평생을 영화배우를 꿈꿨지만, 평생을 엑스트라로 지내온 남자나,
 
왜 이렇게 기억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걸까.
가슴 아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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