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울한 짐승 동서 미스터리 북스 85
에도가와 란포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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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집 "음울한 짐승"
사실 "외딴 섬 악마"에서 나름대로 실망을 좀 해서, 만회해보려고 이 책도 같이 샀었는데,
만회하기는 커녕 느낌은 비슷하지만, 보는 내가 그냥 익숙해졌달까.-_-;
추리소설이라기엔 좀 뭐하고, 추리와 공포가 이상야릇하게 섞인 느낌인데,
그게 참 야릇해서, 추리가 완벽하지도 않고, 공포가 아주 공포스럽지도 않지만,
묘하게 기분나쁜 축축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B급영화의 전매 특허는 가슴 큰 미녀와 형태가 일그러져버린 괴물, 그리고 피.이다.
잔인하고 에로틱한, 살인이 욕망이 되고, 욕망이 살인이 되는 다소 유치하나 귀여운 상상.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집에서 느낄수 있는 느낌은 B급 영화의 전형적인 이미지같은 느낌인데,
그게 무섭다기보다는 나름대로 아기자기하기도 하고 순진하다는 느낌도 들며,
불량식품을 먹고있는 듯 자극적이나 백해무익한 느낌이랄까.


대부분의 단편이 거창하게 시작되어 허무하게 스물스물 사라지거나,
그닥 놀랍지 않은 사실을 느낌표라도 찍혀있는듯이 충격적으로 전달하려 하지만  별로 그렇지는 못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닥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타이틀과 같은 "음울한 짐승"과 "인간의자"와 "배추벌레"는 꽤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 "인간의자"가 가장 쇼킹했다.
추하고 별 재주도 없는 가구직공이, 어느 날 쇼파속에 자신의 몸을 숨기고,
무릎위로 사람들을 태우면서 남 모르는 쾌락에 빠져드는 상상.
에로틱하나 음침하고, 기분나쁜 단편이었는데, 끝의 반전은 피식 웃게 만들 정도였다.


그의 단편에는,  창백하고 비밀스러우며 어딘지 애욕에 끓는 미인이 등장하고,
역시 애욕에 들끓는 괴물처럼 추한 남자가 등장해서,
뭔가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역시 "욕망"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거나, 사건을 일으키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데,
근거없는 욕망에 의한 살의가 난발되다보니, 어쩐지 작가의 단순성이 귀엽게 느껴지기도하고....-_-;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번역탓인지, 기교가 너무 없어서인지, 아니면 이게 진짜 스타일인지,
문장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 또한 불량식품같은 맛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다.

피튀기며 애욕에 들끓는 B급영화.
비록 저질이나 중독성이 강한 불량식품.
듣고나면 몇일이면 잊어버릴, 친구에게 들은 무서운 이야기.
에도가와 란포가 내게 주는 느낌은 이런 것이지만, 깊이따위 없어도 뭐 어때.
그 순간 즐거우면 끝이지.히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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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어독문학회에서 선정한 '독일의 현대 작가', 야나 셰러의 장편소설이다. 주인공 '나'가 태어나 스물다섯 살로 성장하기까지, 일상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간결한 구어체, 뚜렷한 개성으로 무장한 인물들, 나와 타인 간의 관계를 담백하게 풀어가는 방식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독일 프렌츠라우어 베르크 문학상을 수상했다.

언제나 황당한 사건을 몰고 다니는 아버지, 현실적이고 자의식 강한 엄마, 그리고 엉뚱하고 삐딱한 '나'가 소설의 중심인물이다. 여기에 뻔뻔한 연금생활자, 생일 선물로 받은 귄터 그라스, 기이한 치아 시터, 가정의 화목을 도모한다는 돼지 등이 등장해 예측할 수 없는 소동을 벌인다. 일상의 부조리한 상황을 유쾌한 동화적 판타지로 풀어냈다. 톡 쏘는 유머 곳곳에는 가족 간의 끈끈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성찰이 녹아들어 있다.
 
 
재밌을까?
기대되는 책.
왠지 모르게 푸줏간소년이 생각나는것은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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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보수 동서 미스터리 북스 61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정광섭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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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 책 디자인은 누가 했는지 모르겠다.
완전 삼류 공포소설스러운 이 표지와 제목만 아니었다면,
이 책은 좀더 팔릴수 있었을 것이다.


번역이 심히 짜증스러워서 반정도 읽고 내팽겨치고 있었으나,
다시 한번 읽어보니 그런대로 읽을만 해서,결국 다 읽었다.

지난번에 "찰스 덱스터 워드의 비밀"의 리뷰에
나는 러브크래프트의 책을 "카키색과 회색이 뿌옇게 흐려진 듯한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묘사"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공포의 보수 첫부분 서평에는 옮긴이는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백신스키의 그림에 묘사했다.
그 부분을 보고 "그래 맞아!"라면서 감탄을 하게된 것은,
러브크래프트의 그 음습하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백신스키의 그림과 묘하게 딱 겹치기 떄문이다.

나는 "찰스덱스터 워드의 비밀"을 20페이지 읽었을때부터 그를 사랑하게 되었고,
"공포의 보수"에서는 그 애정이 단단히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책에는 러브크래프트의 4개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있다.

"인스마우스의 그림자
벽 속의 쥐
어둠 속의 속삭임
크투르프가 부르는 소리 "
 

외계인. 물고기 인간. 주술과 흑마법, 고대의 신화.
얼핏 소재만 생각하기로는 유치찬란하게 보일수도 있는 소재들이 유치하기는 커녕
마음속에 습지와도 같은 음습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은
작가 러브크래프트 자체가 매우 지적이며 냉철하고 합리적인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스마우스의 그림자"에서는 물고기 인간이 나온다.
그들은 얼핏 인간과 비슷하나, 온몸은 딱딱한 비늘로 감싸져있고, 묘하게 눈사이가 멀며, 아가미 비슷한것도 있다.
인스마우스라는 마을에 우연히 찾아가게된 남자의 추리로 전개되는 이 단편은
마치 축축한 이끼가 살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듯한 찝찝한 기분을 남긴다.
이책의 단편들중에서 가장 광기에 가득한 소설같다.


"벽속의 쥐"를 읽으면서는 "찰스덱스터 워드의 비밀"에서 느꼈던
실체없는 공포를 느낄수 있었다.

찰스 덱스터 워드의 실험실 지하에 숨겨져 있던 모습조차 묘사해놓지 않는 기분나쁜 괴물들처럼,
쥐가 들끓는 벽속의 알수 없는 동굴은 실체를 알수 없어 더 기분나쁘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읽었던 "어둠속의 속삭임"에는 외계인이 등장한다.
러브크래프트의 묘사로 이미지를 그려보면, 이 외계인은 150센티정도의 초대형 게나 버섯을 연상시킨다.
외계인의 최종목적이 무엇인가는 결국 나오지 않는다.
아니, 필요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주파수 잘못맞춘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드문드문 이어가는 외계인들의 알수 없는 대화자체의 혐오감과,
한 인간에게 저지른 짓은 너무 암울해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


그리고 마지막 "크투루프가 부르는 소리"는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해냈다는 "크투루프 신화"의 이야기이다.
이 단편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아마도 그가 창조해낸 세계가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고작 40몇페이지의 이야기로는
도저히 내가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모든 이야기는 크투루프 신화와 연계되어있다.
이 소설의 단편 모두와 "찰스덱스터 워드의 비밀"역시 크투루프 신화를 배경에 깔아놓고 이야기 되고 있는 것인데,
이처럼 거의 우주범위에 가까운 신화를 한 인간이 만들어놓는 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 같다고 느껴졌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읽기전에 가장 먼저 이 단편을 읽었다면 더더욱 멋졌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은 딱히 재밌다고 말하기 뭣하지만,
굉장히 매력적이다.
나는 그에게 자석처럼 끌려간다.
공포소설이나 고딕소설이나 환상소설이나,음울하고 우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는 다른 소설에서 느끼지 못했던 뭔가가 있었다.
마치 악몽을 꾸고 일어난 것 같은 묘하게 음습하고 몽환적인 그 뭔가가.
도저히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그 실체를 정확히 알수 없는 공포는 안개속에서 멀리서 누군가의 실루엣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실체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실체는 분명하지만, 그 실체의 모습을 확인하기가 두려운 마음.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공포는 그런 종류의 것이고,
나 역시 그런 공포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실체 없으나, 실존으로 다가오는 것같은 느낌이다.
피부로 와닿는 러브크래프트의 고독감 역시 나만 느끼는 것일까.
책을 다 읽고 났을때 그저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의 소설은 다분히 매니악하다.
 

그것도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나 느끼는 것이겠지만,
나는 그 러브크래프트의 코드에 딱 맞는 사람이었는 듯 싶다.
단 두권의 책으로 나는 이 사람의 매니아가 되어버린 기분이 든다.
러브크래프트의 다른 소설들도 읽고 싶지만, 다 절판이 되어버려서 이제는 구할수가 없다.
이 소설이 나왔던 약 100년전에도 인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판매는 잘 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당시에는 이런 그로테스크한 소설이 팔릴 만한 고급문화가 형성되지 않았었다고 하던데,
그건 지금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아닌가.-_-;;;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 등장하는 괴물들의 이미지나 크투루프신화는,
공포영화나 게임에 수없이 인용되어졌다고 하는데,
정확히 알지 못하니 원...-_-;
 
소설 자체보다 책에 대한 불만이 훨씬 더 많다.
유치한 표지 디자인과,
한 문장이 다섯줄을 넘어가는 지나치게 길게 이어놓은 문장 때문에, 읽기가 힘들었다.
내가 죽기전에 그의 다른 소설들이 다른 출판사에서 꼭 나와주기를 바란다.
진짜 진짜 보고싶다.

글을 마치며, 옮긴이의 서평을 인용하고 싶다.
이글에서 느껴지는 러브크래프트의 이미지와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러브크래프트의 이미지는
거의 똑같기 때문에 옮긴이의 서평을 옮기며 글을 마친다.
 
 
 

그의 작품을 다 읽고 난 후 어쩐지 마음을 떠나지 않는 인상 가운데 하나는,
넓은 식당의 희고 큰 테이블보를 앞에 두고 홀로 식사하던 손님의 모습이다.
"어둠 속의 속삭임"에서 먼 길을 찾아온 윌마트가 에이클리의 집 식당에 앉아있던 그 장면.
말할 것도 없이 멀리서 방문한 손님을 맞는 바른 자세가 아닐 뿐더러
일반적인 상식으로도 상상하기 어려운 접대 방법이다.
그렇지만 러브크래프트는 에이클리와 같은 괴짜가 손님을 맞는 장면에

스스럼없이 이런 장면을 자연스럽게 끼워넣었다.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병든 어머니와 고독한 소년시절을 보냈다"는 작가에게는
애초부터 여럿이 떠들썩하게 식탁을 둘러싸는 즐거운 경험이 없는 것이 아닐까?
멀리서 찾아온 손님이라 할지라도,
홀로 텅 빈 식탁에 동그마니 자리를 잡는다.
이 스산한 식탁 풍경에서 러브크래프트의 적막한 일상생활을 느낀다면 잘못일까?

단란한 가정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정감어린 교류, 부드러운 표정, 대화와 웃음, 마음을 전하는 작은 몸짓....과 같은
인간다운 생활의 모습은 식탁에서 가장 잘 드러남을 알고 있으니까.
여러사람이 에워싸고 있는 식탁풍경은 작중 인물의 성격이나 버릇 빛 특징을
생활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낼수 있는 절호의 무대가 될수 있음에도,
러브크래프트에게는 그런 "식탁"이 없다.
식탁이 있다한들, 쓸쓸히 혼자서 우두커니 앉아 커다란 흰 테이블보만 바라보고 있다.
늘 얘기할 상대도 없이 혼자서 식사하는 생활,
이것은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그래서 무슨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뭔가를, 적어도 사람에게는 말은 못걸망정 이야기를 건네듯이 문장으로나마 써보지 않고는
스스로도 도저히 참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러브크래프트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편협된 공상에 집착함으로써,
한사람에게는 너무 큰 테이블보의 압도적인 공백감에서 이어지는
서글픔과는 관계를 끊고자 몸부림 쳤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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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집
헨리 제임스 지음, 이채윤 옮김 / 데미안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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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제 The Turn of the Screw.
해석하자면 나사못 회전.
우리나라에 들어온 제목은 "유령의 집"
뭐 이야기와 전혀 상관없다고 말할수는 없지만 제목이 어쩐지 좀 깬다.
 
큼직한 글자 배열과 적절히 삽화가 들어간 것으로 미루어보아
아동용으로 만들어진것 같기도 한데,
표지를 보면 분명히 공포소설이나 미스테리 소설로 나온게 확실하고...
안에 작가의 프로필 이상 거의 어떤 정보도 주지 않은 책.
어쩌면 책을 허접하게 막 찍어내느라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이 소설이 더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한마디로 표현하기에 정말 "이상한" 소설이었다.
재미없고 있고를 떠나서 정말 이상하게 미스테리한 소설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감정보다 보고나서 느낀 궁금증은 거의 폭팔적이었다고나 할까.
"이게 뭐야?"스럽게 끝나버려서, 더더욱 미스테리해져버렸다.
 
한 여자 가정교사가 어느 고풍스러운 대 저택에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간다.

천사같이 아름답고 상냥한 성품의 두 아이는 그녀를 흡족하게 했고,
저택에서의 생활도 더할나위 없이 평화로웠다.
집안의 큰어른이 없는 이 집에 유령이 나타나기 까지는 말이다.
이집에서 예전에 일하던 두 남녀 고용인의 유령이 나타나면서,
평화는 서서히 깨어지고, 유령에 홀린 아이들의 아름답기만 하던 껍질도 벗겨지기 시작한다.
 
시시하게 끝나버리는 듯한 결말뒤에는 자꾸만 궁금증이 몰려왔다.
유령이 무엇을 위해 나타났는지,
아이들과 어떤 교감을 나누고 어째서 죽지 않고 섬뜩하게 헷꼬지를 하는건지,
큰 아이인 마일즈는 왜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는지,
아무것도 소설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소설을 덮을때까지는 그다지 재밌지도 않았고 공포스럽지도 않았고,
시시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자꾸 생각해보면 이 소설의 이상한 점이 조금씩 드러난다.
 
심지어 가정교사의 이름조차 나오지 않으며,
이 여자의 신상이나 과거나 어떤 것도 자세히 주어지지 않고서도

주인공인 이 여자의 정체 또한 의심스럽다.
어쩌면 모든 것이 밀폐된 집에서 일어난 이 여자의 히스테리성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 여자와 아이들밖에 유령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없기도 하고,
소설끝까지 한번도 나타나지 않는 집 주인의 실체도 그렇고,
(딱 한번 집 주인인 아이들의 잘생긴 큰아버지가 서두에 주인공과 만났으나 그후에는 한번도 나오지 않고,
아이들에게 그렇게도 무심한데도 이 여자는 그 남자를 탓하지도 않고,
오히려 철썩같이 믿고 그에게 신뢰감을 주려고 하는 점조차 참 수상하다.
어쩐지 너무 잘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짤릴까봐 두려워 그러는것이라기 보다는,
마치 짝사랑하는 상대를 대하는 것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사실은 유령의 존재여부조차 희미하며,
상냥하게 시작해서 점점 히스테릭한 모습을 보여주는 주인공의 모습도
참 미스테리하다.
 
사람에 따라서는 허접하게 쓰여진 소설이 될지도 모르겠으나,
깊이 생각하면서 봤다면 보고난 후 한참이 지나서야 공포가 몰려오는 소설이었다.
진실의 은폐가 이 소설의 공포 키워드이다.
공포소설이라기 보다는 미스테리 심리 소설이라고 부르는 쪽이 어울리겠다.
어쩐지 영화 "디아더스"의 분위기와도 겹치는 것은
유령이 나오는 대저택과 여자 하나, 아이두명이 등장하는 조용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차분히 생각해보면 점점더 기분이 이상해지는 소설을 원한다면,
강추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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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칭 - 단편
나나난 키리코 지음 / 하이북스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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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
어정쩡한 나이.
20대 초반이라기에는 너무 늙고,
20대 후반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폼재기에는 너무 어리숙한
이상하게 끼인 나이.
 
내가 그 25살이다.
20대 초반은 아니라 어딜가든 언니라는 소리를 듣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니 노릇하고 어른인척 굴면
그것 또한 재수없는 이상한 나이.
주위에서는 결혼을 슬슬 생각하지만,
또 막상 결혼하기에는 어린 나이.
뭔가 이제서야 새로 시작하기에는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뭔가 그만두기에는 또 너무 이른 나이.
 
하루칭과 나는 25살이다.
이루어놓은 것 없이 하루하루 살며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걱정보다는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게 아직까지는 인생의 목표인
철없는 하루칭과 철없는 나는 25살이다.
 
하루칭을 읽으면서 25살 여자가 느낄수 있는 것들을 느꼈어.
또라이라는 점 빼고는 모든 것이 다른 하루칭과 나이지만,
25살이 느끼는 감정은 다 비슷비슷한가봐.
 
그동안의 키리코 나나난 만화와 확연히 차별되지만,
난 사실 이쪽이 더 끌리는 것같아.
어른인척 폼재는 것보다는
철없고 아직은 아이같아서 공감할수 있는 쪽이 더 좋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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