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드에 안녕을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7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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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노 쇼고의 베드엔드 단편들만 모아놓은 <해피엔드에 안녕을>.
작가의 깔끔한 스토리텔링을 여실히 엿볼수 있는 단편집이다.
그간 읽어본 우타노 쇼고의 소설들을 되짚어보면, 우타노 쇼고는 대단히 매력적인 이야기를 탄생시키는 작가라기보다는 사고방식의 헛점을 잘 이용하거나 글 자체가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맛을 느낄수 있는 작가이다.
물론 그 안에 자신의 생각을 투영해놓을 줄도 아는 꽤 영특한 작가가 아닐까 싶다.
이 책 <해피엔드에 안녕을>에서 그가 풀어놓는 11가지의 이야기는 우타노 쇼고의 매력을 여실히 느낄수 있는 동시에 아쉬움도 함께 드는 단편집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나 개인적인 의견으로,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르게 바라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기리노 나쓰오같은 암흑의 에너지가 가득한 작가들에 길들여진(?) 나는 이 베드엔드들이 그닥 충격적이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어떤 것들은 시시하게 느껴지기까지!!! 기리노 나쓰오는 나를 어떤 여자로 만들어버린 것일까!
나조차도 놀라울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살인휴가>라던가 <강위를 흐르는 것>처럼 뒷맛이 갑자기 서늘해지는 단편들이 좋았다.
우타노 쇼고식의 뒤집어서 다시 생각해보는 매력이 충분히 녹아든 단편들이라고 생각한다.
<벚꽃지다>같은 단편같은 경우에는 예측할수 있으면서도 여전히 안타까운 느낌이 드는 단편이었고, <방역>같은 한사람의 이야기가 지금 현재까지 쭉 이어져 나가는 스타일도 좋았다.
그렇지만 몇몇 작품들은 허무했고, 어이없는 것들도 있는데, 작가라고해서 늘 재밌는 것만 토해낼수 없으니 이정도의 편차야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전체적으로 약간 심심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재미없거나 시시한 이야기들은 아니었지만, 뭔가 우타노 쇼고스러우면서도 우타노 쇼고의 특기를 50%밖에 살리지 못한 느낌이 들어서 아쉽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의 성공 이후로, 한참 뜸하다가 최근에 우타노 쇼고의 소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그래도 갈수록 재밌는 느낌을 주는 작가라서 발간되는 책들을 기다릴 맛이 난다.
<밀실 살인게임>이 우리집으로 달려오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이 단편집의 약간 밋밋한 맛에 조미료를 팍팍 뿌려 강렬한 느낌을 줄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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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합
타지마 토시유키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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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약한 스토리, 차라리 한가지 얘기라도 제대로 했으면 평범하게 재미없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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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이에몬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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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쩌면 이렇게 조용하고 기괴한 사랑이 있을까.
아름다웠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던 어떤 여인은 어느날 병에 걸려 얼굴이 무참히 무너지고 만다.
얼굴이 무너진 후에도 그녀에게 외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감넘치는 대장부같은 여자여서, 세상의 시선에 지지않고 살아가리라 생각했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그녀를 밑바닥까지 떨어뜨리는 소문들. 아름다운 이와아가씨는 이제 추녀가 되었고, 도깨비같은 여자가 되었고, 미쳤는지 지나가는 남자마다 눈만 마주치면 추파를 던진다고-
당당했던 그녀의 자존심은 어느새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고, 세상에 등을 돌리게 되어버린다.
이와 아가씨는 세상과 타협하기에는 너무나 곧은 여자였기 때문에, 구부러지지 않고 꺽여버린 것이다.
시집갈 나이의 외동딸이 추녀가 되어버린데에 절망을 한 것은 오히려 그녀의 아버지였다. 설상가상으로, 이와가 병에 걸리고 얼굴이 무너져 버린 이후, 아버지도 사고로 눈을 잃었다. 늙고 병들어 아픈 아버지는 혼자 남겨질 이와와 자신의 가문에 대한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중, 이와에게 장가오겠다는 남자가 나타난다. 너무나 멀쩡히, 성실하고 올곧은 남자를 보고, 아버지는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고, 자신의 딸은 추녀라며 그래도 괜찮겠냐 여러번 되묻다가 결국은 그 남자를 이와의 배필로 삼기로 한다.
그 남자가 이에몬이었다. 웃지 않는 남자. 성실하고, 올곧고, 세속적인 것에 관심없는 청렴한 남자.
곧은 여자와 곧은 남자의 신혼 생활은 기이하리만치 대화가 없다.
이와는 이에몬에게 기이할정도로 신경질을 내고, 이에몬은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매번 미안하다며 사과만 한다.
충분하지 않은 대화와 의미없는 싸움이 반복되는 결혼생활이 이어지는데, 한때 이와와 혼인을 올리고 싶었던 전형적인 악인인 요리키 이토가 나타나 이들의 결혼생활은 망가지기 시작한다.

일본에서는 유명하다는 요쓰야 괴담을 소재로 삼고 있는 교고쿠 나츠히코의 소설 <웃는 이에몬>은 원본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드는 이야기로, 악랄함과 순수함이 뒤섞여진 한편의 잔혹동화를 보고 있는 듯, 다분히 퇴폐적이며 기이하고 또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교고쿠 나츠히코의 소설은 대게 비슷한 느낌을 갖기는 하지만, <항설백물어>라던가 <교고쿠도 시리즈>와는 또다른 느낌으로 읽을수 있는 책이었던 것 같다. 조금더 편안한 마음으로, 조금 더 사람과 감정에 기대어 쓴 듯한 소설이지 않았나 싶은데, 이런 느낌도 무척 마음에 들어서 또 언제 교고쿠도의 이런 소설을 읽을수 있을까 기대하게 되었다.
끊어질 듯, 소심하게 더듬는 어눌한 문체와는 달리 상당히 자극적이고 기묘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문체 덕분인지 이야기가 지나치게 적나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묘해서 슬프기도 했다.

이 가학적이고 이상한 이야기를 "사랑이야기"라고 말하는 것은, 이 진흙처럼 끈적하고 스산한 관계들속에서도 사랑이라는, 또는 사랑과 비슷한 감정같은 것이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삐뚤어진 사랑을 하고 있다.
올곧고 고집쎄던 여자 이와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소문에서 결국은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그들과 같을 것이라 여겨버린다. 이에몬이 행복해지는 일은, 자신같은 성질 사나운 추녀가 아니라 조금더 젊고 아름답고 나긋나긋한 아내를 얻는 것이라고-이와는 말없이 생각했을런지도 모르겠다.
이에몬은 그런 이와의 행동에 의아해 하면서도, 그녀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그녀를 자유롭게 해준다고 믿었다.
이들의 주변을 둘러싼 다른 사람들은 또 어떠한가.
평생 악하게만 살아온 이토는 사랑함에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삐뚤어진 방식으로 감정을 표출한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어보이지 않는 것은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자신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에몬을 사랑한다고 믿는 우메는 또 어떠한가. 그것이 사랑인지, 지푸라기라도 기대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 만들어낸 허상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잘못된 방식으로 사랑을 얻으려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이 책을 보면서 대화란 얼마나 중요한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솔직한 단 한마디의 말만 해주었더라면 해결되었을 문제들이 이렇게 꼬이고 삐뚤어져, 기묘한 비극을 만들어버리게 된다.
삶을 살아가면서, 단 한마디가 중요하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단 한마디를 못해 삐뚤어져버리는 일들이 있다.
말한마디. 그저 따뜻한 말한마디일 뿐인데, 왜 그렇게들 주저하며, 자신의 생각이 옳을 거라 착각하고 대화하지 않으려 했을까.
그 모든 것이 두려움때문이지 않았을까.
거절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혹시 내가 상대방에게 모자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나를 미워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내가 상처받을까봐 주저하게 되는 마음들이 저마다 기묘한 방식으로 꼬이고 꼬여 오해만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 아닐까.
말이 없는 사랑이란, 상대방에게 얼마나 가학적일수 있는지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 읽고나니 한참 여운이 남아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여러번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역시 모든 관계의 열쇄는 커뮤니케이션이로구나-하는 당연한 결론을 짓게 되었지만, 이제 다시 말없이 오해만 되풀이하는 관계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보장은 또 없다.
사람의 마음이란, 어차피 소심하고 삐뚤어지고, 나 역시 나혼자 생각하고 결론내리는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어긋나는 관계가 슬퍼도, 용기를 내는 것 또한 쉽지 않기 때문에- 이런 기묘한 사랑도 일견 이해할수 있을 것만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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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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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는 내게 모범생같은 작가이다. 분명 그녀의 재능은 인정하고 어느 것을 읽어도 한심할 정도로 퀄리티가 떨어진 적이 없었어서, 그럭저럭 재미를 주긴 하지만, 어딘지 딱히 끌리지 않는-그런 작가가 미야베 미유키이다.
어쩌면 상당히 정공법을 쓰는 작가. 이렇게 정직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를 그닥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은 이유는 무언가 마음으로 팍! 파고드는 매력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읽어온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거의 대부분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러던중, 약간 뒤늦게 읽게된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리즈중 단편을 모아놓은 <괴이>는 그럼에도 참 즐거운 소설이었고, 미야베 미유키를 다시 보게되는 계기가 되었던 소설이다. <괴이>를 계기로 그동안 좋았던 미야베 미유키를 다시 들게 되었고, 당연히 그녀의 에도시리즈를 모두 읽어보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괴이>는 일본의 민담이나 괴담에서 출발해 하층민들의 생활과 사연들을 들려주고 있다.
저마다 다른 이야기이면서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이 단편들은, 어떤 때는 하인들이 보는 도련님이나 아가씨의 이야기로, 어떤때는 도깨비나 하녀의 이야기로, 대부분 고용살이를 하고 있는 하층민들의 눈에 비친 괴이쩍인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도, 그것의 근거에는 삶의 기이함과 아련한 슬픔이 담겨있다.
요컨대, 흔하디 흔한 말이긴 하지만, 귀신보다 무서운 것은 인간이며 인간이 만든 세상이라는 이야기가 요점.
어쩌면 굉장히 독특한 이야기들은 아닌데도, 이 책이 참 즐거웠던 이유는 저마다의 이야기 저변에 깔려있는 아련함과 세상살이가 고단한사람들의 삶에 대한 따듯한 시선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가을비 도깨비>같은 단편에서는 왠지 모르게 아련하고 막막해져서 눈물이 날뻔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전해주는 삶의 기이함과 잘못된 인생의 후회가 담겨져있는 단편이라, 마음이 저릿해졌다.  
<괴이>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런 이야기들인데, 완전히 색다르거나 깜짝 놀랄 정도의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하나하나 꿰어내듯 읽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런 일본 괴담소설집을 보면, 그것을 너무나 잘 활용하고 자연스럽게 현대로 이끌고 오는 일본인들의 꼼꼼함이 부러워진다.
우리나라에도 충분히 민담과 괴담이 많았을텐데도, 과거와 현재가 뚝 짤리듯 단절되어있는 느낌이라, 우리의 민담들은 훨씬 멀게 느껴진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에 근거하기도 하겠지만, 너무나 급하게 세상을 뒤바꿔버리는 우리나라사람들의 조급함 또한 문제이지 않을까. 옛날 것은 옛날에 버렸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언젠가 또 활용할수 있는 것임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겨울밤, 마음이 따듯해지는 단편이었다. 결국은 괴이한 이야기들이니까, 여름에 읽었으면 괜찮았을 법도 한데, 묘하게 이 책은 겨울 밤에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어서, 읽는 내내 할머니에게 듣는 옛날 이야기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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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3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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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노 쇼고는 재밌는 작가이기는 했지만, 매력적인 작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더랬다.
단순한 화법, 꽤 잘 읽히는 전개와 독특한 발상덕에 읽을 가치가 있는 추리소설 작가라는 생각은 했지만, 어딘가 몇%부족한듯한 느낌이 내내 들었다. 아마도 사람을 혹! 홀려버리는 뚜렷한 매력은 없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멀리 가야할 때 충동적으로 산 이 책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를 읽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더랬다.
이 책에는 수많은 클리쉐와 추리소설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오랜동안 추리소설을 읽고 추리소설의 로망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런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나는 그 로망들을 읽어냈고, 나와 비슷한 로망을 가진 사람이 여기에 또 있다는 사실에 일단 굉장히 즐거웠던 것 같다.
눈 오는 산장, 외딴섬, 서양식 관-. 일명 밀실 살인.  또달리 표현하자면, 클로즈드 서클.
느닷없이 알수 없는 살인이 벌어지고, 어디선가 머리좋은 탐정이 나타나 기발한 추리를 보여주고, 외딴 섬에서는 반드시 한명씩 미스테리하게 사라지거나 죽어나가는 것이 정석이고, 서양식 저택에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가문의 비화와 음울한 분위기가 깔려있어야한다.
이것이 오래전 추리소설을 읽는 사람이 뻔히 알면서도 즐겁게 보는 요소들이었다.
이 소설집은 밀실살인, 클로즈드 서클이 핵이 되는 단편들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책에서의 밀실살인은 이야기의 주체를 꾸며주는 도구이자 표현방식이라 할수 있다. 내게 매력적인 것은 그점이었다.
본격 클로즈드 서클 소설을 표방하면서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는 클로즈드 서클 식이 아니었다.

첫번째 이야기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가게우라라는 명탐정이 등장해 명탐정의 허상을 보여준다.
머리가 좋고 기억력이 비상해 어느 순간 명탐정이라 불뤼우게 되었고, 멋들어진 고가의 명품 양복을 입고 다니며 멋지게 사건을 해결하는 명탐정의 외향 뒤에 가려진 현실적인 고뇌와 짜증.
하는 일에 비해 벌이가 좋지 못한 편이고, 자주 구설수에 휘말리며, 여자한테는 인기없고, 본격적으로 나서면 명성도 얻을수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신세.
이 단편의 초반은 이렇게 아기자기하게 머리좋은 명탐정의 허울을 벗기며 시작된다.
그리고 또 일어나버린 살인사건. 돈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겠다며 외면해 버리는 명탐정과 속이 타들어가는 그의 조수의 모습도 어딘지 유쾌한 면이 있었고, 이런 저런 사건 뒤에 알려진 반전도 꽤 명쾌하면서도 깔끔했다.

두번째 이야기 <생존자, 1명>에서는 외딴섬에 갖히게된 남녀가 등장한다. 종교 광신도인 이 다섯명의 남녀가 섬에 갖히면서 한명씩 죽어가고 저마다 범인을 추적하지만, 범인이라 생각했던 사람도 죽어나가는 상황.
마지막 생존자 1명이 누구인지, 거기까지 다다르기 위해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꽤 서늘하게 잘 써내려간 단편이다.
섬에서 갖힌 남져들이 하나씩 죽어나가는 사건과 함께 세상의 소식이 전해져오는데, 이 두가지를 이어 마지막에 내놓는 서술 트릭은 충분히 짜릿하고 흥미로웠다.

마지막 이야기 <관이라는 낙원에서>는 이 모든 이야기를 어우르는 듯, 본격적으로 추리소설에 로망을 가진 사람이 등장한다.
평생 벌고 아껴서 "관"이라는 이름을 붙일 대저택을 건축한 한 남자는 대학시절 자신과 함께 추리소설 동호회에 들어있던 친구들은 새 관에 초대한다.
병으로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아내와 평생의 로망을 이제서야 실현하는 장난끼 넘치는 추리소설 애호가, 그리고 이제는 아저씨가 되어 추리소설에의 로망같은 건 잊고 살던 옛친구들은
이 "관이라는 낙원에서" 추리게임을 벌이게 된다.
앞선 두가지 단편에 비해서 임팩트가 좀 약한 단편이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추리소설에의 애정을 가진 사람들, 예전의 꿈과 로망같은 것은 다 잊고 살았는데도 또다시 빠져들게 되는 아저씨들의 동심 비슷한 것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세가지의 중단편들이 모여있는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추리소설의 역사를 바꾼다!같은 거창한 말로 수식할만큼 훌륭한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짧고 소품적이면서도 충분한 톡쏘는 임팩트와 즐거움을 줄수 있는 중단편집임에는 분명하고, 개인적으로 우타노 쇼고의 책중에서 가장 재밌게 보게된 책이었다.
밀실 트릭과 클로즈드 서클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그 핵에는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있어서 더더욱 만족할수 있던 책이 아니었을까.
우타노 쇼고는 확실히 센스가 넘치는 작가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조금 음울해 보일런지는 몰라도, 어린 시절 나는 밖에도 나가지 않고 추리소설을 탐독한 적이 있었다. 아가사 크리스티며, 명탐정 홈즈며, 앨러리 퀸의 추리소설이며- 그때 읽은 소설들은 그때에도 이미 추리소설의 고전이었다.
범죄가 주종을 이루는 그런 책들에 빠져서 꿈을 꾸었다면 참 이상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밤새워 책속에서 헤매며 누가 누구를 죽였는가, 왜 죽였는가, 왜 훔쳤고, 어떻게 훔쳤는가를 추리하고, 주인공을 따라가면서 나는 그 세계속에 나 역시 가장 먼저 진실을 깨닫는 사람이기를 발랬던 것 같다.
명탐정이라는 존재는 내게 있어 히어로였는지도 모르겠고, 음울한 서양식 대저택은 내게 낙원이었을런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추리소설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의 로망들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또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이 등장하지 않았을까.
희한하게도 어쩐지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은, 추리소설을 읽으며 가슴 두근대던 수많은 밤들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렸기 때문일런지도 모르리라.
아직도 수많은 추리소설이 쓰여지고 있고, 나는 아직도 더 많은 추리소설을 읽고 싶다.
내가 버리고 싶지 않은 기이한 동심과 로망이 바로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또 추리소설을 고르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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