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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 미 인 - Let the Right One i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간혹 어떤 영화를 보다보면, 암담하다는 말밖에 설명할수 없는 영화들을 발견하곤 한다.
이전에 보았던 "스위트 세븐틴"이라는 영화가 그런데, 이 슬픈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뿌듯한 것도 아닌 뭐라 말할수 없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보는 내내 마음을 졸이면서 보았던 이 "렛미인"도 그런 영화였다.
뱀파이어가 등장하지만, 공포영화는 아니며, 사실 영화가 담고 있는 소재 또한 왕따라는 전세계 공통의 뻔한 주제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토록 차고 불안정한 느낌이 드는 것은 영화속에 주구장창 등장하던 눈의 탓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 말 없이 쌓이는 눈, 그보다 더 하얀 아이들의 얼굴.
상황과 시간에 무방비하게 내던져진 듯한 느낌이었고, 영화속의 아이들의 상황도 그래서 더더욱 마음이 불편했다.
어떤 끝을 내더라도 암담했을 이야기. 해피엔딩이어도, 배드엔딩이어도 그랬을 것같다.
영화속의 거의 유일한 뱀파이어인 이엘리. 학교에서 왕따당하는 열두살 소년 오스칼.
새까맣다고 말할수 밖에 없는 오밤중에 눈속에 혼자 놀고 있는 오스칼에게 이엘리는 단도직입적으로
"난 너와 친구가 될수 없어"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친구가 되고 만다.
뱀파이어이기 때문에 그렇게 될수 밖에 없는 이엘리와 왕따를 당하면서도 부모님에게는 털어놓을수 없는 소심한 소년 오스칼. 어차피 두 아이들은 세상에 홀홀단신으로 내던져진 아이들이었는지도 모른다.
혼자 있을때면 몰래 숨겨둔 칼을 꺼내들고, 자신을 괴롭혔던 아이들이 했던 행동을 똑같이 따라하는 오스칼.
진정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실은 그 잔인무도한 아이들의 행동을 나름 멋있다고 부러워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스칼이 원했던 것은 자신을 왕따시킨 아이들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이 상황에서 도망치게 해줄 구원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죽이고 싶어하는 오스칼과 죽여야만 사는 이엘리.
이엘리의 초인적인 대범함과 오스칼의 나약한 자아는 너무나 다르지만, 그들은 서로를 사랑한다.
아마도 의지할곳이 서로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렛미인>은 공포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지나친 잔인함은 표현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무척 잔악하다.
소녀가 짐승처럼 인간에게 달겨들어 피를 빠는 장면 같은 것은, 여타 다른 뱀파이어영화와 다를 바 없고 어린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도 아니지만, 왜 그다지도 불편하게 느껴지던지.... 살기 위해서 그렇게 밖에 할수 없는 그 상황이, 열두살 소녀가 의지할 부모나 가족조차 없다는 사실이, 초대받지 않으면 안으로 들어갈수 없는 뱀파이어의 방식이 이 소녀 이엘리에게는 초대받지 못하면 마음이 산산히 부숴지는 고통과도 같은 것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이, 아마도 영화속의 냉정한 눈처럼 차게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원작소설이 있다고 하던데, 기회가 닿으면 읽어보고 싶다.
이 영화가 소소한 성과를 거두면 어디선가는 번역해주지 않을까.
원작소설에서는 미묘하게 아동성애를 다루고 있다고 하던데, 영화속에서는 전혀 표현되지 않는다.
다만, 영화속에 이엘리의 아버지처럼 등장하는 아저씨가 하나 있는데, 그 사람의 존재감에서 어렴풋이 짐작만 할 따름이다. 이엘리와 아저씨의 관계는 영화속에서 전혀 설명되지 않는데,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만 아버지라 소개하고, 둘이 있을 때는 노예부리듯이 대하는 이엘리의 행동이라던가, 아저씨의 맹목적인 희생이 묘하게 부모의 그것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던 것은 그런 느낌이었을지...
짐작이 맞다면, 그 아저씨의 눈물겨운 사랑도 참 가슴 아프구나.
아주 독특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아주 특별한 느낌의 영화였다.
단 하나뿐인 우정과 눈과 성장통과 죽음에 대한 조금 이상한 동화...
영화의 이미지가 무척 차고 시려서, 영화를 보는 내내 극장에서도 입김이 날 것만 같았고, 이가 시리다.
열린 엔딩 또한 해피엔딩인척 하면서도 무척 암담하다.
혼자 극장에서 보고 나오는데 머릿속이 멍하고 쓸쓸해지더라..
이보다 더 흴수 없는 아이... 어쩜 이렇게 하얄수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