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 닫혀 있었다.
이제부터 영원히 이렇게 닫혀 있기라도 할 듯이.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제 두번 다시 열리지 않을 듯한 냉혹한 느낌이었다.
문에는 표정이 있다.
이 문이 그랬다. 힘도 없고 생명도 없었다.
열지 않으면 어디로도 통하지 않는다.
문은 모든 것의 시작이지만, 이 문은 그렇지 않았다.
모든 것의 끝이었다.

 
벨 위의 나무 부분에 문패를 넣는 장방형의 금속틀이 달려있었다.
그러나 비어있었다.
문패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젊은 여자는 아직 문 앞에 서 있었다.
꼼짝도 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서 있을 때 사람은 이런 자세를 취한다.
너무 오랫동안 서 있었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을 잊어버렸다.
움직이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손가락은 벨에 대고 있지만, 이제 더이상 누르지는 않는다.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
문의 맞은 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녀는 그런 식으로 오랫동안 손가락을 댄 채 그 손가락을 떼는 것을 잊기라도 한 듯한 모습이었다.
 
나이는 열아홉살 정도나 될까?
밝게 빛나는 19세가 아니라 황량하고 희망이 없는 열아홉 살이었다.
이목구비는 오밀조밀하고 반듯하지만, 얼굴은 몹시 여위고 얼굴빛은 아주 핼쑥했다.
어딘지 모르게 아름다움도 있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다시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무엇 때문인지 그 아름다움은 부서지고,
바로 옆에까지 가 있으면서도 원래의 아름다움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을 듯한 얼굴이었다.
 
개암나무 빛깔의 머리칼은 생기 없이 흐뜨러져있고, 요 며칠 동안은 손질도 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신발의 뒤꿈치는 조금 닳아 있다.
스타킹의 뒤꿈치를 기운 흔적이 구두 바로 위에 비죽이 드러나 있다.
옷은 유행이나 매력을 자아내기 위해 입은 것이 아니라, 단지 몸을 감싸기 위해 걸치고 있을 뿐이었다.
젊은 여자치고는 키가 큰 5피트 6인치나 7인치 정도 되어 보였다.
하지만 몸은 마마른 편이었다.
 
머리는 조금 숙이고 있었다.
반듯하게 들고 있다가 싫증이라도 난 모습이다.
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연속적으로 얻어맞아서 녹초가 된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드디어 몸을 움직였다.
오랜 기다림의 끝이었다.
손은 자신의 무게를 견디기 어려운 듯이 벨에서 내려졌다.
그리고 겨드랑이까지 내려오자 그대로 쓸쓸히 축 늘어졌다.
한쪽 발이 드디어 이곳을 떠날 생각인 듯 움직인다.
그리고 잠시 그대로 가만히 있는다.
드디어 다른 한쪽 발이 움직인다.
문에서 등을 돌린다.
열리려고도 하지 않는 문.
묘비같은 문.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하는 문.
 
그녀는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한 발 내디뎠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한 발.
고개는 전보다도 더 숙이고 있다..
문을 뒤로 하고 천천히 그곳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그림자가 멀어진다.
벽에 똑바로 비친채, 그녀의 뒤로 느릿느릿 따라간다.
머리의 그림자 역시 조금 꼿꼿해 있다.
아주 초라하고 한층 더 말라 보인다.
그녀 자신은 이미 사라진 뒤에도 그림자는 잠시 남아있었다.
드디어 그녀의 뒤를 따르듯이 벽에서 사라져버렸다.
 
뒤에 남은 것은 문뿐.
묵묵히 냉혹하게 닫혀있는 문 밖에 없다.

 
<윌리엄 아이리쉬-죽은 자와의 결혼 中..>

 

초라하고 보잘것 없는 여자 헬렌.
그리고 죽은 자와 한번, 죽을 자와 또 한번 결혼한 패트리스.
애처롭기 그지 없는 헬렌의 묘사로 첫장부터 나는 헬렌을 좋아했다.
언제나 혼자 였고, 앞으로도 영원히 혼자일 여자.
그림자에 미련을 담아 무거운 발걸음을 떼고 초라한 뒷모습으로 걸어가는 여자.
조금도 강하지 않고, 조금도 행복하지 않은 그 쓸쓸한 뒷모습-
영원히 이어질것 같은 허무하고 처절한 실망.
뒤에 남겨진 냉정한 문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애처로운 헬렌.
갈 곳없는 고독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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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3-08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보..본것 같기도 하고, 안 본 것 같기도 하고;;
다자이 오사무는 감히 못 권해드리겠습니다. 나중에 무슨 원망을 들으려구요 ^^a
저로 하여금 다자이 오사무 읽게 만든 '일요일의 석간 ' 작가 찾아가서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걸요.

로드무비 2006-03-08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보관함에......^^

Apple 2006-03-08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 아니..그렇단 말이예요?ㅇ.,ㅇ
왠지 분위기가 무척 쓸쓸할것같아서 보고싶었는데..음....
로드무비>>꼭 보세요.;ㅁ; 지금은 상복의 랑데부 읽고 있는데 너무 슬프네요..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