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조심★
"녀석이 한 말은 틀렸어....
초조함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고, 당신이 위험을 수월하게 헤쳐나와 내 곁에 돌아올 때마다 정말 기뻤지...게다가 언제나 당신 손만 더럽히게 해서 미안했어...."
그는 다시 한 번 후루야를 불렀다. 그러나 후루야는 더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ㅡ또다시 혼자다.
그는 가슴속에서 그렇게 중얼거리며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지만 그저 멍하니 피웠다.
2,3분 후에는 살아남기 위해 현실적인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계기를 찾았다.
그의 인생에서 보면 혼자인 것은 익숙하다. 고독이라면 뼈아플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러나 고독으로 되돌아온 경험은 별로 없었다.
담배를 주검의 입술에 끼워주니 해풍이 그 끝을 빨갛게 태워 한순간이지만
후루야가 살아서 그의 옆에 앉아 맛있게 담배를 태우는 것처럼 보였다.
파트너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은 충동을 그는 간신히 억눌렀다.
:가노 료이치-제물의 야회 中에서...
간혹, 책을 읽다가 어쩔줄 모르겠는 순간들을 맞딱드릴 때가 있다.
어떤 책들은 분명, 내가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겉잡을수 없이 슬퍼지는 감정들을 전해주는데,
그것이 독서가 주는 은혜라면 은혜일 것이다.
<제물의 야회>에는 그런 가슴짠한 슬픔을 전해주는 두 남자가 등장한다.
킬러 파트너 후루야와 히로.
후루야는 일류고등학교, 일류대학을 나와 엘리트 은행원으로 일하다가 일이 잘못되는 바람에 교도소신세를 지게 되고,그 일을 계기로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도망쳐버리고, 교도소에서 알게된 연줄로 암흑의 세계에 발을 붙이게 된다.
이 남자가 하는 일은 계획을 짜고 정보를 수집하는 것. 파트너가 계획을 실행하는 동안 초조하게 기다려야 하는 사람이다.
히로는 좀 더 세상의 풍파에 시달린 사람이다. 고향 오키나와에서 미군을 죽여버린 것이 그의 나이 열살 시절. 어머니와 죽도록 고생해서 대만으로 도망쳤고, 대만에서 조직생활을 하게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어떤 계기로 인해 도망치기 위해서, 하염없이 걷는다. 그리고 둘은 파트너가 되었다.
개인적인 말은 전혀 하지 않는 사이. 감정따위는 조금도 나누지 않는 냉랭한 사이.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속내를 털어놓는 융통성없이 미련한 관계.
그저, 계획자와 실행자-딱딱한 일관계의 사람들인데, 둘의 사이는 묘하게 끈끈하고 서글프다.
어젯밤 책에서 후루야가 죽는 대목을 읽으면서 목구멍에서 울컥하고 뭔가 올라오더라.
아마도 이 장면은 소설속에서, 또는 영화속에서 내가 보았던 가장 멋진 흡연씬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이 책, 꽤 지독하다. 한순간에 마음이 싸늘해지게 만드니까.
책두께만큼이나 진도도 잘 나가지 않지만, 어쩐지 오래오래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오랜만에 뻑적지근할 정도로 묵직한 일본소설을 만나니 가슴이 두근거리기 마저 한다.
p.s 나는 야오이나 BL을 좋아하지도 않지만서도, 이 두남자는 어쩐지 이어주고 싶은 생각이.....(?) 그래!!!사랑은 늘 감사하면서 미안해하는거라규!!!!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