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애달프게 사랑했던,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생의 한가운데서 좌절했던,
인간에 대한 예의를 묻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적시는 책!"
 
아사다 지로의 기담집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의 광고문구인데, 이 문구만으로도 나는 이 책이 좋아졌다.
인간으로 태어나 우리는 얼마나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살았는지 생각해보자. 또 스쳐지나갔던 사람들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었는지 생각해보자.
나는 천재라던가 완벽주의자라던가, 심지어는 신마저 좋아하지 않는다.
그 단어들에 감추어진 결국은 1등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마인드가 마음에 들지 않고, 또 인간을 딱 잘라 구분지어 버리는 것 같아서 싫다. 1등보다 수많은 보통사람들이 있는 것이 이 세상이고, 1등이 되지 못한 인생들은 꼴찌나 실패한 인생이라고 단정지어버리는 것 같아서 싫다.
저 문구를 보고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내가, 또 사람들이 얼마나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살고 있는 것인지. 그래도 우리가 천재가 되고, 완벽주의자가 되어야 할까. 굳이 꼭 1등을 해야되는 걸까.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 갖추었다고 스스로가 자부하기도 전에 말이다.
 
이 단편집에 실린 단편들은 그야말로 "슬프고 무섭고 아련"해서 첫단편 <인연의 붉은 끈>에서부터 아득한 서글픔이 몰려든다. 살아가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어찌나 이렇게 힘들고 쓸쓸한지, 남몰래 이불속으로 스며들어온 처녀귀신의 차가운 손길에도, 그 처녀귀신에게 안긴 아이의 따뜻한 몸에도, 짙은 서글픔의 향취가 풍겨져 나온다.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온전히 소유할수 없는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고, 남자에게 버림받고, 두고온 아내와 아이를 두고 애국의 가면을 쓴채 죽는가 하면, 더이상 뭘 어찌할수 없어 서서히 세상을 등지게 되는 인생들이 이 책에는 가득하다.
하나같이 좌절당해 깊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다. 잊지 못하고, 후회하고, 외로워하고, 그리워하면서, 결코 행복하다고는 말할수 없게 평생을 살았지만, 사람이 있기에 기나긴 아픔의 세월들을 견뎌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찌나 아련하면서도 슬프던지....
한번 맺은 인연을 결코 끊을수 없었던 사람들. 가장 아름다워서 슬픈 순간들을 잊지 못하고 허망하게 저마다의 끝을 내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참 비참하게도 서글프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집안이 몰락한 후 뒷골목 불량청소년이 되었고, 그리고 소설가로 새인생을 살기까지의 아사다지로의 내력은 아마도 너무나 인간적이라 아름다운 그의 소설들을 만들어내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그는 이런 인생 역정을 겪으면서 악인도, 선인도,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도 이해할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는지도 모르겠다. 유독 그의 소설에서 좌절한 인생들이 많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삶에 걷어차이고 멍투성이가 되어버린 영혼들의 행복하고자 하는 몸부림을 아사다 지로는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글프지만 아름다운 삶의 온기를 제대로 표현해낼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해와 연민은 아사다 지로 소설의 키포인트다.
 
가을이 되자 정체를 알수 없는 센치함에 빠지고, 또 그걸로도 부족했는지, 더더욱 센치해지는 소설을 읽고 싶었는데, 딱 그런 소설이 되었다. 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읽는 내내 사는 게 뭐고, 인간은 대체 뭔지-하는 수백번은 생각해봤지만 결론은 절대 나지 않을 고민도 해보았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첫번째 이야기 <인연의 붉은 끈>을 가장 재밌게 읽었는데, 재밌게 읽었다고 말하기 무색할 정도로 마음이 먹먹해져서, 다 읽고 나서는 이 단편을 한번 더 읽었더니 또 슬프더라.
언젠가 한번쯤 생각해본 적이 있지만,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된다면 꼭 아사다 지로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도 좋으니, 적어도 인간이 된 사람은 되고 죽어야 인간으로 태어난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 아닐까?
감히 평가하자면, 별 다섯개 만점에 애정별을 100개 추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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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8-08-31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사다 지로가 전 세계의 카지노 다니는 책이 있는데요, 아저씨 본인 사진 많이 나와요- 그 책 읽으면, 아사다 지로 책 읽을때의 그런 아련함들에 대한 환상이 왕창 깨져요. ㅋㅋ 뭐, 그렇다고해도 아사다 지로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작가중 하나입니다만.

근데, 이 책 표지 이쁘지 않나요? 전 이 책 가을보다는 겨울에 어울릴꺼라 생각했는데, 빨리 읽고 싶어지네요. ^^

Apple 2008-09-01 00:18   좋아요 0 | URL
분위기는 확실히 가을...재밌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