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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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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때 꽤 유행했던 영화가 하나 있었다. 데미무어 주연의 지구 종말에 대한 영화  <세븐사인>이라고.
지금보면 아주 시시한 영화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시절 내게는 함께 보았던 (역시 당시 유행했던) <사탄의 인형>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던지, 그 영화를 본 날 밤에는 자다 깨어나서 아침이 될 때까지 공포에 떨며 잠들지 못했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좀 이상한 아이였던지, 무섭다고 생각되면 피하지 않고 더 확인해보려는 욕망이 컸던 것 같다.
더 깊고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 그것이 진실인지, 진실이라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의 충격과 공포의 호기심은 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이어졌고, 그보다 나이가 더 들어서야 이 세상이 삐긋거려 보여도 생각보다 견고하기 때문에 쉽게 망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고, 그제서야 마음이 편해졌었다.
하지만 그때에도, 지금에도, 내게 있어 가장 재앙이자 공포라 생각되는 것은 역시 인류의 종말이다. 정확히는 인류가 종말했는데 나 혼자 살아남는 것이다.
나는 그 적막한 재앙을 견뎌낼수 있을 정도로 강한 인간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종말론에 심취했던 어린 시절에, 하도 그런 것만 생각해서 인지 여러번 악몽을 꾸었었다. 대부분 전쟁이 나는 꿈이거나, 어디선가 조난당해 무언가를 피해다니는 그런 꿈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이상하지만, 나는 그런 꿈에서 깨어나면 다시 잠들수 없을 정도로 공포에 떨었으면서도, 또다시 그런 꿈을 꾸기를 기다렸었다.
무엇이든 끝을 보고싶어했던 욕망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것이 암흑에 취한 아이의 달콤한 악몽이었기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전히 종말을 다룬 문학들이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면 그 시절의 섬뜩한 충격이랄지, 알수 없는 호기심은 내가 놓아버리기 어려운 무언가 이기도 한가보다.
 
이 책 <로드>를 보면서 내내 그때의 생각을 떠올렸다. 그 꿈들이 얼마나 생생했고 두려웠는지.
그리고 그저 책이라 생각하면서도, 이제는 그런 몽상적인 종말론에 덜덜 떠는 어린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가혹한 꿈보다도 더더욱 견디기 힘들어서 여러번 억지로 책을 덮어야 했다.
 
이름조차 명확하지 않은 아버지와 아들은, 시대조차 명확하지 않고, 이유조차 명확하지 않은 종말 후의 세상을 여행한다. 빼싹 마른 몸, 더러운 행색, 그저 지친다는 것이 다일뿐인 표정일 듯한 두 부자. 여행하는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여행에 필요한 생필품을 담은 카트와 한자루의 권총을 들고, 부숴지고 녹아버리고 깨져버린 세상 어딘가 남아있을 음식을 찾고 있는 것으로만 보인다.
완벽한 고요의 세계. 보이는 모든 것은 파괴되고, 퇴색되어 버렸다. 그들은 그 여행길에서 인간을 만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누군가 구해줄거라는 희망은 애초에 없어서 또다른 생존자를 발견하면 경계하고 숨어버린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코맥 매카시가 보여주었던 근거없는 생존 본능은 이 책 <로드>에서도 여전히 이어진다. 그들에게는 살아있어야 할 뚜렷한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 상황에서 주인공들이 자살을 한번도 꿈꾸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흔하디 흔한 헐리우드 영화에서 보여지듯, 사랑하는 누군가를 구해내기 위해, 또는 저 멀리 어딘가에 도달하면 거기서는 살수 있다던지- 그런 일말의 희망 또한 없다. 그저 인간이고 살아있는 생명체이니까 살아있고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무척 간단명료한 진실이면서도 무섭도록 냉혹하다. 생존하는 것 말고는 더이상의 선택이 없다는 듯 존재하는 것 역시 인간의 본능이라 딱잘라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은 계속 걷는다. 무언가를 보기를 바라지도 않은 채, 재만 흩날리는 지옥같은 세상을.
다행히 <로드>에는 우리가 알고있는 인간과 가장 흡사한 인간이 등장한다. 남자의 아들이라 불뤼우는 소년에게서 우리가 인간에게서 기대할수 있는 슬픔과 기쁨, 연민과 희망을 엿볼수 있다. 어쩌면 그 아이는 아버지와는 달리 이전의 세상을 오래 겪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희미해져 꿈에서나 등장하는 문명세계에 대한 기억들은 아들을 침범하지 않는다. 알지 못하면 그리워하지도 않으리라. 그 그리움에 마음을 뺏기지 않으리라.
가장 나약해보이는 존재이면서도 가장 강한 존재-
그래도 하나 남아있는 인류의 마지막 희망은 바로 마지막 남은 인간성을 간직한 소년이 아닐까 싶다. 절망적일 정도로 냉담한 고요속에서 단하나 빛나는 빛, 새로이 그 세상을 살아갈 새로운 세대- 바퀴벌레만큼이나 강한 생명력으로 또다른 세상을 만들어갈 또다른 세대를 남겨놓고 소설은 마무리 짓는다.
 
완벽한 고요만큼 두려운 것은 없다. 우리가 외로움을 즐기거나 또는 견디면서 살아갈수 있는 이유는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집 어딘가에서 가족들이 잠들어 있고, 어떤 동네에서 내 친구가 살고 있고, 아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세상이 움직이고 있으니까 살아갈수 있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세상에 내던져졌다고 생각해보라. 그보다 더한 지옥은 없다.
아무도 없고, 아무 것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온통 회색빛으로 빛을 잃은 세상만한 지옥이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이런 세상에 내던져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될까 꽤 오래 고심했다.
그 참담하기 짝이 없는 고요의 세상을 그래도 살아가게 될지,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게 될지. 결국은 자살쪽으로 마음이 기울기는 했지만, 스스로 생명줄을 놓아버리는 용기마저 없다면 그것이야 말로 참담한 재앙이 아닐까. 딱히 살고싶어서가 아니라, 살아가지기 때문에 살아가는 인생만큼 두려운 것이 또 있을지...
 
책을 다 읽고 덮고 났을때 창밖에서 들려오던 매미소리에 감동이 밀려오기는 난생 처음이다.
소리가 있다는 것, 색이 있다는 것, 사람이 있고, 먹을 것이 있다는 것에 이렇게 뭉클했던 적이 또 있었나 싶다.
구태의연한 말이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이 손뻗으면 닿을데 있는 곳에서 살아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이 절망과 암흑으로 가득찬 소설속에서 내내 괴로워했으면서도 나는 묘하게도, 거대한 감동은 받았다.
엄청나다 싶을 정도의 광고공세가 조금 거슬리기는 하지만, 좋은 책임에는 분명하다. 아니,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이 걷고 싶지 않은 잿빛 길을 무거운 카트를 끌고 주인공들과 함께 걷다가, 나는 왜인지도 모른 채 울었던 것 같다. 그들의 대화 한구절 한구절마다 마음이 저릿저릿했었다.
 
대단한 반전이라던가, 아귀가 맞춰지는 완벽한 플롯이라던가, 이야기자체의 화려함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읽지 마시라. 까놓고 말하자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와 아들이 먹을 것을 찾아 걷는 것이 다인 소설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왜 참담하고도 아름다운지는 얻을수 있는 사람만 얻으시길 바란다.
그저 즐기시길 바란다.
황야처럼 거칠고 아지랑이처럼 아득한 코맥 매카시의 단어와 문장을.
그가 보여주는 이보다 가혹할수 없는 적막한 지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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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9-07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이에요.
특히 마지막 문단은 <로드>에 대해 아주 객관적으로 말해 주셨어요^^
저도 <세븐사인>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그 당시엔 왠 종말론이 그리도 많았는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