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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는 언제까지나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
가와카미 겐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 / 비채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내 이팔청춘시절을 떠올려본다. 또 내 스무살 시절도 떠올려본다.
더 어릴 때는 인생이 시트콤처럼 이어질거라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다. 매일 같이 다른 이벤트가 있고, 아름다운 추억들이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만들어지고, 즐거운 친구들이 곁에 있을 거라고-그렇게 상상해보곤 했다.
그때는 세상이 좀더 재밌어질테고, 좀더 행복할거라고 생각했었다.
이제와서 떠올려보니 모든 것이 환상이지 않았나 싶다. 내 다섯살시절이나 열다섯시절이나 스무살 시절이나, 지금이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게 하루하루가 별 일 없이 이어졌고, 일상은 늘 똑같아서 어제나 오늘이나 크게 다를바가 없었고, 자고 일어나면 또 별다른 다음 날이 오는 것은 똑같아서 어느 순간인가 특별한 일상이 이어질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게 되었다.
내 사춘기 시절에 행복한 시절이 있었던가. 물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고 우울했던 시절은 더 많았던 것 같다. 무언가 커다란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도, 내가 남들보다 특별히 불행했기 때문도 아니다. 단지 사춘기 시절은 그런 감정을 갖는 것이 당연한 시절이기 때문이다. 삐뚤게 생각하기 시작하고, 감정은 불완전한 시기 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수많은 사소한 사건들 중에는 웃음이 나게 만드는 사건들보다 마음이 무거워지고, 화가 나고, 우울해졌던 사건들은 더 많았고, 어린 시절에는 이해할수 없는 어른들의 세상과 나의 부조화때문에 분노한 적이 사실 아주 많았기 때문에, 세상은 독처럼 느껴졌었고, 나는 가끔씩 그 세상이 싫어 세상에서 도망가곤 했었다. 자신만의 공간으로, 아무도 없고, 내가 나이기만 하면 되었던 곳으로.
딱히 행복하지도 않았지만 불행할 것도 없었던 하루하루, 다소 어둡고 격앙되어있었고, 불만에 가득차 있었지만, 그런 유년들이 내게 독이 되는 것 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하나씩 세상을 알아가는 단계가 아니었을까.
사춘기가 무엇일까, 이 책을 떠올리며 생각해보았다.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도기, 어린 시절과 작별을 고하고, 상실감을 알아가기 시작하고, 세상을 알아가게 되는 시절이 사춘기가 아닐까. 그런 과정에서 슬픔이나 우울함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고뇌할수 있는 것 역시 청춘의 권리니까.
책을 읽으면서 엄청난 위화감을 느꼈던 이유는 그런 것 때문이었다. 내가 지나온 사춘기의 내 모습과 너무도 달랐기 때문에. 세상을 향한 분노를 표출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했고, 빛나기는 커녕 감정의 혼란이 거추장스럽게만 느껴졌던 그런 시절이 이 소설에서는 너무도 환상적으로 그려지고 이기 때문에. 어떤 청춘들의 이야기가 이 소설처럼 아름답고 용기와 패기가 넘치기만 하는지 궁금하다.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지나치게 과장된 만화주인공처럼, 매일매일이 즐겁기만 하고, 어른들의 세상에 쌓였던 분노를 꺼리낌 없이 표출하고, 쉽게 쉽게도 친구가 된다. 청춘의 극히 일부분만을 바라보는 것처럼,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너무 잘나 왕따 당한 여자아이는 전학와 자신을 숨기면서 살게되는데, 같은 반 남자아이의 도움으로 용기를 얻어 세상속으로 쉽게도 뛰어든다. 연습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피아니스트처럼 피아노를 치고, 같은 반 남자아이 앞에서 알몸을 보이는데도 별 꺼리낌도 없어보이며, 책에나 나올 법한 멋들어진 문장들을 잘도 읊어댄다. 겨우 열네살의 여자아이가. 상처도, 쑥쓰러움이나 미숙함도 없는 아이들, 감정이입이 조금도 되지 않는 과한 행동들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읽으면서 짜증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은 이런 비현실적인 캐릭터들과 그들이 세상에 동화되어가는 과정이 너무도 쉽고 간편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제발 이렇게 흘러가지만은 말아다오'하고 마음속으로 외치는 순간 딱 그대로 소설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동창회만은 하지 말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동창회에서 옛추억을 되씹으며 끝이 난다. 아...이 책을 읽는 것이 시간낭비였다는 생각은 왜드는지 모르겠다.
모든 것이 아름답게만 그려지는 초현실적인 환타지소설에 가까운 소설이었던 것 같다.
상처없는 청춘은 조금도 매력적이지 않다. 완전무결한 청춘 역시 비현실적이기 그지 없다.
야구와 비틀즈, 바다와 캠핑, 청춘과 풋사랑-어디선가 수백번은 봤을 법한 이미지들이 조금도 특별할 것없이 차곡차곡 이어지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