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뜨거운 순간
에단 호크 지음, 오득주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사람들은 그림쟁이가 그린 그림은 은연중에 자신의 분위기와 닮게 그리게 된다고들 한다.
어쩌다보면 생긴대로 사는 것같은 사람들을 볼수 있는데, 작가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귀찮은 관계로(;;;), 작가의 사진 같은 것은 일부러 찾아보지 않는 편이고,
그래서 아는 작가들의 얼굴을 다 확인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소설은 그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와 닮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배우 에단 호크의 데뷔작 "이토록 뜨거운 순간"은 말 그대로 그가 생긴대로,
그에게서 느껴지는 그대로의 이미지와 무척 닮아있는 소설이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세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미지의 배우(얼마되지 않는다.)가 바로 에단 호크이다. 잘생긴 남자배우라고 단정지을수 없는 묘한 분위기, 아마도 살짝 망가진 것 같은 그런 이미지를 나는 좋아하나보다.
 
책을 보면서 그의 영화 "청춘 스케치"와 "비포 선라이즈"를 떠올리게 되었다.
마치 비포 선라이즈로 시작해 청춘 스케치처럼 진행되는 소설 "이토록 뜨거운 순간"이
그가 찍었던 몇몇 영화같기만했다면 조금 시시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을때 밀려오는 입안을 쓰게 만드는 허무함은 이 책을 내고
그가 받았다는 언론의 찬사를 부끄럽지 않게 하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윌리엄이 미치도록 사랑했던 여자 사라를 미워했다.
먼저 유혹해온 주제에 절대 자지 않는 여자, 자신을 사랑해주길 바라면서 그 사랑이 부담스럽다는 여자, 결혼하자고 했더니 들은 척도 안하고, 멋대로 약혼을 떠벌리는가 하면 엄마의 걱정스러운 한마디에 결혼생각을 딱 접어버리는 여자. 자기가 떠나게 된다면 꼭 붙들어 달라고 부탁해놓고서는, 이별후에 그가 그녀를 붙들려고 하자 경찰에 신고해버리는 여자. 누가 사랑에 종속되라고 말한 것도 아닌데, 누군가의 여자친구로 남고싶지는 않다고 말하는 여자.
이 종잡을수 없는 변덕이 주인공 윌리엄 뿐만이 아니라 나를 지치게 만들어서 나는 사라가 너무 싫었다.

사랑에 있어서 열정적인 윌리엄, 울고 욕하고, 비난해도, 사라를 너무나 사랑했고 잊지 못해서
발광에 가까운 이별후를 겪는 윌리엄을 보면서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좋아했으면 이럴까...하고.
그러나 그 역시 누군가에게는 사라만큼이나 잔인하고 매몰찬 사람.
이별후의 허무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아이를 두번이나 떼었던 여자에게 몸만을 바라는 엄청나게 이기적인 인간.
 
동전의 양면처럼, 한쪽에서만 바라보면 알수 없는 것이 사람일이겠지.
아무리 헌신적이어도, 아무리 열정적이어도, 누구의 사랑이나 이기적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 사랑이란 원래가 그렇게 모두 일방적일수 밖에 없는 것일까.
둘이 사랑해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 것인지,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랑은 항상 불안정하고 씁쓸하다. 열정적이지만 불안정하고, 아름답지만 미숙한 스무살의 사랑들은 그렇게 씁쓸함만 남기고 끝나버린다.
소설의 마지막, 사라가 일하는 유치원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이유없이 엄청나게 울어버리는 윌리엄은 아마도 그때 깨달았던 것 아닐까.
아무리 사랑하고 아무리 아팠어도, 시간이 지나면 이토록 뜨거운 순간도, 이토록 고통스러운 시간들도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더이상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고, 목소리를 못알아듣고, 마냥 담담하지만은 않게 다시 만났지만, 그저-그게 끝이었다는 것을.
고통스러운 이별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그는 사라가 아니라, 사라를 기억하고 있는 자신의 기억을 사랑했던 것은 알게된 것은 아닐지....
그리고 어느 순간 모두 깨닫고나니, 그런 자신이 너무나도 슬펐겠지.
 
살이 베여 피와 고름이 쏟아져도, 언젠가는 딱지가 눌러 붙고 그 안에서 새살이 돋아난다.
절대로 다시는 누군가를 사랑할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해도,
언젠가는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조차 잊어버릴 날이 오리라.
그렇게 어린 사랑은 성장통과 함께 자라나고, 다음번에는 좀더 차분하고 성숙된 사랑을 만날수 있을 것이다.
나의 스무살때는 어땠던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되었는데,
마음보다 몸이 먼저 나가고 생각해두었던 침착한 말보다는 욱하는 마음이 먼저 나가버리는 이 어설픈 사랑에 혼자 동감하며 웃음짓다가 씁쓸해했다.
에단호크의 첫 데뷔작이고,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라서인지 자신의 색깔이 분명하고 무척 솔직 담백한 느낌이 마음에 들었고, 배우가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에 약간 가볍게 생각한 점도 있었지만, 예상외로 상당히 와닿는 점도 많았다. 아직까지 깊이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모든 것이 성장하듯이 점점 더 성숙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스무살보다는, 스무살을 훨씬 지난 사람들이 읽어야 동감할수 있는 이야기.
예쁘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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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2-04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단호크 배우군요. 몰랐어요ㅋㅋㅋ
풋풋함이 묻어나는 책 같은데요. 와닿는 점이 많았다고 하시니...저도 한번 읽어볼래요^^

Apple 2008-02-04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에단호크 매력적인 배우이지요.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