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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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보자. 여자와 남자의 역활이 바뀐 세상을.
이런 상상력에서 시작된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 가상의 나라 이갈리아에서 사용하는 몇개의 언어를 익혀야한다.
그 사회에서 누구를 더 중심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많은 언어들이 바뀐다.
이를테면, 영어에서 많은 단어들이 he를 중심에 두고 바뀌듯이 말이다.
man, woman-굳이 따지고 보면 woman은 man에서 파생된 소단어로 보이기도 하며,
왕국 kingdom 역시 여자 남자 다 살아가는데도 불구하고 중성적인 선택없이 king이 주체가 된다. (그러고보면 여자, 남자 역시, 아들 자(子)를 포함하고 있으니 마찬가지 아닌가.)
모계중심사회인 이갈리아의 말들 역시, 여성중심으로 바뀌어있다.
 
여자는 움, 그리고 남자는 맨움이라 부르고, (레디스 앤 젠틀맨은 로디스 앤 젠틀움이 된다.)
kingdom은 queendom이 되며, 그들이 믿는 신 역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도나 제시카가 된다.(그리고 하느님어머니!라고 부르고, 믿을수 없이 황당한 순간, jesus!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donna!라고 말한다.)
이런 나라에서는 여자가 모든 주도권을 잡는다.
움과 맨움사이의 타고난 육체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움은 어린 시절부터 육체적인 힘을 기르고, 맨움은 아버지의 교육 아래 참한 신랑감이 되는 연습을 한다.
늠름한 움(여자)은 밖에 나가 돈을 벌고, 얌전한 맨움(남자)는 집안에서 아이들을 기르고 살림을 한다. 이런 나라에서는 모든 기준이 움에게 맞추어져, 힘, 권력, 성적인 위치 모든 것에서 움은 맨움을 지배한다. 움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윗도리를 벗고 다니고, 맨움들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기 위해,  "페호"라는 성기가리개를 착용해야하며, 움에게 잘보이기 위해 꽃 페호, 망사페호, 레이스 페호같은 것을 착용하기도 한다. (치마도 맨움이 입고, 맨움은 움에게 사랑받아야 하므로, 턱수염을 예쁘게 파마해야할 의무가 있다.)
움은 맨움보다 자연에 가까운 존재이며 아이를 낳는 거룩한 일을 하므로 움은 더 우월하며,
그들의 첫월경은 세상사람들에게 모두 축하를 받아야하며, 이 나라에서 가장 성대한 축제는 월경축제이다.
물론 피임도 맨움의 몫이며,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맨움의 몫이다.
그들이 결혼해 서로의 배우자가 되기 위해서는 맨움은 움이 원할 때 그들을 임신시키고,
'부성보호'라는 시스템을 통해 움에게 "간택"되어야 한다.
부성보호를 받지 못하는 맨움은 사회의 지탄을 받거나, 가난하고 비참하게 겨우 목숨만 부지하는 삶을 살게되므로, 부성보호란 이갈리아의 맨움에게 있어서 평생의 꿈이다.

여자와 남자의 성역활이 완전히 반대로 바뀐 소설이고, 남성중심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여자인 나조차도 어색함에 끊임없이 피식피식 웃어가며 읽게 되는 소설이지만, 뼈를 담고 있는 유머같은 이 소설이 남성중심의 사회속에 담긴 남녀차별 문제를 수도 없이 찌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여자로 태어나 살면서, 나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내게 약간의 남성혐오증이 있기 때문인데, 사실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차별을 받은 적은 그다지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그런 혐오증을 가진 사실 자체가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 대한 반항이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많은 남자들이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좋아한다"는 의미가 성적인 의미에 그친다는 것 또한 안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고, 아껴주고 싶어하고, 책임지고 싶어하고, 여자의 몸도 영혼도 사랑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는 여자를 존경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여자는 연인이고, 배우자이고, 어머니이며 할머니이지만, 스승은 될 수 없다.
그것은 여자가 더 못났기 때문이 아니라, 여자는 그런 대상으로 여길수 없다는 암묵적인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말속에 은연중에 깔린 여자에 대한 경멸과 무시, 가부장적인 메세지를 여자인 나는 종종 느끼는데, 그것이 비단 남자들 자체가 여자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 있거나, 대놓고 무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교육되어 관습화 되어진 여자의 위치와 성역활이 그들에게 그런 생각을 가져다 주고 있음도 나는 알고 있다.

어떤 사람과 이야기 도중에 그는 말했다.
결국 역사를 만든것, 이 세상을 만든 것은 남자이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여자는 남자가 만들어놓은 것에 해택을 받지 않았느냐고.
그리고 나는 대답했다.
만약, 남자가 없었다면 역사가 없었을 것 같냐고. 남자가 하는 생각을 여자는 못할 것 같냐고.
남자가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든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수없이 밖으로 나오려는 여자를 막았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냐고.
남녀의 역활이 바뀌면 어색할 것 같지만, 여성중심 사회인 이갈리아를 바라보면 여성중심의 세상 역시 어색할 것은 없다. 사회적 통념에 따라 사람은 많은 것이 바뀐다. 이갈리아의 움들이 근육질의 여자들인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보고 누구나 패미니즘을 논하지 않을수 없지만, 패미니즘 자체가 차별적인 개념으로 보이는 나는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없다. 과거에도 지금에도, 아무리 평등해 보인다고 해도 암묵적으로 깔려있는 차별은 존재해왔고, 남자는 여자를 여자로 보기이 전에, 인간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얼굴, 그들의 몸,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기 전에, 인간으로써 살아온 그 세월 역시 이해하고 알아야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부터가 평등의 시작이지 않나 싶다.
여자로 태어나서 부끄러웠던 경험, 여자로 태어나서 서러웠던 경험-
"비교적" 평등적으로 보인다고 해도 그런 경험을 가진 여자는 아직도 수도 없이 많다.
적어도, 태어난 것 자체가 수치스러워지는 그런 사회는 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당신이 만약 남자라면, 남자의 우월함을 말하기전에, 여자가 받은 억압 역시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것이 당신의 어머니의, 당신의 연인의 길고도 서러운 역사이니까.
 
지금같은 세상에서는 노골적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을 일들이지만,
여성 억압의 역사, 사회적 차별과 여성 자체의 각성을 통해 패미니즘이 시작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이갈리아라는 가상의 국가속에서 입장을 바꾸어 풀어놓은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
한편으로는 통쾌하고, 한편으로는 우습고, 또 한편으로는 씁쓸한 코미디인데,
소설속의 많은 사건들과 행동들이 다소 극단적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게 되는 재미와 은근한 통쾌감이 있다.
글쎄..이 소설을 굳이 패미니즘의 입장에서만 봐야할까. 소설로써도 충분한 재미를 주고 있는데.
패미니즘에는 그다지 관심없는 나에게는 재밌는 상상력과
여성중심으로 모든 단어 바꾸어놓는 작가의 센스가 더욱 돋보였는걸.
내가 너무 단순하게 읽은걸까. 허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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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8-01-28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꽤 오래 전에 읽었지만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리뷰를 보니 다시 읽고싶어지네요.

Apple 2008-01-28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참 재밌는 책이었죠.^^

쥬베이 2008-01-28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성과 여성이 바뀐 세상을 이야기하는 책인가봐요
설정만으로도 느낌이 옵니다ㅋㅋㅋ
페미니즘적 해석이 불가피한 소설이란 느낌??

Apple 2008-01-29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이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더 이상한거죠.
하지만 참 재밌는 책이예요. 쥬베이님에게도 추천을..^^